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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죽음, 그리고 영원한 생명

  • 등록일
    2005/03/27 02:29
  • 수정일
    2005/03/27 02:29


교회는 안락사에 반대한다. 안락사란 존재할 수 없으며 그것은 사실상의 살인에 불과하다는 것이 교회의 견해다. 생명을 지키는 교회는 생명을 통해 그 주인되시는 하느님을 섬긴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엄은 어떻게 되는가? 그 어떠한 상태에서도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그 삶의 무게에 철저히 파괴될 지도 모르는 인생의 의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행복하고 사랑하기 위해 사는 것이지 살기 위해 행복과 사랑을 쫒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인간의 삶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교회는 일시적인 것들 대신에 영원을 바라보라고 요구한다. 영원을 향한 믿음이야 말로 고통에 대한 참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교회는 오로지 '치료 중지'만을 허락하고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죽음의 임박이라는 전제 하에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어떤 측면으로는 고통을 가중 시킬 뿐인 그런 종류의 치료를 거절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말기암으로 죽음을 몇 일 앞둔 사람이나 그 가족이 심폐 소생술을 거절하는 것은 안락사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진보적이라고 평가되는 가톨릭 신자들의 일반적 경향과는 반대로 내가 안락사에 대한 교회의 믿음을 지지하는 것을 알게되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죽음이 일상화 되고 손쉬운 해결책에 대한 유혹이 만연한 이때에 고통의 가치와 어차피 사멸할 수 밖에 없는 피조물의 숙명을 겸허히 받아 들이라고 가르치는 교회의 자세는 마땅히 존경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태도의 연장 선상에서 나는 교황의 조기 퇴진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체로 여러가지 불확실한 소문들(연로한 교황을 제쳐 놓고 교황청 관료들이 교회 정책을 지배하고 있다는)에 근거한 교황 퇴진론을 지지하기 보다는 차라리 몸소 겪는 노화와 질병을 통해 하느님을 증거하겠노라는 그분의 말씀에 더 크게 공감하기 때문이다.

늙었다는 것이 불편함을 너머 죄로 여겨지고, 병들었다는 것이 태만의 탓으로 받아 들여지는 이 때에 고통의 기나긴 터널을 지냐야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있슴을 고백하는 교회의 태도는 참으로 신앙의 열매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만일 이 모든 것이 나와 내 가족의 일이 된다면 어떨까....끔찍한 통증과 싸우며 마지막 순간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정말 그때도 나는 믿음대로 살 수 있을까?

언젠가 그분을 뵙게 되면 먼저 묻고 싶다.
왜 사랑의 하느님께서 십자가 없는 부활은 허락치 않으셨는지....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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