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가끔 빵을 만들었다. 반죽한 밀가루 덩어리를 소쿠리에 담아 아랫목에 두고 하루를 자면 반죽은 두세 배로 부풀었다. 반죽이 익어가는 동안 방 안에는 술 냄새가 달큰하게 퍼졌다. 할머니가 만든 빵은 막 쪄냈을 때 바로 먹지 않으면 금세 딱딱해졌다. 할머니가 식은 빵을 먹으라고 주면 왜 할머니가 만든 빵은 다른 빵들처럼 부드럽지 않은지 짜증스러웠다. 가게에 가면 만두, 피자 등 더 맛있는 속이 든 호빵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데, 겨우 팥만 넣어 만든 할머니의 찐빵은 어린 입맛에 매력적인 간식이 못 되었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일이다.

 

  이제야 입맛이 변한 나는 바람이 서늘해지면 팥소가 든 찐빵 생각이 간절해진다. 없는 곳도, 없는 것도 없는 편의점 덕에 어디서도 찐빵은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인스턴트 빵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거칠고 딱딱해도 누군가 손으로 빚은 빵을 먹고 싶은 마음은 괜한 까탈일까. 대도시에서는 찐빵을 파는 분식집이 흔하지 않다. 버스 차창에 기대 가다가 찐빵 가게가 보이면 나는 눈이 번쩍 뜨인다. 급한 약속이 아니라면 버스에서 내려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봐야 직성이 풀린다.

 

  앞치마를 걸친 주인이 높인 쌓인 찐빵들만큼이나 희게 웃으며 반겨줄 일을 머릿속에 그려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세련된 찐빵집, 이란 말이 영 어색하듯 적당히 낡아 있는 대부분의 찐빵집은 손님에게도 적당히 무관심하다. 작은 가게에 혼자 탁자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서, 혼자 먹기에는 다소 많은 빵 여러 개가 놓인 접시를 마주하고 있으면 왠지 민망하고 씁쓸하다. 용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재회한 옛 애인 대하듯 거북살스럽다. 빵을 몇 입 베어 물다 말고 값을 치르고 나오길 여러 번 반복하고 나서야, 나는 빵이 달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를 깨달았다.

 

  내가 대단한 미식가마냥 까다롭게 굴며 찐빵을 찾아 헤맸던 것은, 당신이 손수 만든 간식거리를 손녀 입에 넣어주고 싶어 했던 할머니의 마음을 그리워하는 까닭이다. 할머니의 빵이 거칠었던 건 아마 베이킹 소다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빵, 철없던 때 미처 몰랐던 마음의 크기를, 나는 대도시의 허름한 찐빵 집에 앉아서 뒤늦게야 아쉬워한다. 할머니가 빵을 만들지 않은 지 오래다. 올 명절에는 할머니에게 찐빵을 만들어달라고 졸라 볼까. 갑자기 웬 빵 타령이냐면 서도 당장 빵술과 팥을 사오고 반죽을 시작할 할머니다. 할머니도 내일 모레 아흔인데, 빵 만들어 내놓으라는 건 불효인 듯도 하고…….

 

 

 

  이 이야기는 허구도 좀 섞인 어쨌든 픽션인데,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마지막 문장에 관한 거다. 이 글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주 말하길 내 글은 꼭 마지막이 엇나간단다. 쓴 사람 의도는 나름 유머러스하게 끝내려고 하는 것 같은 게 보이는데(맞다; 허허)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탁 튀거나 시니컬하게 느껴진다고들 그런다... 근데 같은 소리를 여러 번 들어도 이해할 수가 없는 게 문제다ㅠㅠ 내 비록 스스로가 마이너한 구석이 있음은 알지만, 내겐 아주 자연스럽고 그냥 혼자서 좋다~ ㅋㅋ 하는 걸 남들은 자꾸 별로라고 하니 참. 내 맘 어딘가가 비뚤어져 있는 건지, 안 그러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건지 어렵다.

 

  딴 얘기로 요새 나는 방송인이라면 그래야만 한다,는 따뜻하고 희망적인 얘기를 쓰기 위해 곧잘 할머니, 할아버지를 소재로 한 얘기들을 써내는데, 물론 그게 다 내 진짜 할머니 할아버지 얘기는 아니다만, 나의 그들에게 전화 한 통도 드물면서, 노인들의 이야기를 쓴다는 게 참... 

  내가 대학에 올 때 할머니는 당신 장례 비용으로 모아둔 통장을 털어 내게 건냈었다. 그래야 할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운좋게 장학금도 받았었는데, 할머니가 정 그리 하고 싶어 했었다. 나는 그다지 크게 고마움을 느끼지도 못하며 할머니의 돈을 받았다. 그리고 어느새 할머니는 정말 내일 모레 아흔이다. 할머니는 십 년 전이나 낯빛도 자세도 별다를 게 없을 만큼 건강하지만, 아차 하면 정말 빚을 갚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거다. 제대로 뭐 하나 해드리지 못한 채 할머니가 떠나버리면 한이 되겠는데, 그게 평생 내 마음에 남을 부담을 계산해서인지 진정 할머니를 위해서인지 정확한 내 마음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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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4 21:29 2010/08/24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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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0/08/25 13:28 Delete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 어느바람
    2010/09/06 20:45 Delete Reply Permalink

    직업.. 오직 직업을 갖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 ㅋㅋㅋㅋ
    당신도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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