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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기

 

"나는 안다. 나

를 다 고백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첫 걸음부터 완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또한 나는 안다. "


서른이 방향을 잃고 흘러가고 있다. 예상치 못했던 불행에 숨쉬는 것조차 버겨웠을 때 떠나옴을 계획했다. 내게 닥친 현실의 암담함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 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 반,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에 돌아가 있지 않을까하는 어리석은 마음 반으로.


그렇게 무너지는 마음을 안고 ‘떠나고 싶었다’는 길동무와 1년 여행 계획을 세우고 무작정 필리핀으로 날라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3월과 5월을 보냈다. 하지만 처음을 제외하고 달라진 것이 없었다. 새로운 것들과 조우하면서 기억 속에서 서울을 그리고 불행을 털어낸 듯 했지만 새로움에 차츰 익숙해져갈 때 쯤 다시 어두운 기억들이, 그리움과 상처가 나를 흔들었다. 또 다른 것들을 찾아,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떠나야한다고 짐을 꾸릴 생각을 하면서 문득 그것만은 해답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짐을 꾸리고 또 떠남을 반복할 수만은 없다는.


문득 기록이라는 것이 하고 싶었다. 내가 만나는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들의 삶이 가진 의미에 대해 소통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인생들 속에서 나의 삶도 풍요로와 지기를 바래고 싶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지금도 희미해져가는데, 시간 앞에서 다른 언어로 표현되거나 살이 붙어 ‘사실’이 흐려지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조금 더 지나면 모두 지워질 것 같았다. 급한 마음에 노트북을 켰다. 시간의 흐름 앞에서 붙잡으려 애써도 무기력하게 잊혀질 기억들과 그때의 그 느낌을 기록하기 위해서, 이들과 함께 했기에 나의 서른이 너무 어둡게만 기억되지 않으려는 바둥거림으로 ‘고백’을 시작한다.

 

맘의 평온 앞에서 또 다른 걱정이 엄습한다. 조급증을 내지 말아야한다며, 삶의 여유를 잊고 살아온 시간들이 너무 많아 때론 봄이 지나갈 때가 되어서야 봄이 온 것을 알았던 것처럼 그렇게 살진 말자며, 긴 호흡이 필요하다며 떠나온 길에 혹여 또 짧은 호흡 속에 허덕일까봐.


결국 ‘동전’이면서도 동전의 앞 뒷면처럼 서로 다른 모습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바로 나임을 인정하는 선에서 타협한다. 이런 나의 모습을 너무 미워하진 않기. 하지만 그게 나라고 쉽게 인정해버림으로 인해 포기해버리진 않기. 아직 살아내야 할 많은 날들이, 그리고 잘 살고 싶다는 욕심이 아주 많은, 절망 속에서도 한번도 주저앉음을 용인하지 않은 나이기에.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인다. 사람들이 내미는 손을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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