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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미래를] 02년 8,9월

 

 울산지역 6.13 지방선거 평가

 

1. 표결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조합원총회를 통해 35명의 후보를 내세운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와 민주노동당 울산시지부는 동구청장에 이갑용, 북구청장에 이상범, 시의원에 김종훈, 윤종오, 북구의회의원 8명 중 5명, 동구의회의원 10명중 5명 등 모두 14명을 당선시켰고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별 투표에서 106,136표(28.7%)를 얻어 1명의 비례대표 시의원을 당선시켰다. 시장후보로 나왔던 송철호 후보는 162,546표(43.6%)를 얻어 197,772표(53%)를 획득한 한나라당 박맹우 후보에게 져 낙선했다. 한편 사회당은 안승천 시장후보가 12,329표(3.3%), 정당별 투표에서는 9,016표(2.4%)를 얻었다.

 

 

2. 후보 선출과정

 

2001년 11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와 민주노동당 울산시지부, 시민단체는 세 차례 3자 연대회의를 갖고 송철호 변호사로 시장 후보를 단일화하자는 논의를 벌였으나 결국 실패했다. 이후 민주노동당 울산시지부는 2002년 2월 20일 당원 총회에서 지방선거 후보를 뽑기로 했고 총회 석 달 전(2001. 11. 20.)까지 가입하는 당원에 한해 투표권을 주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으로 지방 선거에 뜻을 두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에 대거 가입했다. 민주노동당 북구지구당의 경우에는 불과 3~4일 사이에 1,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주로 현대자동차 현장조직들이 조직별로 50명에서 100여명씩 무더기로 가입했는데 이를 두고 ‘1만원짜리 정치세력화’, ‘3개월 거수기용 당원’ 등 뒤틀린 출세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편, 송철호 변호사는 3자 연대회의가 실패로 돌아간 후 2001년 11월 20일까지도 민주노동당에 가입하지 않았고 민주노동당 울산시지부는 예정대로 자체 일정을 밟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2002년 1월 15일 민주노총 중앙위원회가 논란 끝에 “2002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총 후보로 추인받고자 하는 조합원은 민주노동당을 통해 출마한다.”고 최종적으로 결정하자 송철호 변호사를 시장 후보로 밀었던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의 지도부)가 ‘제동’을 걸고 나오기 시작했다. 박준석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장은 1월 16일 지방선거 정치방침에 대한 공청회 자리에서 “현재 민주노동당원은 민주노총 조합원의 2%도 채 못된다. 민주노동당만의 결정으로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지지를 끌어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올해 정세는 98년과 달리 매우 불리하다. 그리고 4.13 총선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누구나 다 승복할 수 있는 후보 경선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점을 들어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6만5천 조합원 총투표의 필요성을 강변했다. 그리고 1월 17일 정치위원회와 운영위원회 수련회를 열어 “민주진보 진영의 후보 난립을 막고 노동자와 시민의 정치적 관심 집중과 민주진보진영의 대단결을 위해 시장후보에 한하여 민주노동당, 사회당 등 진보정당과 한국노총, 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하는 개방형 예비 경선을 치르자.”고 제안했다. 민주노동당 울산시지부는 격론 끝에 1월 22일 결국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의 이러한 결정은 민주노동당원이 아니더라도 민주노총 후보가 될 수 있다고 한 점에서, 그리고 민주노총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민주노동당의 결정과 무관하게 후보가 사실상 확정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민주노총 정치방침을 어느 정도 바로잡은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대중적, 민주적 절차를 통해 후보를 선출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결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 결정의 이면에는 지난 2000년 4.13 총선에서 작동했던 울산 민주노동당 내부의 분파 역학이 증폭되어 작용하고 있었다.

 

이후 진행된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의 후보 선출과정은 내부의 많은 분란과 잡음을 불러일으켰다. 대표적인 것이 태광 정리해고저지투쟁위원회(정투위)에 투표권을 주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였다.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는 “태광 노동조합이 민주노총을 탈퇴했기 때문에 투표권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고 태광 정투위는 “민주노조를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가 투표권까지 박탈할 수 있느냐?”는 입장이었다. 태광 정투위는 “민주노총이 우리가 얻어 터져 가며 싸울 때 해준 게 무언가? 민주노총이 필요할 땐 실컷 이용해먹다 이제 노조가 망하니까 버린 것 아니냐? 민주노총 탈퇴 이후에도 계속 정투위 사무실로 집회 참여 요청 공문이 팩스로 날라 왔는데, 이건 도대체 뭐냐? 팩스 보여줘야 되나?”1)며 거세게 항의했고 결국 태광 정투위에도 투표권을 주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의 ‘행패’를 규탄하는 목소리 또한 컸다. “울산본부장의 행패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금속노조 최용규 울산지부장은 울산본부 운영위였다. 한데 지방자치선거에 관한 중요한 결정을 하루 앞둔 3월 7일 갑자기 일방적으로 운영위 자격을 박탈당한 바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알칸사(구 현대알루미늄)가 금속노조를 탈퇴함으로써 금속울산지부의 조합원이 2,000명이 안된다는 이유”2)라는 식의 ‘폭로’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한편 사회당 울산시지부는 민주노총 울산본부의 조합원 총투표가 “민주노동당 강화를 위한 예비선거일 뿐”이며 “민주노동당 내부의 갈등 봉합과 민주노총 비주류 내지 비민주노동당 세력의 출마 명분을 꺾기 위한 정치 행위에 불과하다”면서 조합원 총투표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3월 23일 영남위원회 대의원대회에서 독자적으로 사회당의 울산시장 후보(안승천)를 선출했다. 울산 노동자의 힘은 민주노총 울산본부의 조합원 총투표가 제대로 성사되려면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을 바로 잡은 위에서 노동자․민중운동진영의 지방선거 공동대응기구를 먼저 꾸려야 하며 조합원 총투표가 반드시 연대투쟁을 결의하는 장으로 더불어 조직되어야 한다고 입장을 밝히고 울산지역 노동자․민중운동진영의 시장 후보는 민주노동당만이 아닌 노동자 정치세력과 민주노조운동 전체의 총의를 모아내는 노동자 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은 2월 21일 민주노총 울산본부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조돈희 울산해고자협의회 의장이 제기했던 ‘화섬 3사․중소영세사업장․비정규직 투쟁 연대 및 투쟁지원금 결의’가 조합원 총투표 과정에서 함께 진행되지 못함으로써 우려했던 대로 ‘선거용 거수행위’를 넘어서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만’의 합동총회로 치러짐으로써 민주노총 정치방침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지 못했다.

4월 17~19일 민주노총울산지역본부와 민주노동당은 합동총회를 열어 6.13 지방선거에 나설 36명의 후보를 선출했다. 시장후보는 송철호 변호사가 19,965표(46.7%)를 얻어 19,591표(45.8%)를 얻은 김창현 민주노동당울산시지부장을 근소한 표 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동구청장과 북구청장 후보에는 각각 이갑용, 이상범 두 후보가 당선되었다. 송철호 변호사는 총투표가 임박할 때까지도 무소속 시민 후보로 나설 뜻을 계속 비추다가 총투표 직전에 민주노동당에 가입했다. 이렇게 된 사정은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에서 송철호 변호사가 무소속으로 총투표에 나선다면 이갑용 전위원장을 시장 후보로 내세우겠다고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송철호, 김창현, 이갑용의 3자 경선으로 총투표가 치러진다면 송철호 변호사나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산시지부장의 경우 결코 유리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막판 ‘조정’이 이루어졌는데, 송철호 변호사가 민주노동당에 가입하고 이갑용 전위원장이 동구청장 후보로 나서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렇게 되자 결국 “민주노동당, 사회당, 노동자의 힘, 시민사회단체 등 지방선거에 후보를 출마시키고자하는 모든 민주진보세력은 민주노총 조합원 총회를 ‘부분개방형 예비선거’로 인정하고 후보를 출마시켜 그 결과에 승복한다”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의 결정과 달리, 실제 총투표는 ‘부분개방형 예비선거’가 아니라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만의 합동총회로 치러짐으로써 애초 노동자 민중운동세력의 총의를 모아나가는 총투표로서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조합원 중에는 기존 보수정당뿐만 아니라 진보적 정치 성향(노동자의 힘, 사회당)을 가진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민주노동당이라는 획일적 공간 속에 가두어 민주노총 조합원은 민주노동당이 아니면 안된다는 정치방침은 이번 총회를 기형적 경선으로 만들었는데 이중 민주노총 조합원이면서 민주노동당 당원이 아닌 조합원은 무소속으로 입후보하여 조합원을 제외한 당원 득표를 합산한다는 것인데 애초 당원이 아닌 후보인 경우 처음부터 불공정한 출발을 하는 것”3)이라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3. 선거 과정

 


노동계와 시민운동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출마한 송철호 후보는 초반의 우세를 지키지 못하고 이전보다 더 큰 표 차로 낙선하고 말았다. 송 후보는 노동계 고정 지지기반에 대한 표 다지기와 이를 통한 공세적인 바람몰이 보다는 시종일관 한나라당 지지층에 대한 수세적 공략에 주력했다. 한나라당 모든 후보들의 선거 공보물에 한나라당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찍혀진 반면, 민주노동당의 로고는 송 후보를 비롯한 민주노동당 선거 캠프 자신에 의해 의도적으로 최대한 작게 찍혀졌다. 송 후보는 TV 토론 때마다 자신의 이미지가 보수적 유권자들에게 자칫 급진적으로 비치지 않게 하려고 애썼고, “세 번의 국회의원선거와 한 번의 시장선거에서 아깝게 낙선했다. 이번만큼은 꼭 찍어달라”는 ‘호소’를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다섯 번째 되풀이된 송 후보의 이 ‘전략’은 52.3%의 낮은 투표율과 한나라당의 ‘조직력’에 밀려 결국 패배로 끝났다. 그리고 사회당 안승천 후보가 던진 “누가 진짜 노동자 후보냐?”는 ‘정체성’ 공격에 대해 분명하게 ‘방어’(?)하지 못한 점도 투표율을 떨어뜨리고 결국 낙선의 표 차를 커지게 한 원인이 되었다. 한나라당의 강력한 패키지 선거에 맞서 35개의 민주노총․민주노동당 선거 캠프들이 ‘따로국밥’이었던 것도 시장선거 패배의 또 다른 원인이었다.

사회당 안승천 후보는 ‘진짜노동자’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효성과 SK, 방어진 철공소 등

투쟁현장을 누비는 선거전술을 구사했고, TV 토론에서는 민주노동당 송 후보에 대한 공격과 차별성 부각에 주력했다. 그러나 안 후보와 사회당은 2~3%대의 득표에서 드러나듯 노동자들로부터 지역에 뿌리내린 노동운동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는 사회당이 여전히 ‘노동운동 없는 정치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지 못한 반증이다.

현대중공업이 있는 동구와 현대자동차가 있는 북구에서는 두 명의 구청장과 두 명의 시의원, 5명씩의 구의원을 당선시켜 ‘수성’에 성공했다. 반면 중구와 남구, 울주군에서는 단 한 명의 군수,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도 당선되지 못했다. 정당별 투표에서는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을 합쳐 32%의 득표율을 보임으로써 60.2%를 득표한 한나라당과 노동계의 양자 구도로 울산의 정치지형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민주당은 정당별 투표에서 8.6%의 득표에 머물렀고 시장후보는 아예 내지도 못했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울산 동구와 북구의 한나라당 후보들은 노동자후보들에게 “노동계가 집권해서 한 게 뭐냐?”는 비판을 서슴지 않았고, 노동계 구청장이나 시․구의원들이 노동귀족과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을 쏟아 부었다. 노동계의 재집권에 성공한 울산 동구와 북구는 의정과 행정 모두에서 모범적인 구정을 했다는 정도를 뛰어넘어 “노동자가 하면 이렇게 다르다.”는 ‘확실한’ 성과를 내는 것과 ‘노동자자치’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고 정착시켜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한편 폭증하는 울산지역의 크고 작은 투쟁에 공동대응하기 위해 2002년 2월 20일 결성된 ‘신자유주의 분쇄 울산공동투쟁 실천연대’(공투련)4)는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선거투쟁을 결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공투련에 참가하고 있던 현장조직들과 울산 평등연대, 사회당 울산시지부, 울산노동자운동연대의 활동가들이 각자의 선거 캠프로 빠져나가면서 지역 공동투쟁전선이 급격히 무너져 내렸고 결국 대중투쟁과 선거(투쟁)는 분리되었다. ‘대중투쟁의, 대중투쟁에 의한, 대중투쟁을 위한’ 선거투쟁이 아니라 거꾸로 현실의 대중투쟁이 선거에 ‘이용’될 뿐이었다.

 


4. 과제

 


72만 유권자 중 36만 명이 노동자이고, 36만 노동자 가운데 8만 명이 조직노동자인 울산에서 보수정당의 50년 조직력과 자금력을 뚫고 이른바 ‘선거승리’를 이루기 위해서는 8만 조직 노동자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또 다른 투쟁의 계기로 선거를 인식하고 자기 가족과 주변을 ‘미친 듯이’ 조직해 들어가야 하며 28만 미조직 노동자를 노동자계급 일반의 이해와 요구로 묶어 세워야만 한다. 이렇게 되려면 강력한 대중투쟁과 그 쟁점이 선거 판을 ‘압도’하거나 연계되어 있어야 하고, 선거투쟁의 중심 캠프가 이렇게 선거를 그 대중투쟁의 힘으로 ‘정면돌파’한다는 의지와 전략, 내용을 갖고 있어야 한다. 어떤 형태의 표 구걸도 결국은 패배로 귀결될 뿐임을 우리는 이번 울산 지방선거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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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게시판, 「4월 8일 태광 정투위 민주노총울산본부 항의방문기」, 2002. 4. 9.

 

2)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게시판, 「해고자를 두 번 짜르는 박준석 본부장 보시오」, 2002. 4. 8.

 

3) 현대자동차 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민투위) 신문 『노동자의 길』 107호, 2002. 4. 23.

 

4) 참가 조직은 현대자동차 민투위, 배내골동지회, 자주회, 동지회, 민노투, 실노회, 현노투, 노연투, 현대중공업 민주연대, 현대미포조선 민주노동자회, 울산 노동자의 힘, 울산해고자협의회, 사회당 울산시지부, 울산노동자운동연대, 울산 평등연대 등이다. 공투련은 발전노조 파업투쟁, 발전 가족대책위 투쟁, 태광 정리해고 복직투쟁, 효성 민주노조 사수투쟁, 발전 해고자 복직투쟁, SK 고 송은동 조합원 유가족 투쟁, 인사이트코리아 복직투쟁, 일신택시투쟁 등 2002년 상반기 울산지역 공동투쟁을 헌신적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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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10:57 2005/02/1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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