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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힘] 50호, 2004.3.5

 

전쟁반대! 거리의 캠페인에서 현장의 대중투쟁으로! 

 

지난 1월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제4차 세계사회포럼의 반전운동총회를 통해 오는 3월20일 전세계적 반전투쟁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3.20 국제반전투쟁은 작년 11월 유럽사회포럼에서 제기되었는데, 2002년 하반기 유럽에서의 반전운동, 2003년 2월15일의 역사적인 국제반전투쟁, 미영제국주의 연합군의 이라크 점령 이후 벌어진 9.27, 10.25 국제반전운동의 성과를 잇고 있으며, "3.20 국제반전투쟁의 성패 여부가 이후의 국제 정치적 정세와 반전-반세계화 운동, 더 나아가 현 단계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운동의 진로와 방향을 결정할"(원영수, '뭄바이 세계사회포럼: 새로운 전환점(?)', 기관지 노동자의 힘 제48호)만큼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지난 뭄바이 포럼에 한국에서는 민주노총을 비롯하여 370여명의 대표단이 참석했는데, 대표단의 규모와 활동에 견주어 정작 뭄바이 포럼의 핵심 결의사항인 3.20 국제반전투쟁을 국내에서 조직하고 준비하려는 노력은 터무니없이 적어 보인다. 특히 민주노총은 선거 이후 새로운 집행부가 꾸려진지 얼마 안 된 조건이어서 그런지, 또는 바로 다음 달로 코앞에 닥쳐 있는 4.15 총선에 '올인'하느라 다른 사업에 집중할 겨를이 없어서 그런지 3.20 투쟁에 대해서 이렇다 할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작년만 해도 민주노총은 반전대표단 요르단 암만 파견, 파병저지를 위한 국회 앞 노숙철야농성, 1박2일 노동자 상경투쟁, 전교조 반전평화수업 등 반제-반전투쟁에 그 어느 때보다 조직적이고 적극적으로 임했다. 물론 그 투쟁들이 간부 중심의 한계를 벗어나 광범위한 현장대중행동으로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민주노총이 반제-반전투쟁을 자신의 주요한 사업으로 인식하고 실천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매우 컸다. 그런데 민주노총 신임 집행부가 3.20 국제반전투쟁에 대해서 작년 민주노총이 기울였던 노력에 비해 사실상 무계획이나 다름없이 대응하고 있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다.
민주노총 차원의 3.20 투쟁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는 조건에서 단위노조와 현장에서는 3.20 국제반전투쟁에 대한 홍보와 교육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해 현장에서 싹트기 시작한 반제-반전투쟁의 소중한 시도와 고민들이 더 발전하지 못하고 실종되고 있다. 공장 문마다 출근시간 피켓시위를 벌였던 '반전평화를 위한 현대자동차 현장조직연대'의 경험이나 점심시간 조합원을 대상으로 반전 뺏지를 판매하고 서명작업을 벌였던 민주노동당 기아자동차 화성분회의 활동, 신문을 만들어 사업장과 전철역에서 캠페인을 벌였던 반전노동자연대의 실천 등을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의 결의로 3.20 국제반전투쟁을 준비하는 새로운 조건 속에서 본격적인 현장대중활동으로 발전시켜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 공공연하게 반제-반전투쟁을 조직하지 못하는 까닭이 단지 민주노총 신임 지도부의 문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제-반전투쟁을 '군사화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저항이자 현 시기 노동자정치투쟁의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위치짓는 게 아니라 무계급적 평화운동과 동일시하거나, 임금인상투쟁과 생존권 방어투쟁은 조직된 노동자계급의 일원으로 결합하면서 반전집회에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 참여하게 함으로써 알게 모르게 노동운동을 시민운동의 일부로 편입시키거나, 노동자정치를 오로지 의회진입을 위한 선거로만 한정하여 반전투쟁을 대중정치의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계기로 사고하지 못하는 문제가 현장에서의 반제-반전투쟁을 더 심각하게 가로막고 있는 원인들이다.

3월20일 민주노총이 작년 서유럽의 몇몇 노조들처럼 반전 총파업을 조직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렇지만 '3.20 전세계 반전행동 한국조직위원회 준비모임' 차원에서 대중시위를 위력적으로 조직하는 일에 민주노총이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고 또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민주노총 차원에서 시급히 3월20일 단위노조별 지역집회 결합과 가두시위 조직에 대한 구체적 계획과 전술들이 방침으로 확정되고 3.20 국제반전투쟁에 대한 현장 교육선전사업들이 대대적으로 배치되어야 한다.

현장조직들은 반제-반전투쟁에 대한 작년의 시도들과 고민들을 현장에서 더욱 발전시켜 대중행동을 조직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반제-반전에 대한 현장 노동자대중의 '관심'은 작년의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듯이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어 매우 깊고 '예민'하다. 미영 제국주의군대의 이라크 침략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 석유와 달러를 위한 이 더러운 전쟁이 이라크 민중들과 전 세계 노동자 민중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국익'을 내세운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에 대해 대중들의 정치적 감수성은 충분히 열려 있고 그런 만큼 반제-반전투쟁에 대해 폭넓게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대중의 이 관심과 공감대를 현장에서의 대중행동으로 집중하고 조직하지 못하는 노동자정치조직과 노동조합, 현장조직에 있다. 민주노총의 지침이 없더라도 단위노조와 현장조직 차원의 3.20 투쟁계획이 수립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시리즈 대자보든 점심시간 식당홍보든 3.20 국제반전투쟁의 의의에 대해 알려내고, 단위노조와 지역의 긴박한 투쟁현안들을 반전투쟁과 결합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활동가들의 1인 시위나 선전전을 넘어서서 현장 안에서의 대중적 반전집회가 조직되어야 한다. 대중들이 반제-반전을 자기 문제로 인식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 좋은 기억'은 버려야 한다. 3월20일(토요일) 이전에 현장조직이나 단위노조가 퇴근하는 현장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현장집회나 공장 안팎에서의 촛불시위를 조직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까? 최소한 작년에 현장에서 실천되었던 반제-반전투쟁의 모색과 고민들이 실종되는 것만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늦었지만 4.15에 파묻혀 유실되어 가는 3.20을 살려내자. 우리가 '올인'해야 할 것은 4.15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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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14:30 2005/02/1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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