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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련의 여주인공

 

약간의 마조키스트적 기질이 있다고 생각되는 정희진씨에게 한창 열광했을 땐

사유는 상처에서 시작된다는 그녀의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

모든 상처를 다 경험해보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그 당시 내가 쓴 글을 보면 "철이 없게도 난 그녀의 상처를 부러워한다." 라는

문장이 있을 정도로 나는 나의 경험에서 생겨나는 나의 생각을 무척이나 갖고 싶었던 것 같다.

 

참 철이 없었다.

 

상처 혹은 불행을 경쟁하게 만드는 것은 어떤 효과를 낳을까.

나는 너보다 더 아파- 나의 상처는 너의 것보다 더 깊어-

라는 생각이 낳는 효과에 대해 회의가 드는 이 시점이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상처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경험을 어떤 기억으로 남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상처를 받은 이가 오히려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만드는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고 

피해감이나 불행을 사유의 원천으로 전화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치유의 과정이다

라고 아마 정희진씨는 얘기하는 것이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은 참 오독하기 쉬운 것 같다.

 

 

경험지상주의에 빠지지 않고 타자의 경험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기르는 일이 참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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