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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미래를] 03년 6월

 

계급적, 민주적 금속산별노조를 위하여

 

금속노조와 금속연맹

 

2003년 6월 24-27일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금속연맹) 산하 주요 대공장노조들이 산별 전환 총회를 실시한다. 현대자동차, 쌍용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정밀, 로템의왕, 대우종합기계, 캐피코, 대우상용차, 다이모스, 현대미포조선, 위아, 신한밸브, 아남르그랑, 동양석판, 성원제강, 성광, 유성금속, 동양물산, 광주지역금속 등 21개 노조가 이 기간에 금속노조로 조직형태를 변경하는 규약 개정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하고 6월 27일 동시 개표할 예정이다. 현재 금속연맹의 전체 조합원 수는 16만여명이고 이 가운데 금속노조의 조합원 수가 3만6천여명, 금속노조로 전환하지 않은 조합원 수가 12만6천여명이다.

금속연맹은 98년 2월 15일 전국민주금속노동조합연맹과 전국자동차산업노동조합연맹,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 등 3개 조직이 통합하여 만들어졌다. 금속연맹은 90년 전노협이 탄생한 이후 민주노조총단결대오에서 미완에 그쳤던 전노협과 대공장노조의 조직적 결합을 완성시켰다는 역사적 의미를 안고 등장했다. 금속연맹은 산별노조 건설을 가장 중요한 조직 과제로 정하고, 2000년 1월 22일 금속연맹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격론 끝에 2000년 10월 금속산별노조 건설을 결정했다. 이 날 결정은 나중에 무효표 논란이 발생할 정도로 무리하게 강행된 것이었다. 8월 31일 금속연맹 임시대의원대회는 장시간 논란을 벌인 후에 산별노조 건설 시기를 2001년 2월로 미루는 대신 기업지부를 인정하는 것으로 표결 통과시켰다. 투쟁을 통한 산별 건설과 기업지부 반대를 주장했던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 소속 대의원들은 이를 중앙파와 국민파의 야합이라고 규정하고 퇴장했다.

금속노조는 2001년 2월 8일 주요 대공장노조들이 빠진 상태에서 108개 노조 3만700여명의 규모로 출범했다. 그러나 기업지부가 인정됨으로써 산별노조의 기본 정신이 훼손되었고, 주요 대공장노조들이 금속노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중소사업장 노조와 대공장노조가 다시 분리되었다. 금속노조는 출범 이후 기업별로 흩어져 있던 중소사업장 금속노동자들을 단일노조로 묶어냈고, 2003년 5월 6일 사용자단체와의 산별 중앙교섭을 성사시킴으로써 산별노조로서의 위상을 높여왔다. 금속연맹은 사무처 역량의 반을 금속노조로 옮기고 조직의 총력을 산별 전환에 집중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금속연맹 산하 주요 대공장노조들의 산별 전환 총회들은 계속 부결되거나 연기되었고, 금속노조는 조직을 확대하지 못하면서 여전히 산별노조라고 하기에는 양과 질이 취약한 통합노조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금속연맹은 2002년 2월 3기 임원 선출과정에서 통합 지도부를 구성하는 데 실패했고 부위원장 후보가 1명밖에 나서지 않는 등 파행을 겪어왔다. 민주노총의 4.2 총파업 철회는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를 자초했고 금속연맹 내부에서는 상급연맹과 현장의 괴리, 일정박기식 산별 전환과 종파적 활동방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2002년 10월 26일 연대와전진을위한전국노동자회, 기아자동차현장의힘, 현대자동차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가 공동주최한 '금속산별에 대한 현장조직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비정규직 철폐, 근골격계투쟁을 중심에 둔 노동강도 저하, 주5일제 쟁취 등을 3대 핵심요구로 하여 금속연맹 대공장노조, 금속노조, 현장조직이 함께 참여하는 공투본을 구성하고, 2003년 상반기에 16만이 하나되는 투쟁을 힘있게 벌여냄으로써 이 성과를 바탕으로 산별 전환 총회를 실시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금속연맹은 현장조직의 문제의식을 상당부분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11.5 총파업의 성사를 계기로 자신감을 일정 회복하면서 자동차분과를 중심으로 한 2003년 공동투쟁 계획을 구체화시켜갔다. 그러나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에서 2003년 3월 10일 노조간부의 금품수수 사건으로 집행부가 총사퇴함으로써 상반기 자동차업종 공동투쟁은 사실상 어렵게 되었다. 금속연맹은 6월 산별 전환 총회 일정은 그대로 유지하고 6월 24-27일 산별 전환 총회를 6월 25일 4시간 부분파업과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현 국면을 돌파하려 하고 있다.

 

계급적 금속산별노조를 위한 전제

 

금속산별노조를 계급적으로 강화하기 위해서는 금속노조 규약에서 기업지부 조항을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기업지부를 그대로 인정하고 대공장노조들이 기업지부 형태로 금속노조에 가입하게 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조합원이 3만9천명인 현대자동차노조가 기업지부 형태로 금속노조에 가입하는 경우, 하나의 기업지부가 산별노조의 나머지 전체 지부보다 조합원 수가 더 많게 되고, 하나의 거대 기업지부가 산별노조 전체를 좌지우지하게 될지도 모르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산별노조의 구조와 운영이 기형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 중소사업장과 대공장,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허물고 하나로 크게 뭉치자는 산별노조의 기본 정신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금속노조의 규약상 기업지부로 가입할 수 있는 몇몇 대공장노조들은 6월 산별 전환 총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정해야 한다. 일단 산별노조로 전환하고 보자는 식으로는, 산별노조의 형태로 대공장 중심주의가 강화되고 거대 기업지부와 왜소한 지역지부들로 산별노조가 기형화되고 왜곡되는 사태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기업지부 조항의 삭제와 함께 계급적 산별노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노동자를 정규직노동자와 하나의 단일조직으로 묶어내는 것이다. 현대자동차에서 최근 중요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2003년 3월 24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사내하청업체인 세화산업 관리자가 하청노동자의 아킬레스건을 칼로 자르는 엽기적 사건이 발생했다. 아산공장의 직영, 하청노동자들은 즉각 파업에 들어갔고 3월 28일 사내하청노조를 결성했다. 아산사내하청노조는 현대자동차노조 아산지부로 묶인 것이 아니라 금속노조로 가입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도 5월 2일 임단투 출정식을 마친 직후 사내하청노동자들이 모여 비정규직투쟁위원회(비투위)를 만들었다. 비투위는 사업부별 체계와 전공장 집행체계를 꾸리고 선전사업과 교육사업을 벌이고 있다. 6월 3일 금속연맹과 현대자동차노조, 현장조직들은 '사내하청 조직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공청회를 열었다. 현대자동차노조 집행부는 산별 전환 총회가 가결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를 금속노조지역지부로, 산별 전환이 부결되면 현대자동차노조 비정규직 울산공장지부로 조직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현장조직 대부분은 산별 전환과 무관하게 현대자동차노조의 규약을 개정하여 사내하청노동자들이 1, 2, 3차 구분없이 현대자동차노조로 직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가입 형식에 대해서는 사내하청지부로 따로 묶을 것인지 선거구별로 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묶을 것인지 입장이 나뉘어졌다. 조직화 시기에 대해서도 2003년 임단투 때는 시기상조라는 입장과 임단투가 고조될 때 조직력을 최대한 가동하여 일시에 전체를 조직해야 한다는 상반된 입장이 제출되었다. 현대자동차노조 집행부의 입장대로 하면 산별 전환 총회가 가결되었을 때 직영노동자들은 기업지부로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사내하청노동자들은 금속노조 지역지부로 가입하게 된다. 한 공장, 한 생산라인에서 함께 일하는 정규직노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들이 같은 산별노조에 속하면서도 서로 다른 조직체계로 편재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줄어들기 어렵고,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탄압과 정규직노동자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세가 집중되었을 때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단결을 지켜내기 어렵게 된다. 현대자동차노조 내부의 사내하청 독자지부로 가입하는 경우에도 '생존'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결국 컨베어 시스템의 기본 노동단위에서 직영노동자와 하청노동자가 함께 호흡하는 조직체계가 아니고서는 각개격파 당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직영노동자와 하청노동자가 한 선거구로 묶이게 되면 그 선거구의 전체 조합원들로부터 선출되는 대의원이 직영노동자만의 이익을 위해 활동할 수는 없게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또는 의식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해소하는 일상활동과 투쟁들을 쌓아갈 것이다. 한편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문제를 비정규직노동자 스스로 풀어가기 위한 노동조합 안팎의 독자적 조직체계가 필요해진다. 비투위는 의장부총연합과 같은 현장대중조직으로 위상을 잡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상당수 비정규직활동가들은 노동조합 집행단위에서 비정규직사업 부분을 맡게 되거나 비정규직특별위원회와 같은 체계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6월 산별 전환과정에서 금속연맹과 대공장노조들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그 방식은 산별 전환의 가부를 떠나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직영노동조합에 직가입시키는 것이어야 하고 직영조합원과 하청조합원이 생산 기본단위에 따라 노동조합 기초 선거구에 함께 편재되는 것이어야 한다.

 

민주적 금속산별노조를 위한 전제

 

산별노조 건설의 가장 큰 이유는 기업별로 분산된 조직력과 자금, 투쟁력과 정책역량들을 하나로 집중시켜 힘을 키우는 데 있다. 그러나 산별노조의 덩치가 커지고 집중성이 높아질수록 조직의 상층과 하층 사이에 민주적 의사결정과 집행, 집행에 대한 대중적 평가와 통제는 점점 더 어렵게 된다. 민주노조운동의 가장 소중한 전통은 단연 총회민주주의이다. 노동조합이 비민주적이거나 투쟁을 회피할 때 노동조합을 뛰어넘는 다양한 현장대중투쟁조직들을 발전시켜온 것도 중요한 성과이다. 금속산별노조의 민주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조운동이 키워온 총회민주주의 전통과 현장대중투쟁의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금속산별노조의 임원은 직선으로 선출하는 것이 마땅하다. 직선이라는 제도가 산별노조의 민주성을 그 자체로 직접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직이 거대해지고 관료화될 위험이 크면 클수록 간선이 갖는 심각한 폐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직선은 최소한의 전제이다. 그리고 2002년 4.2 총파업 철회나 11.5 총파업 성사와 중단에서 나타나는 지도부의 잘못에 대해 현장 조합원들이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잠정합의안에 대해서는 반드시 조합원총회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조합을 뛰어넘는 전국적 대중투쟁조직이 산별노조와 총연맹을 견제하고 압박할 수 있을만큼 발전해야 한다. 다음으로, 본조뿐만 아니라 지부와 분회에 이르기까지 금속노조의 다양한 조직단위에 독자파업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거꾸로 본조의 파업명령을 거부한 지부와 분회에 대해 본조가 새로운 단위지도부를 구성하기 위한 대의원대회나 조합원총회 소집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산별노조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금속산별노조가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선 투쟁의 무기이자 자본에 의한 노동통제와 분열을 극복할 단결의 구심으로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금속노조를 특정 지도부나 특정 정파의 전유물이 아니라 금속노동자 전체의 투쟁의 성과물로 만들어야 한다. 2003년 들어와 노무현 정권 아래서 노동자 민중투쟁은 쉴 새없이 계속되고 있다. 손배, 가압류 등 노동탄압 문제를 죽음으로 쟁점화시켰던 배달호 열사 분신투쟁, 정보인권문제를 전면화시킨 전교조 NEIS 철폐투쟁,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화물연대투쟁에 이어 경제자유구역 폐기를 위한 경기, 대전지역 총파업과 2인 승무제 실시를 위한 궤도연대 총파업, 금속연맹 총파업이 6월 25일 민주노총 총력투쟁으로 집중되고 있다. 금속연맹 대공장노조들의 산별 전환 총회는 바로 이 총력투쟁의 한 가운데서 실시된다. 행여 이 총회가 2000년 4월 대우자동차 해외매각을 반대하는 자동차노조들의 공동파업이 4.13 총선을 위한 선거용 파업으로 비쳐졌던 것처럼, 투쟁을 위한, 투쟁을 통한 산별 전환이 아니라 산별 전환을 위한 투쟁, 총회 성사를 위한 4시간 부분파업으로 주객이 전도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총회 투표 결과 산별 전환의 가부와 무관하게 6월 총력투쟁은 7월 투쟁으로 곧바로 힘있게 이어져야 하고 그 투쟁의 성패 여하에 따라 산별노조 전환 또한 앞당겨지거나 늦춰질 것이다. 민주적 금속산별노조는 오로지 금속노동자 전체의 투쟁으로부터만 쟁취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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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14:26 2005/02/1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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