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씨의 PP에 붙이는 글...

이 글은 민노씨네 [PP] 포르노와 페미니즘 (2)와 관련된 글입니다.

 

민노씨의 성실한 답글 감사합니다. (너무 답글이 없어서 혹시 잊어버리신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우선, 따옴표의 일방적인 사용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인용한 부분의 문맥에서, 민노씨는 '겉멋든 유사페미니스트'를 비판하는 어휘로 '그렇다면 페미니즘과 포르노는 쌤쌤이다'라고 표현해 주셨습니다.

 

9월19일 20:59 추가 : 따옴표 얘기가 이 부분이 아니었군요... 이런... 아무래도 진짜 난독증인가...

'과시적 악세사리로써의 페미니즘'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여기에 더해 민노씨의 PP가 "과시적 악세사리로써의 포르노 옹호"가 되지 않길 진심으로 바라마지않습니다. "페미니즘이 포르노와 쌤쌤이다" 라는 과격한 명제가 거꾸로 "포르노 옹호는 정말 여성을 배려하기 때문이다."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정신병자)

"과시적 악세사리로써의 포르노 옹호" 와 "포르노 옹호는 정말 여성을 배려하기 때문"에 쓰인 쌍따옴표는 강조를 위해 쓰여진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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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씨의 본문 글 중에서

 

Ⅳ. 유사 페미니즘 ; 혹은 장식적, 과시적 페미니즘, 또는 악세사리 페미니즘.  

시각, 2006년 9월 8일 오후 6시 21분.
장소, 대한민국 서울의 어떤 옥탑방 책상 위 창백한 모니터 속.

 

현재 스코어를 나는 거칠게 '상상적으로'('상식적' 아님) 추론한다.

페미니즘은 흔히 '과시적' 악세사리로 전락하고 있다.


그리고 그건 천박한 비교 감정과 과시욕을 '실천적으로' 학습 시키는 '싸이월드'류의 문화에 포위되어 있다. 페미니즘이 삶에 있어서 뚜렷한 동기와 실천적인 에너지를 우리에게 부여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건 그저 '나는 페미니스트다'라는 막연한 뿌듯함을 우리에게 줄 뿐이다.

 

페미니즘은 자신의 감정적인 공격 성향을 '교양적으로' 포장하기 위한 '기술'로 흔히 활용된다. 즉, 내 추론에 의하면, 과시적으로 '여성'이라는 '상품'을 근사하게 포장한 '유사' 페미니스트들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페미니즘 그 자체가 이제 상품으로서의 여성을 치장하는 화장술이 되는 경우 그건 '유사 페미니즘'이다. 이 놀라운 시대에 그 유사 페미니스트들은 자기 욕망이 어떻게 조직되고, 유통되는지를 의심하지 않고, 그렇게 자부심 만빵 충천하고 나서 포르노를 비난한다.

 

나는 현재의 성문화, 성의식은 이율배반의 극단적인 구조화라고 생각한다. 이론 따로, 실천 따로다('포르노가 이론이라면, 강간은 실천이다'라고 주장하는 페미니즘은 그 '주장'과 '가설'이 어떤 문맥에서 나왔는지부터 살펴야할 것이다. 이 문제는 후술). 남/녀 대결적 구도 하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골적인 상업적 이슈 '된장녀'논란이 난 정말 짜증난다. 그 한가운데 '유사 페미니즘'의 감정적인 뽀얀 갑옷 입은 무사들이 있다. 그들 역시, 나처럼, 자본주의의 포로이다. 그리고 그들은 '동방신기'에 열광하는 소녀들처럼, '페미니즘'에 열광한다. 그리고 '섹스&시티'의 풍경을 그리거나, '무슨 무슨 학술잡지'를 인용하는 거다.

 

그런데 난 정말 그들을 모르겠다. 그들의 교양미 철철 넘치는 '남 나라 이야기'들을 나는 모르겠다. 그들이 즐겨 가는 무슨 무슨 세미나에서 나오는 그 머리 아픈 이야기들이 어떻게 그들의 삶에 스며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철없는 유사 페미니즘의 과시적이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행태들 언술들. 그것들 모두 이 아비규환에 가까운 모순에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윤락녀들이 짭새보다 더 질색하는게 여성단체 사람이라는 걸 들은 바 있" 다고, "본질적으로 그 자칭 페미들은 남성우월주의자들이랑 별다른게 없다"고 누군가(형준군)가 나에게 진술한다.

 

겉멋든 유사 페미니스트들에게는 페미니즘의 그 종이 몇장 지식이 마치 스타벅스 커피로 상징되는 동경으로서의 라이프 스타일 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신의 상품성을 치장하거나 자신의 억압된 욕망을 위로해주는 일종의 자위용 도구.

 

그렇다면 페미니즘은 포르노와 쌤쌤이다.

 

자기 목소리가 아니라 남 이야기들의 조합으로 말하는, 어떤 유사 페미니스트들을 나는 안쓰럽게 바라본다. 그는 자기 욕망을 '타인의 입'을 통해 말한다. 그건 욕망을 흉내내는 방식이지, 자기 욕망을 스스로 결정하는 방식은 아니다. 거기에는 선택이 없고, 그저 수동적인 학습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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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문제의식은 간단합니다. 언제부턴가 페미니즘이 과시적 악세사리로 전락하고 있다라고 거칠게 추론하시는 것처럼 민노씨의 문제의식인 포르노 옹호 역시 - 적어도 제가 간여하고 있는 어떤 곳에서는 - 과시적 행위가 되어 가고 있다고 저는 느낍니다.  민노씨의 다른 글들도 계속 접해왔고 (직접 개입한 것은 지금이 처음입니다만 지금까지 쭈욱  읽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사람은 그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겠구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만에 하나라도 그러한 과시적 행위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한 글을 쓴 것입니다.

 

음란의 부분에 대해서는, 음모가 노출되었음에도 정상적인 유통망을 통해서 발매되는 영상매체들이 이미 존재합니다. (제가 본 것만 해도 카트린느 브레이야의 작품들, 캣우먼, 쟈크 리베트의 누드모델...등 여러 작품이 있습니다.) 또한 가스파 노에의 '돌이킬 수 없는'같은 작품을 보면 여성을 지하도에서 때려 눕히고 강간하는 모습을 10여분 이상 계속 보여줍니다. 결국 포르노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은 음모, 음경이 노출되었는지의 여부보다는 해당 영상물의 시선이 어떠한가에 더욱 크게 좌우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민노씨는 범죄화되어야 하는 포르노의 범위를

 

- '미성년' 출연(그 자신의 동의 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불문)
- 출연자 동의 없는 강압적 상태의 연출.
- 몰래 촬영 등등.

 

이라고 일단 거칠게 정의하셨는데, 그렇다면 미성년임이 명백한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하는 만화에 대한 견해는 어떠하신가요? 흔히 말하는 '동안'의 성년 여성을 미성년으로 꾸며서 촬영하는 성적 영상물에 대해서는 어떠하신가요? 강압적 상태를 '연출한' 성적 표현물에 대해서는 어떠하신가요? 저는 그러한 것을 구분하는 기준이 그렇게 무우 자르듯이 뚝 잘라질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전혀 확신을 못 하겠습니다.

 

(제가 보아 왔던 포르노라는 것과 민노씨가 보아오신 포르노라는 것이 너무나 다른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저는 민노씨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그러한 표현물을 접하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접해왔던 포르노들은...으음...)

 

 

마지막 글에 대한 민노씨의 지적에는 제 표현의 미숙에 대해 사과드릴 수밖에 없겠네요. 다만, 그 글 이전에 전 분명히 '포르노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의견을 올렸습니다.

 

민노씨가 말하는 '문화적 상징물로써의 포르노'라는 것은 전 이미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일본의 로망포르노라든지, 비디오방마다 잔뜩 꽂혀있는 애로비디오라든지, 또는 윗 글에서 얘기한 바와 같은 여러 영상물이 이미 구원해주고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포르노에 대한 억압적 시선이 강력해지는 것과 동시에 메인스트림의 영상물에서 성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시선은 더욱 더 관대해지고 있습니다. 민노씨가 말씀하시는 문화적 상징의 포르노들은 이렇게 더욱 관대해지는 시선에 의해 계속해서 빠져나오고 있고, 아직 포르노라는 멍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매춘'이라는 영화가 처음 개봉되었을 때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가져왔습니다. 지금은 누구도 그 정도의 성적 표현을 가지고 문제삼지 않습니다.

 

민노씨는 아마도 이러한 '유의미한 어떤 함의 속에 성적 표현을 슬쩍 끼워넣는'형태의 성적표현의 자유만이 아닌 '순수한 성적 자극만을 위한' 영상 또는 이미지에 대한 해방을 얘기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범죄'는 아닌). 이에 대해서 저는 이미 그러한 것들은 주류로 나와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주로 외국 사례이긴 하지만, 이런 것들은 정상적으로 수입되고 유통됩니다. 국내에서 그런 것들이 안 만들어지는 이유는 '안 팔리기' 때문이지 '못 만들기'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노씨의 글은 "포르노와 패미니즘"입니다. 어떤 패미니즘이 포르노 전체를 억압한다, 그러나 포르노 중에는 억압받지 않아도 될 것들이 존재한다. 이것이 해당 글의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저는 그 어떤 패미니즘의 입장에서 모든 포르노를 억압해야 한다, 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라고 얘기합니다. 이유는 민노씨가 어떤 포르노는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될 수 있어야 한다, 라고 말하는 이유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어떤 포르노를 볼 수 있는 자유의지를 말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입장에 대해 동의를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포르노는 범죄다, 라고 말하는 자유의지 역시 허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입장이 있음을 알고 대화하고자 하는 것 아닌가요?

 

민노씨는 저에게 "그런데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없애자'라고 한다면, 그건 대화자체를 포기하고, 선악의 이분법으로 모든 것들을 끝장내겠다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라고 하셨지만, 전 분명히 "옳을 수도 있다"라고 얘기했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이것이 어째서 모든 것을 끝장내자라는 태도인가요?

 

 

- 9월 19일 17:19 추가 : 저의 "옳을 수도 있다"의 의미는 민노씨가 포르노의 접근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토론하자는 입장을 밝혀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글 속에서 "포르노에 대한 모든 거부는 절대로 옳지 않다" 라고 한정짓고 있다고 느꼈으며, 따라서 그것이 "옳을 수도 있다"라는 것까지도 가능성에 포함시켜야 한다라는 제 입장을 전달하고자 한 글이었습니다. 다만, 저의 미숙한 표현으로 인해 제 의도가 전달되지 못함은 분명히 저의 잘못입니다. 저의 미숙한 표현에 의해 기분이 상당히 상하셨을 민노씨께 다시한번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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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9 16:51 2006/09/1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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