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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07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거지 뭐
    평발
  2. 2008/04/07
    참 많은 걸 배웠다
    평발
  3. 2008/04/07
    원칙과 정체성이라는 문제
    평발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거지 뭐

내가 정기구독하는 잡지 중 가장 이질적인 것이라면,

 

아무래도 <판타스틱>이지 않을까 싶다. 한때 <맥심>의 정기구독을 고려했으나 "그런 음란물을 집안에 들여놓는 것을 허할 수 없다"는 마나님의 추상같은 어명으로 이행하지 못한 바 있다. (그래도 가끔 사다놓으면 되게 재미있게 본다. 사실, 야시시한 내용은 별로 없다. 예전의 '선데이'만 못하다^^;)

 

그러니까 지난 달이구나, 아래에 붙인 기사가 나왔다.

 

그걸 보고서, 아내랑 낄낄대면서 서로 믿었던 것 중 말도 안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한 적 있다.

 

이런 저런 생각 중에 갑자기 떠오른 거다. 난 아직까지 태권브이가 어딘가에 숨여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홍길동이 정말 율도국을 건설했다고 믿고, 좀더 심각하게는 '진실은 언제나 저기 너머에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하하.. 내가 엑스-파일러라는 것이 들통나고 마는 군.

 

어쨋든, 사람은 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진실만을 믿는다.(이 얘긴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이다)

 

날씨 한번 좋구나야~~ 




1726년 8월 영국. 메리 토프츠라는 여인의 출산을 돕던 조산사 존 하워드는 그녀가 토끼의 간, 고양이의 다리, 아홉 마리의 아기 토끼를 낳았다고 학계에 보고했다. 토프츠는 임신 중에 토끼고기를 너무나 먹고 싶어 토끼에 대한 꿈을 꾸었다고 주장했다. 의사들은 기형적인 출산의 원인을 ‘Maternal impression(모계 인상)’이라고 결론지었고 영국 가정의 식탁에서 토끼요리들은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그해 12월, 토프츠는 죽은 토끼의 시체를 질 속에 집어넣어 마치 출산하는 것처럼 끄집어냈다며 자신의 속임수를 실토했다.    










1770년 볼프강 폰 켐펠렌 남작은 당시 오스트리아 황제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체스 두는 터키 인형을 선보였다. 기존에도 태엽과 톱니 장치로 움직이는 자동인형(automaton)들이 인간 체스 고수들을 속속 물리치는 모습은 전 유럽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트릭은 간단했다. 뛰어난 체스마스터가 기계 속에 숨어 기계 장치를 조종했던 것. 이 트릭은 켐펠렌 사후에도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유럽과 미국을 속여넘겼고 나폴레옹이나 벤자민 프랭클린 역시 이 속임수의 희생자로 기록되어 있다.









1817년 4월 3일 영국 브리스톨에 이국적인 옷차림의 젊은 여성이 나타났다. 이 여성은 말이 조금씩 통하자 자신을 자바수 섬에서 온 카라부 공주라고 밝혔다. 먼 이국의 공주는 곧 사교계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러나 신문에서 공주의 사진을 본 닐 부인이라는 제보자는 공주가 자신의 하녀 메리 베이커라는 사실을 폭로했다. 메리는 결국 유명해지고 싶어 이국의 공주 행세를 했다고 고백했다.










1842년 8월 뉴욕에서는 영국의 박물학자 J. 그리핀이 피지 섬에서 발견한 인어의 미이라를 공개했다. 하지만 이 미이라는 여러 동물 박제를 짜깁기하여 그럴듯하게 만든 가짜였다. 이러한 가짜 환상동물 박제들은 중국 사기꾼들이 가장 먼저 만들어 유포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리핀의 피지 인어는 미국의 서커스 흥행사이자 hoax의 달인인 P.T. 바넘이 꾸민 일이었다. 이후 이렇게 박제 짜깁기로 만들어진 가짜 인어들을 일반적으로 ‘피지 인어(fiji mermaid)’라고 부른다.









서커스 흥행사 P.T. 바넘은 피지 인어뿐 아니라 여러 가지 속임수를 통해 돈을 벌어들였다. 1835년에는 조이스 헤스라는 흑인 노파를, 미국 독립 당시 조지 워싱턴의 간호사를 했던 161세의 노인이라고 선전해 입장료를 받았다. 나중에는 이 노인이 정교한 ‘체스 두는 터키 인형’ 같은 기계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아 더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조이스 헤스는 사망 후 부검을 통해 80세의 보통 노파로 밝혀졌다. 1843년 8월 말, 바넘은 호보켄 지역에서 무료로 마음껏 버팔로를 사냥할 수 있다는 광고를  뉴욕 신문에 냈다. 수많은 뉴욕 사람들이 호보켄으로 가기 위해 강을 건넜고 덕분에 뱃사공들은 떼돈을 벌었다. 물론 호보켄에 버팔로 따위는 없었다. 바넘은 뱃삯의 일부를 받아 챙겼다. 이밖에도 수많은 화제거리와 속임수로 미국인들의 지갑을 열었던 바넘은 스스로를 ‘햄버그의 왕자(Prince of Humbugs)’라고 불렀는데 햄버그는 hoax의 고풍스러운 표현으로 거짓, 허풍 정도로 번역된다. 그가 살아생전 즐겨 했던 “사람은 매순간 멍청이가 된다(There is a sucker born every minute)”라는 말은, 훗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만의 특성으로 여기는 심리 경향을 이르는 ‘바넘 효과(Barnum effect)’라는 용어로 이어졌다.




1912년 영국 남부의 필트다운에서 원숭이의 턱을 가진 인간의 두개골이 발견되어 인류학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이 두개골은 인류의 진화 과정을 설명해줄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로서 런던의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되었으나 1953년에 이르러 두개골과 턱뼈의 플루오르 및 질소의 함유량을 검정해본 결과 사람의 두개골과 오랑우탄의 턱을 조합해 만든 가짜임이 드러났다. 조작한 당사자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1917년 영국 코팅글리에서 두 소녀 엘시 라이트(당시 16세)와 프랜스 그리피스(당시 10세)가 요정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공개했다. 당시 사진전문가들은 사진이 조작되지 않았다고 증언했고, ‘셜록 홈즈’의 작가 코난 도일은 1920년 《스트랜드 매거진》의 의뢰를 받고 수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요정들이 진짜라는 기사를 작성했다. 이후에도 이 요정 사진의 진위 여부는 줄기차게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1981년 노파가 된 두 소녀는 《디 언익스플레인드》지와의 인터뷰에서 요정 그림을 오려내어 함께 찍은 조작사진임을 고백했다.









1932년 만화가 로버트 리플리가 신문에 그린 ‘믿거나 말거나(Ripley’s Believe It or Not!, 훗날 TV 프로그램 《믿거나 말거나》의 전신)’는 만리장성을 “인류 최고의 작품, 달에서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건축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1972년 아폴로 17호를 타고 마지막으로 달을 방문한 우주인 진 서난은 지구로부터  150~320킬로미터 정도에서는 육안으로 만리장성을 볼 수 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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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은 걸 배웠다

이른바 '심상정 단일화'를 둘러싼 논란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이를테면, 진보정당의 원칙과 정체성이라는 것. 그리고 제도화의 의미에 대한 것. 그리고 소위 변한다는 것.

 

수차례 밝혀왔듯이 나는 심상정 단일화를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진보신당의 당면과제는 '살아남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의 부분에 대해선 예외없는 융단폭격을 맞은 셈이다.

 

전혀 억울하지 않다. 당연하다.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니라, 불과 4년전의 나만 되었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니, 내가 민주노동당이니 진보신당이니, 제도정치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뭐 이제 내일 모레면 어떻게든 결판이 날 것이다. 진보신당도 그 결과에 따라 존폐의 기로에 설 것이다. 나는 진보정치의 미래를 낙관하지만, 살아가는 동안은 힘들 거라고 본다. 결국 나의 역할은 진보정치의 완성이 아니라 흔적을 만드는데 있다고 생각해왔다.

 

주변 사람에게 이런 감정을 설득력있게 말하기 참 힘들다.

 

내가 왜 작년 연말부터 올해초까지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는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동지는 몇개월의 불면증을 호소했는지. 그런 개인적인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으며, 그런 '불안이 나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는지를.

 

원칙과 정체성, 부르주아 정치의 속성, 합의와 대의의 과정, 당활동가의 성장을 전제로 한 진보정당. 이런 고민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나에겐 질식할 것 같은 문제들로 다가왔다.

 

내게 절망인 것은, 헌신이라는 말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진보신당의 활동가들이다. 소위 민중진영내에선 당활동가만큼 씹기에 좋은 대상도 없다. 아니 이제까지 민주노동당도 그런 처지였다고 생각한다.

 

2004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함께 해왔던 연대사업이었는데, 소위 민중단체인 어느 곳에서 난데없이 '정당과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회의에서 당을 배제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자신들의 활동이 '정치적 이유'로 해석되는 것이 싫다는 것이다. 난, 이를 순결주의라 부른다.

 

2006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바다이야기가 한참 논란일 때, 의정부에선 화상경륜장 싸움으로 정신이 없었다. 결국 경륜을 운영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과 갈등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때 공단 노조위원장이 찾아왔다. 경륜에 딸린 노동자들의 생계는 어쩔려고 그런 주장을 하냐고. 나는 이를 자기중심주의라고 불러왔다.

 

그리고 FTA투쟁이 한참일때, 골프장 싸움을 하는 곳에 연대를 하고 있었다. FTA집회와 골프장 대책회의가 겹쳤을 때 주저없이 골프장 대책회의에 결합했다. 이에 대해 단체활동가들은 나에게 '몰정세적'이라며 조소했다. 나는, 역으로 이를 정세주의라고 생각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애정도 없는 날선 비판을 가지고 진보신당을 요리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들은 대부분 맞다. 타당한 주장을 통해 당을 발기발기 찢어놓고 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책임은 논란의 주역이 지게되고 위대한 역사적 논평가들은 스스로의 승리에 도취된다. 나는 이를 '좌파 나르시시즘'이라고 여긴다.

 

내가 옳다고 우길려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경험들은 오로지 개인사에 속하는 경험들이며, 나의 주장이 그런 방향으로 흐르게 된 정신의 배경에 가깝다. 한 방향으로 가지고 못하고 끊임없이 틴들현상을 보이는 나의 입장과 주장이, 너무 위태로우면서도 지나치게 당연하다고 느껴진다.

 

갱신되지 않는 이론에 대해 절망했다. 20세기 초의 소련 역사는 꿰고 있으면서, 같은 시기 조선제국의 끝자락에 대해선 무지한 '외국인'들이 싫었다. 체게바라의 편지글에 열광하면서 일제시대 박치우와 같은 사회주의 운동가의 존재자체를 무시하는 것이 짜증났다. 왜, 영국 노동당에 대해선 잘 알면서, 우리의 진보당에 대해선 무지한가? 우리의 교훈은 어느쪽으로부터 오는 것이 타당한가?

 

결국 넋두리에 지나지 않지만 이 기억을 잊지 않을 것이다. 다들 어떻게들 살아가는지, 얼마나 원칙과 정체성에 치열하게 살아갈지를 볼 것이다. 과연 옳은 주장들이 옳은 삶을 결정지을지도 분명하게 지켜볼 것이다.

 

나 역시 악랄하게 버틸 예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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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과 정체성이라는 문제

역시 주말이 지나니, 뭔가 정리하는 글들이 나오긴 한다. 블로그 홈에 있는 '심상정 단일화'에 대한 글도 이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전제를 이야기하자. 나는 '채경'님이 쓴 글에 동의한다. 글의 시작에서 끝까지 완결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도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그건 내가 개량주의자라서 그런가? 아니면 부르주아 제도정치에 대한 미련이 있어서인가?

 

1.누가 말하는가?

 

내가 민주노동당에서 많은 연대 단체와 사업할 때 늘 듣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민주노동당 일 못한다'는 것과 '심상정 노회찬이 너무 튀려고 한다'는 것. 그리고 작년 연말 대선후보 선출 때의 논란들.

 

글쓴이는 말했다. 운동권 띠나고, 순결주의에 빠져 있다는 비판이 나오면 끝난 거라고!

 

동의한다. 이는 말이 가지는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발화가 발화자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즉 진성성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왜 진보신당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진보신당안에서 당원간의 토론이 바깥의 논란에 근거로 쓰이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최소한 진보신당 내부의 당원토론은 그야말로 당원토론이기 때문이다. '당원끼리 다 먹겠다'는 뜻이 아니라 이렇게 되던 저렇게 되던 진보신당을 살려보겠다는 뜻으로 하는 말들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글쓴이가 인용한 분이 다시 사과글을 올렸다는 점을 빠뜨렸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진보신당에 비판하는 사람이 반드시 진보신당의 당원일 필요는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 특히 이 '진보넷'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말하고픈 것은,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말해달라는 것이다.

 

2. 진보신당 그후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총선결과에 따라 진보신당은 존속과 해체의 갈림길에 처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진보신당 이전에 소위 선도탈당파에 대해서는 민주노동당의 주사파와 상응하는 반감을 가지고 있다.

 

묻자, 그들이 왜 민주노동당을  그렇게 흔들어놓고 나왔나? 그건 원칙과 정체성이라는 알리바이 아니었나?

 

모르겠다. 그 여파로 순식간에 운동의 전망이 흔들려버린 사람에게 원칙과 정체성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말이다. 내가 더 기분이 상하는 것은, 그런 인간들이 대부분 자기 먹고 살길은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언제부터 이 놈의 진보정당은 노조나 사회단체 상근자들이 감놔라, 배놔라 정신없는 곳이 되어 버렸나?

 

솔직하게, 내주변에도, 진보신당 쪼개졌다고 하면 박수치며 좋아할 사람, 많다. 알고 있다. 그에 대한 이유도 충분히 제출되고 있다. 심노 인물중심주의, 총선이라는 시기에 급조된 선거중심주의 등등.

 

그렇게 진보신당이 사라지면, 혹은 다른 세력과의 연합으로 새로운 운동체가 만들어진다고 한다면, 그곳에는 다들 참여해 힘을 보탤 수 있겠나?

 

솔직히 내 편견이다. 내 주의의 사람에 한정해서 보자면, 그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정치적 원칙과 정체성으로 환원되는 것을 무수히 봐왔다. 아니, 내가 왜 정당운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운동이나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의 술자리 안주가 되어야 하는가?

 

3. 나의 원칙과 전망

 

난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충분히 동의하는 주장에 대해서도 기를 쓰고 반대했던 때가 두번 있다. 한번은 학생일때 국민승리21과 청년진보당이 공존하던 시점이었다. 나와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은 청년진보당으로 갔다. 난 그들에게 '자기 만족'에 '지적 나르시시즘'이라며 비난했다.

 

생각해보면, 그 때 청년진보당을 선택했던 이들이 옳았다. 난 아직까지 당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때 그사람들은 다른 직장을 다니면서 건실한 '비판적 사회인'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두번째는 바로 최근이다. 심상정 단일화 문제를 둘러싼 것인데, 아주 우습다. 원칙과 정체성이라고? 하하.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하하. 누군 몰라서 하는 말인가?

 

개량의 페해를 말한다면, 독일 사민당의 베른슈타인분파에서 부터 90년대 중반 일본 사회당까지 역사적 사례도 많이 알고 있다. 그리고 한동안 많이 읽히던 레이코프의 '꼬끼리'를 근거로 한 '프레임' 이론에 근거하면 아주 논리적으로 개박살을 내놓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심상정 단일화 찬성이냐고? 나의 비전은 '진보신당의 존속'에 있기 때문이다. 다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데, 진보신당의 존속은 나에겐 또 다른 실천의 장이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실제로 제도정치에 맨얼굴을 닿지 않아본 인사들보다 지난 4년동안 별 그지같은 인사들 한 가운데서 고군분투했던 심상정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회찬도 신뢰한다.

 

진짜 운동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가깝게는 주변의 사람들도 그렇고, 크게는 정치적 입장의 차이에서도 그렇다. 문제는 그런 갈등을 공개적으로 하고, 그 선택의 양방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4. 운동권 귀족들

 

시민사회운동도 10년씩은 넘는 구력을 가지고 있게 되니, 아주 우스워졌다.

 

100만원 안밖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가슴아프지만, 스스로에 대한 갱신없이 감놔라 배놔라는 참견주의는 도통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합은 마찬가지 아닌가? 단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넘쳐나는 것이 원칙주의자들이다. 지역연맹과 중앙을 가보면, 사회주의 이론에 빠삭한 이들이 줄을 섰다. 문제는, 대부분 그런 주장들이 논평용 근거라는 거다.

 

시민단체는 어떤가? 나는 시민단체에서 '모든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법제도 과정과 흐름도 제대로 모르면서 '주의주장'만으로 선명성을 주장한다. 나는 왜 보통의 시민단체들이 참여연대를 백안시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만큼 제도투쟁이라고 열심히해서 바꿔놓은 성과가 있는 단체가 시민행동이나 경실련을 빼곤 어느 단체가 있는가?

 

더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민주노동당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심지어 당원으로 가입하지 않은 것을 당당하게 자랑거리로 말하는 이들이 각종 행사후원 등등도 너무나 당연하게 요구한다는 것이다. 하하하.

 

5. 편견들, 편견들

 

알고 있다. 내가 심한 편견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난 절망했다.

민주노동당이 쪼개질때 도저히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어 당을 나온 상근자가 500명은 넘을 것이다. 지역까지 합치면 더 하겠지. 그들은 순식간에 실업자가 된 것과 동시에 민주노동당 상근자였다는 캐리어를 가져야 한다. 난 이들처럼, 자신들이 걸어왔던 인생에 배신당한 이들을 알지 못한다. 같은 운동권 집단에서도 이들에게 관대한 시선을 찾기 어렵다.

 

그런데도, 또 다시 주위에선 그들의 등을 떠밀어 진보신당에 우겨놓고 또 욕해댄다.

 

이 무슨, 콜로세움 노예경기도 아닌 상황이란 말인가?

 

나의 편견은 이런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난 이글을 블로그 홈에도 검색도 안되게 할 것이다. 하지만 꼭 이 글을 쓰고 싶었기에 쓴다. 다만 '평발'이란 나의 아이디를 보고 나의 맨얼굴을 떠올릴 몇몇 지인들을 위해 둘것이다. 난 내가 존경하는 지인들이 민주노동당의 분당때문에 한달 넘게 불면증에 시달리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았다. 나 역시 지난 연말에서 올 초까지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다.

 

나약해서 그런것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짧게 겪어본 정당운동은, 말만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더라. 그리고 원리 원칙이 매 순간 필요하것이 아니라, 큰 그림의 이정표로서 필요하더라.  그 말이 꼭 하고 싶었다.

 

나도 여건만 됐으면, 공부'나' 하는 건데 참, 이 무슨 뻘짓 인생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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