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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04
    거기서 그분을 뵙게 되리라
    장산곶매
  2. 2005/04/21
    베네딕도 16세라는 재난(2)
    장산곶매
  3. 2005/03/27
    신학교 도서관을 살펴 보면
    장산곶매
  4. 2004/08/18
    안중근 묵시록
    장산곶매
  5. 2004/08/15
    권상우님, 세례를 받으시다?(1)
    장산곶매

거기서 그분을 뵙게 되리라

  • 등록일
    2009/12/04 02:26
  • 수정일
    2010/10/10 20:15


"거기서 그분을 뵙게 되리라"
- 마태 28, 7 -

주님의 무덤에 나타난 천사는
여인들에게 갈릴래아에서
그분을 뵐 것이라는 소식을 전합니다.

예수님이 갈릴래아에서야 비로소 당신을 드러내신다는
마태오 복음사가의 증언은 다른 복음의 기록들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루가 24, 36; 요한 20, 14)

왜, 마태오는 성전(聖殿)의 도시,
왕국의 중심 예루살렘이 아니라,
변방 갈릴래아를 약속의 땅으로
제시했던 것일까요?

어쩌면 그곳이, 아프고 가난한 이들의 터전이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실제로 잦은 외침에 시달렸던 갈릴래아 지방은
이방인의 땅(마태 4, 15)이라 불릴 만큼 소외된 곳이었습니다.

마태오 복음 사가는 다른 어딘가가 아니라
바로 그 갈릴래아에서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었고 마무리되었다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갈릴래아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내밀한 욕망과
이기심이 꿈틀거리는 곳,
죄와 상처와 고통이 있는 곳,
바로 그곳이 우리들의 갈릴래아입니다.

우리 안의 가장 낮은 곳....

예수님은 우리보다 '먼저' 그곳으로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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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도 16세라는 재난

  • 등록일
    2005/04/21 02:33
  • 수정일
    2005/04/21 02:33


독일 가톨릭 교회의 가장 대표적인 개혁 운동 단체인 '우리가 교회 운동'이 대변이 베네딕도 16세의 취임을 '재난'이라고 묘사했답니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했던 구호인 '우리가 교회 운동'의 위치를 고려해 볼 때, 교회 안의 진보 진영이 겪고 있는 좌절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듯 합니다. 신임 교황의 전력, 특히 신앙 교리성 장관으로 재임하던 시절의 몇 몇 사례들은 이러한 불길한 예감을 더욱 확실한 것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무엇보다, 종교 재판의 사실상의 부활을 겪으며 유능한 신학자들에게 재갈이 물려졌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방신학자인 보프는 물론이거니와 앤소니 드 멜로 신부 같은 이들에게까지 내려졌던 각종 제재와 경고 조치들은 학문의 자유라는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에게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더욱더" 은총의 힘을 믿어야 할 때라는 말씀만을 드릴 뿐입니다. 혹시 회개한 라틴 아메리카 가톨릭 교회의 상징으로 불렸던 로메로 신부가 대주교로 지명되었을 때,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는지 알고 계십니까? 로메로에 대한 교황청의 지명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회 참여의 길로 접어 들고 있었던 엘살바도로 교회 사제들의 반발과 냉소만을 불러 일으켰을 뿐이었습니다. 그 만큼 로메로는 이질적인 인물이었던 것이지요. 사실 로메로 대주교는 엘살바도르 권력자들의 압력과 교황청의 타협이 빚어낸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바람은 바오로를 거쳐 로메로에게 이르렀고, 그 예외 없는 성령의 힘은 새로운 교황께도 예외 없이 미칠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실 역시 보수적이라고 평가 받는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그의 기질을 교회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 효과적으로 다스려 왔었고, 이러한 통합과 자제의 지도력을 그의 충실한 조언자였던 베네딕도 16세에게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충성은 어둠의 시기에 더욱 요구 되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인해 좌우되는 믿음은 신념일 뿐이지 신앙은 아닙니다. '재난'에 대한 예감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새벽의 필연을 믿는 성실한 교회의 사람들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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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 도서관을 살펴 보면

  • 등록일
    2005/03/27 02:26
  • 수정일
    2005/03/27 02:26

눈에 띄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칠성사를 놓고 각각의 성사를 다룬 책과 학위 논문 등을 놓고 비교해 보면 성체 - 세례 - 성품 - 고백 - 견진 - 병자 - 혼인의 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상 성사로서의 혼인을 다룬 책이나 논문은 전무하다 시피 하지요. 영성신학 파트에 가 보면 더 희한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는 데 성사도 아닌 수도자의 서원이나 사제의 독신을 연구한 책들은 책장이 부셔져라 쌓여만 가는 데 정작 결혼 생활의 영성을 다룬 책들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미국도 같더군요..)

 

성사적 가치를 지닌 혼인 생활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부분은 교회법이지요..심지어 신학교에서는 그 귀한 시간을 쪼개어 혼인법만을 별도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차디찬 외면과 무관심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요? 왜 혼인이라면 우선적으로 통제와 규율의 대상으로 여겨지게 된 것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왜곡의 근원은 교회 안에서 신학 담론을 생산하는 이들의 절대 다수가 사제와 수도자들이라는 데서 연유합니다. 아울러 혼인한 평신도들의 목소리, 스스로의 필요를 자각하고 교계제도에 대해 봉사를 요구하려는 자의식의 결핍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혼인의 영적 의미와 혼인을 통해 이루시는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통찰의 결여는 결국 "죽음 이상의 고통이 아니라면 '무조건' 참고 견뎌야 한다"는 말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혼인 생활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영적 분별을 할 수 없다면, 결국 드러나는 것은 혼인의 유효성과 불가해소성이라는 법적 관념들 뿐이라는 말입니다.

 

물질적 희생과 영적 봉사를 통해 교회를 지키고 사제와 수도자들을 부양하는 평신도들은 그들로  부터 봉사 받을 권리가 있고 신학자들은 평신도들이 나날이 겪어야 하는 삶의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일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은 신학자들, 대다수가 성직자와 수도자들인 그 신학자들의 안목을 넓혀주고 해방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스스로의 삶 안에서'만' 거룩함을 발견하는 영적 자위행위에 빠져 있는 자들이 어떻게 하느님이 지으신 모든 삶의 형태 안에 담겨 있는 신비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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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묵시록

  • 등록일
    2004/08/18 02:15
  • 수정일
    2004/08/18 02:15


1. 다시 안중근을 생각하다.

도마 안중근이라는 영화가 촬영 중이라고 한다. 서세원씨가 이 영화의 제작자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음으로 양으로 교회가 이 영화의 제작을 뒷받침 하고 있다는 후문에 영 마음이 편치 않다. 물론 “신부수업” 같은 허접한 3류 멜로 영화에 이름을 빌려 주고는 “젊은이들에 대한 선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찬하는 것 보다야 낳은 일일 테지만 안중근 토마스라는 인물의 후광을 되살려 교회를 치장하려는 노력을 볼 때마다 ‘너희는 예언자들을 죽인 사람들의 후손에 불과하다’는 주님의 책망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마태복음 23장 29~32)

2. 안중근의 그림자 그 사이로 보이는 어떤 것.

당대 가톨릭 교회가 탄환에 십자가를 새겨 넣고 거사를 앞두고 성사와 기도를 올렸던 안중근 토마스라는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관해서는 이미 꽤 알려져 있다. 뮈텔주교는 안중근 의사가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뜻을 거슬러 안중근 의사에 대한 마지막 성사를 집전한 빌렘 신부를 소환하고 심지어 성무집행정지라는 중벌로 다스렸던 것이다. 하긴 비서들을 대동하고 이토의 명복을 빌기 위해 몸소 일본군 병사를 방문한 뮈텔 주교의 그 후 처신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태도는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닐 것이다.

물론, 한동안 교회의 이름으로 살인죄의 오명을 뒤짚어 써야 했던 안중근 의사는 이제 신원되었다. 오랫동안 그 이름을 거론하는 것 조차 왠지 껄끄러웠던 안중근 토마스를 이제 교회는 당당하게 한국 가톨릭 교회의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길게 드리워진 안중근의 영광으로도 가릴 수 없는 오욕의 한국 가톨릭 교회사가 여전히 적지 않게 남아 있다. 가톨릭 교회는 단지 ‘오해’나 ‘무지’로 안중근을 처벌한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이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하고 올바른 것으로 받아 들였다는 증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뮈텔 주교는 1906년도 파리 외방 전교회로 보낸 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통감부 설치로 시작된 정치 상황이 이 나라 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 진보, 과학 등 문명을 상징하는 모든 것에 열중합니다” 이어 두세 신부는 1908년 보고서에서 “조선은 일본인들의 지도 아래 발전을 향해 나가고 있습니다”라고 하여 일제의 통감정치가 조선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보고 했던 것이다.

1910년 발생한 경향신문 필화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뮈텔주교가 내뱉었던 그 유명한 말, “천주교회는 정부와 군인, 경찰 행정당국의 편에 서 있다”는 발언은 바로 이러한 태도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교회의 해명은 분명하다. 조선의 현실에 무지했던 선교사들이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벌였던 과잉충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적지 않은 조선교회의 평신도들 또한 장상들의 이러한 망동을 제지하기기 보다는 그에 부화뇌동해 왔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서병조라는 인물이다. 독립협회의 회원이자 국채보상운동의 지도자였던 부친(서상돈)의 이름을 더럽힌 이 인물은 영광스럽게도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대표적 친일 부역자 708인에 포함되는 영예를 누리기까지 했던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 가문이 지금의 대구 교구를 있게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대구 교구의 대표적인 성지 가운데 하나인 성모당의 토지를 기부했던 것이 바로 이들이었던 것이다.

3. 안중근 묵시록, 봉인이 열릴 때.

과연, 이러한 과거를 지닌 교회가 안중근을 기념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일까? 안중근에 대한 교회의 기억과 체험은 일종의 묵시록이다. 그것은 과거의 체험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규정하고 예고하는 현재화된 사건의 일종인 것이다. 진실로 과거를 기억하려는 공동체는 자신의 치부에 직면할 용기를 가져야 하고 그 용기가 가져올 진통에 정직한 태도로 맞설 수 있어만 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생략한 추억과 기념은 주님께서 지적하신 바로 그 위선에 다름 아닐 뿐이다.

싫든 좋든 최근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은 이를 더욱 재촉하고 있다. 역사의 거울 앞에 서야 한다는 시대의 요구를 회피할 수 없다면 공과를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모범을 보여야 할 책임이 특히 교회에 더욱 무겁게 주어질 수 밖에 없다.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되, 사랑안에 뿌리 박은 공의를 믿는 교회야 말로 과거사 규명의 참된 주체일 수 있겠기 때문이다.

지난 대희년을 앞두고 유행처럼 행했졌던 입에 발린 참회가 아니라 역사의 엄중한 무게를 깊이 체감하는 가운데 교회가 거듭 날 수 있다면 혼탁한 정치판과 갈라진 세상에 대한 새로운 봉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는 감출 수도 없고 미화되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만이 내일에 대한 교훈으로 자래매김 할 수 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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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우님, 세례를 받으시다?

  • 등록일
    2004/08/15 02:31
  • 수정일
    2004/08/15 02:31


교리서 1213항은 세례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세례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기초이며, 성령 안에 사는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다른 성사들로 가는 길을 여는 문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며,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교회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그 사명에 참여하게 된다 “세례는 물로써 그리고 말씀으로 다시 태어나는 성사다.”

이러한 세례의 중요성 때문에 교회법은 세례 지원자가 "예비 신자 기간을 통하여 그리스도교인 생활을 인정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세례의 의미가 한 없이 무거운 까닭에 몇 년전 서울 교구는 9개월까지 예비 신자 기간을 연장 하였고 심지어 12개월이나 그 이상으로 예비 신자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논의도 심심치 않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神父修業''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영화를 찍은 영화 배우 권상우씨가 바로 이 세례 성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 영화를 찍는 동안 낮은 곳으로 임하는 가톨릭 신부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 데, 도대체 신부수업이라는 영화를 통해 그런 감동을 받을 만한 구석이 어디에 있었는지 이해 못할 노릇이다. 물론 영화 촬영상 필요한 가톨릭 문화를 익히려 상당한 과외 수업을 받았다지만, 바로 그런 제작 시스템 자체를 고려해 볼 때 과연 얼마나 제대로된 교리 교육을 받았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가톨릭 교회가 요구하는 최소 6개월에서 최대 12개월의 교리 교육 기간은, 분명히 현대인에게 과도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므로 교회 규정은 본당 사목자가 이에 관한 관면을 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관면권이 힘 있는 사람, 유명한 사람을 상대로'만' 행사된다면 더이상 세례는 주님 앞에 평등한 형제-자매로 거듭 나는 계기일 수는 없을 것이다.

얼마전에는 강금실 장관이 세례를 받았고, 이번에는 권상우씨가 그 대열에 합류했다. 권상우씨를 가르치고 세례로 이끌었던 인물은 지난 번에 '죽음 보다 더한 고통이 아니라면 이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바로 그 신부님이다. 그토록 교회의 정통 가르침에 충실한 신부님이라면 교회법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건을 모르지는 않을 터이다.

그 신부님의 양심을 믿는다. 그렇지만 예비 신자 기간 중에 적지 않은 상처를 받고 결국 세례를 받지 못한 이들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권상우씨가 과연 얼마나 '그리스도교인 다운 생활'을 인정 받을 만 했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례는 상품이 아니다. 교회가 연예인 끌어 들이기에 혈안이 된 사립 대학들 마냥 유명인을 통해 자신의 성가를 높이려 한다면 그것은 기업이지 교회일 수 없다. 선교는 결코 스타 마케팅을 통해 이뤄지지 않는다. 마케팅을 통한 선교는 복음을 선택의 대상으로 만드는 자살행위일 뿐이다.

한번 복음을 '구매'했던 사람들은 언제나 더 낳은 효용을 제공하는 신상품을 찾아가게 마련이 아닌가? 선교적 측면에서 본 해방 신학 운동의 좌절이나 한국 개신교회의 정체는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한국 가톨릭 교회가 이러한 교훈을 계속 무시하고 성공과 성장을 향한 중단 없는 질주를 계속하려 한다면...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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