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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생역전(2)

 박 검사는 지난 세 달간 아내와 서로 말도 안 하는 냉전을 계속해왔다. 그러던 그가 새해를 이틀 앞둔 12월30일 아침, 폭발했다. 옷장에 걸려 있는 깨끗한 와이셔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말이다.

 

“도대체 당신이 뭐하는 여자야? 아니 어떻게 열개가 넘는 와이셔츠 중에 빨아놓은 게 없어?”



속옷 바람으로 어제 밤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졌던 와이셔츠를 한 손에 움켜쥔 채 부엌으로 달려가 소리를 질렀지만 아내는 들은 척도 안 했다.

탁탁탁탁......아내는 둥근 유리 그릇에 계란을 깨뜨려 넣고, 계란물에 잘게 썰은 파 한 웅큼과 소금 약간을 집어넣은 뒤 젓가락으로 내용물을 휘저었다.

 

촤아......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프라이팬에 계란물을 붓자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이내 고소한 냄새가 부엌에 퍼졌다. 전날 거나하게 술을 한잔 걸친 박 검사는 그날따라 속이 헛헛했고 계란말이 냄새가 그의 코를 자극하자 종소리를 들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입안엔 침이 가득 고였다. 고작 계란말이에 무너지는 스스로에 화가 나 그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 말이 말 같지도 않아? 물어 봤으면 대답을 해야지? 내가 당신에게 대단한 거 요구하는 거야? 적어도 기본은 해야지. 기본은....... 이거 당장 어떻게 출근하겠어?”

 

착착착착....박 검사의 짜증섞인 목소리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아내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말이를 도마로 옮겨 먹기 좋은 크기로 썰은 뒤 두 딸의 도시락에 가지런히 담았다. 냉정을 먼저 잃은 사람이 지는 게 냉전의 법칙이다. 아내 입장에선 대응하지 않는 게 길게 끌어온 냉전을 승리로 이끌며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길이다.

 

아뿔사! 그제서야 박 검사는 자신의 패배를 깨달았다.  

 

“이런 씨발......”

 

박 검사는 방으로 돌아와 손에 쥔 와이셔츠를 바닥에 내동이치며 혼잣말을 했다. 침대에 걸터앉아 어제 입었던 것을 다시 입을 것인가를 한동안 고민했지만, 포기했다. 공교롭게 엊저녁 전남 목포 출신인 부장 검사와 홍어를 먹었기 때문이다. 와이셔츠엔 삭힌 홍어의 암모니아 냄새와 탁주 냄새, 거기에 담배 냄새까지 짙게 배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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