소련 국기에 대한 맹세를 추억함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조국의 부름을 받아 총을 드는 것’을 신앙생활처럼 여기던 죽마고우
위대한 소비에트연합과 빨간 깃발에 충성을 다짐케 만든 상징 조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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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소련·중국·북한과 같은 ‘현실 사회주의적’ 사회들에 대해 정치학자들은 ‘극단적으로 정치화된 사회’라 말한다. 추수가 ‘수확을 위한 전투’가 되고, 생산은 ‘속도전’과 같은 ‘돌격대’ 방식으로 이뤄지는 등 개인에 대한 정치적인 호명이 모든 분야에서 존재한다는 말이다. 소련이 일상적 생활과 언어를 극단적으로 정치화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데, 1980년대의 말기적인 소련 사회에서는 정치적 언어를 일상에서 잘 쓰지 않았다. ‘사상 학습’에서 ‘지도자의 말씀’들이 인용되고 ‘당의 자랑스러운 역사’에 대한 미사여구가 남발돼도 일상적으로는 노망에 든 듯한 브레즈네프 공산당 총서기관과 같은 지도자들은 관심 밖이거나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소련 사회가 낡은 체제를 아래로부터 전복시킬 힘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체제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는 상당 부분 상실해가고 있었다.

국가와 군에 대한 외경의 정서

당시 브레즈네프는 누군가가 써준 연설문조차도 제대로 낭독해내지 못할 만큼 노쇠해 있었는데 그에게 국민은 냉소와 멸시를 보냈다. 이렇게 구체적인 ‘지도자’들이 권위를 잃었지만, 국가나 군사력에 대한 소련 국민의 태도는 마치 독실한 교회 신도들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지금도 1980년대 중반에 중학교 동급생들과 나누던 대화가 기억난다. 몇몇 동급생의 형이나 친척 등이 아프간을 침략하는 소련군의 일원으로 아프간에 파견돼 있었다. 한 동급생이 아프간 빨치산들의 ‘무자비함’을 이야기하자 다른 친구가 응수했다. “그 짐승들에게 포로로 잡히느니 수류탄 하나만 남아 있다면 남자답게 그냥 자폭하고 마는 게 낫지. 저 짐승들 죽이고 명예도 세우게 말이야.” 그것은 ‘사상적 건전성’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나온 말로 평범한 소련 청소년의 의식 세계를 잘 반영한다. 브레즈네프가 아프간에 보낸 군대와 ‘나’는 동일시됐으며 ‘전우애, 담력, 희생정신, 조국 사랑’에 대해서는 토를 달 수 없는 분위기였다. 국가와 군대가 도덕적 최고선이었기에 거기서 침략의 불법성이나 잔혹성은 논외로 치부됐다. 소련 군대가 철수되고 침략이 정치적 오류로 판명된 1989년 이후에도 많은 소련인들은 “잘못은 정치인에게, 명예는 우리 전사들에게 있다”는 식의 사고를 했다.


△ "조국과 공산당에 맹세한다!" 2002년 5월 소년 공산당원들이 모스크바 크렘린궁 근처 무명용사의 무덤에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 EPA)

비판적 지식인을 부모로 둔 아이들도 분위기에 휩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필자의 한 죽마고우는 1980년대 말 병영에서의 구타나 자살 사건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돌자, “조국을 지키는 것이 남자의 의무고 어차피 군대 갈 사람은 가야 하는데, 징병 대상자들에게 무술을 가르쳐 악질 고참을 막는 방법을 익히게 하자”라고 말했다. 그는 아프간 침략과 같은 만행이 ‘조국을 지키는’ 일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군대’ 같은 단어가 나오면 흥분된 말투로 변했다. 그에게 ‘조국의 부름을 받아 총을 드는 것’은 이성의 개입이 불가능한 성(性)이나 신앙생활과 같은 진리와 격정의 세계에 속했던 것이다.

서민을 총알받이로 만들고 고참의 주먹 앞에서 인격과 자존심을 상실케 하는 군대가 어떻게 해서 수많은 이들의 의식 속에서 이와 같은 ‘신성한’ 위치를 획득하게 됐는가? 사회경제적인 이유에서부터 성·정치 영역까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예컨대 남성의 ‘군인’ 이미지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권위의 근거가 된다는 것은 ‘군 사랑’의 이유 중 하나다. 그 외에도 시민사회를 압도한 ‘과대 성장 국가’의 상징 조작도 ‘국가와 군에 대한 외경’의 정서를 체계화하고 유지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을 것이다. 성장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상징·의례들이 개인적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없는 내밀한 ‘나만의 세계’에 속하기에 국가의 상징 조작 앞에서 개인은 무력해진다.

그 애국가 가사에 구토를 느끼다

예컨대 남한만큼이나 크고 작은 행사마다 자주 울려퍼졌던 소련 애국가를 생각해보자. 1944년 스탈린의 지시로 제정된 소련 애국가는 ‘위대하고 강력한 소비에트연합’과 ‘빨간 깃발에 영원히 무조건 충성을 바칠 우리들’의 이미지를 합치게 한다. ‘나’의 존재를 영원히 기탁해도 될 위대한 조국의 힘…. 우리 무의식의 ‘아버지’ 원형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이 ‘조국의 힘’의 이미지는 애국가를 들으면서 자란 사람들의 몸에 배게 된다. 1944년 이전까지만 해도 소련 애국가는 국제 노동운동의 노래 ‘인터내셔널’이었지만, 그 뒤 전세계의 3분의 1이나 장악하게 될 스탈린 제국에는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던져라’가 어울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재미있게도 새로운 자본주의적 러시아는 과거 소련 시절의 애국가 음악은 그대로 놔두고 가사만을 ‘상황에 맞게’ 변형시켰다. ‘무조건적 사랑’의 대상은 ‘하나님이 보호하는 신성한 우리 조국’이 됐으며, ‘조국에 대한 충성이 우리에게 영원히 힘을 줄 것’으로 돼 있다. 남한의 애국가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나오듯이 푸틴 정권의 새 애국가에는 ‘남쪽 바다부터 북극권까지 놓인 우리의 광활한 숲과 바다’에 대한 긍지가 강조된다. 필자는 이 애국가를 구토가 나는 심정으로 들으며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그러면 그 광활한 땅덩어리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도 보장받지 못하는 빈민까지도 ‘민족적 긍지’를 가지고 오늘과 같은 참경에 내몬 상전님들께 ‘영원한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가?

애국가는 정교회 신앙이 지배했던 1917년 이전의 러시아의 주기도문을 ‘최고의 신성성 텍스트’로서 대체했지만 이외에도 젊은이들을 ‘선량한 국민’으로 만드는 의례들이 대단히 많았고 개인 생활의 내밀한 부분까지도 개입할 수 있다. 예컨대 1917년 이전의 성탄절을 대체한 소련 국민 최대의 가족적 명절은 신년맞이였다. 가족끼리 신년을 맞이할 때 텔레비전을 켜놓고 밤 12시를 기다리는 것은 소련 체제의 ‘국민다운 습관’으로 자리잡았다. 송구영신의 12시가 되자마자 텔레비전에서 크렘린궁의 커다란 시계가 보이고 모스크바 중심의 붉은광장의 풍경이 보였다. 국가의 중심축이 개인적·가족적 시공간의 중심축까지 돼야 한다는 것은 이 ‘국민다운 습관’의 의미였다. 더군다나 정치적 색채가 지배적인 5월1일의 노동절이나 11월7일의 혁명기념일에는 시위대에 합류하고 군사의 사열대를 보고 애국가의 울려퍼지는 소리에 ‘차렷’ 하고 경건한 표정을 짓는 것은 거의 계절 의례였다.


△ 빨간 깃발에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소년 공산당 여름 캠프의 조회 모습(왼쪽). 군사주의적 색채가 짙은 소련 시대의 포스터(가운데)와 전승기념일 포스터.

군인들이 행진하고 탱크들이 굉음을 내면서 지나가고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그 정치적 명절의 광경은 대다수 소련 국민에게 결정적인 성장기 경험이 되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한 달에 한두 번씩 ‘행군과 군가 가창대회’란 이름으로 ‘군인답게’ 행진하고 군가를 부르고 군기를 방불케 하는 소년 공산당의 깃발 앞에서 충성의 맹세를 바치고, 고등학생이 되면 정식 교련수업을 받는 것이 일반 수업 못지않게 중요한 ‘정신교육’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필자는 교련수업 때 자동총을 정해진 시간인 40초 내에 분리·조립하지 못해 교련 교사에게 “자동총도 제대로 분리·조립할 줄 모르는 남자에게 매력을 느껴 결혼할 여자가 어디 있겠냐”라는 질책을 들었다. 당시에는 자존심이 무척 상하기도 했다. ‘남자의 매력’과 자동총을 다루는 솜씨, ‘남자의 자존심’과 ‘빨간 깃발에 대한 충성 맹세’가 동일시됐기에, 아프간의 양민을 학살한 소련 군인들은 젊은이들의 영웅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국가적 상징 세계의 존재가 ‘국민’의 의식을 결정짓는 슬픈 광경이었다.

한때 폐지됐던 교련 수업 부활

대자본들이 그 국적과 무관하게 전세계로 문어발을 뻗치는 요즘 세계에, 미국 학교에서는 ‘국기에 대한 충성의 맹세’가 강조되고, 러시아에서는 한때 폐지됐던 교련 수업이 부활되고, 대한민국에서 대형 스포츠 행사마다 ‘태극기의 바다’와 흥분이 이루어지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황우석씨가 한 발언을 좀 바꿔보자면, 자본의 이윤 추구에 국경이 없지만 자본가들은 국민국가의 행정력과 군사력을 필요로 하고 착취 대상자들을 국적별로 유순한 ‘국민’으로 묶어둘 필요를 느낀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저들의 ‘게임 룰’을 그대로 받아들여 ‘신성한 국기’ 앞에서 ‘우리’의 자본을 위해 ‘남’의 나라 노동자를 유사시에 살육할 것을 맹세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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