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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노조신문] 칼럼, 2005.1.27

 

비정규직 노동자는 과연 정규직 고용의 안전판이 될 수 있는가?

 

많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해외생산이 본격화되고 한일FTA로 내수와 물량이 줄게 되면, 그래서 98년과 같은 고용위기가 닥치게 되면 자본이 비정규직부터 먼저 정리하겠지, 비정규직이라도 있어야 정규직 일자리가 지켜지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이런 생각은 순진한 발상이거나 엄청난 오산은 아닐까?

 

98년 같은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자본이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먼저 해고하는 경우는 단 하나, 비정규직보다 임금이 많은 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는 데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이 정규직을 그대로 두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보다 많이 들어갈 때뿐이다. 만약 정규직 노동조합이 힘이 없어서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하지 못한다면 자본은 비정규직보다 먼저 정규직 노동자를 자르려 덤벼들 것이다.

 

지금처럼 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을 때 벌자”는 식으로 단기 실리만 추구하면서 개별화되고, 오히려 나서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를 야금야금 늘여간다면 노동조합의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비정규직이 절반을 넘어서고, 정규직 노동조합의 파업을 비정규직의 대체 투입으로 얼마든지 깰 수 있게 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더 이상 정규직 고용의 안전판이 될 수 없게 된다. 거꾸로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일자리를 빼앗는 주범이 된다. 현대자동차에서 비정규직 투입 비율인 16.9%는 이미 무너졌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일자리를 파괴하는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비정규직이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 자식들의 일자리까지 빼앗는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지금 추세대로 늘어간다면 정규직 노동자의 자식들이 정규직으로 취업하기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결국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용인하는 것은 자기 자식을 비정규직으로 내모는 것과 같게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고용의 안전판이 절대 될 수 없다. 정규직 고용을 안정시키는 유일한 길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시켜서 함께 뭉치고, 자본에 맞서 노동조합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는 또한 내수를 살려 경기침체를 벗어나게 한다. 이렇게 되면 일자리가 늘고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도 풀릴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야말로 가장 확실한 고용안정 방안이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 아니 정규직이 기피하는 더 힘든 일을 하면서 형편없이 낮은 임금에 차별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이 방치하는 것은 노동자로서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노동부조차도 현대자동차에서 일하고 있는 사내하청노동자들 1만명 이상이 불법파견이라고, 회사가 법을 어겼다고 판정했다. 원하청 노동자 공동투쟁이 이미 시작됐다. 한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의 연대를 호소하면서 분신했다.

 

이제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좇아가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나와 내 자식의 미래를 위해 투쟁에 나서야 한다. 노동자는 하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로 뭉치면 살고 뿔뿔이 흩어지면 죽는다. 함께 고생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한사람도 빠짐없이 모조리 정규직으로 바꿔야 경제도 살아나고 고용도 안정된다. 정규직이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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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14:41 2005/02/1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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