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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기.

 

평택, 20060709 A.M.3:30---

 

 3시 30분 경 해산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전경이 갑자기 에워싸기 시작했다. 나는 친구들과 방송차량 뒤를 쫒아가고 있다가 어떻게든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주차장 가의 길로 향했으나, 그곳 이미 전경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모두 연행될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죄가 있건 없건 범죄자로 간주되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무차별적으로 폭행당하고 폭언을 들으면서 패배한 개같이 끌려갈 수 있다는 사실이 이미 몇 차례 충분히 증명된 바 있었기 때문이다. 속속들이 전경이 오고 있었고 나는 전경 사이에 갇히게 되었다. 그 때 남자분 둘이 전경 틈 사이를 뚫고, 옆에 있던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여자 분을 잡아당겼다. 나는 필사적으로, 전경들 사이로 보이는 그 여자분의 팔을 잡았고, 그 팔이 나에게 동아줄이 되어주어 겨우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 여자분과 나는 서로 마주보며 5초간 어색한 시간을 가졌고, 우리가 멍하니 아비규환을 지켜보고 있을 때, 남자 몇몇이 일단 언덕 쪽으로 가자고 해서 약 20m 떨어진 곳으로 갔다. 그곳에 잠시 있다가 사람들이 연행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서 쪽으로 몇 걸음 갔을 때, 사복 형사가 뒤에서 쫒아왔다. 누군가 "달려!"라고 소리쳤고 모두 정말 미친듯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뒤를 돌아보면 돌이 되는 이야기처럼 너무나 두려워 뒤를 돌아볼 마음 따위는 전혀 생기지 않았다. 빌리 엘리어트에서 형이 도망가는 장면이 생각났으나, 우리는 젊지도 않아 멋지게 달릴 수도 없었고, CLASH의 LONDON CALLING같은 훌륭한 배경음악도 전혀 없었다. 영화가 아니니까 말이다. 모두 오로지 잡히지 앉도록 있는 힘껏 새벽 밤거리를 달릴 뿐이었다. 전속력으로 달려 삼거리 쯤 왔을 때 누군가 흩어집시다!  하고 외쳤다. 나는 급한 대로 어느 원룸 빌딩으로 들어갔다.

1 층을 지나가는데 천장의 전조등이 켜졌다. 형사에게 들킬 것 같아 긴장감이 급습했다. 전조등 때문에 더 올라가지 못하고 1층과 2층 사이의 층계에 있을 때, 밖에서는 계속 비명 소리가 터지고 있었다. 나중에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니, 도망치고 있을 때 뒤를 돌아보니 달리던 사람이 형사와 전경들에게 잡혀 팔을 꺾인 채로 아스팔트 바닥위에 눕혀지고 있었고 어느 여자 분은 실신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밖을 보지 못하니 망상이 생겨, 몇 차례 심하게 개 짖는 소리가 들리자, 이제는 경찰이 개까지 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다른 친구들의 안부가 궁금해서 핸드폰으로 연락을 했는데, 두세 명은 학교 운동장 수풀, 어느 빌딩 옥상 등 에 숨어있다고 했고, 나머지 일곱 명 정도는 모두 연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중에는 실신을 해서 응급실에 실려 갔다가 다시 서로 돌아온 사람도 있고, 너무 많이 맞아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1시간 정도가 지난 후 나는 건물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고, 그 곳에는 전조등이 켜지지 않아서 창 밖 을 볼 수 있었다. 사복형사가 몇 차례 건물 앞을 돌고 있는 것을 보았다.

 두려운 마음에 아침이 될 때까지 밖에 나오고 싶지 않았고, 만약 원룸 주민이 거기 숨어있는 나를 발견한다면, “저는 살인을 하지 않았어요!” 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나는 사람을 치지도 않았고, 살인을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사람을 치고 살인까지도 불사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경찰 쪽이다. 그런데 왜 연행을 당해야 하고, 연행을 피해 수상하게도, 남 집 계단 모서리에 숨어있어야만 하고, 왜 사복형사는 끝까지 우리를 잡기 위해 한 시간도 더 지났는데 건물 앞을 도는 것인지 정말 납득하기 힘들었다. 사람들이 잡혀가던 광경은 홀로코스트와 같았고, 나찌를 피해 숨은 유태인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동이 틀 무렵에야 겨우 밖에 나갈 마음이 들어 혹시 아직도 경찰이 있을까 주위를 살피면서 민주노동당 사무실로 갈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 피해 상황, 그러니까 안정리에서 술취한 상인이 던진 돌에 내 팔을 얻어맞고, 친구는 골반에는 돌, 몸에는 썩은 달걀을 맞고, 한 여자가 가슴에 돌을 맞아 주저 앉는 것을 본 것에 관하여 써내려가고 있었을 때였다. 어떤 여자분이 친구가 연행 될 때 보았다고 했다. 자신이 두건을 잡고 있다가 놓쳤으며, 전경에게 머리채를 잡혀 휴짓장처럼 끌려갔다고 하면서 걱정하며 안부를 물었다. 이튿날 서울에서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다가 그 후에 있었던 해산집회에서 이 여자분이 마구 우는 사진을 보자, 나는 오히려 그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나중에 구치소에서 나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가관이었다. 구멍은 기술적으로 뒷통수와 등만을 집중 구타당하였다. 과거 '왕꽃미남'으로 불렸던 얼굴에 크게 흠이 가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보기에는 상해가 없도록 교묘한 수를 써놓아, 상처 사진을 찍기도 곤란하니 어쩌란 말인가. 결국 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평택에 있는 모 병원에 함께 간 형사가 의사에게, 이 사람들은 다 시위자다, 라는 언질을 줘서 의사에게도 매우 부당한 대우를 받고 다치지도 않은 곳 엑스레이를 찍었다고 했다. 또 어떤 여자 친구는 전경에게 끌려가던 도중, 남자 전경이 뒤에서 가슴을 잡았고, 거세게 항의했으나 비웃음과 욕설을 들었으며 여자 전경에게도 폭언을 듣고 구타당했다고 한다. 우스운 것은 서에 도착한 후, 형사가 수고했다면서 그 여경의 엉덩이를 만지는 것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여성 시위자들에게 욕설을 내뱉고 구타하다가, 시위대를 향해 헛소리를 지껼이는 전경의 말에는 얼굴을 찌푸리고, 다시 폭언을 하며 진압하다가, 저쪽에 가서는 전경에게 두드려맞은 환자를 보면서 정말 안타까운 표정 짓기를 반복하며 갈피를 못잡았다고 하니, 후에 언젠가 정신병에 걸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연행당한 친구들은 모두 평택 경찰서 앞에서 해산을 하려고 나가던 도중이었다. 그들은 전경이 어떤 여자분을 일부러 세게 밀쳐서 여자분이 항의하자 그 여자분의 배를 걷어차서 2m 날라가게 한 뒤, 쓰러져있는 여자분을 뒤로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유유히 전경들 사이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에 한 친구가 항의하다가 여러 명의 전경들에게 집중구타를 당했고, 다른 사람들이 다시 항의하고,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폭력적인 사태에 휘말려 모두 무차별적으로 얻어맞고 성폭력까지 당하면서 연행 되었다고 했다.      

 한편 평택 서 앞에서 집회를 할 때, 마치 이쪽 집회 참가자인양 굴면서 교묘하게 사태를 조장하던 이상한 남자가 있었는데, 흰 옷을 입고 머리가 짧고 덩치가 큰 사람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경찰의 프락치였다. 때문에 이튿날 아침 나는 민주노동당 사무실에서 프락치가 아닌 한 남자를 의심하고, 길거리의 모든 사람을 의심하는 심한 망상에 시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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