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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힘 준비22호] 01년 7월

 

6월 투쟁에서 7월 투쟁으로 ―울산지역 투쟁 상황

  5월 25일 울산 효성노조는 13년 무쟁의를 깨뜨리고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자본과 정권은 이 파업을 파괴하기 위해 용역깡패와 구사대를 동원하고 구속과 징계·해고를 남발하더니 급기야 6월 5일 새벽, 폭력경찰을 공장에 투입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효성공장에 폭력경찰이 투입되자 이에 항의하는 울산지역 연대투쟁이 들불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 노조와 고합 노조는 바로 간부파업을 결의했고 2,000여명의 효성 조합원과 울산지역 노동자들이 시청 앞에서 격렬한 투석전을 벌였다. 투석전은 이날 밤 현대백화점 삼산점 앞에서도 벌어졌다. 효성 조합원들은 울산성당에 장외거점을 마련했고 효성공장 옥탑의 지도부는 살아남았다.

  이후 거리투쟁은 하루도 빠짐없이 전개되었다. 6월 8일 현대자동차노조가 잔업을 거부하고 오토바이 3,000대를 앞세워 6,000여명의 조합원이 연대투쟁에 동참했다. 6월 9일 효성공장 앞 사거리에서 폭력경찰에 빼앗긴 효성공장을 되찾기 위한 격렬한 거리투쟁이 벌어졌다. 이날 투쟁은 화염병 수백개가 날아다닐 정도로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6월 12일 효문의 금속노조 울산지부 사업장들과 경기화학, 고합, 태광 등이 파업에 들어갔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잔업을 거부하고 오토바이 1,000여대를 앞세워 거리로 나섰다. 이날 전국에서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조종사 노조를 비롯해 5만여명의 노동자가 시기집중 연대파업에 들어갔다.

  김대중정권은 투쟁의 확산을 막기 위해 효성 옥탑 위에 있던 지도부 검거에 나서 지도부 전원을 폭력 연행하고 민주노총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했다. 6월 13일 민주노총은 비상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김대중정권이 총연맹과 주요 투쟁조직의 지도부에 대한 침탈 등 전면적 탄압을 자행할 경우 민주노총 산하 모든 조직은 전면적 파업에 돌입한다”고 결정했다. 김대중정권은 6월 14일 새벽 대한항공 파업이 마무리되자 기다렸다는듯이 바로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에 대한 형집행정지를 취소하고 이홍우 사무총장을 비롯한 핵심간부들에 대한 체포영장과 소환장 발부, 양경규 공공연맹 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등 전면탄압에 들어갔다. 이제 울산 총력투쟁은 전국적인 6월 총력투쟁으로 발전되었다.

  6월 16일 전국동시다발 민중대회가 열렸다. 울산에서는 이날 3,000여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울산역에서 대회를 마치고 효성공장 앞으로 몰려가 공장 되찾기투쟁을 벌였다. 6월 19일 김대중정권은 여의도에서 농성 중이던 건설운송노조 레미콘 노동자들을 폭력연행했다. 6월 20일 전국동시다발집회가 열렸다. 울산에서는 ‘민주노총 탄압분쇄 김대중정권 퇴진 영남노동자대회’가 열렸는데 태화강 둔치에서 집회를 마친 8,000여명의 노동자들은 김대중 영정을 들고 시청으로 행진했고 이를 막아선 폭력경찰과 화염병을 날리는 격렬한 거리투쟁을 벌였다. 6월 21일 현대자동차노조는 ‘구조조정 분쇄 김대중정권 퇴진 민주노조 공안탄압 분쇄를 위한 쟁의행위 결의’를 대의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현대자동차노조의 쟁의행위 결의는 김대중정권의 이성을 잃은 노동운동 탄압에 제동을 걸었고 민주노총의 전체 투쟁전선에 자신감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6월 22일 민주노총은 비상중앙위원회를 소집하여 만장일치로 7월 5일 하루 김대중정권 퇴진 전면총파업을 결정했다. 6월 26일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는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7월 5일 총파업을 결의했다.

  이제 울산 효성으로부터 촉발된 6월 투쟁은 ‘노동운동탄압·구조조정분쇄, 김대중정권 퇴진’을 내건 전국 노동자들의 7월 총력투쟁으로 힘있게 발전하고 있다. 역사상 최초로 ‘정권퇴진’을 전면에 내걸고 이루어지는 7월 정치총파업이 8월 ‘하투’와 하반기 투쟁과 어떻게 연결되고 강화될 것인지는 오로지 7월 투쟁의 폭과 강도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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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10:47 2005/02/1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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