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그다지 긴 생은 아니지만, 요절한 여러 시인들에 꽤 가까운 나이만큼 살았으니 그다지 짧은 생도 아니고 일곱살짜리도 인생이 있다고 하는 참이니 나 정도야 이제 어두에 '그다지 긴 생은 아니지만' 같은 말을 붙이는 건 괜한 사족이려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으로 또 길게 운을 떼는구나.

 

그다지 긴 생은 아니지만, 올해는 내 인생 중 가장 소사다난했던 날들이었다.

 

많이 만나고 보았다. 세상 시름과 풍파와 미혹들이 뒤엉킨 채로 내 안으로 쏟아졌다. 풀리지 않고 덩어리진 채 속을 떠도는 것들에 더러는 흥분 섞인 기대감에 들뜨기도 했으나 불쾌감이 더 컸다.

내가 진실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잘 알 수 없을 때가 많아졌다. 내 마음을 내 마음이 아니라 다른 이유들을 들어 증명하는게 요새의 습관이다. 특별히 친절을 베푸는 이를 만나고 나면 다음엔 다시 만나기가 두려워지곤 했는데 이런 걸 어떻게 풀이하냔 말이다.

 

성격이 더 급해지고 거칠어졌다. 입에 욕이 붙었다. 살이 퉁퉁 붙고 피부는 더 칙칙해졌다. 회사를 다니지만 여전히 엄마카드를 사용한다. 월급을 몇 차례 타고도 부모에게 선물하지 않았다.

 

부자유를 의식할 때마다 목이 멨다.  나는 쪼잔한 인간이기 때문에 아주 사소한 일들에 대해서만 부자유를 크게 의식한다. 자본주의의 시대를 살아가는 생활인으로서 게다가 정규직이니 이 정도는 감수하는 게 예의려니 하지만서도 예의있는 인간이 되기란 괴로운 일이다.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뜯어고쳐져야 한다는 내 습벽들은 아마 그대로인 대신 다른 어딘가가 손상돼고 쪼그라들었다.

 

새 집에 새 식구들이 여럿 생겼다. 자주 찾지 못하는 집이지만 덕택에 외로움을 덜었다.

회식이 즐거운 회사를 다니고 있다. 유쾌하고 마음 통하는 동료들이 있다. 동료들과 한 이야기를 떠올리면 혼자 걷다가도 웃음을 참지 못할 때가 잦다.

 

새로운 세계에 들어왔는데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나 생각이 없어서 허전하다. 매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상을 가질 수 없는 나이가 되버린 건지 그럼에도 환상을 가질 수 있는 걸 못찾은 건지. 왜 스스로만으로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를 잘 갖지 못할까? 

 

올해 두 가지를 잃었다. 두번 다 전에 없이 마음이 세게 아팠다. 잃는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배웠다. 이전에 무언가를 잃었을 때 상처난 내 마음을 보면서 아파했다. 무엇을 잃었는지, 목적어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목적어의 빈 자리만 보였다. 무엇을 잃는다는 건 그 무엇을 잃어버려서 되찾을 수 없다는 뜻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잃어버리는 순간에야 원한다는 말의 참뜻도 다시 배웠다. 이후로 그때만큼 원하는 걸 못 찾았다. 마치 나는 원하는 게 없는 사람이 되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열정은 줄고 나이는 느는 게 순리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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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31 11:25 2011/12/3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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