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인 "민중"에 대한 생각 | 만감: 일기장  2007/02/05 00:54 

 [출처: http://wnetwork.hani.co.kr/gategateparagate/4304]



1970년대부터인가 "저항의 주체"로서의 민중이라는 테마는 한국 "진보" 진영의 가장 큰 화두가 됐지요. 장길산의 미륵신앙이 꼭 "공산당의 선언"처럼 읽혀지고, 동학 농민의 "제폭구민"이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처럼 들리고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물론 "지금, 여기"의 현실 속에서의 "저항의 주체"들이 열성적으로 탐색되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 동일방직이라는 유명한 방직업체에서 민중 중의 민중이라 할 예비역 출신의 남성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 여성 노동자들에게 오물을 투척하고 있는데도 말씀입니다. 물론 1987년 창원 등지에서 노조를 설립하겠다고 파업에 나선 삼성 중공업의 노동자들은 "투쟁하는 민중"이었지만 과연 구사대는 민중이 아닌 사회 귀족이었습니까? 그리고 지금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제발로 삼성의 문에 들어와 이건희의 어록을 외우는 이들은 과연 민중의 일부분이 아닙니까? "민중의 저항성"이라는 문제는, 사실 생각보다 단순하지가 않더랍니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자본주의 하에서 사는 대중의 사고 역시 자본주의적일 수밖에 없다"라는 말이 역시 마음 아픈 진리입니다. 대체로 어릴 때부터 벌어서 쓰는 "생산, 소비" 순환의 맛을 몸에 들이고, 서민까지도 가질 수 있는 돈의 힘을 알고, 학교에서 "잘 사는" 것의 미덕을 익히고, 그리고 다른 곳에서 많은 이들이 자신보다 훨씬 못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영식이나 John은, 아주 특별한 생활의 여정을 밟지 않는 한 자본주의의 "극단"을 반대해도 자본주의 그 자체에 "자연발생적으로" 의문을 가질 확률은 높지가 않아요. 꼴보기 싫은 상사에게 굽신거리는 것도 자본주의지만, 김태희의 새로운 드레스의 노출도를 눈으로 확인하는 재미나, 월드컵 때에 힘껏 외쳐보는 재미도 자본주의 아닙니까? 부동산, 은행 빛, 사채 빛, 아이 사교육비 - 이 걱정거리의 더미 밑에서 사는 이들은 무슨 "대안"을 찾을 만한 여유도 없지요. 무론 여기에서 지역별 차이가 좀 있어요. 예컨대 선거때마다 노동당을 찍는 노르웨이의 노동자는 자신의 실질 임금이 그래도 해마다 1-2% 올라가는 이 복지 자본주의에 반대가 없어도 일단 "계급 의식"이 아주 강한 반면, 이쪽에서 삼성의 사가를 제창하고 회장님의 어록을 외우다 보면 "삼성가의 충신" 의식이 트일 수도 있고 순전히 생존본능대로 살아갈 수도 있지요. 그러나 노동당의 지지자든 회장님을 모시려는 일편단심의 소유자든 "평상시" 자본주의하의 대중들을 진정한 반자본 투쟁에 이끌기가 매우 힘들지요. 경제 투쟁이야 당연히 빈번히 일어나고 또 대중의 좋은 학습 기회가 되지만, 이건 "반자본의 투쟁"이라기보다는 자본과의 공존의 조건을 좀 개선시키기가 위한 투쟁이지요. 물론 그러한 투쟁이라도 없으면 노동자가 한국의 1980년대초처럼 한달에 200달러나 받고 쪽방에서 새우잠을 자게 돼 있지요. 다만, 한국처럼 주인네들이 노동자들에게 학교/군대 시스템을 통해 "복종 훈련"을 시켜 대중을 원자화시킨 뒤에 정규직/비정규직 등을 잘 분리 통치하고 조합 관료들을 계속 매수하면, 경제 투쟁조차도 참 외롭고 어려울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 상황을 바꾸는 것은 자본주의의 온갖 균열의 시공간과 불경기의 시공간이지요. 자본주의는 늘 "전쟁"을 의미하는데, 이라크 등지에서 수십 만 명의 무고한 이들이 죽는 모습은 아주 배부른 노르웨이 노동자에게도 결국 "도대체 이게 무슨 세상이야?"라는 생각을 심어주지요. 또 1973년 이후에 유럽에서 점차 불경기가 심화돼 결국 "복지"를 놓고 주인네와 머슴네가 아죽 격렬한 "겨루기"를 하게 되지요. 작년 불란서의 젊은이 반란이나 독일의 공무원 장기 파업 등을 참고하시기를. 이러한 시공간들은 결국 "순응하는 민중"을 "투쟁하는 민중"으로 조끔씩 바꾸는 효과를 갖고 있어요. 문제는, 이 "투쟁하는 민중"을 조직, 이념적으로 응집시킬 수 있는 어떤 정치적 조직체가 필요한데, 유럽에서는 나라마다 몇 군데의 급진적 정당들이 있다 해도 거의 그 역량이 많이 제한돼 있는 것 같아요. 또 섹트적인 근성이 너무 강하거나, 그 반대로 "사민주의의 재탕삼탕"밖에 제안하지 못하거나. 지금의 상황으로 봐서는 세계 자본주의적 시스템에서의 균열이 계속 심화될 듯하고 아마도 결국 "파열"로 갈 것 같은데, "세계 혁명"이 안될 경우 그 대신에 "세계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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