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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힘 15호] 02.9.20

 

현장활동가조직의 위상과 현장정치활동

 

현장활동가조직의 위상

 

현장활동가조직의 '위상'을 두고 많은 논란들이 있었다. 활동가정치조직의 '현장정치활동'에 대한 상과 전망을 분명하게 정리하지 않는 이상, 이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현장활동가조직과 노동조합의 관계에 대한 견해들부터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노동조합은 공조직이고 현장활동가조직은 사조직"이라고 보는 견해는, 현장활동가조직이 대중적 단결을 저해하며 선거시기에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해로운 분파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이 견해는 현장활동가조직이 몇몇 명망가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며 선거시기에만 움직인다고 비판하고 공조직인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강조한다. 이 견해대로라면 노동조합 집행부는 '사조직'과의 관계를 끊거나 최소한 약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노동조합 집행부는 그 집행부를 배출한 현장활동가조직에 의해 '파견'된 것이고 이런 생각은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 현장활동가조직과 노동조합 집행부는 집행에 대한 연대 책임을 진다. 노동조합 집행부는 대중적 책임과 더불어 조직적 책임도 짊어진다. "가장 조직적이라야 가장 대중적일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노동조합과 현장활동가조직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으로 나누고 대립시키는 것이야말로 노동조합의 대중에 대한 공적 책임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는 그릇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노동조합은 제도권이고 현장활동가조직은 비제도권"이라고 보는 견해는, 노동조합 그 자체의 한계를 강조하면서, 노동조합을 부정하고 뛰어넘는 운동체로서 현장활동가조직을 주목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노동조합의 부정적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노동조합운동의 현실적 의의를 극단적으로 부정하거나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개입의 필요성조차 거부하는 것으로 나아갈 수 있다.

셋째로, "현장활동가조직 일반은 노동조합과 질적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견해는, 실제 활동의 목표와 내용에 있어서 현장활동가조직이 노동조합의 울타리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현장활동가조직이 '스스로' 끌어올린 정치적 육박지점(주1)을 조합주의적인 것으로 간단히 폄하하고 대상화시켜버린다.(주1: 노동자정치조직이 "운동과 삶의 전망"을 갖고 현장활동가들이 '몸으로' 밀고온 이 지점과 온전히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 운동의 가장 심각한 위기이고 과제이다.) 이 견해대로라면 현장활동가들은 스스로 재조직화됨으로써 활동가정치조직을 함께 만들어갈 주체가 아니라 현실의 정치조직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또는 현실의 정치조직들로부터 선택되어지는) 객체로 전락한다.

 

다음으로, 현장활동가조직과 현장대중조직을 혼동하면서 발생하는 논란이 있다. "현장활동가조직은 대중투쟁기관이자 현장권력기관"이라고 보는 견해는 현장활동가조직이 직접 현장대중투쟁을 조직함으로써 노동조합을 대체하는 현장대중권력으로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활동가조직이 곧바로 대중권력기관이 될 수 있다고 혼동함으로써 당이 국가권력화되는 것과 동일한 오류에 빠지고 있다.

 

또 하나, 현장활동가조직과 노동자정치조직의 관계에 대한 논란이 있다.

"현장활동가조직은 선진노동자대중의 풀"이라고 보는 견해는 현장활동가조직이 노동자정치조직과는 다른 현장대중조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현장활동가조직을 노동자정치조직들이 그 안에 '프락션'해야 할, 또는 그 '밖'에서 계몽하고 지도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이른바 현장 안과 바깥의 갈등을 심화시켰고 현장활동가조직의 온갖 분열과 대립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현장활동가조직은 여러 정치조직들의 공적 기제"라고 보는 견해 또한 현장활동가조직을 대상화시키고 거꾸로 사적 기제화하는 근거가 되어왔다.

 

이제 이상의 비판적 검토를 토대로 현장활동가조직의 위상과 전망에 대해 정리해보자. 현장활동가조직은 정치적으로 강화됨으로써 활동가정치조직으로 재조직되어야 한다. 현장활동가조직의 독립적 강화·발전이 아니라 '정치적 재조직화'가 그 전망이다. 현재 재편이 불가피한 현장활동가조직의 전국적 연대체는 발전적으로 해소하고 활동가정치조직의 현장위원회와 같은 틀로 정치적-조직적 집중성을 강화해야 한다. 활동가정치조직은 노동조합의 계급적-민주적 발전을 위해 투쟁함과 동시에 다양한 현장대중조직을 창출해내고 그것의 평의회적 맹아를 풍부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현장정치활동

 

정치를 '권력의 획득과 유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제 세력의 투쟁과 행동'으로 이해한다면 현장정치란 '현장권력을 둘러싼 노자간 투쟁'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현장정치활동을 전개해왔고 지금도 치열하게 현장정치를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현장은 자본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공세가 체계적이고 집요하게 전개되고 그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각축장이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현장에서의 이 투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본에 맞선 현장투쟁은 작업량, 작업방식, 작업조직, 노동강도와 밀도, 근무시간, 근무형태, 작업투입인원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고 자본의 현장통제전략과 기업문화전략에 맞선 저항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현장투쟁이 개별 공장과 기업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지거나 정규직 노동조합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투쟁으로 협소화되는 것에 있다. 현장정치활동은 바로 이 문제를 철저하게 극복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현장정치활동은 노동자계급정치라는 관점에서 조직되어야 한다. 노동자계급정치란 착취와 억압이 없는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노동자계급의 선진층이 활동가정치조직으로서의 노동자계급정당을 건설하고 일상적·부분적 대중투쟁들을 전국적·계급적 정치투쟁으로 발전시키며 전국적 정치활동을 일상적으로 전개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노동자계급대중이 정치의 주체로 서나가고 스스로 권력이 됨으로써 권력을 소멸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노동자계급정치의 관점에서 지금 우리의 현장활동을 재조직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구체화해야 할 현장정치활동이 될 것이다. 이 점에서 현장정치활동은 우선 현장의 문제를 전국적, 계급적,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투쟁을 계획하고 만들어가는 활동이 될 것이고, 현장의 가장 구체적인 문제가 세계적인 반신자유주의투쟁의 주요 이슈와 같은 큰 문제들과도 정치적으로 바로 연결되고 관통되는 그런 활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 활동가 정치학습을 체계화하고 획기적으로 강화함으로써 우리 사회 변혁의 상과 전망을 구체화하고 활동가 자신의 운동과 삶의 전망을 새롭게 추스르는 것, 둘째, 생산현장에서의 노동자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을 마련하고 투쟁하는 것, 셋째, 개량화와 관료화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노동조합을 전투적이고 계급적으로 혁신하고 강화하는 것,  넷째, 공장과 지역을 잇는 노동자의 생활정치를 개척하고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 시스템들을 바꿔나가는 것, 다섯째, 파업투쟁의 전략과 전술을 풍부하게 하는 것, 그리고 이 파업투쟁이 선거주의와 의회주의라는 협소한 전망과 조합주의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선거는 정당, 투쟁은 노동조합'이라는 양날개로 다시 왜곡되고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정치·총파업정치의 변혁적 전망과 올곧게 결합되도록 하는 것, 여섯째, 현장대중투쟁을 중심으로 선거와 의회전술을 적극 활용하는 것 등이 지금 시기 현장정치활동의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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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11:16 2005/02/1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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