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기

[민투위통신10-6호] 02년 4월

 

활동가가 지녀야 할 관점

 

○ 입장(立場)과 관점(觀點)

-활동은 발로 하는가? 가슴으로 하는가? 머리로 하는가? 머리로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요, 가슴으로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로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할 것이다.

-생각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아야 하고, 그가 어디에 서 있는가에 따라 보는 점이 달라지므로 서 있는 자리, 즉 입장(立場)에 따라 보는 점, 즉 관점(觀點)이 달라지게 된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활동가가 발로 서 있는 자리이다. 활동가가 현장과 대중을 떠나 있어서는 느낌도 바뀌고 생각도 바뀌어 결국 노동자의 입장에서 멀어지게 된다.

-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 : 박준성

  예산 수덕사 대웅전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고려시대 목조건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절집으로 유명하다. 그 대웅전을 보려고 수덕사에 몇번 갔다. 성수대교가 주저앉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뒤에도 "700년이 넘는 고려시대 건물들이 아직까지 끄떡없는데 얼마 됐다고 이 모양이야…"하면서 간 적도 있다.
  한번은 그 뒷산 덕숭산에 올라갔다. 중턱 위쪽에 있는 만공탑을 보았다. 경허, 일엽 스님과 함께 수덕사 하면 떠오르는 만공스님의 사리무덤 부도였다. 만공탑 뒤쪽에 새겨진 글귀가 인상깊었다. '백사불여일행(百思不如一行)'이라고 머리에 남아 있었다. '백번생각하는 것이 한번 행함만 같지 못하다. 백번 생각하는 것보다 한 번 행동하는 것이 낫다'고 새겨본다.
  '백번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百聞而不如一見)'는 말은 많이 쓰고 듣는다. 만공탑의 글귀와 연결시키려고 사이에 '백번 보는 것보다 스스로 한번 생각하는 것이 낫다(百見而不如一思)'는 말을 만들어 넣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불교가 들어오면 조선의 불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조선이 되고, 유교가 들어오면 조선의 유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유교의 조선이 된다"고 말한 글귀를 떠올렸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남을 쫓아다니며 허덕거리는 꼴을 비판한 말이다. 전태일 평전에도 노동자들이 좀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스스로 구상하고 고민한 전태일 열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백견이불여일사'는 이런 내용이라고 혼자 뜻을 붙였다. 그런데 만공탑에는 백번 생각하는 것보다도 한 번 행동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 몸에서 듣고 보는 부분은 머리다. 누구도 "머리에 손을 얹고 깊이 생각해보자"고 하지 않는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고 반성해 보자"고 한다. 몸을 움직여 행동하려면 다리로 움직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혼자보다는 손을 맞잡고 어깨동무를 하면 힘이 더 난다.
  머리 좋은 사람보다는 가슴 뜨거운 사람이 낫고, 가슴 뜨거운 사람보다는 팔 다리로 잘 움직이는 사람이 낫다? 그렇다. 다리로 움직여야 일이 되고 함께 해야 더 힘이 세다. 그렇기 때문에 보고 듣고 말하는 머리 위에 '단결 투쟁'이라고 쓰여진 머리띠를 동여매고, 뜨거운 가슴 위에 '단결 투쟁'이라고 쓰여진 조끼를 걸치는 것 아닐까.
  하다못해 사무실의 쓰레기 먼저 치우는 사람도 팔로 쓸고 다리로 몸을 움직이는 사람이다. 듣고 보고도 생각만 하고 남보고 치우라고 시키기만 하는 사람은 몸이 안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렇게 해서야 쓰레기는 더욱 쌓여갈 뿐이다. 사무실의 쓰레기 뿐이랴! 노동조합 일도 노동운동도 마찬가지다. 물론 '백번 듣고, 백번 보고, 백 번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빨만 까고' '통밥만 굴려'서야 제대로 되는 일이 있을까?
  전태일 열사가 묻혀 있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는 노동열사들 말고도 많은 무덤과 묘비가 있다. 그 가운데 학생운동하다 죽은 이형관의 묘비에 이런 말이 적혀있다. "선배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머리나 입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선배' 대신 여러 이름을 바꾸어 넣어도 좋겠지. 노동자, 간부, 대의원, 활동가… 이 말에 이어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떠오르는 일출이 있기 때문입니다." 준비없이, 과정없이, 노력없이, 실천없이 좋은 결과를 바랄 수 없다는 뜻이겠지.
  이렇게 생각을 굴려보다가 말로 하는 것보다 슬라이드 사진으로라도 보는 것이 낫겠다 싶어 한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사진기를 메고 다시 만공탑을 찾았다. '百思'가 아니라 '千思'였다.
  '천 번 생각하는 것보다 한 번 행동하는 것이 낫다(千思不如一行).' 千思不如一行으로 노동자 해방의 역사와 미래를 만드는 시간과 공간은 지금까지의 끝이며 지금부터의 시작인 '지금 여기'이다.

 

○ 대중관=활동관

-활동가는 대중 바깥에서 대중을 계몽하고 이끌어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활동가는 대중 안에 있는 대중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대중의 중후진적 일부가 아니라 '선진적 일부'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한편 대중은 모든 점에서 옳고 모든 것은 대중의 정서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칫 대중의 꽁무니만 쫓아가는 대중추수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하청노동자를 고용의 방패막이로 생각하는 대중의 정서에 대해 활동가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활동가는 때로 대중의 현재의 정서를 거슬러 대중을 설득하고 대중과 싸워야 할 때도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대중의 중후진적 이익이 아니라 선진적 이익을, 현재의 이익이 아니라 미래의 이익을, 부분의 이익이 아니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세이다.

-활동가는 자판기도 아니고 해결사도 아니다. 활동가는 대중이 스스로 행동에 나서게끔 대중을 자극하고 촉진하는 조력자 역할을 할뿐이다.

-대중을 믿지 못하고 대중에 대해 마음 깊숙이 냉소적 태도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활동가는 결정적 순간에 언제나 '사고'를 친다. 그는 그 순간 자신이 의거해야 할 힘의 원천으로부터 애써 도망치며 철저히 혼자가 된다. 스스로 외로움에 빠져버린 이 활동가는 마지막 순간, 대중을 핑계로 무기력하게 투항한다. 대중을 위해서라고 그는 부르짖지만, 마지막 순간 대중들이 심장을 쥐어뜯으며 외치는 절박한 소리를 그는 듣지 않는다.

-언제나 이중적일 수밖에 없는 대중을 믿는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활동가는 대중에 대한 무조건의 믿음을 가져야 한다. 대중과 더불어, 대중의 꽁무니에서가 아니라 대중의 맨 앞줄에 서서.

-영화 [얼라이브]

남미의 어느 축구팀이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눈보라를 만나면서 안데스산맥 고지대에 불시착한다. 날씨는 최악인데다 추락하면서 사람들도 많이 죽었다. 책임감이 강했던 축구팀 주장이 살아남은 사람들을 추스린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남은 식량을 파악하고 배급 계획과 엄한 규율을 세운다. 그리고 절망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희망을 제시한다. 두 동강난 나머지 비행기 동체에서 무전시설을 찾아 구조 신호를 보내기만 하면 살아날 수 있다는 게 그가 약속한 희망이었다. 사람들은 주장에게서 희망을 발견하고 그를 따른다. 주장은 무전시설이 있는 나머지 비행기 동체를 찾아 몇 사람을 보낸다. 천신만고 끝에 비행기 동체를 찾아내지만 무전시설은 이미 망가진 상태였다. 희망은 사라졌고 지금껏 사람들을 이끌어왔던 축구팀 주장 또한 자포자기한다. 식량은 떨어졌고 추위와 굶주림으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하나 둘 죽어간다. 이때 추락할 때부터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한 친구가 깨어난다. 이제 그가 사람들을 추스르기 시작한다. 먼저 식량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는 사람들과 더불어 토론을 조직한다. 모두가 참여하여 충분히 토론한 끝에 사람들은 결론을 내린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믿느냐? 그렇다면 시신은 그냥 고기 덩어리와 같지 않느냐?" 카톨릭 문화권인 다수의 사람들은 이 결론에 동의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이 결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소수의 이 사람들은 스스로 굶어 죽는 길을 선택한다. 다수의 다른 사람들은 소수 이 사람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이제 남은 문제는 산 밑으로 내려가 구조대를 끌고 오는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 이 임무를 자임하고 자원자를 받는다. 자원자들이 산 밑으로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희망을 안고 기다린다. 마침내 그들은 구조된다. 위기의 순간에는 아주 강하고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이 필요한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이 영화를 통해 본다면 그렇지 않다. 정작 필요한 지도력은 대중 스스로 중요한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결정을 내리게끔 조직하는 것이고 대중 위에서 대중을 가르치려들고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임무를 자신이 솔선하여 떠안는 민주적 지도력이다.

-역사를 발전시키는 힘은 무엇인가? 대중의 행동이다. 대중을 행동으로 나서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상이다. 이때 사상은 책 속에 있거나 어떤 천재의 관념 속에 있는 게 아니라 대중의 심장 속에 희망으로 살아 숨쉬는 것이어야 한다. 대중의 고통과 희망을 집약하고 정식화할 때 사상은 역사를 이끄는 힘이 된다. 역사는 대중의 창조물이지 활동가들이 고안하여 만들어내는 어떤 것이 아니다. 활동가란 이런 점에서 대중의 창조력을 신뢰하고 그 힘을 북돋우는 사람들이다.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

 

○ 조직관

-자본의 조직원리는 분열과 경쟁이요, 노동의 조직원리는 단결과 투쟁이다.

-노동자 시인 안윤길 시

자본주의
산에 오를 땐
체력이 가장 약한 사람을
기준으로 잡지요
가장 약한 사람을 중간에 세우고
앞에서 뒤에서 밀고 끌어주며
한 명도 낙오자 없이
무사히 산행을 하지요
공장에서는
사람을 A,B,C급으로 나누어
A급을 기준으로 잡지요
그리곤 B급 C급이 A급이 되도록
마구닦달하지요
거기서 처지는 사람은
폐기처분 당하지요

-짜장면을 시켜보면… : 한혁 (참세상 꼬마게시판-잡사만사)

여럿이서 짜장면을 시켜 먹어보면 알게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제가 먹을 짜장면 그릇의 랩을 먼저 벗기는 사람과
함께 먹을 단무지 그릇의 랩을 먼저 벗기는 사람.
그래서 누군가 다른 사람과 함께 짜장면을 시켜먹게 되면 한번 확인해 보자.
자기 손이 짜장면 그릇으로 먼저 가는지 단무지 그릇으로 먼저 가는지…

-가장 조직적일 때 가장 대중적이다. 가장 원칙적일 때 가장 현실적이다.

-어느 독립군 아줌마 : 한혁 (참세상 꼬마게시판-잡사만사)

백기완 선생님께서도 옛날에 할머님께 들으셨다는 어느 독립군 아줌마(?)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녀는 백두산과 만주벌판을 오가는 연락병이었다고 한다. 애 둘이 딸려 있어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한 녀석은 앞에 매달고, 또 다른 녀석은 등에 업고 종횡무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뛰어다니셨단다. 이 분이 역사에 길이 남게 된(?) 이유는 그녀만의 독특한 장비 때문이었는데, 이 양반이 길을 나설 때면 허리에 커다란 빗자루를 꽁꽁 동여매셨다고 한다. 누가 "애 둘을 데리고 뛰어다니기도 불편할텐데 웬 빗자루까지 매고 나서냐"고 물으면 이 분은 "혹시라도 눈길 위에 내 발자국이 남을까봐 빗자루를 매달았소. 등에 매달고 뛰면 자연스레 발자국이 지워지지 않겠소"하며 호탕하게 웃으셨다는데… 백 선생님은 그 이야기 말미에 역사를 움직여 온 것은 이렇게 제 발자국을 지우며 묵묵히 살아온 민중들이 아니겠느냐고, 운동이란 걸 할라치면 제 이름자 남기는 일 따윈 관심 갖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은하의 장강을 도도히 흐르게 하는 건, 역시 수억년동안을 이름도 없이 제 자리를 지켜온 뭇 별들이었다. 나는 너무도 자주 이 위대한 진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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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10:53 2005/02/1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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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 2005/08/12 20:48 | DEL
突破, 늘 그랬듯이님의 [활동가가 지녀야 할 관점] 에 관련된 글. 이런 글들을 왜 예전엔 못 보았을까 이제라도 보게되니 다행이야. -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 : 박준성 예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