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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울교협통신] 예비2호, 95.6.16

 

현대중공업의 교섭 타결을 보고...

윤재건 위원장을 포함한 4명의 노조 대표와 김정국 사장을 포함한 4명의 사측 대표가 6월 15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모두 7시간이나 걸린 마라톤 협상 끝에 95년도 임금 인상에 잠정 합의했다.

총액 92,600원과 무쟁의 실현 격려금으로 통상임금의 100%, 특별휴가 2일이 합의되었다. 쟁점이 되었던 해고자 문제는 체결 후 2주일 내에 협의하여 처리하기로 했다. 현총련 차원의 공동 요구로 제기되었던 임금 인상 적용 시기는 3월 1일이 아니라 6월 1일로 결정되었다. 월급제 문제나 우리 사주 문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수배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조합원들은 6월 16일 조합원 총회에서 68.9%의 찬성률로 잠정 합의안에 동의했다. 끝까지 반대표를 던진 조합원들은 6,028명으로 투표자의 30.4%다.

찬성 가결 직후 민주항해 담당자는 넋두리 아닌 넋두리를 통신에 띄웠다.

'...오늘...87년 노동조합이 설립된 이후...처음으로 투쟁을 하지 않고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멍합니다. 전국의 노동형제들과 제민주세력이 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투쟁을 하지 않고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슴이 쓰리고 울컥 가슴이 미어집니다...그러나 그 무엇도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탓하길 거부합니다. 단지, 뻥뚫린 우리의 가슴을 바라볼 뿐입니다. 자본의 전술은 집요하고 우리는 허술하였습니다. 저들은 조합원들의 심리를 잘 이용하였고, 우리에게는 운신의 폭이 적었습니다. 저들은 치밀하였고, 우리는 그저 관성과 습성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들이 씌워놓은 올가미에 덮여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들은 노동조합의 안과 밖을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치고 들어왔고, 우리는 그것에 무방비였습니다. 그래서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은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토록 힘겹게 지켜왔던 노동조합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현실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존재합니다. 이제, 더이상 지금까지의 방식과 생각으로는 그 무엇도 쟁취할 수 없다는 것을...그러나 더이상 악화될 것은 없습니다. 밑바닥까지 왔기 때문에 더 나빠질 것은 없습니다. 이제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몫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다시 투쟁하는 발판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멍하고 쓰리고 미어진다. 그러나 누구 누구를 탓하긴 싫다. 반성하자. 그리고 엄혹한 현실로부터 다시 시작하자." 이것은 민주항해 담당자 개인의 넋두리가 아니다. 대다수 현장 활동가들의 쓰라린 심정과 고민의 토로이고, 전체 민주노조운동이 직면한 '고통'의 고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변혁적 노동운동 진영 전체에 대한 폭풍같은 '질타'다.

'이제, 더이상 지금까지의 방식과 생각으로는 그 무엇도 쟁취할 수 없다는 것'(!)은 92년 현대자동차 상여금투쟁 이후 전체 민주노조운동의 話頭였고, 변혁적 노동운동 진영 전체(?)가 씨름해온 난제였다. "민주노조운동의 이념과 조직, 그리고 전술은 질적으로 어떻게 전화되고 발전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전투적 노동운동론이다, 사회발전적 노동운동론이다, 진보적 노동운동론이다 우후죽순처럼 '대안'(?)들이 제기되었지만 '정답'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한편 변혁적 노동운동론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수준에 머물면서 입론을 구체화시키지 못했다. 이러는 사이에 현장은 곳곳에 구멍이 뚫렸고 수많은 활동가들이 지쳐 나자빠졌다.

'새로운 삶의 질서','새로운 운동의 질서'는 과거와 현재의 '경험'으로부터 '현실의 물질화된 요구'로 '제기'되기는 하지만, 그것이 '현실의 새로운 질'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경험이 아닌, '미래를 현실에 적용하는 노동'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래는 아직 설계되지 않았고, 과거는 여전히 완강하다. 미래에 대한 집단적 설계작업은 이제 더이상 늦춰지거나 미루어질 수 없는 절박함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 작업은 변혁적 노동운동 진영 전체와 선진노동자의 몫이다.

87년 노동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갓난 아기였던 자식들이 이제는 국민학교에 다닌다. 현중 활동가들의 평균 나이를 따지면 30대 중후반이다. 적지 않은 40대 활동가들의 고통과 고민은 더하다. 지난 8년동안 현중 활동가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노동조합 활동을 수행해왔다. 어떤 사람은 '열정' 하나로, 어떤 사람은 '의리' 하나로 구속과 해고를 마다 않고 투쟁해왔다. 매일같이 회의가 잡힌다. 잔업을 하고 싶어도 할 짬이 주어지지 않는다. 월급이라고 집에 가져가는 건 뻔할 수 밖에 없다. 파업 한번에 무더기 징계라도 떨어지면 한달이고 두달이고 꼼짝마라가 된다. 이게 1,2년도 아니고 8년이다. 집구석이라도 편하면 좋겠지만 '이러고 사니' 좋아라 할 마누라가 있을 리 없다. 열정과 의리만으로 돌파가 안되는 한계라는 게 있다. 이제 그 '질곡'이 대중적으로 표현되었을 뿐이다. 많은 활동가들이 지치고 피곤해 있는데, 요구되는 건 또다른 열정과 의리였다. 설계된 미래의 희망은 만들어지지 못했고 대중적 설득력을 획득하지도 못했다. "피해가고 싶다"는 게 많은 활동가들이 갖고 있던 솔직한 심정이었다. 더 힘든 것은 동지들 사이에 팽배해진 반목과 골 깊은 불신이다. 매년 반복된 '전투' 속에서 이리저리 나타난 전술적 차이들이 인간적 불신으로까지 굳어져버렸다. 민주세력 내부는 '정치적'으로 '분화'되기도 전에 '분열'되었다. 많은 활동가들이 '좀더 부드러운' 지자제 선거판으로 몰려갔다. 노동조합은 '실무'가 '세련'되가고 늘긴 했지만, 그것이 '지도력'과 '집행력'으로 발전된 건 아니었다. 연대와 단사는 여전히 풀기 어려운 대립물로 존재했다. 연대의 필요성과 전망에 대한 확신은 또다시 미래의 몫으로 넘겨졌다.

작년 임투가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피해의식과 패배의식을 남겼다면, 올해 임투는 일단 무기력함으로 남는다. 이 무력감은 뼈를 깎는 반성의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고, 개량화의 늪으로 노동조합을 끌고 갈 수도 있다. 지난 8년동안의 활동 전체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와 미래에 대한 치밀한 설계작업이 시작되어야 한다. 여기에 우리 모두의 사활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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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07:01 2005/02/1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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