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기

[주간 노동자의 힘 15호] 01년 2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9대 임원선거 약평

1. 표결 분석

  2월 13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9대 임원선거가 끝났다. 판매와 정비본부의 투표함 개봉 문제로 다음날까지 진행된 개표 결과 총원 37,828명 중 35,535명(93.94%)이 투표하여 민투위 이상욱 후보가 19,234표(54.1%)를 득표함으로써 16,065표(45.2%)를 득표한 노연투 이경훈 후보에 3,169표 차로 승리하였다.

  본조만 놓고 보면 이경훈 후보가 11,091표(54.4%), 이상욱 후보가 9,156표(44.9%)를 얻어 이경훈 후보가 1,935표 차로 승리하였다. 이는 8대 정갑득 집행부의 한겨레신문 광고비 의혹사건에 따른 민주세력 전체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신감이 표로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6개월 임기에 실리주의 집행부가 들어서면 차기를 봐서라도 사측이 실리는 보장해주지 않겠느냐는 조합원들의 기대감이 유인물과 정책기획, 조직력에서 민투위가 앞섰고 선거 막바지에 현장에서 바람이 거세게 불었음에도 이경훈 후보가 앞선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판단된다. 또 한 가지는 구 현노신, 현지사, 미래회 등 이른바 통합파 쪽 활동가들이 객관적으로 민주 대 반민주 구도 하에 치러진 이번 선거에 적극적으로 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본조에서의 이 결과가 본조 조합원들이 전반적으로 심각하게 보수화되었다는 증거로 거론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 이번 선거가 3파전으로 진행되고 결선에서 두 후보가 맞붙었다면 결과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아산지부와 전주지부에서는 박빙으로 이상욱 후보가 우세를 점했다. 남양지부와 마북지부에서는 이경훈 후보가 승리했으나 이전 표결과 비교했을 때 민주세력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판매본부와 정비본부에서는 이상욱 후보가 압승을 거뒀다. 지부·본부를 통틀어 이상욱 후보가 9,841표(67.1%)를 얻어 4,710표(32.1%)를 얻은 이경훈 후보에 5,131표를 앞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광역딜러망 등 본부 조합원들이 느끼는 고용위기와 투쟁하는 집행부에 대한 기대감, 문자 메시지, 유인물 팩스 발송 등에서 앞섰고 분회 방문까지 조직적으로 전개한 점 등이 이상욱 후보가 압승한 요인이었다.

2. 현자 9대 임원선거의 의의와 특징

  이번 선거는 3개월 넘게 혼란을 거듭하던 노동조합을 조기에 정상화하여 당면한 통합 임단투와 통합노조를 완성할 보궐 지도부를 구성하는 선거였다. 또한 판매, 정비, 정공본부와 모비스 지부에 투표권이 주어짐으로써 직할 지부와 본조만의 선거가 아니라 사실상 통합노조 선거로 치러졌다.

  500 군데가 넘게 전국에 산재해 있는 영업소와 정비공장에 흩어져 있는 본부 조합원들이 선거에 참여하면서 선거 방식 또한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전개되었다. 회사가 사내 우편을 통한 유인물 탁송을 거부하면서 두 후보 진영에서는 유인물과 대자보를 직접 실어 나르든가 택배나 팩스로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500 군데가 넘는 영업소를 후보들이 일일이 방문할 수 없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날리는 방법이 동원되었다. 선거운동원들이 일선 분회까지 순회 방문하기도 했는데 이 점에서는 이상욱 후보 진영이 이경훈 후보에 비해 조직력과 기동력에서 앞섰다고 평가된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쟁점은 무엇보다 '실리냐 투쟁이냐' 하는 것이었다. 선거 초기에 이경훈 후보는 예상 밖으로 '빨간 조끼(대의원 조끼)와 투쟁'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 전통적으로 자신의 고정표를 다지면서 확대해나가는 전략 대신 상대방의 전통적 지지 기반을 잠식하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 이상욱 후보에 대해 '선명성 주장', '무조건적인 정치성 선전선동', '처박기식 투쟁' 등으로 비난하면서 '준비된 정책대안'과 '내실있는 집행'을 대비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러나 이상욱 후보 진영에서 "투쟁없는 실리는 정리해고로 이어진다", "노조 위원장을 선택할 것인가? 노사협의회 위원을 뽑을 것인가?", "누가 양봉수 열사를 죽였는가?" 등 실리주의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여나가자 본연의 실리에 대한 강조로 되돌아 갔다가 다시 "정리해고를 동의해준 집행부는 누구입니까?", "정리해고도 투쟁의 성과인가?"라며 7대 김광식 집행부의 정리해고 수용 문제를 민투위와 연계시켜 집중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상욱 후보는 '민투위는 정리해고 수용을 끝까지 반대한 유일한 조직이다', '98년 노연투는 과연 어디에 있었는가?'라고 제기하면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맞받아 쳤다. 정리해고 문제를 이경훈 후보가 들고 나오자 무급휴직을 당했다가 복직한 활동가들과 조합원들이 격분하면서 본조 현장 분위기가 오히려 이경훈 후보에게 불리하게 역전되는 양상이 벌어졌다. 정리해고·무급휴직 원상회복 투쟁위원회(정투위)가 이상욱 후보 지지 성명을 발표하고 인터넷에 노연투를 비판하는 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 문제는 정리해고라는 쟁점에 가장 예민해 있던 구 미래회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어떤 식으로든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계기로 작용했다. 결국 이경훈 후보는 막바지에 자신의 전통적인 이미지로 되돌아가 실리를 강조하는 전략을 구사했지만 뒤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3. 선거 이후 현장조직 재편 흐름과 과제

  노연투는 선거 이후에 유인물을 내고 선거 과정에서 두고두고 자신을 괴롭혔던 두 가지 '업보'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 하나는 5대 이영복 전위원장(현 아산공장 정원기업 사장)의 사업장 계약 중단을 요구하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 양봉수 열사에게 속죄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노연투가 이후에 이 업보를 털어낼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광고비 사태 이후 실노회 내부에서 진상 조사와 혁신을 요구하던 70명의 활동가들이 조직을 탈퇴하였다. 기존 실노회는 정공 전노회 등과 조직을 통합하는 등 활로를 모색할 것으로 보이고, 탈퇴파들은 현장에서 새롭게 출발하면서 이후 진로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합파는 현노신, 현지사, 미래회 등이 각각의 조직을 해산하고 2월 28일 창립총회를 갖는다고 발표했다. 정공 동지회는 3월 총회를 통해 통합조직 결합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정공 동지회의 경우 김호규 의장 등 현 지도부가 통합조직 결합을 무리하게 강행하게 되면 조직의 분열도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3월 안에 치러질 대의원선거는 재편된 현장조직들 간의 각축전이 될 것이다. 확대된 민투위, 실노회 탈퇴파, 형제회 등의 한 흐름과 통합파, 기존 실노회, 노연투 등 각각의 흐름이 대의원에 얼마만큼 진출하느냐에 따라 통합노조 전체를 포괄하는 현장조직 재편의 폭과 속도가 결정될 것이고 이후 통합선거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9대 신임 집행부는 8대 정갑득 집행부의 한겨레신문 광고비 의혹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을 통해 노동조합에 대한 조합원들의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민주노조운동의 기풍을 바로 세워내는 것과 3사 단협의 상향평준화를 통한 통합 임단투 완전 쟁취, 강력한 통합노조 완성 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분할매각, 외주화, 하청비율 급증, 빈번한 전환배치, 현장통제, 모듈화, 플랫폼 통합, 광역딜러망 도입 등 산적한 현안들을 헤쳐나가야 한다. "구속, 수배, 해고, 무급휴직의 가혹한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조합원에 대한 사랑과 믿음 하나로 쉼없이 학습하고 조직하고 투쟁해온"(선거유인물 10호) 민투위 이상욱 집행부가 선거 시기의 슬로건 대로 짧은 임기동안 이 과제들을 얼마만큼 '정면돌파'해나갈 지 귀추가 주목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2/14 10:46 2005/02/14 10:46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plus/trackback/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