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졌다. 가슴 두근거림이 없어졌고 불면증도 좋아졌다. 분기점은 그때였다. 필름이 나가 진상을 부렸던 어느 밤..... 길가에 토하고 축하할 사람에게 기억나지도 않는 진상을 부리며 펑펑 울었던 그날.... 하루를 밤새고 이틀을 죽은 듯이 누워 부끄러움에 허공에 연방 주먹질을 하면서 계속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고 불행해졌을까?
 

답을 인정하는 데 이틀이 걸렸다. 원하지 않는 걸 붙잡고 있어서. 대체 왜 기자 준비를 하고 있느냐는 거다. 기자 되봤자 하나도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담고 살면서. 그냥 PD 준비하는 거랑 비슷하니까. 관성에 절어 있었다. 더 움츠러들고 두려워지고 해서 다른 길을 생각한다는 게 자신없었다. 좋은 데 가야지, 메이저 가야지. 그런 말들 때문에 내 속에서 뭔가 엉켰다.

 

너 왜 이렇게 현실적으로 변했냐.

친구는 흘리듯이 한 말이었지만, 사실 나는 그 말을 듣고 울 뻔했다.

 

2011년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최악의 해구나, 대체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생각했다. 어른이 된다는 게 이런 건가, 난 그저 그런 사람으로 살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 앞으로의 인생에 빛나는 구석이 한군데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숙취에 아파하던 그날, 스물 다섯이 된 이후 처음으로 나는 아직 어리고 앞날도 창창하고 PD 안되더라도 앞으로 재밌는 일도 꽤 많을 것 같고 사랑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열흘쯤 지난 아직까지 마음이 곤두박질치지 않고 있어서 다행이다. 평정심... 내게 정말 절실했던 게 왔다. 그냥 나한테 애썼고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반이 흘러버린 올해를 뒤돌아보니 많이 후회스럽고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사무쳤다. 내가 정말 미련하게 살았고 지난 시간이 너무 아쉽다는 생각.. 그래도 배운 게 있긴 하니.. 가난해도 그닥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나름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거나, 간절함 없는 생활은 죽은 삶이나 마찬가지고 꿈이 없다면 인생의 의미를 찾기 어려울 거라는 거. 돈이니 명예니 허울을 좇는 순간부터 마음 가난해지고 인생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겠다라는 거. 그리고 외로움 때문에 괜한 사람에 기대는 일은 하지 않게 됐고. 진부한 격언들을 뼈저리게 배웠다. 글로 배운 걸 몸으로도 배우려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남았을까. 나는 그간 모르는 게 얼마나 많았나.
 

"인간은 실패가 허락된 유일한 창조물이다. 만일 개미가 그랬다면 죽음 뿐이다. 우리는 실수와 실패를 통해 배우도록 허락됐다. 만일 마음 놓고 실패할 수 없다면 새로운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어른이 되면 더 이상 나약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약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나약하다는 것이다."  -매들린 랭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1/08/10 13:09 2011/08/10 13:09

Trackback URL : http://blog.jinbo.net/peel/trackback/315

« Previous : 1 : ... 45 : 46 : 47 : 48 : 49 : 50 : 51 : 52 : 53 : ... 222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