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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년 10월

 

현장활동가 학습 소모임 조직과 운영

 

1. 구성

현장활동가 학습 소모임(이하 소모임)은 5∼7명으로 구성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반드시 소모임 구성원 중에서 팀장을 둔다. 학습 조언자는 소모임 구성과 운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과거 소모임은 보통 학출 활동가(바깥 '사부')와 현장활동가 사이의 교육-피교육, 지도-피지도라는 일방적 관계로 운영되면서 현장운동 전반에 적지 않은 문제점과 폐단을 낳기도 했다. '현장을 분열시키는 바깥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은 지금도 여전히 현장 정서 밑바닥에 잠복해 있다. 소모임은 철저히 함께 '공부'하는 모임이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데가 아니라는 점을 구성 과정에서부터 철저하게 인식해야 한다. 소모임의 모든 것을 소모임을 구성하는 현장활동가들 스스로 꾸려나가야 한다. 팀장은 소집과 연락 책임을 맡고 다른 소모임 팀장들과의 회의체계가 있다면 그 회의에 참석한다. 총무는 회비를 관리한다. 회비는 소액이라도 반드시 정기적(보통 한달에 한번)으로 모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 밖의 체계는 소모임에서 거의 불필요하다.

 

2. 운영

소모임은 될 수 있으면 주1회 모이는 것이 가장 좋다. 사정상 주1회 모이기가 힘들 경우에는 격주 1회를 넘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현장 조건이 주야간인 경우라도 주1회 모이는 것이 좋은데 야간 마치고 아침에 모이는 것은 모임이 '빵구' 날 염려도 그만큼 적고 피곤은 하지만 긴장감이 매우 높아서 소모임의 결속력을 높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구성원들은 1주일 동안 교재를 읽고 질문거리와 토론거리를 준비한다. 1주일 치 교재의 분량은 제조업 현장활동가를 기준으로 했을 때 '경험상' A4 3∼5장 정도가 적당하며 이 분량의 교재들이 연속적으로 생산되어 적어도 1년 치 이상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발제자는 교재를 요약하고 예상되는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준비한다. 발제문은 발제자가 워드로 정리하여 공부하는 날 복사해서 나눠준다. 사회자는 발제-질문-답변-토론-마무리 과정을 예상 하고 진행을 준비한다.

사회자와 발제자는 구성원 전체가 순서를 정해 예외 없이 돌아가면서 담당한다. 사회를 한번 보고 발제를 한번 해내는 것 그 자체가 가장 큰 '훈련'이다. 학습 조언자는 사회를 어떻게 보고 발제는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방법'에 대해서만 조언한다.

소모임은 무엇보다 '학습' 소모임이다. 과거처럼 소모임 안에서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현장활동과 직접 관련되는 회의나 결정은 현장조직이나 노동조합 체계에서 하고 소모임은 원칙적으로 학습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구성원들이 모이면 사회자가 모임의 시작을 알린다. 이 과정에서 선배 열사에 대한 간단한 묵념을 하면서 모임 자체의 긴장감을 다잡고 공부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발제자가 발제문을 나눠주고 발제문을 보면서 발표를 한다. 발제가 끝나면 구성원들이 발제자에게 질문을 한다. 질문에 대한 발제자의 답변이 충분치 않거나 다른 견해가 있으면 사회자나 다른 구성원이 발언을 할 수도 있다. 학습 조언자는 이 과정에서 '토론이 완전히 막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되도록 개입하지 않는다. 질문과 답변이 끝나면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토론거리를 제기하고 사회자가 토론거리들을 묶거나 정리하여 순서대로 토론에 들어간다. 이 토론에서도 학습 조언자는 '토론이 완전히 막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되도록 발언하지 않는다. 토론이 끝나갈 즈음에 사회자가 학습 조언자에게 발언할 기회를 준다. 학습 조언자는 이 시간을 빌어 토론 과정에서 잘못 이해되었거나 논의됐던 내용들이 있으면 이를 바로잡고 교재에서 다뤄야 할 핵심적인 사항들에서 토론되지 않은 내용이 있다면 그 내용을 얘기한다. 이 때 학습 조언자는 발언을 되도록 짧게 한다. 학습 조언자의 '조언'이 끝나면 사회자는 지금까지 토론된 내용들을 요약하고 정리한 다음, 다음번 사회자와 발제자를 확인시킨 후 마무리한다. 뒷풀이는 보통 매주 하기가 어렵다. 구성원들이 보통 현장에서 거의 매일 얼굴을 마주치고 현장조직이나 노동조합 체계에서 함께 활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따로 뒷풀이까지 할 필요성이 그만큼 적을 수 있다. 그러나 한달에 한번 이상은 소모임 후 뒷풀이를 하는 것이 구성원 사이의 결속력을 높이고 토론 때 미처 하지 못한 얘기들을 보충할 수 있어서 좋다.

소모임이 궤도에 올라 시간이 좀 지나면 소모임에 대한 구성원들의 자부심이 높아지면서 자칫 소모임이 폐쇄적으로 운영될 염려가 있다. 이때 소모임과 비소모임의 현장 내 갈등이 생길 수가 있으므로 학습 조언자는 이 점에 대해 적절한 때에 환기시키고 현장활동의 중심성을 다시금 강조할 필요가 있다.

 

3. 교재

교재는 철학, 정치경제학, 노동운동사 등 큰 학습 주제들을 정하고 주제별로 교재 생산에 들어가는데 교재는 한회분을 A4 3∼5장으로 잡고 정리한다. 그러면 철학은 10회분, 정치경제학은 20회분 이런 식으로 계획이 잡힐 것이고 교재 생산팀은 계획대로 하나씩 역할을 나누어 정리해나가면 될 것이다.

교재 내용은 무조건 '쉬워야' 한다! 그리고 현장의 예들이 많이 들어가야 한다. 현장활동가들이 학습을 하면서 처음 부딪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다름 아닌 '개념어'들이다. 학습이란 일종의 '개념들을 가지고 현상을 분석하는 훈련'인데 이것은 현장활동가들에게 대부분 지금까지와는 생각의 순서를 완전히 '거꾸로'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장의 이러저러한 문제들의 구체성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대응을 찾아가는 생각의 경로가 개념의 추상성으로부터 사물의 구체성으로 나아가는 인식의 경로와 충돌하는 것이다. 특히 철학이나 정치경제학이 다 그렇기 때문에 주요 개념들을 설명할 때 풍부한 사례들을 드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교재는 따로 토론 주제를 담지 않는 것이 좋다. 그 자체가 일방적일 뿐만 아니라 토론을 제약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토론 주제나 교재 내용에 대한 보충과 맥락 등은 학습 조언자용 교재를 따로 생산하여 활용할 수 있게끔 한다.

 

4. 정치조직-현장소모임-현장조직-노동조합

현장조직(현장조직이 없는 중소사업장인 경우는 노동조합 간부들을 중심으로 하는 활동가들)에서 소모임 조직화를 공식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가장 좋다. 현장조직의 정치적 분화가 덜 되어 있는 경우라면 정치조직마다 따로 개입하여 소모임을 꾸릴 것이다. 소모임이 조직되면 조직된 소모임들 사이의 체계가 따로 형성되면서 현장조직의 공식체계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그와는 독립적인 또 다른 현장 조직체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두 체계 사이에는 긴밀한 통일과 긴장 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현장조직의 정치적 강화와 이를 통한 현장조직의 정치조직으로의 전화·발전'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현장조직 내 소모임은 현장조직을 정치적으로 강화하면서 정치조직의 구성원을 현장에서 재생산해내는 기초 단위가 될 것이다. 노동자 정치조직은 조직 구성원의 대부분을 현장활동가층에서 충원해야 한다. 이 점에서 소모임은 정치조직과 매우 '가깝게' 있다. 그러나 소모임은 여전히 현장조직과 '가장' 가깝다. 이 긴장을 정치적으로 재조직화하는 것이 우리의 새로운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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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10:50 2005/02/1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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