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아니 사실 무지 재미있던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 전 고향에 다니러 갔던 동생이 엄마와 함께 느지막히 집에 가는 길이었다. 으슥한 골목에서 한 쌍의 남녀를 마주쳤다. 동네의 아주머니 아저씨, 부부가 아닌.

  남자는 우리 앞집의 식당 사장님이다. 교회 전도사며 우리 자매가 어릴 적에  예뻐해서 탕수육 등 요리를 가끔 갖다 주기도 한 마음씨 좋은 아저씨로 기억하고 있다. 여자는 그 옆집의 잡화점 주인으로 아주머니라는 말이 무색한 세련된 차림과 동안으로 시골에서 보기 어려운 타입의 미인형인 분이다.

  엉겨붙어 있던 둘에게 동생은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를 하고 지나왔다고 했다.

 

  그 후 집에 가는 길에선 엄마의 입에서는 놀라운 이야기들이 쏟아졌단다. 집에 도착하니 말하기 좋아하는 아빠까지 합세해 그 날 밤 동생은 이리저리 돌려 사귀는 그레이 아나토미에 버금가는 시골 마을의 얽히고 설킨 불륜사의 비화를 듣게 되었으니... 그 이야기는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우리집은 이십 여년 간 같은 자리에서 가게를 해 왔고 그 세월 동안 주변 가게들의 주인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소박하고 평온한 상가 거리, 사람들이 서로의 가게를 오가며 한담을 나누고 일손도 돕고 어두워지면 술을 나누는 끈끈한 모습을 나는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랐다...만 지금에 와서 윤색된 이미지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곳의 어른들은 내게 그저, 내가 어른이 된 이후로도 말 그대로 어른들이고 부모님 친구들이었지, 남성과 여성으로 여겨졌던 적은 없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서로 눈이 맞았었단 말인가!!

 

  이전에 우리집은 금은방을 했는데 바로 조 앞에 제 부인이 있는데도, 연인을 위해 커플링을 맞춰간 이도 있었고, 앞집의 옆집, 헤어지고 나면 그 옆집, 연인 때문에 부부가 이혼하고, 다시 재결합하고, 누군 바람 나서 도망가고, 남겨진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고, 죽고, 무튼 프라이버시라 세세히 적기는 어렵지만 막장 드라마를 그저 막장이라고 치부하고 말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내게 하게 했던 폭풍같은 불륜사들.

 

  나는 가십거리를 논하는 이의 태도에 걸맞게 별생각없이 그 아저씨가? 아줌마가?를 연발하며 까르르 웃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며 신나게 묻고 들었다. 사실 크게 놀랍지도 않고 그저 재미있었다.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 사람살이가 그런 건가. 그렇게 산다.. 그냥 이런 생각만 했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의문. 우리집은? ......동생과 나는 우리 엄마 아빠는 그럴 분들이 아니야, 가 아니라 그럴 위인들이 못 돼, 라는 결론을 내렸다. 혹여 그랬대도, 뭐 지금 잘 살고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니지 않았을까. 그치만, 그런 일은 없었을 거라고 믿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아는 그이들은, 특히 아빠는 진심으로 정말 그럴 사람이 못 된다. 요샌 너무 바빠서 그럴 틈도 없을 거고.. 아님 아닌 거지 괜히 복잡해지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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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5 15:20 2010/07/1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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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10/07/18 14:43 Delete Reply Permalink

    감동이 사라진 시대.. 연애만이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겠지요. ㅡㅜ
    갑자기 우리 부모님은? 하는 생각을 해보다가 역시 위인이 못된다는 결론을 내려보지만.. 다락방 어딘가에 그/그녀의 비밀상자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2. 0
    2010/07/18 21:04 Delete Reply Permalink

    1
    세익스피어 문학에서 해방될때 비로소 보이겠죠

  3. 횬종
    2010/07/20 12:19 Delete Reply Permalink

    일단 대박 ㅋㅋㅋ 그들이 누군지 모르는 나도 웃음이 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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