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와 문학이라는 글쓰기 교양 수업의 과제로 쓴 자기전공 소개글이다.

 

 

 “전공이 뭐니?”
 “법학(의학, 교육학)을 전공하고 있어요.”
 “그래, 훌륭한 법관(의사, 교사)이 되렴.”

 

 “전공이 뭐니?”
 “정치외교학을 전공합니다.”
 “너, 정치하지 마라!”
 “.......”

 



 정치외교학과에 들어온 지가 벌써 8년째이건만 아직 이 이상의 반응을 본 적이 없다. 이렇듯 정치외교학과는 우리나라 정치인의 이미지에 의해 평가받고 있다. 정외인으로서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이에 이 자리를 빌어 정치외교학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설명해 보고자 한다.


  정치외교학과에서 배우는 것은 말 그대로 정치와 외교이다. 이중에서 외교도 국가 간의 정치라 할 수 있으니 ‘정치외교학과에서는 정치를 배운다'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란 무엇인가. 정말로 우리나라 정치인이 하는 정치가 그 정치의 전부인가.


 앞의 일화처럼 사람들은 정치하면 보통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하는 뭔가 국가적 차원의 일만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정치를 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 자신은 그것을 감시하는 역할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반만 맞는 이야기다.


 정치는 유명한 정치학자 D.Easton의 정의를 빌리자면 “사회를 위한 제가치(諸價値)의 권위적 배분"이다.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치를 구성원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배분하는 행위가 바로 정치란 이야기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란 자원이나 화폐 같은 물질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권력이나 지위 등의 추상적 가치도 포함한다. 이러한 가치는 대부분 유한적인 것이어서 그것을 자칫 잘못 나누면 공동체의 불화를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공동체 구성원의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수단을 통해 가치를 배분해야 한다. 하지만 이 설명으로도 아직 정치는 먼 이야기로만 들린다. ‘가치’란 개념이 너무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는 가치의 예로 자원, 화폐, 권력, 지위 등의 범위가 큰 것들을 들었는데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면 쉽게 만나는 것들도 많다. 예를 들자면, 친구 셋이서 빵 4개를 나누어 먹는 방법이나 모임의 대표를 뽑는 방법 또는 팀과제를 조원에게 배분하는 방법 등이 이에 속한다. 즉, ‘정치'란 공동 목표를 추구하는 활동으로 갈등을 조정하여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모든 행위를 뜻하는 것이다. 이는 정치란 공동체 생활임을 뜻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동체에 속하므로 ‘정치는 곧 생활이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정치사상은 무엇인가.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소유하며 살아간다. 먹고 입고 잠자고 하는 모든 행동이 소유와 관련이 있다. 어렸을 때야 소유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고 또 그리 중요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소유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어 자신의 것을 챙기게 된다. 그것은 생존과 결부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유의 문제로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부딪치게 되는데 이를 누구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보았고, 누구는 ‘자유와 평등의 장’으로 보았다. 그러한 인식아래 인간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이론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정치사상이다. 여기에서도 정치는 생활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정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치적 활동’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해야할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이에 혹자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럼 정치외교학과에서는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인가?”
 

 그렇다. 정치외교학과에서는 사는 법을 배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조화롭게 사는 법을 배운다. 가치의 배분에서 소외되는 이가 없이 모두가 만족하는 세상을 이루는 방법을 배운다. 국내정치와 국제정치 모두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많은 수의 정치인들이 이를 망각하고 특정 부류의 이익과 권리만을 내세우고 있어 욕을 먹는 것이고, 덩달아 정치외교학과생도 핀잔을 듣는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왜곡된 정치를 하지 못하도록 우리 모두가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실상을 돌아보면 많은 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정치는 생활이다. 그렇기에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곧 삶에 무관심하다는 소리가 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정치외교학이 필요한 것이다. 정치가 곧 삶임을 주지시키고 나아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부터 권위의 정당성을 인정받아 갈등을 조정하여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리더가 되도록 훈련하는 곳이 바로 정치외교학과이다. 따라서 “살지 말아라!”라는 뜻과 같은 “정치하지 마라!”는 우매한 충고는 앞으로 더 이상 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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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9 23:34 2005/06/09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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