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베갯머리 책'으로 선정되어 나의 잠자리를 방해(?)했던 작품이다.

 

이렇다할 특별한 사건도 갈등도 없지만

작은 이야기 하나 하나, 그리고 등장 인물들의 대사 한 마디가

오뉴월 엿가락 늘어지듯 처억 늘어져서는

수능날 학교대문보다 더 끈적이게 내 마음에 들러붙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소설은 작가 공지영의 자서전적 픽션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一日>처럼 주인공의 기본적인 설정은 현실과 같고

나머지 모든 것이 허구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서는 수필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 냄새, 집 냄새가 흠뻑 묻어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얘기 같았다.

 

아는 사람도 잘 모르고, 모르는 사람은 진짜 모르는

내 가족사와 비슷한 가정의 삶을

값싼 동정으로 칠한 재수 없는 편견의 빈풍선이 아닌

있는 그대로,

거기에 다른 가정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코팅된

꽉 찬 당구공처럼 통통 튀게 그려진 걸 보니

뭐랄까, 일종의 통쾌함이랄까? 그런 시원한 감정들이 느껴졌다.

거기에 덧붙여 이 작품이 십여년 전에 나왔더라면

내 삶이 지금보다 더 유쾌했을 거라는 빈 아쉬움도 2퍼센트 있었다.

 

'보통' 가정에서 태어나 '보통'의 가족사를 가지신 분은

이 작품과 더불어 2007년 1월에 mbc에서

신년특집으로 방영된 다큐멘터리 <혼자서도 괜찮아>도 함께 보시길...

흔히들 제멋대로 상상하는 한부모 가정의 어려움, 불화, 어둠이 아닌

다른 가정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일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위 글을 보니 은연 중에 '차이'를 부정하려는 모습이 묻어난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게 보셨다면 그것도 당신의 편견!!

 난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내 가족의 구성이

 다른 가정과 다르다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내 가족사를 이야기하면 대부분 안타까워했다.

 미안하지만, 오히려 그런 즉각적인 반응이 내게 상처가 되었다.)

 

아, 그리고 이 작품 속에는

멋지게, 시쳇말로 쿨하게 살아가는 방법도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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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2 00:14 2008/02/12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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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obin Yoon  2011/03/10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이 좋아서 미국에서도 함께 읽을수 있었습니다
    지리산, 쌍계사, 화엄사..
    쌍계사에 오를때 만난 여섯 할머님의 쑥 바구니를 몽땅 다 털어 사가지고 돌아와서는 미국에 어떻게 가져오나...하고 고민했더랬지요.
    숙소에서 한숨도 못자고 쑥을 쌂아서 누르고 짜고 포장해서 미국까지 가져왔습니다,
    쑥 향기만으로도 향복한 한해 였습니다.
    그리움이 깊으면 아픔이 된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