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씨 핸드폰 맞나요? 저.. 나를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잠깨운 진동에 짜증내는 것도 잊고 경찰수습 시절 버릇같이 후다닥 일어나 전화를 받았더니 왠 남자가 말했다.

 

전날 과음으로 늦저녁까지 퍼질러 자던 중이었다. 젊지 않은 목소리에 설렐 것도 없이 취재원들 중 하나일건데, 이제 경찰서나 사회부 취재같은 건 한동안 멀리하고 싶은데, 큰 일은 절대 아닐 건데, 괜히 조금 귀찮은 일만 생기는 거 아냐, 핸드폰을 끄고 잤어야 하는 건데... 전혀 기자답지 못한 생각들이 절로 머릿속을 떠돌았다. 자꾸 내가 맞냐며 확인하면서도 자기 신분 밝히기는 늑장부리는 이에게 누구신지 재차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나왔다.

 

대학 때 들었던 문창과 수업 선생님이었다. 수강생중 이중전공생이던 나만 문창과생이 아니었고, 선생님은 내 원래 전공인  학부를 나온 과 선배였다. 반가울 겨를도 없이 뜻밖이었다.

 

 "신방과에서 수업을 들으러 왔는데... 그래도 과 후배였는데..."

당신 말씀대로 술한잔 하고 4년여만에 전화를 걸어 자꾸 하는 말이 그랬다. 확실히 과 후배라고 별달리 각별했던 건 전혀 없었지만 나라고 별로 섭섭할 것도 없었고 그런걸 마음에 걸려할 만한 타입도 아니셨던 느낌이었고 그간 한번도 떠올려본 일이 없는 분이라 좀 묘한 기분으로 전화를 끊었다. 솔직히 찝찝한 기분으로 찬찬이 기억을 더듬어보다 그때의 메일함을 뒤졌다. 종강 후에 선생님한테 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

 

당시 국문과나 문창과 대학원을 갈까 고민하던 중이었고, 나같이 학부 신방과를 나와서 국문과 대학원을 간 선생님한테 상담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아마 선생님은 짧게 요새는 바쁘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연락을 주겠노라고 헀던 것 같다. 3년 반 전이다.

 

선생님은 그때 연락을 주겠다고 하고서 흘려버린 게 계속 마음에 걸리셨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통화 내용을 되짚어 보니 왠지 모르게 속이 진해졌다. 휴대폰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검색할 때 가끔 딸려나오는 내 이름을 보면서 전화할까 말까, 곧잘 고민하셨다고 했다. 나 또한 당연히 선생님을 기억한다 했더니 본인을 기억하고 있구나 여러번 말하시며 껄껄 웃었다.

 
3년반 동안 기억한 지키지 못한 작은 약속, 그저 수업 한번 들은 것 외에 아무 관계도 없는 제자에게 연락하기 주저됐을 여러가지 이유들, 오랜 망설임, 이 모든 게 담긴 그 마음이 아름다웠다.
 

요새도 글을 쓰느냐, 대학원은 어찌됐느냐 물으셨다. 마침 전날 올해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쭉 뽑아 읽고난 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까 싱숭생숭 심란하던 차였다. 선생님은 모 대학 교수가 돼셨다고 해서 마음이 좋았다.

 

예상치 못한 전화는 사람을 기쁘게 한다. 누구에게 예상못한 전화를 걸면 기뻐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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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9 21:27 2012/01/29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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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앙겔부처
    2012/02/08 04:16 Delete Reply Permalink

    ㅜㅜ 너무 좋아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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