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의 ‘기관 없는 몸’

2007/01/23 17:53
 

들뢰즈의 ‘기관 없는 몸’

-조광제 (철학자)

 

 

“감각이란 어떤 강렬한 현실성만을 가지고 있는데, 이 현실성은 더 이상 그 속에서 재현적인 여건들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동소적(同素的)인 다양성을 규정한다. 감각은 진동이다. 우리는 알이 바로 유기적으로 재현되기 ‘이전에’ 이러한 상태에 있는 몸을 제시함을 안다. 알은 축들, 벡터들, 비율들, 지대들, 역학적인 움직임, 역동적인 경향들을 제시하는데, 이에 비하면 형태들이란 우발적이고 보조적일 따름이다.

'입도 없고, 혀도 없고, 이도 없다. 후두도 식도도 없으며 위도 없다. 배도 없고 항문도 없다.'

생명이란 도대체 유기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유기체는 생명이 아니라 생명을 가두기 때문이다. 몸은 전적으로 살아있다. 그러나 유기적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감각이 유기체를 관통하여 몸에 이르면, 감각은 과도하고 발작적인 모습을 띤다. 그때 감각은 유기적 활동의 경계들을 잘라버린다. 살이 충만해지면서 감각은 직접 신경의 파장이나 생생한 흥분 위에 직접 실린다.”


『감각의 논리』(하태환 옮김, 민음사)를 통해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해석하면서 질 들뢰즈(Gille Deleuze, 1925-1995)가 감각에 대해 무서운 기세로 일갈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조그마한 바늘로 피부를 찌르면 따끔하면서 국소적으로 감각적인 흥분이 일지요. 만약 송곳을 푹 찌르면 어떻게 될까요? 온 몸이 놀라면서 감각적인 흥분이 전신으로 급하게 퍼질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칼이나 창으로 푹 찌르면 어떻게 될까요? 감각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감각적인 흥분이 너무나도 극심하게 그리고 너무나도 급격하게 온 몸을 송두리째 뒤틀리게 하면서 발작하게 만들 것입니다. 들뢰즈가 노리고 있는 감각이 바로 이런 극단적인 감각입니다. 그런 감각적인 흥분이 온몸을 가로지른다면, 아! 그때 감각과 몸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요? 구분이 될까요?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몸과 감각, 감각과 몸이 하나로 덩이지면서 몸이 감각한다고도 말할 수 없고, 차라리 몸은 감각 덩어리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의 몸을 들뢰즈는 전혀 유기적이기 않은 ‘기관 없는 몸’(le corps sans organes)이라 합니다. 온통 뜨거운 감각의 파장으로 넘쳐흐르는 감각 덩어리로서의 몸입니다.

우리의 삶은 항상 어느 때고 이러한 강렬한 몸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곧 예술적인 본능이 우리의 몸 즉 우리의 삶에서 바탕을 이루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그러한 몸을 느낄 때, 그러한 몸이 저기 우주에 넘쳐나는 모든 사물들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낄 때, 그래서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이 감각 덩어리인 한 몸이 되어 전 우주적인 감각의 떨림으로 바뀔 때, 그때야말로 근원적인 예술과 시가 태동하는 시점인 것입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들이 그러한 지경에서 열려나온다고 들뢰즈는 말합니다. 그렇다면, 아!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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