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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4/22
    형법총론 중간고사 시험문제(2)
    저음
  2. 2005/04/15
    손석춘의 글을 보며(4)
    저음
  3. 2005/04/14
    봄날(2)
    저음

형법총론 중간고사 시험문제

H대 형법교수인 오모교수가 출제한 문제이다.

 

형법총론 중간고사(2005/1)

미국의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하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 甲과 일본인 유학생 乙은 강의가 끝난 후 잔디밭 앉아 휴식을 취하다가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인가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甲은 乙에게 “너희 씨네마현에서 다께시마의 날을 정한 것은 국제법위반이다. 독도가 일본땅이면 쓰나미섬은 우리나라 땅이다”고 하였다. 이에 乙이 “씨네마현이 아니고 씨마네현이고, 쓰나미섬이 아니고 쓰시마섬이다. 한국사람은 모두가 이런 식으로 억지를 부린다”고 하였다.
흥분한 甲은 “그럼 정신대는 너희 나라 대학 이름이냐? 역사를 왜곡하는 쪽바리들아! 내가 다시 일본제품을 사용하면 성을 간다”라고 하며 피우고 있던 일제담배를 잔디밭에 집어던졌다. 甲의 말에 화가 난 乙은 자신이 피우던 담배를 甲을 향해 집어던졌다. 그런데 마침 바람이 불어와 그 담배의 불씨가 甲의 눈으로 들어가 甲은 눈에 전치 3주의 부상을 입게되었다. 한편 그 사이에 甲이 버렸던 담배꽁초에 남아있던 불이 잔디밭에 붙어 잔디밭 약 200평과 나무 30그루를 타버리고 말았다. 甲, 乙의 죄책은?

* 법전참조가능



I. 논점의 제시

甲의 죄책으로 문제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甲이 담배를 던져 잔디밭에 불을 낸 행위가 실화죄(제170조 제2항)에 해당되는가 문제된다. 잔디밭은 제167조에 기재되어 있는 타인소유의 일반물건인데, 제170조 제2항의 ‘자기소유에 속하는 제166조 또는 제167조에 기재한 물건’에 타인소유의 일반물건도 포함될 수 있는가와 주의의무위반 및 인과관계가 문제된다.
둘째, 甲이 미국에서 범한 죄에 대해 우리 형법을 적용하여 처벌할 수 있는가가 문제된다. 여기에서는 형법의 적용범위에 관한 속인주의원칙이 문제된다.

乙의 죄책으로 문제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乙이 甲에게 담배꽁초를 집어던져 눈에 부상을 입힌 행위가 과실치상죄(제266조)에 해당되는가가 문제된다(폭행치상죄는 논외로 함). 여기에서는 乙의 주의의무위반과 담배꽁초를 집어던진 행위와 甲의 상해 사이에 인과관계 내지 객관적 귀속이 문제된다.
둘째, 乙에 대해 우리 형법을 적용할 수 있는가가 문제된다. 여기에서도 형법의 적용범위에 관한 보호주의원칙이 문제된다.


II. 甲의 죄책

1. 실화죄(제170조 제2항)의 성립여부
(1) 문제점
사례에서 甲의 죄책과 관련하여 형법 제170조 제2항의 적용여부가 문제된다. 여기에서는 첫째, 甲이 타인소유에 속하는 제167조에 기재한 물건을 소훼하였으므로 이것이 제170조 제2항의 객체에 속하는가, 둘째, 甲에게 과실이 인정되는가, 셋째, 甲이 담배꽁초를 던진 행위와 화재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는가 등이 문제된다.

(2) 타인소유 일반물건에 대한 제170조 제2항의 적용여부
형법 제170조 제2항의 객체는 ‘자기의 소유에 속하는 제166조 또는 제167조에 기재한 물건’이다. 여기에서 타인소유 일반물건이 동규정의 객체인지에 대해 긍정설과 부정설이 대립한다.
긍정설은 자기의 소유에 속하는 제166조 또는 제167조에 기재한 물건'이라 함은 '자기의 소유에 속하는 제166조에 기재한 물건 또는 자기의 소유에 속하든, 타인의 소유에 속하든 불문하고 제167조에 기재한 물건'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근거로 ①방화죄와 실화죄에관한 관련규정을 전체적·종합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과 ②이러한 해석이 법규정의 가능한 의미를 벗어나 법형성이나 법창조행위에 이른 것으로서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상 금지되는 유추해석이나 확장해석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을 든다. 이 견해에 의하면 甲은 제170조 제2항 타인소유 일반물건실화죄의 죄책을 진다(대법원 1994. 12. 20. 선고 94모32 결정의 다수의견이 이 입장을 취한다).
이에 대해 부정설은 우리말의 보통의 표현방법으로는 ①‘자기의 소유에 속하는 제166조 또는 제167조에 기재한 물건'에서‘자기의 소유에 속하는'이라는 말은‘제166조 또는 제167조에 기재한 물건'을 한꺼번에 수식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고, 같은 규정이 자기의 소유에 속하는 제166조에 기재한 물건 또는 아무런 제한이 따르지 않는 단순한 제167조에 기재한 물건'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고. ②타인소유의 일반물건을 제170조 제2항에 포함시키는 것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유추해석으로서 죄형법정주의 위반이라고 한다. 이 견해에 의하면 甲은 무죄이다(대법원 1994. 12. 20. 선고 94모32 결정의 소수의견의 입장이다).

(2) 주의의무의 인정여부
위의 부정설에 의하면, 甲은 제170조 제2항의 죄책을 지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긍정설에 의할 경우에도 甲에게 주의의무위반이 있어야 동범죄의 죄책을 질 수 있다.
사례에서 甲이 잔디밭에 불을 낼 의욕이나 인용은 없으므로 화재에 대한 고의가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과실이 문제된다. 주의의무위반 판단기준에 관한 객관설이나 주관설 모두에 의해도 일반인이나 甲 모두 잔디밭에 담배를 던질 경우 불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불이 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담배를 던지지 말거나 던지더라도 화재발생방지조치를 취하고 던져야 할 의무도 인정된다. 따라서 甲에게 주의의무위반이 인정된다.

(3) 인과관계 및 객관적 귀속
甲이 담배를 던진 행위와 화재 사이에 합법칙적 조건설에 의한 인과관계는 물론이고 상당인과관계도 인정된다. 잔디밭에 담배를 던지면 불이 붙을 수 있다는 것은 사회경험칙상 상당성(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甲이 잔디밭에 담배를 던진 것은 화재의 위험을 증대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화재의 결과를 甲이 담배를 던진 행위에 귀속시킬 수도 있다.

(4) 정리
타인소유의 일반물건은 제170조 제2항의 객체가 될 수 없다는 입장에 따라 甲을 무죄라고 해야 한지만, 긍정설에 따를 경우 甲의 행위는 제170조 제2항의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다른 위법성조각사유나 책임조각사유는 없으므로 甲은 제170조 제2항의 죄책을 지게 된다.

2. 형법의 적용범위
甲이 미국에서 실화죄를 범한 것이지만, 甲이 한국인유학생이기 때문에 형법 제3조(속인주의)에 의해 우리 형법이 적용된다.


III. 乙의 죄책

1. 과실치상죄(제266조)의 성립여부
(1) 문제점
乙이 甲을 향해 담배를 집어던진 행위가 폭행죄(제260조)에 해당되면 폭행치상죄의 성립여부가 문제될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과실치상죄(제266조)의 성립여부를 살펴보기로 한다.
과실치상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상해의 결과가 발생하고, 주의의무위반행위가 있어야 하고, 주의의무위반행위와 결과발생 사이에 인과관계 내지 객관적 귀속이 인정되어야 한다. 甲에게 상해의 결과가 발생하였음은 분명하므로 여기에서는 주의의무위반과 인과관계의 존재여부가 문제된다.

(2) 주의의무위반
과실치상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乙이 甲에게 담배를 던질 때에 상해의 결과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고, 이러한 예견에 기초하여 상해의 결과를 회피할 수 있어야 한다.
주의의무에 관한 객관설이나 주관설에 의할 경우 다른 사람을 향해 담배를 던질 경우 바람이 불어와 상대방이 다칠 수 있다는 것은 일반인이나 乙이 예견할 수 있었고, 따라서 乙이 甲에게 담배를 던지지 않거나 담배를 던지더라도 이러한 결과발생을 회피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인정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乙의 주의의무위반이 인정된다.
乙에게 이러한 주의의무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과실치상죄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지만, 주의의무가 인정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3) 인과관계와 객관적 귀속
다른 사람에게 담배를 던지는 행위를 할 경우 담뱃불이 상대방의 눈에 들어가 다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사회경험칙상 상당성(개연성)이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합법칙적 조건설에 의한 인과관계도 인정되고, 甲의 상해의 결과를 乙이 담배를 던진 행위는 甲에 대한 상해의 위험을 증대킨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 귀속도 인정된다.

(4) 정리
乙에게 주의의무위반을 인정하지 않는 견해도 있을 수 있지만, 주의의무위반을 인정해야 하고 이것과 甲의 상해 사이에 인과관계 내지 객관적 귀속도 인정되므로 乙은 과실치상죄의 죄책을 진다.

2. 우리 형법의 적용여부
乙의 행위는 일본인인 乙이 미국땅에서 행한 범죄이기 때문에 우리 형법의 적용여부가 문제될 수 있다. 형법 제6조는 외국인이 외국에서 행한 범죄라도 우리나라 국민에 대한 범죄이면 우리 형법을 적용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乙의 행위는 우리나라 국민인 甲에 대한 범죄이기 때문에 우리 형법의 적용된다.
다만, 과실치상죄가 미국형법에서 처벌되지 않는 경우이면 우리 형법이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행위지에서 과실치상죄를 처벌하는 경우 乙은 과실치상죄의 죄책을 지지만, 만약 행위지에서 과실치상죄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乙에게 우리 형법을 적용할 수 없다.


IV. 정 리

甲은 미국에서 과실로 미국대학의 잔디밭을 태웠지만, 甲이 우리나라 국민이기 때문에 우리 형법 제170조 제2항이 적용된다. 타인소유의 잔디밭이 제170조 제2항의 객체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甲은 무죄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판례의 입장처럼 제170조 제2항의 객체에 포함된다고 할 경우 甲의 주의의무위반과 인과관계가 모두 인정되므로 甲은 타인소유 일반물건에 대한 실화죄(제170조 제2항)의 죄책을 진다.
乙의 행위는 과실치상죄(제266조)에 해당되고, 이것이 우리 국민인 甲에 대한 범죄이기 때문에 우리 형법이 적용되어(제6조) 乙은 과실치상죄의 죄책을 진다. 다만, 미국 대학이 위치한 곳에서 과실치상죄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乙은 무죄이다(제6조 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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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의 글을 보며

예전에도 그랬지만, 김대환과 노동부를 보면서 왜 '노동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자본과 사용자측을 변호하는 것이 정부부처중의 '산업자원부''재정경제부'가 할일이라면 '노동부'는 당연히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활동을 해야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의 노동부장관은 오히려 전경련이나 경총의 수장이나 된 듯 하다.

 

국가인권위가 사회의 모든 문제에 '인권'의 시각에 입각해서 의견을 표명하고 권고를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보수 자유주의자인 노무현대통령 조차 이라크 파병에 대해 의견을 표명한 인권위에 대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았는가?

 

독립적인 국가기구인 인권위를 한낱 '돌뿌리'로 이야기하는 그를 보면서, 알게모르게 그를 키웠던 진보진영도 반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자신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김대환'같은 '돌뿌리'를 사전에 뽑고 갔어야 하는 것을.

 

민주노총은 산으로 가고, 노동부는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조차 박탈하지 못해 안달하고.

 

우리가 노동에 있어서 어떤 희망을 만들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

[손석춘] '김대환-이목희' 변절인가, 욕망인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는 통찰이다. 이른바 민주화시대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권력의 핵심부에 숱하게 포진되어 있다.

신문기자 생활을 한 탓이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 가운데 '자리'에 오른 이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모두는 아니지만 공통점이 있다. 언젠가도 지적했듯이 '오만'이다. 그들 대다수는 마치 저 자신이 잘나서 그 자리에 있다고 '확신'한다. 애정 어린 비판에 대해서도 적대시하기 일쑤다. 힘을 모아 자기 자리에 주어진 시대적 과제를 진지하게 풀어가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되레 권위의식으로 똘똘 뭉쳐있다.

권위의식으로 가득한 저 옛날의 '민주인사'들

보라. 노동부 장관과 열린우리당 제5정책조정위원장을. 김대환과 이목희. 한 때는 진보인사로 꼽히던 인물들이다. 하지만 장관과 국회의원이라는 자리에 오른 두 사람은 오늘 어떤가. 진보적인가. 아니다. 차라리 한나라당보다 못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한 정부법안이 문제가 많다는 의견을 표명하자 살천스레 비난하고 나섰다.

김 장관은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네티즌과의 대화에서 "잘 모르면 용감해진다"며 국가인권위를 겨냥해 "단세포적인 기준"이라거나 "부적절하고 잘못된 많은 의견 가운데 하나"라고 몰아세웠다. 이목희 의원도 마찬가지다. "인권위 의견은 황당하고 부적절한 처신"이라며 '무지의 소치'라고 비난했다.

더구나 김 장관은 국가인권위원회에는 노동문제 전문가가 없다고 주장했다. 묻고싶다. 과연 경제학자 김대환은 얼마나 노동문제에 전문가인가. 한국노사관계학회와 한국노동경제학회 그리고 한국노동법학회가 공동으로 연 토론회에서 정부법안의 문제점이 조목조목 비판받은 사실을 학자 김대환은 알고 있는가. 전문가라면 장관인 자신보다 노동관련 학회가 더 전문성 있지 않은가.

물론, 전문성의 문제는 여기서 사소하다. 문제의 핵심은 김 장관의 발언에서 묻어나는 '편협한 오만'이다. 그는 "인권위의 의견제시는 노동시장 선진화로 가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난 돌부리"라며 "대로변의 돌부리는 파내는 것이 예방 차원에서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바쁘니까 그냥 가겠다"고 말했다. 파시즘의 냄새가 물씬 묻어난다.

그 뿐인가. 그는 대한상의 회원기업 최고경영자와 임원들이 참석한 조찬간담회에서 "경영계는 대기업의 노동 경직성의 원인을 법·제도로 돌리고 있으나 경직성의 더 큰 원인은 해당 사업장의 단체협약에서 기인한다"며 "사용자들도 사용자 안건을 내서 노조와 적극적으로 교섭하는 게 필요하다"고 언죽번죽 강조했다.

사용자와 밥 먹으며 노조에 강경대응 부추기는 노동부장관

그래서다. 과연 그는 자기 자리를 노동부장관으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경제부총리로 여기는가. 바로 그런 처신 때문에 학계 일각에서 그가 경제부총리를 노린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차분히 톺아보자. 대한상의 회원기업 최고경영자와 임원들을 만나 노조에 강경대응을 주문하는 노동부 장관, 참으로 가관 아닌가. 게다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은 '뽑아야 할 돌부리'란다. 이목희 의원이 국가경영을 들먹이는 모습도 김 장관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다. '진보학자'나 '노동운동가'로 불리던 두 사람의 오늘 모습은 무엇일까. 변절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출세'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진보학자 행세를 하고 노동운동을 벌인 걸까.

어느 쪽이든 두 사람에게 인간적으로 호소하고 싶다. 그 자리에서 조용히 물러나라. 더 큰 자리를 꿈꾼다면, 그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죄악이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더 큰 고통을 주기 전에 물러나길, 하여 진보학자와 노동운동가라는 한때의 '명예'를 조금이라도 지키길 충심으로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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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거림낌없이 말한다. 오늘 우리들 눈앞을 흐르는 저 강은 그때의 강물이 아니라고. 그 폭풍의 강은 아주 오래 전에 흘러가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먼 과거의 바다로 흘러들어갔노라고.

 

그러나 한 가지, 그들은 잊고 있다. 총구 옆 혹은 뒤편에 비켜나 있었던(물론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사람에게 그것은 단지 하나의 중요한 역사나 사건의 항목으로 어렵지 않게 정리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번 총구 앞에 세워졌던 사람들에겐 그것은 영원한 악몽이거나 좀처럼 치유되기 어려운 생채기라는 사실을. 어차피 고통은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의 몫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 임철우, <봄날>, 책을내면서 중 -

 

 

다시 <봄날>을 집어들었다. 1999년 겨울에, 아마도 외대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편입을 막 준비하던 시절에, 이문동 도서관에 처박혀서 임철우 <봄날>을 읽으며 눈물을 펑펑 쏟아부은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아마 알 수 없는 내 미래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고민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힘든 시기였던 것도 같다. <봄날>을 읽으면서 나도 모를 죄책감을 느끼면서 삶에 대한 의지와 방향을 잡았던 것 같다.

 

2005년 다시 <봄날>을 붙잡고 읽기 시작했다. 힘든 시기가 되면 지금보다 더 힘든 시절로 회귀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같다. 물론, 지금은 <봄날>을 처음으로 읽던 시기하고는 질적으로 다른 고민을 하고 있지만 그 태양에 있어서는 큰 차이는 없으리라.

 

곧이어 5월 봄날이 다가오겠지만, 나에게나 혹은 이 세상에 있어서나 아직도 5월의 햇살은 견디기 힘든 아픔으로 다가 올 것이다.

 

5월에, 웬지 다시 한번 망월동에 찾아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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