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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전선] 00년 11월

 

오늘, 우리, 전태일


  예수의 주검을 안고 슬픔에 잠겨 있는 마리아를 조각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나 자식의 주검을 부등켜 안고 절망하고 있는 어머니를 그린 케테 콜비츠의 그림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거꾸로 깊은 위로를 느끼고 자신들의 이런저런 슬픔과 고통을 이겨낼 힘을 얻는다. 세상에 자식 잃은 슬픔보다 더 한 고통이 어디 있으랴.

  전태일의 영정을 가슴에 부등켜 안고 통곡하는 이소선 어머니의 사진 한 장.

  지난 30년, 이 사진만큼 우리의 나약함과 비겁을 채찍질하고 시련을 이겨낼 힘을 북돋아왔던 것이 또 어디 있었을까?

  전태일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인가?

  70년대와 80년대, 90년대의 그 가파른 고비들마다 우리는 전태일에 기대 우리 안을 되돌아보고 스스로를 추스려 그 고비들을 돌파할 힘을 얻어왔다. 전태일은 지난 30년 줄기차게 달려온 한국 노동운동의 원점이자 한국 노동운동이 일궈온 이념과 투쟁과 조직적 발전의 원천이었다. 청계피복, 동일방직, 원풍모방, YH무역 등에서 뿌려진 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씨앗은 전태일의 죽음을 직접 자양분으로 하여 싹을 틔웠다. 80년 광주 항쟁 이후 전태일이 그토록 필요로 했던 '대학생 친구'들은 한국판 나로드니끼운동에 버금갈 대대적인 현장 이전을 감행했고 구속, 해고, 수배, 고문을 마다않는 헌신적인 투쟁으로 87년 이후 활발하게 전개된 한국 노동운동의 전사(前史)를 개척했다. 87년 7∼8월 노동자 대투쟁!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87년 여름의 저 위대한 '인간선언'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외치며 산화했던 전태일의 가슴 벅찬 '부활'이었다. 이 '부활' 이후 한국 노동운동은 88년 11월 노동법개정투쟁, 88∼89년 현대중공업 128일 파업투쟁, 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투쟁과 전노협 5월 총파업투쟁, 91년 5월 투쟁, 93년 현총련 공동임투, 96∼97년 노동법개정 총파업투쟁, 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36일 파업투쟁, 99년 서울지하철 8일 파업투쟁, 한라중공업 52일 파업투쟁, 2000년 대우자동차 매각반대 투쟁 등을 거치며 해마다 투쟁의 외연을 넓혀나갔고 요구와 내용을 심화시켜나갔다. 또한 88년 전국노동법개정투쟁본부와 지역·업종별 노동조합 전국회의, 90년 전노협, 91년 박창수 노대위와 ILO 공대위, 93년 전노대, 95년 민주노총을 거쳐 산별 시대로 진입하면서 조직의 양과 질을 발전시켜왔다. 뿐만 아니라 선진노동자들의 현장조직운동과 정치적 노동운동이 노선적 갈래를 뚜렷이 하여 발전해 오면서 본격적인 노동자 정치운동으로 전화해왔다.

  고 조영래 변호사는 『전태일 평전』에서 전태일 사상을 이렇게 요약했다.

  전태일 사상은 밑바닥 인간의 사상이다.…전태일 사상은 각성된 밑바닥 인간의 사상이다.…그것은 자기비하에서부터 자존으로, 비굴에서 긍지로, 공포와 위축에서부터 분노와 용기로, 의존과 자학으로부터 자주와 해방으로, 체념과 침묵으로부터 비판과 투쟁으로 전환하여가는 사상, 노예에서부터 인간으로 거듭나는 민중의 사상이다.…평화시장의 고통,…써먹을 때까지 써먹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아주 간단하게, '그저 무자비하게' 한 인간을 "메마른 길바닥 위에다 아무렇게나 내던져버리는" 현실의 잔인한 얼굴을 눈 앞에 대할 때 그의 비판은 절정에 달하고, 그것은 곧 "가시투성이이고, 얼음처럼 찬, 바위처럼 무거운, 냉혈(冷血)한" 현실에 대한 새파란 증오로 변하여 불타오른다. 기존 현실에 대한 이러한 철저한 비판으로 인하여 전태일 사상은 기존 현실에 대한 완전한 거부-완전한 부정의 사상으로 된다.…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참된 희망과 관심과 가치를 존중하지 아니하고, 그를 단순히 자기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서 이용하기 위하여 야합하고 있는 기존 사회의 덩어리, 그것은 완전히 무가치한, 완전히 부정되어야 할, 완전히 추악한 덩어리였다. 지금 그에게 있어서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은 그 "덩어리를 전부 분해"해 버리는 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사상은 근본적인 개혁의 사상, 행동의 사상으로 된다.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눈 앞에 둔 예수가 "목이 마르다"고 했듯이 전태일은 죽음 앞의 마지막 순간에 "배가 고프다"는 말을 남겼다. 전태일은 죽는 날까지 배가 고팠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았다. 신자유주의다 구조조정이다 해서 또 다시 98년 겨울과 같은 상황을 견뎌야 하는 오늘 우리도 여전히 배가 고프고 하루하루가 힘겹다. 정부의 통계대로라도 이 땅의 노동자 10명 가운데 5.3명이 비정규직이다. 근로기준법은 거꾸로 개악될 판이다. 저임금과 실질적인 장시간 노동, 과밀노동이 횡행하고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이 겨울 노숙자들의 숫자가 점점 늘고 있다. 전태일이 삶의 고통 속에서 그 고통을 가져온 "저주받아야 할 불합리한 현실"에 눈 떴듯이 우리는 87년 "노동자도 인간"임을, 97년 "노동자가 정치와 사회의 주인"임을 자각해왔다. 오늘 우리는 이 자각 위에서 신자유주의와 구조조정에 대한 "완전한 부정"과 "써먹을 때까지 써먹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아주 간단하게, '그저 무자비하게' 한 인간을 메마른 길바닥 위에다 아무렇게나 내던져버리는 현실"의 "완전히 추악한 덩어리를 전부 분해"해 버리는 투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전태일은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마르지 않는 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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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10:42 2005/02/1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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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ee 2006/05/10 14:36 URL EDIT REPLY
■ 전시제목 : Kaethe Kollwitz
- Oliginal und Reproduktion-
■ 전시기간 : 2006년 5월 10일(수) ~ 6월 6일(화)
■ 장 소 : Gallery Godo, Seoul
■ 기자간담회 : 2006년 5월 10일 오전 10시부터~
■ 오 프 닝 : 2006년 5월 10일 17:00시
■ 교 통 편 : 지하철3호선 안국역 6번 출구
안국로터리 한국일보방향 15 m
■ 내용 문의 : Tel. 02 720 2223 H.P. 011 9498 0258
■ 후원 : 주한 독일대사관
이번 전시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20세기 독일의 판화가인 캐테콜비츠(1867~1945)의 드로잉과 판화작품을 우리 화단에 처음 소개하고 원작을 감상할 기회를 가지며 그녀의 명성만큼이나 진한 감동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람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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