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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묵시록

  • 등록일
    2004/08/18 02:15
  • 수정일
    2004/08/18 02:15


1. 다시 안중근을 생각하다.

도마 안중근이라는 영화가 촬영 중이라고 한다. 서세원씨가 이 영화의 제작자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음으로 양으로 교회가 이 영화의 제작을 뒷받침 하고 있다는 후문에 영 마음이 편치 않다. 물론 “신부수업” 같은 허접한 3류 멜로 영화에 이름을 빌려 주고는 “젊은이들에 대한 선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찬하는 것 보다야 낳은 일일 테지만 안중근 토마스라는 인물의 후광을 되살려 교회를 치장하려는 노력을 볼 때마다 ‘너희는 예언자들을 죽인 사람들의 후손에 불과하다’는 주님의 책망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마태복음 23장 29~32)

2. 안중근의 그림자 그 사이로 보이는 어떤 것.

당대 가톨릭 교회가 탄환에 십자가를 새겨 넣고 거사를 앞두고 성사와 기도를 올렸던 안중근 토마스라는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관해서는 이미 꽤 알려져 있다. 뮈텔주교는 안중근 의사가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뜻을 거슬러 안중근 의사에 대한 마지막 성사를 집전한 빌렘 신부를 소환하고 심지어 성무집행정지라는 중벌로 다스렸던 것이다. 하긴 비서들을 대동하고 이토의 명복을 빌기 위해 몸소 일본군 병사를 방문한 뮈텔 주교의 그 후 처신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태도는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닐 것이다.

물론, 한동안 교회의 이름으로 살인죄의 오명을 뒤짚어 써야 했던 안중근 의사는 이제 신원되었다. 오랫동안 그 이름을 거론하는 것 조차 왠지 껄끄러웠던 안중근 토마스를 이제 교회는 당당하게 한국 가톨릭 교회의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길게 드리워진 안중근의 영광으로도 가릴 수 없는 오욕의 한국 가톨릭 교회사가 여전히 적지 않게 남아 있다. 가톨릭 교회는 단지 ‘오해’나 ‘무지’로 안중근을 처벌한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이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하고 올바른 것으로 받아 들였다는 증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뮈텔 주교는 1906년도 파리 외방 전교회로 보낸 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통감부 설치로 시작된 정치 상황이 이 나라 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 진보, 과학 등 문명을 상징하는 모든 것에 열중합니다” 이어 두세 신부는 1908년 보고서에서 “조선은 일본인들의 지도 아래 발전을 향해 나가고 있습니다”라고 하여 일제의 통감정치가 조선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보고 했던 것이다.

1910년 발생한 경향신문 필화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뮈텔주교가 내뱉었던 그 유명한 말, “천주교회는 정부와 군인, 경찰 행정당국의 편에 서 있다”는 발언은 바로 이러한 태도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교회의 해명은 분명하다. 조선의 현실에 무지했던 선교사들이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벌였던 과잉충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적지 않은 조선교회의 평신도들 또한 장상들의 이러한 망동을 제지하기기 보다는 그에 부화뇌동해 왔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서병조라는 인물이다. 독립협회의 회원이자 국채보상운동의 지도자였던 부친(서상돈)의 이름을 더럽힌 이 인물은 영광스럽게도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대표적 친일 부역자 708인에 포함되는 영예를 누리기까지 했던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 가문이 지금의 대구 교구를 있게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대구 교구의 대표적인 성지 가운데 하나인 성모당의 토지를 기부했던 것이 바로 이들이었던 것이다.

3. 안중근 묵시록, 봉인이 열릴 때.

과연, 이러한 과거를 지닌 교회가 안중근을 기념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일까? 안중근에 대한 교회의 기억과 체험은 일종의 묵시록이다. 그것은 과거의 체험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규정하고 예고하는 현재화된 사건의 일종인 것이다. 진실로 과거를 기억하려는 공동체는 자신의 치부에 직면할 용기를 가져야 하고 그 용기가 가져올 진통에 정직한 태도로 맞설 수 있어만 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생략한 추억과 기념은 주님께서 지적하신 바로 그 위선에 다름 아닐 뿐이다.

싫든 좋든 최근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은 이를 더욱 재촉하고 있다. 역사의 거울 앞에 서야 한다는 시대의 요구를 회피할 수 없다면 공과를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모범을 보여야 할 책임이 특히 교회에 더욱 무겁게 주어질 수 밖에 없다.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되, 사랑안에 뿌리 박은 공의를 믿는 교회야 말로 과거사 규명의 참된 주체일 수 있겠기 때문이다.

지난 대희년을 앞두고 유행처럼 행했졌던 입에 발린 참회가 아니라 역사의 엄중한 무게를 깊이 체감하는 가운데 교회가 거듭 날 수 있다면 혼탁한 정치판과 갈라진 세상에 대한 새로운 봉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는 감출 수도 없고 미화되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만이 내일에 대한 교훈으로 자래매김 할 수 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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