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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시대 맑스의 현재성2], 2003년 5월

 

현장조직운동의 현재와 전망

 

1. 들어가며

 

87년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은 세 갈래로 발전해왔다. ① 한국노총으로 대표되는 어용노조에 맞서 전노협과 민주노총으로 발전해온 민주노조운동 ② 노동운동단체, 비합법 써클, (반)공개 정치조직 등으로 활동해온 정치적 노동운동의 단계를 지나 96∼97년 노동법개정 총파업 이후 민주노동당, 노동자의 힘, 사회당 등으로 본격화된 노동자정치운동 ③ 노동조합과는 다른 현장대중투쟁조직과 일상적인 현장대중조직, 현장활동가조직 등으로 발전해온 현장조직운동이 그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은 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 이후 지난 16년 동안 이념과 조직, 투쟁의 힘을 키워왔다. ①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 계급성, 연대성, 변혁지향성 ② 잠정합의안에 대해 반드시 조합원 찬반을 묻는 총회민주주의 전통 ③ 금속제조업 대공장 공장점거파업, 공공부문 산개파업, 전국적 정치총파업과 민중연대투쟁에 이르는 풍부한 투쟁경험이야말로 한국 민주노조운동이 피와 땀과 눈물로 쟁취한 소중한 자산들이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은 근래 들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① 신자유주의 지구화와 구조조정에 대한 태도, 노무현 정부 아래서 새롭게 추진되는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태도를 둘러싼 이념적 혼란 ② 대공장 정규직 중심주의와 조합주의·경제주의의 만연, 노동조합 간부들의 개량화·관료화 ③ 총연맹의 총파업 선포와 단위노조 현장투쟁의 괴리, 총파업의 연이은 무산과 철회 등이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마저 위협하고 있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지금 시기 민주노조운동에 요구되는 과제는 ①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또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구체화함으로써 민주노조운동의 이념을 재정립하는 것 ② 뼈를 깎는 반성과 혁신을 통해 노동조합운동의 민주성과 현장성을 회복하고, 불안정노동철폐투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를 전면화함으로써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성을 확장하는 것 ③ 산발적으로 분출하는 방어적 생존권투쟁들을 전국적 총파업으로 집중하고, 이 총파업이 조합주의적으로 왜곡되거나 의회주의 압력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을 철저하게 막아내는 것 등이다.

노동자정치운동은 97년말 15대 대선, 2000년 4.13 총선, 2002년 6.13 지방선거, 2002년 12월 16대 대선을 거치면서 대중적으로 본격화되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일방적 지지를 등에 업고 2002년 지방선거에서 8.1%를 득표함으로써 제3당으로 올라섰고 16대 대선에서는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언론의 대접을 실감할만큼 대중적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이념적으로 민족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불안한 동거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조직적으로는 민주노총과의 특별한 관계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진보적 국민정당을 표방하며 끊임없이 탈계급화하고 있다. 그리고 투쟁에 있어서도 대중투쟁을 강화함으로써 대중정치를 활성화하기보다는 대중투쟁은 노동조합이, 선거와 의회활동은 민주노동당이 분담하는 구시대적 양날개론에 머물러 있다. 사회당은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세워 2002년 지방선거와 대선을 정면돌파하는 과단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사회당은 자신이 표방한 사회주의의 내용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사회주의를 실현해갈 주체가 비어 있는 '노동운동 없는 정치운동'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사회당에게 선거는 지난 대선에서의 0.089%라는 득표에도 이제 더 이상 전술이 아니라 전략으로 절대화되고 있다. 노동자의 힘을 비롯하여 대중정치의 활성화와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세력들은 노동운동과 현장투쟁에 밀착해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그 현장성에 걸맞는 정치적 명확성을 강령적 수준에서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고, 정치적 노동운동을 넘어서는 노동자계급정치운동을 전면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현장조직운동은 민주노조운동, 노동자정치운동과 더불어 87년 이후 한국 노동운동의 주요한 한 축을 이루어왔다. 이 글의 목적은 민주노조운동과 노동자정치운동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해온 현장조직운동의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의 전망과 과제를 도출해내는 데 있다. 이 글에서는 현장조직의 위상을 둘러싼 논란과 현장조직의 세 가지 형태에 대해 먼저 정리할 것이다. 현장조직의 세 가지 형태는 노동조합이 제대로 투쟁하지 않을 때 노동조합을 대신해서 대중투쟁을 이끌었던 현장대중투쟁조직과 노동조합의 경계 안팎을 넘나드는 일상적 현장대중조직, 그리고 제조업 금속 대공장의 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노민추)로부터 출발하여 중소사업장과 공공부문에까지 일반화되어온 현장활동가조직이다. 현장조직의 이 세 가지 형태를 다룬 다음에는 현장활동가조직운동이 걸어온 역사를 압축해서 정리하고, 현장활동가조직운동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현장활동가조직의 체계와 활동을 사례를 들어 살펴본 다음 현시기 현장조직운동의 과제와 전망을 제시하고, 마지막으로 현장정치활동의 과제에 대해 정리할 것이다.

 

2. 현장조직의 위상

 

(1) 현장조직의 위상을 둘러싼 논란들

 

현장조직은 현장대중투쟁조직과 일상적 현장대중조직, 현장활동가조직으로 나누어 살펴봐야 한다. 이 세 가지 조직 형태를 뭉뚱그려 생각하다 보면 많은 혼란이 발생하고 그로부터 그릇된 진단과 전망이 제출되곤 했다. 여기서는 우선, 현장조직의 위상을 둘러싼 논란들을 정리하고 현장조직의 세 가지 형태에 대해 차례로 살펴볼 것이다.

먼저, 현장활동가조직과 노동조합의 관계에 대한 논란들부터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노동조합은 공조직이고 현장활동가조직은 사조직"이라고 보는 견해가 여전히 뿌리깊게 남아 있다. 이 견해는 현장활동가조직이 몇몇 명망가들에 의해 선거시기에만 움직이는 사조직이고, 공조직인 노동조합의 대중적 단결을 저해하며 분열과 이합집산만을 거듭하는 해로운 분파집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전체 조합원을 대변하여 운영되어야지 특정 사조직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지우지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극단적으로 보자면 사조직은 필요없고 공조직만 있으면 된다는 입장인데, 이 견해대로라면 노동조합 위원장과 집행부는 특정 사조직에 속해 있거나 그 입장을 대변해서는 안되고, 심지어 자신을 배출한 특정 현장활동가조직과의 관계조차도 그 관계를 끊거나(조직 탈퇴), 최소한 공조직과 일반 사조직들과의 관계 정도로 약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미 노동조합과 현장활동가조직의 관계를 이렇게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많은 경우 노동조합 집행부는 선거를 통해 그 집행부를 배출한 현장활동가조직에 의해 파견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고 이런 생각은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다. 노동조합 집행부를 배출한 현장활동가조직과 그 집행부는 노동조합 운영에 대한 공동책임을 지게 되고 대중적으로도 그렇게 비쳐진다. 이때 노동조합 집행부는 공조직으로서의 대중적 책임과 더불어 파견자로서의 조직적 책임도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봤을 때 노동조합과 현장활동가조직의 관계를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으로 나누고 대립시키는 견해는 대중적인 것과 조직적인 것의 관계("조직적 책임을 제대로 지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대중적 책임을 제대로 질 수 있는가?" "가장 조직적일 때 가장 대중적일 수 있다")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고, 이 주장이 얼핏 보면 대중에 대한 노동조합의 공적 책임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노동조합에 대한 현장활동가조직들의 비판과 제어, 견인의 필요성을 부정하거나 약화시킴으로써 오히려 노동조합이 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에 의해 사적으로 좌지우지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둘째, "노동조합은 제도권 조직이고 현장활동가조직은 비제도권 조직"이라고 보는 견해는 노동조합이 근본적으로 개량주의와 관료주의의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제도권 안에 있는 노동조합의 체제내적 한계를 강조하면서, 노동조합을 부정하고 뛰어넘는 비제도권 운동체로서 현장활동가조직을 주목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노동조합의 부정적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노동조합운동의 현실적 의의를 극단적으로 부정하거나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개입의 필요성조차 거부하는 것으로 나아갈 수 있다.

셋째, "현장활동가조직 일반은 노동조합과 질적 차이가 거의 없다"고 보는 견해는 실제 활동의 목표와 내용에 있어서 현장활동가조직이 노동조합의 울타리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현장활동가조직이 노동조합과는 다른 현장에서의 독자적 조직운동을 발전시켜왔고 노동조합 간부에 제한되지 않는 변혁적·의식적 활동가들을 부단히 훈련하고 성장시켜왔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리고 현장활동가조직이 대중투쟁과 선거, 숱한 논쟁들을 통해 경향을 넘어 노선으로 자신의 활동 목표와 내용을 구체화시켜왔다는 점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다음으로, 현장활동가조직과 현장대중투쟁조직을 혼동하면서 발생하는 논란이 있다.

"현장활동가조직은 대중투쟁기관이자 현장권력기관"이라고 보는 견해는 현장활동가조직이 직접 현장대중투쟁을 조직함으로써 노동조합을 대체하는 현장대중권력으로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활동가조직이 곧바로 대중권력기관이 될 수 있다고 혼동함으로써 마치 당을 국가권력화하는 것과 동일한 오류에 빠지고 있다. 특정한 시기에 대중투쟁기관이자 현장권력기관으로 발전해갈 수 있는 조직형태는 현장활동가조직이 아니라 현장대중투쟁조직이고, 일상적 시기에 현장대중권력체로 성장할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 또한 현장활동가조직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밑바닥이나 그 바깥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현장대중조직들이다.

또 하나, 현장활동가조직과 노동자정치조직의 관계에 대한 논란이 있다.

"현장활동가조직은 선진노동자대중의 풀(pool)"이라고 보는 견해는 현장활동가조직이 노동자정치조직과는 다른 선진노동자대중조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현장활동가조직을 노동자정치조직들이 그 안에 프락션해야 할, 또는 그 밖에서 계몽하고 지도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한다. 현장활동가조직 안에도 활동가들 사이에 선진적 부분과 상대적으로 중·후진적인 부분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시기 현장활동가들의 수준이 이른바 '바깥'의 그것보다 전체적으로 낮고 따라서 여전히 지도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보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일상적인 대중선전과 선동능력, 조직능력, 자본과의 투쟁력, 계급적 직관력 등에서 현장활동가들의 선진적 부분을 능가할 바깥 활동가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오히려 여러 점에서 현장활동가조직의 지금 수준이 노동자정치조직들의 그것을 능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따져본다면 수준 들먹이는 식의 현장활동가조직에 대한 위상 논의가 얼마나 공허하고 부당한 것인가가 명확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장활동가조직과 노동자정치조직이 함께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고 전체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일부로서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재조직화하는 것이다.

"현장활동가조직은 여러 정치조직들의 공적 기제"라고 보는 견해 또한 현장활동가조직을 대상화시키고, 거꾸로 현장활동가조직을 사적 기제화하려는 여러 정파들의 소모적 대립의 원인이 되어왔다.

 

(2) 현장대중투쟁조직

 

현장대중투쟁조직은 특정한 시기에 노동조합을 대신하여 대중투쟁을 이끌어냄으로써 대중적 지도력을 획득하는 대중투쟁기관이자 현장권력기관이다.

88∼89년 현대중공업 128일 파업지도부, 91년 현대자동차연합투쟁위원회(현연투), 95년 현대자동차 양봉수동지 분신공동대책위원회(분신공대위) 등이 바로 대표적인 현장대중투쟁조직들이다. 88∼89년 현대중공업 128일 파업투쟁 당시 파업지도부는 어용 집행부에 맞서 부단히 현장의 이중권력을 만들어내면서 투쟁하는 대중들의 목소리와 의지를 직접 반영하고 그 지도력을 즉각적으로 검증받았던 명실상부한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기관이었다. 91년 현연투는 노민추, 구속해고동지회(구해동), 공동소위원회(공소위), 민주연합대의원회(민대), 풍물패연합 등 당시 현대자동차 민주세력이 총결집하여 만들어졌다. 현연투는 91년 5월 투쟁에서 노동조합을 제낀 채 연일 4∼5,000명의 조합원들을 직접 이끌고 공장 안 대규모 집회와 시내 거리행진을 감행한 후 격렬한 반민자당·반노태우정권 거리투쟁을 벌여냈다. 현연투는 더 이상 투쟁하지 않는 노동조합 집행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대중투쟁 지도부가 되어 자발적인 정치투쟁까지 벌여냈던 것이다. 95년 현대자동차 양봉수 동지 분신투쟁 당시 현장활동가들이 사업부별로 즉각 투쟁대오를 꾸리고 전공장에 걸쳐 분신공대위를 결성함으로써 노동조합과는 무관하게 바로 파업투쟁을 벌였던 것도 노동조합을 뛰어넘는 대중투쟁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현장대중투쟁조직은 노동조합이 투쟁을 회피하거나 가로막을 때 노동조합을 대신하여 대중투쟁을 직접 이끌어냈다. 투쟁하는 동안 현장에서는 노동조합과 현장대중투쟁조직의 이중권력 상태가 만들어졌고, 현장대중투쟁조직은 투쟁하는 대중들로부터 지도력과 권위를 인정받음으로써 노동조합의 형식적 권력을 무력화시켰다. 그러나 현장대중투쟁조직은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현장 대중들의 직접적인 투쟁기관이자 현장권력체로서 공장평의회로까지 전면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투쟁이 끝난 후 현장대중투쟁조직은 선거를 통해 민주노조로 전환되었고 결국 다시 노동조합으로 되돌아갔다. 민주노조가 대중투쟁기관으로서 거의 유일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민주노조를 회복한 이상 또 다른 대중투쟁조직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대중투쟁기관으로서 민주노조운동의 전투성과 역동성에 주목하면서 한국에서는 민주노조 그 자체가 평의회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근래 민주노조운동이 처해 있는 심각한 위기상황을 고려한다면 지금도 이렇게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산별시대로 접어든 민주노조운동의 개량화와 관료화가 심화될수록 노동조합을 대체하는 현장대중투쟁조직의 평의회적 맹아가 발아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현장대중투쟁조직의 전국화와 정치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3) 일상적 현장대중조직

 

일상적 현장대중조직은 노동조합 규약으로는 의사결정기관이나 집행기관의 지위를 갖지 않지만 노동조합과는 다른 대중적 영향력을 갖고 독자적인 투쟁과 활동을 벌여내는 조직이다. 현대자동차의장부총연합(의총련)과 현대중공업 1630, 공동소위원회연합(공소위)과 같은 조직들이 대표적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의총련은 콘베어 타는 의장부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현장대중조직이었다. 사업부별 대표자들과 전공장 회의체계를 꾸리고 일상 선전사업과 콘베어수당 인상투쟁 등을 대중적으로 벌여냈다. 의총련은 자동차 생산공장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콘베어 노동자들의 처지와 열망에 근거하여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조직되었고, 콘베어수당 인상을 쟁점화시켜 대중투쟁의 동력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의총련과 같은 조직형태로 도장부총연합(도총련), 차체부총연합(차총련) 등 부서별 현장대중조직을 만들려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현대중공업 1630은 유해작업자인 조선소 도장부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현장대중조직이었다. 1630은 "하루 6시간, 주5일 30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자발적이고 일상적인 현장투쟁을 벌여냈다.

공소위는 규약상 노동조합 공식체계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노동조합의 공식 의사결정과정에서 아무런 권리와 의무를 행사할 수 없고 집행에서의 권한 또한 없다. 그래서 실제 공소위는 스스로 부서별, 사업부별, 전공장 체계를 꾸리고 출범식도 독자적으로 해왔다. 노동조합의 맨 밑바닥에 있으면서 동시에 노동조합 바깥에 있는 셈이다. 공소위는 주요 시기에 자신의 입장을 대중적으로 표명하여 현장 여론을 형성하기도 하고 대의원회와 대립하여 소위원회 독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소위원회는 활동가를 발굴하고 훈련하는 풀(pool)이고, 많은 현장활동가들이 소위원회를 통해 활동에 입문해왔다. 그렇다고 소위원회가 초보 활동가들의 훈련코스인 것만은 아니다. 집행부나 대의원을 하지 않는 경우, 경험 많은 활동가들이 소위원회에서 다시 활동함으로써 소위원회 자체 내에 활동 경험이 축적되고 새로운 활동력들이 보충된다. 공소위는 노동조합 대의원체계와는 달리 현장 대중들로부터 자신들의 일부로 인식되고 그만큼 소위원과 대중의 관계는 직접적이다. 소위원이 현장 대중들 안에서 투표를 통해 선출되고 있지는 않지만 전공장 공소위는 노동조합의 다른 체계들과는 달리 현장의 직접성을 담보로 커다란 대중적 힘을 행사할 수 있다. 실제 소위원들이 현장에서 직접 선출되고 그 소위원들의 부서별, 사업부별, 전공장체계가 꾸려진다면 이야말로 공장평의회에 가장 가까운 형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울산지역에서 초보적 시도가 있었듯이 단위사업장 공소위들을 묶어 지역체계를 꾸리고 더 나아가 소위원회의 전국체계까지 꾸려질 수 있다면 이 조직이야말로 노동자평의회에 가장 근접한 형태가 될 것이다.

현장의 대중들은 자신의 처지와 요구에 따라 다양한 현장대중조직들을 만들어왔다. 현장의 직접성을 담보로 건설되는 일상적 현장대중조직은 노동조합운동이 위계화될수록 불가피하게 드러나는 대리주의적 한계를 뛰어넘어 일상시기 노동조합을 대체할 평의회적 맹아를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다.

 

(4) 현장활동가조직

 

현장활동가조직은 현장활동가들이 노동운동 내부의 일정한 경향과 노선에 따라 결집하여 노동조합운동과 노동자정치운동 등의 활동을 벌여나가는 조직이다.

현장활동가조직은 조직구성원리와 운영원리에서 노동조합과 다르다. 노동조합은 사상, 나이, 성별의 차이에 상관없이 그 노동조합의 규약이 정한 범위에 있는 노동자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지만, 현장활동가조직은 그 사업장의 민주노조운동이 쟁취해 온 활동목표와 내용에 동의하고, 그 활동에서 대중으로부터 검증될 뿐만 아니라 활동가 내부의 일정한 검열과정을 거친 현장활동가들로 구성된다. 또한 노동조합은 의사결정체계(대의원회)와 집행체계(상무집행위원회)가 분리되고 집행부의 상근으로 현장과 밀접하게 늘 결합되지 못하는 한계를 갖지만, 현장활동가조직은 해고자와 상집 파견자를 빼고 의장을 비롯한 조직원 전체가 대부분 생산노동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고, 의사결정과정과 집행과정도 의결체계인 중앙위원회와 집행체계인 집행위원회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중앙집행위원회로 통일되어 있다.

현장활동가조직은 노동자정치조직과도 차이가 있다. 노동자정치조직은 국가권력 획득을 일차 목표로 하여 직접 대중정치활동을 벌임으로써 대리정치를 지양하고자 하는 정치사상적 결사체이이다. 반면 현장활동가조직은 노선적 분화과정을 거쳐 정치적으로 발전하면서 노동자정치조직과의 구분과 경계가 엷어지고는 있지만 아직 그 자체로 노동자정치조직인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현장활동가조직의 과도기성이 존재한다.

현장활동가조직은 또한 현장대중조직과 구별된다. 현장대중조직은 대중 스스로의 자발성과 현장의 직접성에 근거해서 대중투쟁기관이자 현장권력기관인 공장평의회로 발전할 맹아를 품고 있다. 현장활동가조직은 현장대중조직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통해 현장대중조직의 평의회적 맹아를 싹틔울 수 있도록 촉진할 뿐이지 현장활동가조직 그 자체가 현장대중권력체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3. 현장활동가조직운동의 역사와 현재

 

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 이후 대공장에서의 현장활동가조직운동은 어디랄 것 없이 어용노조 퇴진투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어용노조 퇴진에 뜻을 같이 하는 현장활동가들은 노민추를 건설했다. 당시 노민추는 노조민주화를 선거를 통한 집행부 장악으로 제한하는 경향과 투쟁성과 민주성을 강화하는 현장조직력 강화로 이해하는 경향이 그 내부에 섞여 있었지만 대부분은 선거조직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한편 87∼88년 대중투쟁의 선봉에 섰던 해고자들은 초창기 노민추 조직의 상근역량으로서 많은 역할을 했다.

89∼90년 어용노조 퇴진투쟁의 성과로 등장한 대부분의 노조 집행부가 직권조인을 저지름으로써 또 다시 어용화되었다. "집행부 장악만으로는 민주노조를 세워낼 수 없다. 민주노조를 제대로 지켜내려면 공권력과 부딪혀서도 끝까지 싸울 수 있는 의식적 지도력과 조직력이 뒷받침되어 있어야 한다"는 게 분명해졌다. 이러한 자각 위에서 민주적 현장활동가들은 어용 집행부를 견제하고 노동조합의 현장일상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대의원에 대거 진출했고 소위원회가 광범위하게 꾸려졌다. 노조민주화투쟁은 집행부 장악에만 한정되었던 민주파들의 선거투쟁에 그치지 않고 민주노조운동의 일상적 대중 저변을 확대하면서 활성화되었다. '노민추운동의 대중화'와 동시에 현장활동가들을 새롭게 발굴하고 의식적으로 훈련시키기 위한 현장학습소모임 활동도 왕성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활동의 성과로 민주집행부가 태어났다.

90년대 초 새로 등장한 민주집행부는 집권하자마자 3중의 어려움에 직면했다. 첫째, 직권조인과 배신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기를 열망하는 현장대중들의 신임 민주집행부에 대한 기대감이 아래로부터 폭발하듯 분출되고 둘째, 위로는 가볍게 넘어가고 싶은 첫 싸움조차 청와대가 진두지휘하는 총자본의 전면 탄압이 들어오고 셋째, 안으로는 집권 경험과 실무력 부족으로 고통받는 상태가 그것이었다. 이러한 3중고(三重苦)를 해결하기 위해 노민추의 주요 현장활동가 대부분이 노동조합 집행부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노민추는 민주집행부 아래서 조직이 해소되거나 활동이 느슨해졌고, 신임 민주집행부를 아래로부터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현장활동가조직으로 재편된 경우에도 주요 활동가 대부분이 집행부로 들어감으로써 현장조직력과 활동력은 극히 취약해졌다. 이렇듯 민주집행부와 새롭게 재편된 현장활동가조직의 관계와 상호 역할을 정비할 틈도 없이 대공장 민주노조의 첫 싸움은 예외없이 공권력과의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이 전면전에서 대부분의 대공장 민주노조는 대량 구속·수배·해고 등 총자본의 집중탄압을 받게 되고 현장활동가조직은 거의 와해되었다. 구속된 지도부를 대신해 살아남은 민주노조의 집행간부들은 직무대행체제로 민주노조사수투쟁을 전개함과 동시에 지리한 노조정상화투쟁을 벌여야 했다. 이 시기 현장활동가들은 한편에서는 부서동지회 등으로 산개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수의 활동가들이 보다 강화된 정치적 입장을 중심으로 집중되었다(산개와 집중의 시행착오과정). 자본은 이 틈을 비집고 신경영전략을 전격 도입하면서 현장을 반 단위까지 장악해 들어왔다.

95년을 지나면서 신경영전략으로 야금야금 빼앗긴 현장권력을 되찾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커져갔고, 현대자동차 양봉수열사 분신투쟁을 계기로 대공장 현장활동가조직들이 하나 둘 재건되었다. 이때의 조직 재건은 현장활동가들끼리 벌였던 이른바 만리장성론과 깃발론의 논쟁이 아니라 신경영전략 자체에 의해 야기된 현장대중투쟁을 통해 이루어졌다.

재건된 현장활동가조직은 선거용 조직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민주노조를 강화하고, 현장활동가를 발굴·훈련하며, 노동조합 수준에 제약되지 않는 현장정치활동과 연대사업을 개척해가는 일상활동조직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했다.

현장활동가조직은 지역과 전국으로 빠르게 일반화되어갔다. 97년 금속산업 대공장 현장활동가조직들이 주축이 되어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가 결성되었다.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는 97년 대공장 노동조합 선거에서 대거 집행부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에서 배출된 노조 집행부들은 격렬하게 전개됐던 98년 투쟁에서 대부분 패배했고, 이후 현장활동가조직운동은 정치적·조직적 분화과정을 본격적으로 겪게 된다. 민주노조운동의 이념·노선과 활동방식을 둘러싼 차이는 99년 금속산업연맹 임원선거에서 조돈희, 조준호, 문성현 후보의 3파전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현장파(좌파), 국민파(우파), 중앙파의 3분립 구도가 분명해진 것이다. 중앙연락사무소와 권역별 서기를 두고 대표자회의와 정책협의회를 달마다 열었던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와 달리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표방하며 결성된 민주노동자전국회의는 중앙운영위원회와 집행위원회, 지역별 위원회체계에 이르기까지 보다 완성된 조직형식을 갖추고 출범했다. 한편 금속 대공장을 넘어서 중소사업장에까지 현장활동가조직이 일반화되었는데, 연대와전진을위한전국노동자회는 주로 금속노조 산하에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는 중소사업장 현장활동가들이 지역별·전국적 회의체계를 꾸리고 금속산별노조에 대한 전국적 공동대응을 모색해왔다. 공공부문에서도 현장활동가조직이 일반화되기 시작했고 공공부문 현장활동가조직들끼리 공공현장모임을 꾸리기도 했다. 지역별 현장활동가조직의 연대도 활발해지고 있는데 경기현장연대가 근래 왕성하게 움직이고 있다.

현장활동가조직이 일반화되면서 산업과 규모, 역사적 경험 등의 차이에 따라 현장활동가조직이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여전히 노조민주화 수준에서 노민추운동을 대중화하는 단계에 있는 조직이 있을 수 있고, 한참 앞서 현장활동가조직의 정치적 전화·발전을 고민하는 조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갓 출범하는 현장활동가조직이 비록 노조민주화를 목표로 활동하는 노민추라 하더라도 현장조직운동의 일정한 보편성으로부터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고 압축하여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는 있다.

 

4. 현장활동가조직의 체계와 활동

 

(1) 현장활동가조직의 체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경우 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민투위), 노동해방인간해방을위한현장권력쟁취투쟁위원회(현장투), 민주노동자동지회(동지회), 현장활동혁신을위한자주노동자회(자주회), 실천노동자회(실노회), 평등세상을여는민주노동자투쟁연대(민노투), 노동자투쟁위원회(현노투), 노동자연대투쟁위원회(노연투) 등 모두 8개의 현장활동가조직이 있다. 전투적·계급적 노동운동(민투위)과 사민주의적 노동운동(민노투) 사이에 현장투와 동지회가 있고, 민족주의(국민)적 노동운동(실노회, 자주회)과 실리적·노사협조주의적 노동운동(노연투) 사이에 현노투가 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전국 3만8천여명의 조합원 가운데 울산공장에만 2만4천여명의 조합원이 있다. 현장활동가조직들은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3∼4백명에 이르는 회원들로 구성되고 후원회원을 두기도 한다. 메이저 현장활동가조직들(민투위, 민노투, 실노회, 노연투)은 울산공장 뿐만 아니라 전주, 아산공장과 남양연구소, 판매와 정비본부에도 조직을 구성하고 있고 이 조직들간의 전국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민투위를 예로 들어 단위 공장 현장활동가조직의 체계를 살펴보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민투위는 대략 200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회원 중에는 사내하청 노동자도 포함되어 있다. 1년에 한번 열리는 조직원 정기총회에서 의장과 2명의 부의장, 사무장이 선출되고 수시로 임시총회가 열린다. 사업부 조직원 총회에서 사업부 중앙위원과 주·야간조 연락 책임자, 총무 등 집행단위가 꾸려진다. 의장단은 사무장 산하에 집행단위를 조직하는데 집행위원회는 정책부, 선전부, 신문(노동자의 길) 편집부, 교육부, 조직부, 재정부, 문화부, 연대사업부, 비정규직사업부, 노동보건부, 정치세력화팀, 산별팀으로 구성된다. 의장단(임원)과 사업부 중앙위원, 집행위원들이 1주일에 한번 중앙집행위원회를 개최한다. 정책부, 신문편집부, 노동보건부 등은 부장과 부원들로 주1회 별도 회의를 갖는다. 지부·본부 민투위와는 의장단회의와 전국 민투위 수련회 등으로 만나고, 2년에 한번 본조, 지부, 본부가 선거에 들어가면 선거체계로 전환된다. 타 현장활동가조직들과는 현장제조직 의장단회의를 구성하고 있는데 민투위 의장이 소집권자를 맡고 있다. 지역·전국 연대조직체계로는 지금은 회의체계가 거의 무너졌지만 현대중공업전진하는노동자회(전노회), 미포조선민주노동자회(미포민노회), 울산지역해고자협의회(울해협) 등과 함께 구성했던 울산지역현장조직대표자회의가 있고 기아자동차현장의힘 등과 함께 구성된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가 있다.

 

(2) 현장활동가조직의 활동

 

현장활동가조직은 일상적으로 노동조합 공식체계(집행부, 대의원회, 소위원회)에 진출하여 활동한다. 현장활동가조직과 노동조합의 관계는 많은 점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체제에서 정당과 의회, 정부가 맺는 관계와 같다. 즉 현장활동가조직(정당)-대의원회(의회)-집행부(정부)의 관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현장활동가조직들은 노동조합 공식체계에서 다수파·집권세력이 되기 위해 일상적으로 각축한다. 노동조합 공식체계 내에서 현장활동가조직 간의 경쟁은 빈번하게 이루어지며 이런 활동들은 때로는 노-노 분열의 양상으로까지 치닫기도 하지만 노동조합 공식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대의원 선거에서 어느 조직이 얼마만큼의 대의원을 배출해내느냐에 따라 다수파와 소수파가 갈린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경우 무소속이 거의 없을 정도로 8개 현장활동가조직들이 대의원을 대부분 분점하고 있다. 무소속이라 하더라도 어느 성향 무소속으로 구분되어 전체 현장활동가조직들의 대의원 분포도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노동조합 집행부를 배출한 현장활동가조직은 집행부와 일종의 당정협의라 할만한 협력체계를 갖고 집행에 공동책임을 진다. 이 체계는 현장제조직 의장단들과 노동조합 집행부가 갖는 연석회의와는 성격이 다르다. 현장활동가조직은 노동조합 집행부를 일상적으로 비판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하지만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투쟁해야 할 경우 집행부와 협력하여 힘을 모아주기도 한다. 현장활동가조직은 대의원 뿐만 아니라 소위원회에서도 새로운 현장활동가를 발굴하는 등의 활동을 벌인다. 노동조합 상급단체의 선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민주노총, 산별연맹의 대의원대회에 대해서는 현장활동가조직의 전국적 연대를 통해 개입한다.

현장활동가조직은 노동조합 공식체계에서만이 아니라 독자적으로도 조직활동과 대중활동을 전개한다. 현장대중들은 이제 이러한 현장활동가조직의 활동을 노동조합 공식체계의 활동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대자동차 현장활동가조직들은 대부분 공장 바깥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현대자동차 현장활동가조직 가운데 6개 조직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고, 5개 현장활동가조직이 격주간으로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대략 2만여부가 배포되는 현장신문은 보통 광고를 받아 재정을 충당한다. 현장활동가조직들은 사안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유인물과 대·소자보를 발행한다. 그리고 현장활동가조직에서 직접 현장대중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분석, 정책자료집을 내기도 한다. 민투위는 98년 고용위기 때 '실질임금 삭감없는 주35시간 노동시간 단축과 주간연속2교대'를 주장하는 대중용 소책자를 발행하고 점심시간 식당 순회 홍보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2002년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그 결과를 발표했다. 2003년 3월에는 근골격계직업병공동연구단과 공동으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강화에 따른 근골격계 직업병 실태연구' 보고서를 냈다. 현장활동가조직의 교육활동은 집체교육, 강좌, 소모임학습, 선전선동교실 등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장활동가들이 노동조합 공식체계에서의 활동과 현장활동가조직의 회의만으로도 시간에 쫓길 정도로 바쁘기 때문에 현장활동가조직 차원의 교육과 학습을 안정적으로 진행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현장활동가조직은 또 일상적으로 출·퇴근 투쟁, 독자 집회, 천막 밤샘농성, 단식농성, 삭발농성 등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 민투위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집행부가 노사공동으로 추진하는 근골격계 직업병 대응을 강도높게 비판하면서 독자적으로 현장대중에 대한 설문조사와 유소견자 검진을 실시하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포함된 요양대상자들과 함께 근골격계 집단요양신청투쟁을 벌이는 등 현장활동가조직 독자의 대중투쟁을 강력하게 벌여냈다. 현대자동차 현장제조직 의장단회의에서는 최근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과 한국군 파병 반대를 위한 공장 출입문별 1인 시위를 전개하기도 했다.

현장활동가조직들 사이에는 특정 사안을 두고 경쟁과 협력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선거연합이 이루어지거나 정책연합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현장활동가조직 전체가 공동투쟁을 위한 연대체를 꾸리기도 한다. 그리고 단위 공장을 넘어서서 지역연대투쟁도 벌여왔다. 울산지역에서는 91년 울산민주노동자협의회(울민노), 95년 울산노동자연대투쟁실천위원회(울연투), 96년 노동법개악저지 및 개정투쟁 울산지역 선봉대(노개투선봉대), 2001년 구조조정박살 노동운동탄압분쇄를 위한 울산지역 연대투쟁실천단(실천단), 2002년 신자유주의분쇄 울산지역 공동투쟁실천연대(공투련)에 이르기까지 현장활동가조직이 지역의 좌파 노동·정치단체와 함께 연대투쟁을 전개해왔다. 2002년 공투련은 울산해고자협의회(울해협), 노동자의 힘, 사회당, 울산노동자연대, 평등연대 등 지역 좌파단체들과 현대자동차 9개 현장활동가조직 전체, 현대중공업 5개 현장활동가조직 연대체인 민주연대, 미포민노회 등 울산지역 현장활동가조직 거의 대부분이 망라되어 발전노조의 38일 파업과 화섬 3사 해고자 복직 및 민주노조 재건·사수 투쟁을 지원했다. 단위 노동조합이 대중투쟁을 제대로 이끌지 못할 때 단위 공장의 현장조직이 나섰듯이, 노동조합의 지역 상급단체가 현안 투쟁들에 대해 연대와 지원투쟁을 제대로 조직하지 못할 때 현장활동가조직과 노동·정치단체들의 지역 연대단위가 공동투쟁에 나섰던 것이다.

현장활동가조직 내부의 분파활동 또한 현장활동가조직에게 일상적이면서도 중요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조합 선거를 전후하여 많은 현장활동가조직들이 분열했고, 큰 투쟁을 치르고 나면 어김없다 싶을 정도로 그 투쟁을 주도했던 현장활동가조직 내부가 조직적으로 분리되곤 했다. 그러나 현장활동가조직의 정치적, 조직적 분화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현장활동가조직운동이 발전할수록 이러한 분화는 필연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자신의 활동노선을 분명히 하면 할수록 현장활동의 대중적 책임성이 높아지고 현장활동가조직간의 경쟁과 협력 때문에 현장활동이 활성화되는 장점이 있다. 현장활동가조직이 노선적으로 미분화되어 있는 경우에는 내부 분파활동을 강화하면서 노선적 분화를 촉진시킬 필요가 있다. 단, 이때 '차이를 인정한 연대의 정신'에 근거하지 않고 정파적이고 패권적인 방식으로 서로를 갈라치기해서는 곤란하다. 현장활동가조직이 노선적으로 이미 분화되어 있는 경우라면 내부의 분파활동을 조직의 민주성과 통일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5. 현장조직운동의 과제와 전망

 

현장조직운동은 이제 그 가장 앞선 부분에서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일부로서의 활동가 일반이 정치적으로 결사하는 활동가정치조직운동으로 전화·발전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금 시기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자기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노동자정치조직들은 이른바 바깥 학생출신 활동가들의 인테리주의적 한계를 벗어나 명실상부한 현장활동가들의 자기조직으로 발전해야 하고, 현장활동가조직은 정치적으로 강화됨으로써 현장정치활동을 목적의식적으로 전개하는 노동자정치조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렇게 현장활동가조직과 노동자정치조직이 활동가정치조직으로서 하나가 되면, 이 활동가정치조직은 계급적 좌파진영의 혁신과 연대, 현장활동가조직운동 전반의 정치적 재조직화를 통해 노동자계급정당 건설로 전진해야 한다. 활동가정치조직은 또한 현장대중(투쟁)조직의 평의회적 맹아를 싹틔우는 다양한 실천을 통해 아래로부터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현장대중권력을 창출해내고, 그것이 노동자대중의 직접적인 자기권력으로 성장하도록 촉진하고 지원하는 현장대중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때 활동가정치조직은 평의회적 대중권력이 투쟁하는 노동자대중 스스로의 창조물이고 활동가는 대중의 그 창조력을 촉진하고 조력할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스스로 권력화하려는 일체의 경향과 시도를 철저히 경계하고 차단해야 한다. 활동가정치조직은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하고 노동조합운동을 계급적·민주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투쟁함과 동시에 현시기 대중투쟁에서 점하고 있는 노동조합운동의 과잉결정권을 바로잡아야 한다. 노동조합만이 정치총파업의 투쟁지도부를 독점하고 있는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고 활동가정치조직이 그 투쟁의 지도부로 정당하게 복권되어야 한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여 현시기 현장조직운동의 과제와 전망을 제시하면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① 현장활동가조직은 정치적으로 강화되어 활동가정치조직으로서의 노동자계급정당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② 활동가정치조직은 민주노조운동의 혁신과 노동조합운동의 민주적·계급적 발전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③ 활동가정치조직은 대중투쟁이 분출하는 시기에 노동조합을 제치고 등장하는 현장대중투쟁조직과 노동조합의 대리주의적 한계를 넘어 현장의 직접성을 담보하고 있는 일상적 현장대중조직의 평의회적 싹을 풍부하게 키워내야 한다.

 

6. 나가며 - 현장정치활동의 과제

 

정치를 일반적으로 '권력의 획득과 유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제 세력의 투쟁과 행동'으로 이해한다면 현장정치란 '현장권력을 둘러싼 노자간 투쟁'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현장활동가들과 현장조직은 이미 오랫동안 현장정치활동을 전개해왔고 지금도 치열하게 현장정치를 실천하고 있는 셈이 된다.

현장은 자본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공세가 체계적이고 집요하게 전개되고, 그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각축장이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현장에서의 이 투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본에 맞선 현장투쟁은 작업량, 작업방식, 작업조직, 작업속도, 노동강도와 밀도, 근무시간, 근무형태, 작업투입인원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고, 자본의 현장통제전략과 기업문화전략에 맞선 저항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현장투쟁이 개별 공장과 기업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지거나 정규직 노동조합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투쟁으로 협소화되는 것에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국적·계급적·정치적 관점에서 현장의 문제를 해석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현장활동을 실천해야 한다. 이렇게 전국적·계급적·정치적 관점에서 현장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현장정치활동이다.

현장정치활동은 노동자계급정치로 확장되고 발전된다. 노동자계급정치란 ① 착취와 억압이 없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의 선진층을 활동가정치조직으로서의 노동자계급정당으로 조직하는 것 ② 부분적으로 분출하는 경제적 방어투쟁들을 정치총파업과 강력한 민중연대투쟁으로 집중하고 결합시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또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키워가는 대중정치로 활성화시키는 것 ③ 대중을 파편화된 유권자로 대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계급으로 통일시키고, 이렇게 계급으로서 정치화되고 주체화된 대중이 스스로 국가권력으로까지 상승함으로써 종국에는 국가를 소멸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끝으로, 지금 시기 노동자계급정치를 전면화하기 위한 현장정치활동의 과제를 정리해보자.

첫째, 활동가 정치학습을 체계화하고 획기적으로 강화함으로써 변혁의 상과 전망을 재정립하고, 현장활동가 자신의 운동과 삶의 전망을 새롭게 추스려야 한다. 근래 들어 현장활동가들 대다수가 운동의 전망을 찾지 못하고 활동가로서의 개인 삶의 미래조차 불투명한 상태로 힘겨워 하고 있다. 많은 활동가들이 노동조합 대의원 되기, 위원장 되기, 상급단체 임원 되기, 지방선거를 비롯한 정치 판의 후보 되기 따위에 자신의 활동 전망을 가두고 있다. 현재의 이 질곡을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현장활동가들의 정치학습을 강화하는 것과 더불어 좌파 이론진영과 노동자정치조직이 변혁의 상과 전망을 둘러싼 사상투쟁을 복원하고 이를 노동자계급정당의 강령건설투쟁으로 모아나가야 한다.

둘째, 생산현장에서의 노동자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을 마련하고 투쟁해야 한다. 생산량, 노동강도, 노동시간과 근무형태, 인원, 건강권, 기업문화에 맞선 노동문화에 이르기까지 자본의 전략에 대한 노동의 전략을 세워야 하고, 이를 세부적인 현장투쟁전술로 구체화해야 한다.

셋째, 파업투쟁의 전략과 전술을 풍부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 파업투쟁이 선거주의와 의회주의라는 협소한 전망과 조합주의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선거는 정당, 투쟁은 노동조합'이라는 양날개로 다시 왜곡되고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정치·총파업정치의 변혁적 전망과 올곧게 결합되도록 해야 한다.

넷째, 현장대중투쟁을 중심으로 선거와 의회전술을 결합시켜야 한다.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개입을 통해 현장과 지역을 잇는 '노동자·민중자치'의 다양한 실험과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학교운영위원회의 활동이 현장정치활동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현장정치활동은 지역적 수준에서 삶의 다양한 영역에 뿌리를 내림과 동시에 전국적·계급적 수준으로 확장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 총선과 대선은 바로 이를 위한 적극적 계기로 활용되어야 한다.

 

※ 참고자료

 

울산노동정책교육협회, 『현장조직운동의 과거·현재·미래』, 1997.3.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조사보고서 : 전국현장조직운동의 현황』1998.12.

이종호, 「선진노동자의 전진, 현장조직을 강화하자!」, 『현장에서 미래를』 1997년 6월호.

-----, 「현장조직운동, 현황과 과제를 점검한다」, 『현장에서 미래를』 1999년 7월호.

-----, 「현장조직운동, 점검과 모색」, 『현장에서 미래를』 2001년 1월호.

-----, 「현장조직의 위상과 전망」, 『현장에서 미래를』 2002년 4-5월 합본호.

-----, 「현장활동가조직의 위상과 현장정치활동」, 『노동자의힘 기관지』 15호, 200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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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11:19 2005/02/1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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