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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힘] 00.12.16

 

투명하고 책임있는 노선투쟁이 필요하다

-민주노총 '노동운동발전전략(안)'을 보며


  1999년 9월에 출범한 단병호 민주노총 2기 보궐 집행부는 자신의 선거 공약대로 2000년 1월 민주노총 산하에 21명의 위원으로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는 11월 6일 전체 5개 장에 127쪽에 이르는 [노동운동발전전략](초안)을 제출하고, 11월 중순부터 12월 8일까지 총 13개 지역에서 순회토론회를 가졌다.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는 지역 순회토론회를 거쳐 수정·보완된 내용을 민주노총 중앙위원회나 대의원대회 등 공식 의결기구에 상정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민주노총 [노동운동발전전략](초안)은 최소 향후 5∼6년간 민주노조운동이 나아가야 할 이념적 지향과 조직전략, 정책기조 등을 다루고 있다. 그 안에는 지난 순회토론회 과정에서도 격렬하게 드러났듯이 매우 중요한 쟁점들이 숨겨져 있다. [노동운동발전전략]이 이러한 쟁점들을 봉합하거나 현실 노선의 차이들을 절충하는 방식으로 민주노총 공식 의결기구에 의해 '채택'된다면 이는 민주노총 내부에서 매우 심각한 또 다른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다. 쟁점들을 최대한 예각화하여 분명히 드러내고 한국 노동운동의 발전을 둘러싼 '사회변혁적' 길과 '사회개량적' 길, '민족(해방)주의적' 길 사이의 차이들을 보다 선명히 하여 기존의 파편적 논쟁들을 전면화하고 체계화하는 것만이 [노동운동발전전략(안)]을 민주노총과 한국 노동운동의 발전 전망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노동운동발전전략](초안)은 1장 민주노총의 현재와 과거에서 민주노조운동의 주체적 역량의 한계를 진단하면서 '기업별 노조하에 경제투쟁에 집중된 한계'와 '이념적 목표와 장기적 전략의 결여'를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성과 정치성을 애써 외면하고 전투성을 폄하하려는 시도이며 지도부의 책임을 장기적 전망과 전략의 부재로 은근슬쩍 뒤바꾸어 대중에게로 떠넘기는 것이다. 1장에서는 또한 민주노총의 운동기조와 과제를 '사회변혁적 노동조합운동'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3,4,5장의 정책과 전략들로 비추어 볼 때 사회변혁적 내용이라고 할만 한 것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차라리 '사회개량(혁)적 노동조합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솔직하다.

  2장 민주노총의 이념적 지향과 전략에서는 민주노총이 지향하는 사회로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되어 노동하는 인간이 주인되는, 평등과 효율성이 조화를 이룬 평등사회'를 제시하고 평등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정책으로 '사회화 정책'을 얘기하고 있다. '경제적 효율성'을 '자본주의적 효율성'과 아무리 구분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시장질서를 용인한 위에서 추구될 때 '평등과 효율성의 조화'란 사회민주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이른바 '시장사회주의'를 강변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또한 초안은 이행기 전략의 문제를 국가권력의 성격, 국가권력의 장악 경로와 수단 등에 대한 언급 없이 사회화 정책의 문제로 대체함으로써 사회변혁의 문제를 정책대안의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3장 정책 및 제도개선 방향에서는 임금정책과 고용정책을 다루고 있다. 임금정책에서 초안은 '사회적 임금' 확보와 직접 임금인상을 대립시킴으로써 직접 임금인상투쟁의 중요성을 경시하고 있다. 그리고 '숙련지향형 임금체계'를 얘기하면서 스스로 '직무직능급 임금체계'를 인정하는 꼴이 되고 있다. 고용정책에서 초안은 '사회통합적 구조개혁'을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구조개혁의 진정한 의의는 경영합리화, 기술개발, 생산성 향상, 서비스 질 향상 등'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자본측의 구조조정 주장과 전혀 아무런 차이가 없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 또한 '년단위 단축'을 목표로 설정함으로써 자본의 '노동시간 유연화'를 승인하고 자본의 재량권을 확대시키는 성격을 갖는다.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실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경기회복과 산업, 기업의 건전화'라는 주장에 이르면 이 초안이 과연 민주노총의 전략(안)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 된다.

  4장 조직발전전략과 5장 민주노총의 정치·연대·통일전략에서는 산별노조 건설 문제와 노동자 정치세력화 문제를 정리하고 있다. 산별노조 건설에 있어서 초안은 민주노총의 위상과 역할을 산별연맹에 견주어 상당히 제한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정책생산이나 정부를 상대로 한 교섭에 주력하면서 산별연맹의 뒤치닥거리나 하는 식의 왜곡된 기조가 산별노조 건설 문제에 있어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다루면서 초안은 여전히 민주노총의 잘못된 정치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과 정치전략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만의 관계'가 아니라 '민주노총과 노동자정치세력 일반의 관계'에 기초해서 바로잡혀야 한다.

  [노동운동발전전략](초안)은 토론을 통해 수정·보완해서 민주노총의 공식 입장으로 채택되고 완성시킬 안이 아니라 특정 경향과 특정 노선의 입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 초안이 갖는 유일한 의의는 한국 노동운동의 발전전략을 둘러싼 사회변혁적 노선과 사회개량적 노선, 민족(해방)주의적 노선의 전면화되고 체계화된 논쟁의 촉발에 있다. 우리는 이 논쟁으로부터 어쩌면 80년대의 저 사상적 동력과 활력을 회복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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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10:43 2005/02/1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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