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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칠성사를 놓고 각각의 성사를 다룬 책과 학위 논문 등을 놓고 비교해 보면 성체 - 세례 - 성품 - 고백 - 견진 - 병자 - 혼인의 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상 성사로서의 혼인을 다룬 책이나 논문은 전무하다 시피 하지요. 영성신학 파트에 가 보면 더 희한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는 데 성사도 아닌 수도자의 서원이나 사제의 독신을 연구한 책들은 책장이 부셔져라 쌓여만 가는 데 정작 결혼 생활의 영성을 다룬 책들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미국도 같더군요..)
성사적 가치를 지닌 혼인 생활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부분은 교회법이지요..심지어 신학교에서는 그 귀한 시간을 쪼개어 혼인법만을 별도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차디찬 외면과 무관심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요? 왜 혼인이라면 우선적으로 통제와 규율의 대상으로 여겨지게 된 것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왜곡의 근원은 교회 안에서 신학 담론을 생산하는 이들의 절대 다수가 사제와 수도자들이라는 데서 연유합니다. 아울러 혼인한 평신도들의 목소리, 스스로의 필요를 자각하고 교계제도에 대해 봉사를 요구하려는 자의식의 결핍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혼인의 영적 의미와 혼인을 통해 이루시는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통찰의 결여는 결국 "죽음 이상의 고통이 아니라면 '무조건' 참고 견뎌야 한다"는 말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혼인 생활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영적 분별을 할 수 없다면, 결국 드러나는 것은 혼인의 유효성과 불가해소성이라는 법적 관념들 뿐이라는 말입니다.
물질적 희생과 영적 봉사를 통해 교회를 지키고 사제와 수도자들을 부양하는 평신도들은 그들로 부터 봉사 받을 권리가 있고 신학자들은 평신도들이 나날이 겪어야 하는 삶의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일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은 신학자들, 대다수가 성직자와 수도자들인 그 신학자들의 안목을 넓혀주고 해방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스스로의 삶 안에서'만' 거룩함을 발견하는 영적 자위행위에 빠져 있는 자들이 어떻게 하느님이 지으신 모든 삶의 형태 안에 담겨 있는 신비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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