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변절자"가 왜 생기나 했더니...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다보니,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군요...

 

이하의 링크들은 병자군의 일터인 '시민의신문'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을 시민의신문 특별취재팀이 정리한 기사들입니다. 기사의 형태를 빌리고 있지만 주관이 깊이 개입된 '공정치 못한' 기사일 수 있습니다. 시간의 역순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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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0 10:29 2006/12/20 10:29

웹 2.0과 막시즘, 그리고 권력구조...

우와... 지금 다시 읽어보니까 논리의 비약이 엄청나군요! 오늘저녁에 좀 더 정리해서 다시 올려야겠습니다...-_-;;;

 

 


 

 몇가지 생각을 보태서 정리를 하기는 했는데... 으음... 처음부터 두 개의 다른 방향의 글을 억지로 하나로 묶어버린 형태의 글이 나와버리는 바람에... 어떻게 정리가 되지 않는군요. 후일 관련된 주제에 대해 보다 깊게 공부하고, 보다 치열하게 고민하여, 보다 정돈된 형태로 새롭게 포스팅하겠습니다... (11.29 22:30 추가)

 


 

 

웹 2.0과 막시즘의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다루는 포스트들이 요즘 많이 눈에 띈다. 웹2.0의 참여와 협업, 집단지성 등의 특징들이 특히 우리나라에서 부당하게 무시되어 왔던 막시즘에 대한 '다시보기'의 틀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는 점에서만큼은, 병자군 역시 상당히 동의하는 바이긴 하다.

 

이러한 흐름에 딴지를 걸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지만, 한번 관점을 달리하여 웹2.0 현상을 바라보고자 한다. 무슨 거창한 글 쓸 것처럼 서두를 잡았지만, 지금까지의 인생 전부를 완벽한 '공돌이'로 살아온 나에게 무슨 거창한 사회학적 비젼이 있을리는 만무, 결국 글의 서두와는 다르게 온전히 딴죽걸기밖에 되지않을, 아니 딴죽조차 되지 못하는 멍청한 글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기는 하다...-_-;;;

 

웹, 더 나아가 인터넷 환경의 함의가 그에 의한 가능성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나타나는 현상들로 시야를 고정하면, 그와 같은 가능성은 고작 탁상공론에서 그치게 될 공산이 커 보인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우선 대표적인 웹2.0 서비스 중 하나인 유튜브의 사례를 가지고 얘기를 시작해보자.

 

유튜브의 경우, 수많은 '근로자'들이 그야말로 '자기실현을 위한 노동'을 정말 즐겁게 수행할 수 있는 대단히 효과적인 생산수단을 창조해내었고, 이 생산수단은 모두에게 공유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고, 그것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이' 성장해나갔다. 그것은 하나의 '코뮨'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유튜브는 16억 5천만달러라는 그야말로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였다. 자, 이 시점에서 돌아보자. 이 엄청난 수익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갔는가?

 

그렇다, 이 엄청난 수익은 그야말로 오롯이 사이트개발자, 즉 '공유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던' 생산수단을 창조한, 그리고 그 생산수단을 '소속원들의 거부감 없이 완벽하게 소유하고 있던' 공장장, 또는 기업주에게 돌아간 것이다.

 

사실 웹이라는 세계에 한한다면, 이미 생산수단은 '모두에게'공유되고 있다. Html 언어는 만일 당신이 관련지식을 가지고 있기만 한다면(이부분이 대단히 중요하다!!! 관련지식조차 없다면, 당신은 그냥 '바보'취급받을 뿐이다!!!) 얼마든지 그것을 사용해서 유튜브 아니라 유튜브 할아버지라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유튜브 이후 이와 유사한 형태의 서비스들이 속속 시장에 나타났다.)

 

11.29 20:57 추가

사실 유튜브가 과연 생산수단인가, 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동영상 UCC를 만들기 위해서는 웹캠이든 뭐른 아뭏든 동영상 녹화장치, 편집 프로그램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그것을 웹 상에서 유통이 가능한 상품으로 포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서버공간과 Html지식, 뭐 그런 것들이다. 이 '유통'을 보다 쉽게 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 유튜브이다. 즉 유튜브는 유저가 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게 해 준 도구라기보다는 "유통"을 할 수 있게 해 준 도구이고, 단지 생산에 도움을 주는 것은 2차 기능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생각의 근거가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유튜브와 비슷한 컨셉의 동영상 업로드사이트는 이미 많이 존재하지만 유튜브만큼 큰 성공을 거둔 경우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단지 "생산수단"의 문제일 뿐이라면, 같은, 또는 더 좋은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던 다른 서비스들은 왜 선택받지 못했는가, 에 대한 해답을 내기 어려워진다.

(또 다른 관점에서는 유튜브의 동영상UCC를 제작하는 생산수단은 공유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바로 그 UCC를 생산하는 생산수단 그 자체를 생산할 수 있는 생산수단은 아직 공유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또 그것을 생산하는 생산수단, 또 그것을 생산하는 생산수단, 하는 식으로 올라가 보면, 그 정점에는 아주 확고하게 생산수단을 틀어쥐고 있는 '빅브라더'가 존재하고 있다, 라고 하는 내용이 밑에 소개된 "인터넷 권력전쟁"이라는 책을 읽으며 느낀 병자군의 감상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러한 무수한 유사서비스들 중 유튜브만이 유의미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을까?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은 역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발적인 노동'을 순순히 수행하는 그 엄청난 사용자의 수일 것이다. 조금 극단적인 어법으로 얘기하자면, 유튜브가 선택된 이유는 '동영상업로드서비스 중 가장 효과적인 노동력 착취구조를 실현해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이 위의 새로 추가된 부분, 즉 유튜브는 "유통망"을 장악했기 때문에 유의미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라는 부분과 연결괴는 부분이다. 11.29. 21:04 추가)

 

유튜브가 만일 기업매각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스스로 수익을 내고, 스스로에게도 '유의미할 만큼의' 수익을 제외한 잉여수익을  참여자들에게 공정한 룰에 의해 '각 참여자에 대해 유의미할 만큼' 분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졌다면 가능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시스템이 과연 가능할까?

 

웹에 대한 장미빛 얘기를 하면서 가장 자주 빠뜨리는 부분이 이 "유의미한 수익 창출"에 있다고 병자군은 생각한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재화도 확보할 수 없다면,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위의 가로친 또다른 관점의 부분에서는, 이미 이 부분의 생산수단 독점은 유의미한 수익을 창출하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기존의 권력자가 선심 쓰듯이 그냥 던져준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웹2.0을 표방하는 서비스 치고 기업매각이나 컨퍼런스 외의 뚜렷한 수익모델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11.29 21:08 추가)

 

이 유튜브의 사례는 '매우 특별한 예외'가 아니다. 사실 인터넷 사회는 그 자체로 이미 이러한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병자군의 생각이다.(이 부분에서 가장 논리의 비약이 심하다고 느끼실 텐데, 유통의 애기에서 갑자기 내 생각이 두번째 관점인 "상위의 생산수단"으로 옮아갔기 때문입니다. 지금와서 논리를 맞춰볼려고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지만,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안 잡히네요. 후일 기회가 될 때 관련된 생각을 다시 잘 정리해서 새로 포스트를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이 문장부터 윗쪽과 아랫쪽은 완전히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11.29 22:14 추가)

 

인터넷은 근본적으로 기술기반의 환경이다. 이 기술을 장악하는 자가 이 세상을 온전히 지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해 온 어떤 지배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훨씬 더 철저하게.

 

(관련된 보다 자세한 논의는 잭 골드스미스, 존우 공저의 "사이버세계를 조롱하는 인터넷 권력전쟁"이라는 책을 참조하시길)

 

적어도 인터넷 사회에 있어서 이 지배자는 지금까지 대단한 관용을 보여 왔다. 그러나 앞으로도 과연 그럴 것인가? 만일 이 지배자가 어느 시점에서 강력한 통제권을 행사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근본적으로 기술 기반인 이 사회는 간단한 기술적 조치만으로도 너무나도 손쉽게 지배되어 버린다.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모든 권력이 한 군데에 집중된 독재권력의 사회이다. 독재자의 성향에 따라 이 사회는 무한한 자유의 공간일 수도, 완벽한 통제의 공간일 수도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금지검색어를 나라에서 지정/관리하며 위반자를 순식간에 색출해 낼 수 있는 가까운 중국의 인터넷환경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과연 자유주의자들이 흔히 말하는 '온전한 자유의 공간'이라는 것이 가능할 것일까? 병자군은 어떤 사회이든지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책임량의 총합은 항상 일정하다는 "책임량 일정의 법칙"을 믿고 있다.

 

(이 '책임량 일정의 법칙에 동의한다고 하면,) 인터넷사회 역시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책임량의 총합은 일정할 것이다. 그러나, 위에 예를 든 '인터넷 권력전쟁'을 읽어본다면, 또는 초기 웹의 태동과 관련한 권력이 어떻게 이동했는지에 대한 좋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이미 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책임량의 상당부분이 한 곳으로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회 구성원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책임량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은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병자군 같은 자유주의자들이 이 세계를 찬미하고, 칭송하는 것이다. (라고 병자군은 생각한다.) 그리고 그 책임자는 그 엄청난 책임을 충분히 감당하기 위해 엄청난 권한을 가질 수밖에 없다. 권한이 없으면, 책임을 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위에서는 '권한'이라는 좋은 표현을 사용했지만, 이는 본질적으로 '권력'과 다를 것이 없다. 즉, 인터넷 사회는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어떠한 사회 구조보다도 훨씬 더 권력집약적인 구조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 가장 이상적인 대안은 이 집중된 책임(권력)을 적절히 분산시키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책임(권력)의 분산은 필연적으로 효율성의 감소를 가져오게 된다. 인터넷 사회에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는 그 무한한 듯 보이는 자유와 함께 비할 데 없이 깔끔한 효율성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권력)의 분산은, 자유도의 하락과 효율성의 감소를 동시에 가져옴으로써 인터넷 사회의 매력을 오히려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물론 어느정도까지 권력을 분산하느냐, 그 정도에 따라서 자유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방종을 제거한과 동시에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만큼의 효율성의 감소라는 황금분할점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초기 웹의 실패 이후 웹 2.0의 등장을 이러한 황금분할점을 찾기 위한 노력의 구체화된 모습이라고 병자군은 생각한다. 이러한 황금분할점을 찾아내기 위한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각 행위 주체간의 끊임없는 토론 외에는 생각이 나지 않는 것 역시 사실이긴 하지만...

 

 


 

 

생각의 단초를 제공해준, 너무나도 고마운 포스트들...

 

고민하고 토론하고 사랑하고 : 웹2.0과 마르크스가 마침내 만났다.

 

흠흠넷 : web2.0과 자연선택

 

숙희네 : web2.0과 공산주의

 

태우's log - web2.0 & beyond : 공산주의와 디지털 공공재

 


 

해당 논의와 관련하여 태우님이 또 다른 글을 올려주셨군요. 로렌스 레식교수의 지난 8월 글의 번역이 주 내용인 이 글 역시 관련된 논의를 보다 풍부하게 할 수 있을 듯 하여 여기 소개합니다. (11.30 09:19 추가)

 

태우's log - web2.0 & beyond : 웹2.0은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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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9 13:49 2006/11/29 13:49

또 다른 블로그를 열었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블로그 하나도 재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뭔놈의 새끼블로그냐... 하고 욕하실 분들이 많으시...ㄹ 리가 없겠군요. 워낙 방문자 없는 블로그다 보니...-_-;;;

 

주로 온라인언론에 대해, 사이트 디자인 및 UI분석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서 언론이 움직여야 하는 길은 어디인가, 에 대해 고민해보는 블로그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명색이 기획자라고 하는 놈이 요 최근 너무 게을러져 버렸다는 생각밖에 안 들기도 하고... 새 술은 새 부대에 한번 담아보고 싶다라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설치형 블로그'라는 놈을 한번 사용해 보고 싶다라는 (어떤 의미에서의) 지름신 강림에 의한... 뭐 그러저러한 복합적인 이유입니다.

 

http://psychoic.dothost.co.kr 입니다. 처음 계획은 도메인도 사서 포워딩을 할려고 했는데... 카드가 막히는 바람에...-_-;;;

 

혹시라도 이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위의 허접블로그에도 이따금 들어와서 둘러봐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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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8 17:06 2006/11/28 17:06

논의를 끝장내고자 한 말이 아닙니다.

이 글은 민노씨네[PP]포르노와 페미니즘(2)에 관련된 글입니다.

 

민노씨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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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구성애의 아우성에서 구성애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포르노 무조건 보지 못하게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포르노가 판타지라는 것을,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취지의 얘기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라는 것이지요. 이 말을 뒤집어놓고 얘기하면 포르노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 포르노는 선택의 문제일 수 있지만,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완벽한 범죄교과서가 될 수 있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누가 그러한 사실 (포르노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면, 모든 사람에게 차단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고 얘기합니다. 포르노가 거짓임을 아는 사람이 포르노를 보지 못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보다는 포르노가 거짓임을 모르는 사람이 포르노를 봤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가 더욱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신병자).

 

내가 가장 위험하게 생각하는 바가 이런 관점이다. 이는 '검열'하는 자의 사고방식과 그 구조에서 동일하다. 이는 국가의 공식적인 권력을 무제한으로 확대하는 논리구조이다. 있지 않고, 아직 검증되지 않은 위험을 '있을 지 모른다'라는 이유만으로 모두 폐기처분하고, 그 접근 자체를 막는다는 건 전제적인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그러니

a. 이것은 위험할지도 모른다.
b. 이것을 아는 자에게는 위험하지 않고, 이것을 모르는 자에게는 위험하다.
c. (그러니까 있을지 모를 그 위험을) 모두 없애자.

범죄임에 분명한 포르노는 위험'했'다, 그 존재 자체로 범죄였고, 반사회적 표징이다. 그 때는 국가공권력이 발동해서 '응징'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합법의 가면을 쓰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 사회에 돌아간다. 그렇지만, 비범죄화되어도 좋을 '문화적 상징물로서의 포르노'가 나는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고, 그것은 위험하지 않을 뿐더러, '유익하기까지' 하다고 나는 주장하고 있다(68년의 보고서 및 여성주의 일각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포르나).

 

그 비범죄화되어도 좋을 포르노의 표준을 마련하기 위해 좀더 많은 사회의 성원들이 합리적으로 대화하고, 토론하자는 것이 이 글의 취지다.

 

그런데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없애자'라고 한다면, 그건 대화자체를 포기하고, 선악의 이분법으로 모든 것들을 끝장내겠다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A. 칼은 위험할지도 모른다.
B. 이것을 범죄에 쓰면 위험하고, 요리에 사용하면 위험하지 않다.
C. (이것이 범죄에 흉기로 쓰일수 있을 가능성을 차단하려면) 칼을 모두 없애자.

그 칼을 유태인으로, 아랍인으로 바꾸자.
그게 나찌고, 부시다.

 

당신/우리에게 묻자.

이것이 위험하다/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행사되는 권력은 누가 부여했는가?
그 권력의 작용은 합리적, 해방적인가, 아니면 억압적인가?

당신/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우선 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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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분에 있어서 저는 민노씨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a. 이것은 위험할지도 모른다.
b. 이것을 아는 자에게는 위험하지 않고, 이것을 모르는 자에게는 위험하다.
c. (그러니까 있을지 모를 그 위험을) 모두 없애자.

이 명제가 위험한명제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민노씨의 위의 명제가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논거로

 

A. 칼은 위험할지도 모른다.
B. 이것을 범죄에 쓰면 위험하고, 요리에 사용하면 위험하지 않다.
C. (이것이 범죄에 흉기로 쓰일수 있을 가능성을 차단하려면) 칼을 모두 없애자.

그 칼을 유태인으로, 아랍인으로 바꾸자.
그게 나찌고, 부시다.

 

 

라는 예시를 들어 주셨습니다.

 

저는 완전히 같은 방법으로 반례를 들어 보이고자 합니다.

 

1. 핵폭탄

 

a. 핵폭탄은 위험할지도 모른다.

b. 핵폭탄은 전쟁억지의 효과를 위해서 사용한다면 공익에 기여하지만, 전쟁의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대단히 위험하다.

c. (이것이 전쟁의 목적으로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려면) 핵폭탄을 모두 없애자

 

2. (일반인의)총기소지

 

a. (일반인의)총기소지는 위험할지도 모른다.

b. 총기소지는 개인이 자위의 수단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용하나, 과잉방어의 수단으로 사용되었을 경우 타인의 생명을 순간적으로 뺏을 수 있으므로 위험하다.

c. (이것이 과잉방어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총기소지를 금지하자.

 

3. 신호등 준수

 

a. 신호등 준수는 위험할지도 모른다.

b. 신호등 준수는 보행권 확보라는 면에서는 필요하지만, 자동차의 정지, 발진횟수를 늘려 환경오염물질을 많이 나오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전 인류의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위험하다.

c. (이것이 환경오염으로 인한 인류 및 생물의 생존권을 위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신호등을 지키지 않게 하자.

 

4. 미군의 지속적인 주둔

 

a. 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은 위험하다.

b. 미군의 주둔으로 인해 주둔지 부근의 경제활성화 및 국방비의 감소 등 긍정적 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으나, 미군 주둔으로 인해 우리 민족이 받은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

c. (미군 주둔으로 인해 받아왔던 피해를 더 이상 이어나가지 않기 위해서) 미군 주둔을 금지하자.

 

 

 

이러한 (어떻게 보면 궤변으로 보일 수도 있는) 명제들을 통해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a. 이것은 위험할지도 모른다.
b. 이것을 아는 자에게는 위험하지 않고, 이것을 모르는 자에게는 위험하다.
c. (그러니까 있을지 모를 그 위험을) 모두 없애자.

 

이 명제 (또는 이러한 사고방식) 자체가 위험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이 생각은 위험한 것일수도,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경우에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논리전개방식을 따랐는지 아닌지'가 아닌 '이것'의 범위를 어떻게 할 것인지' 입니다. 즉, 위에 예를 드신 나찌나 부시의 오류는 '이것'의 범위를 잘못 지정했기 때문에 생긴 오류이지 위의 명제를 따랐기 때문에 생긴 오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민노씨의 '문화적 상징으로써의 포르노와 그것에 대한 자유로운 감상의 권리' 역시 '어디까지를 문화적 상징의 포르노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와 직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가 나름 정의하고 있는 '이것'의 범위를 이용하여 '모든 포르노는 범죄다. 그렇기 때문에 막아야 한다.'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고요.

 

저는 "대화자체를 포기하고, 선악의 이분법으로 모든 것들을 끝장내겠다는 태도"를 가지고 이 얘기를 한 것이 아닙니다. (제 글이 많은 논리가 생략되어 있고, 구분하기 힘들게 쓰여졌다는 부분은 저도 인정합니다.)

 

비겁한 변명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되신다면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분명히 제 글쓰기가 미숙한 것은 사실이고, 그 때문에 저와 더 이상 의견을 교환하고 싶지 않다고 하신다면 다시한번 제 표현의 미숙함을 사과드리고 더 이상의 의견교환은 하지 않겠습니다. 공개된 자리에서 의견 말씀하시기 곤란하시면 e-mail을 이용해 주세요. psychoic@naver.com 입니다.

 

 

마지막으로 세가지 물음에 대한 답변입니다.

 

이것이 위험하다/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자는 누구인가?

 

- 민노씨의 글 중에 이 대목이 있죠. "그 비범죄화되어도 좋을 포르노의 표준을 마련하기 위해 좀더 많은 사회의 성원들이 합리적으로 대화하고, 토론하자는 것이 이 글의 취지다." 이 글 속에 정답이 나와 있군요. 그것을 판단하는 자는 바로 "합리적으로 대화하고 토론하는 사회의 성원"입니다.

 

그리고 그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행사되는 권력은 누가 부여했는가?

- 바로 윗 답변 속에 또한 제가 생각하는 정답이 있군요.  "합리적으로 대화하고 토론하는 사회의 성원"입니다.


그 권력의 작용은 합리적, 해방적인가, 아니면 억압적인가?

- 얼마나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 그 결론이 도출되느냐에 달려 있겠죠? 교통법규의 경우는 분명히 제약임에도 불구하고 그 권력의 작용은 충분히 합리적이고 해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겠죠. 굳이 답변을 하라면 "그때그때 다릅니다." 그리고 그 권력이 억압적으로 행사되지 않도록 "합리적으로 대화하고 토론하는 사회의 성원"이 그러한 위임된 권력을 제어할 수 있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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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1 10:57 2006/09/21 10:57

민노씨의 PP에 붙이는 글...

이 글은 민노씨네 [PP] 포르노와 페미니즘 (2)와 관련된 글입니다.

 

민노씨의 성실한 답글 감사합니다. (너무 답글이 없어서 혹시 잊어버리신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우선, 따옴표의 일방적인 사용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인용한 부분의 문맥에서, 민노씨는 '겉멋든 유사페미니스트'를 비판하는 어휘로 '그렇다면 페미니즘과 포르노는 쌤쌤이다'라고 표현해 주셨습니다.

 

9월19일 20:59 추가 : 따옴표 얘기가 이 부분이 아니었군요... 이런... 아무래도 진짜 난독증인가...

'과시적 악세사리로써의 페미니즘'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여기에 더해 민노씨의 PP가 "과시적 악세사리로써의 포르노 옹호"가 되지 않길 진심으로 바라마지않습니다. "페미니즘이 포르노와 쌤쌤이다" 라는 과격한 명제가 거꾸로 "포르노 옹호는 정말 여성을 배려하기 때문이다."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정신병자)

"과시적 악세사리로써의 포르노 옹호" 와 "포르노 옹호는 정말 여성을 배려하기 때문"에 쓰인 쌍따옴표는 강조를 위해 쓰여진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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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씨의 본문 글 중에서

 

Ⅳ. 유사 페미니즘 ; 혹은 장식적, 과시적 페미니즘, 또는 악세사리 페미니즘.  

시각, 2006년 9월 8일 오후 6시 21분.
장소, 대한민국 서울의 어떤 옥탑방 책상 위 창백한 모니터 속.

 

현재 스코어를 나는 거칠게 '상상적으로'('상식적' 아님) 추론한다.

페미니즘은 흔히 '과시적' 악세사리로 전락하고 있다.


그리고 그건 천박한 비교 감정과 과시욕을 '실천적으로' 학습 시키는 '싸이월드'류의 문화에 포위되어 있다. 페미니즘이 삶에 있어서 뚜렷한 동기와 실천적인 에너지를 우리에게 부여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건 그저 '나는 페미니스트다'라는 막연한 뿌듯함을 우리에게 줄 뿐이다.

 

페미니즘은 자신의 감정적인 공격 성향을 '교양적으로' 포장하기 위한 '기술'로 흔히 활용된다. 즉, 내 추론에 의하면, 과시적으로 '여성'이라는 '상품'을 근사하게 포장한 '유사' 페미니스트들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페미니즘 그 자체가 이제 상품으로서의 여성을 치장하는 화장술이 되는 경우 그건 '유사 페미니즘'이다. 이 놀라운 시대에 그 유사 페미니스트들은 자기 욕망이 어떻게 조직되고, 유통되는지를 의심하지 않고, 그렇게 자부심 만빵 충천하고 나서 포르노를 비난한다.

 

나는 현재의 성문화, 성의식은 이율배반의 극단적인 구조화라고 생각한다. 이론 따로, 실천 따로다('포르노가 이론이라면, 강간은 실천이다'라고 주장하는 페미니즘은 그 '주장'과 '가설'이 어떤 문맥에서 나왔는지부터 살펴야할 것이다. 이 문제는 후술). 남/녀 대결적 구도 하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골적인 상업적 이슈 '된장녀'논란이 난 정말 짜증난다. 그 한가운데 '유사 페미니즘'의 감정적인 뽀얀 갑옷 입은 무사들이 있다. 그들 역시, 나처럼, 자본주의의 포로이다. 그리고 그들은 '동방신기'에 열광하는 소녀들처럼, '페미니즘'에 열광한다. 그리고 '섹스&시티'의 풍경을 그리거나, '무슨 무슨 학술잡지'를 인용하는 거다.

 

그런데 난 정말 그들을 모르겠다. 그들의 교양미 철철 넘치는 '남 나라 이야기'들을 나는 모르겠다. 그들이 즐겨 가는 무슨 무슨 세미나에서 나오는 그 머리 아픈 이야기들이 어떻게 그들의 삶에 스며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철없는 유사 페미니즘의 과시적이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행태들 언술들. 그것들 모두 이 아비규환에 가까운 모순에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윤락녀들이 짭새보다 더 질색하는게 여성단체 사람이라는 걸 들은 바 있" 다고, "본질적으로 그 자칭 페미들은 남성우월주의자들이랑 별다른게 없다"고 누군가(형준군)가 나에게 진술한다.

 

겉멋든 유사 페미니스트들에게는 페미니즘의 그 종이 몇장 지식이 마치 스타벅스 커피로 상징되는 동경으로서의 라이프 스타일 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신의 상품성을 치장하거나 자신의 억압된 욕망을 위로해주는 일종의 자위용 도구.

 

그렇다면 페미니즘은 포르노와 쌤쌤이다.

 

자기 목소리가 아니라 남 이야기들의 조합으로 말하는, 어떤 유사 페미니스트들을 나는 안쓰럽게 바라본다. 그는 자기 욕망을 '타인의 입'을 통해 말한다. 그건 욕망을 흉내내는 방식이지, 자기 욕망을 스스로 결정하는 방식은 아니다. 거기에는 선택이 없고, 그저 수동적인 학습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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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문제의식은 간단합니다. 언제부턴가 페미니즘이 과시적 악세사리로 전락하고 있다라고 거칠게 추론하시는 것처럼 민노씨의 문제의식인 포르노 옹호 역시 - 적어도 제가 간여하고 있는 어떤 곳에서는 - 과시적 행위가 되어 가고 있다고 저는 느낍니다.  민노씨의 다른 글들도 계속 접해왔고 (직접 개입한 것은 지금이 처음입니다만 지금까지 쭈욱  읽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사람은 그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겠구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만에 하나라도 그러한 과시적 행위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한 글을 쓴 것입니다.

 

음란의 부분에 대해서는, 음모가 노출되었음에도 정상적인 유통망을 통해서 발매되는 영상매체들이 이미 존재합니다. (제가 본 것만 해도 카트린느 브레이야의 작품들, 캣우먼, 쟈크 리베트의 누드모델...등 여러 작품이 있습니다.) 또한 가스파 노에의 '돌이킬 수 없는'같은 작품을 보면 여성을 지하도에서 때려 눕히고 강간하는 모습을 10여분 이상 계속 보여줍니다. 결국 포르노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은 음모, 음경이 노출되었는지의 여부보다는 해당 영상물의 시선이 어떠한가에 더욱 크게 좌우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민노씨는 범죄화되어야 하는 포르노의 범위를

 

- '미성년' 출연(그 자신의 동의 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불문)
- 출연자 동의 없는 강압적 상태의 연출.
- 몰래 촬영 등등.

 

이라고 일단 거칠게 정의하셨는데, 그렇다면 미성년임이 명백한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하는 만화에 대한 견해는 어떠하신가요? 흔히 말하는 '동안'의 성년 여성을 미성년으로 꾸며서 촬영하는 성적 영상물에 대해서는 어떠하신가요? 강압적 상태를 '연출한' 성적 표현물에 대해서는 어떠하신가요? 저는 그러한 것을 구분하는 기준이 그렇게 무우 자르듯이 뚝 잘라질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전혀 확신을 못 하겠습니다.

 

(제가 보아 왔던 포르노라는 것과 민노씨가 보아오신 포르노라는 것이 너무나 다른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저는 민노씨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그러한 표현물을 접하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접해왔던 포르노들은...으음...)

 

 

마지막 글에 대한 민노씨의 지적에는 제 표현의 미숙에 대해 사과드릴 수밖에 없겠네요. 다만, 그 글 이전에 전 분명히 '포르노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의견을 올렸습니다.

 

민노씨가 말하는 '문화적 상징물로써의 포르노'라는 것은 전 이미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일본의 로망포르노라든지, 비디오방마다 잔뜩 꽂혀있는 애로비디오라든지, 또는 윗 글에서 얘기한 바와 같은 여러 영상물이 이미 구원해주고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포르노에 대한 억압적 시선이 강력해지는 것과 동시에 메인스트림의 영상물에서 성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시선은 더욱 더 관대해지고 있습니다. 민노씨가 말씀하시는 문화적 상징의 포르노들은 이렇게 더욱 관대해지는 시선에 의해 계속해서 빠져나오고 있고, 아직 포르노라는 멍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매춘'이라는 영화가 처음 개봉되었을 때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가져왔습니다. 지금은 누구도 그 정도의 성적 표현을 가지고 문제삼지 않습니다.

 

민노씨는 아마도 이러한 '유의미한 어떤 함의 속에 성적 표현을 슬쩍 끼워넣는'형태의 성적표현의 자유만이 아닌 '순수한 성적 자극만을 위한' 영상 또는 이미지에 대한 해방을 얘기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범죄'는 아닌). 이에 대해서 저는 이미 그러한 것들은 주류로 나와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주로 외국 사례이긴 하지만, 이런 것들은 정상적으로 수입되고 유통됩니다. 국내에서 그런 것들이 안 만들어지는 이유는 '안 팔리기' 때문이지 '못 만들기'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노씨의 글은 "포르노와 패미니즘"입니다. 어떤 패미니즘이 포르노 전체를 억압한다, 그러나 포르노 중에는 억압받지 않아도 될 것들이 존재한다. 이것이 해당 글의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저는 그 어떤 패미니즘의 입장에서 모든 포르노를 억압해야 한다, 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라고 얘기합니다. 이유는 민노씨가 어떤 포르노는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될 수 있어야 한다, 라고 말하는 이유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어떤 포르노를 볼 수 있는 자유의지를 말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입장에 대해 동의를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포르노는 범죄다, 라고 말하는 자유의지 역시 허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입장이 있음을 알고 대화하고자 하는 것 아닌가요?

 

민노씨는 저에게 "그런데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없애자'라고 한다면, 그건 대화자체를 포기하고, 선악의 이분법으로 모든 것들을 끝장내겠다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라고 하셨지만, 전 분명히 "옳을 수도 있다"라고 얘기했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이것이 어째서 모든 것을 끝장내자라는 태도인가요?

 

 

- 9월 19일 17:19 추가 : 저의 "옳을 수도 있다"의 의미는 민노씨가 포르노의 접근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토론하자는 입장을 밝혀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글 속에서 "포르노에 대한 모든 거부는 절대로 옳지 않다" 라고 한정짓고 있다고 느꼈으며, 따라서 그것이 "옳을 수도 있다"라는 것까지도 가능성에 포함시켜야 한다라는 제 입장을 전달하고자 한 글이었습니다. 다만, 저의 미숙한 표현으로 인해 제 의도가 전달되지 못함은 분명히 저의 잘못입니다. 저의 미숙한 표현에 의해 기분이 상당히 상하셨을 민노씨께 다시한번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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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9 16:51 2006/09/19 16:51

평택... 결국은 나도 공범일 뿐이다...

평택 지상중계 - 시민의신문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가 이 나라 국민이라는 사실이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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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3 11:24 2006/09/13 11:24

포르노와 패미니즘, 병자군의 생각

이 글은 민노씨네[PP] 포르노와 페미니즘에 관련된 두번째 글입니다.

 

1. '과시적 악세사리로써의 페미니즘'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여기에 더해 민노씨의 PP가 "과시적 악세사리로써의 포르노 옹호"가 되지 않길 진심으로 바라마지않습니다. "페미니즘이 포르노와 쌤쌤이다" 라는 과격한 명제가 거꾸로 "포르노 옹호는 정말 여성을 배려하기 때문이다."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2. 이채님의 글을 비판한 부분에서는, 이채님이 말하는 포르노와 민노씨가 말하는 포르노는 저에게는 같은 것이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이채님의 글 안에 이미 들어있는 표현대로, 이채님이 말하는 포르노는 "강간을 비롯한 수많은 폭력을 이상적 성행위나 남자다운 행동으로 그려내는 것" 이고 이것은 민노씨의 글 속에서는 "범죄의 영역에 들어간 포르노"라고 저에게는 읽힙니다. 또는, 민노씨가 파악하는 "범죄"와 이채님이 파악하는 "강간을 비롯한 폭력"의 범위가 남과 여라는 차이에 의해서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는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3. 80년대의 보고서와 68년의 보고서가 다은 이유는,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10년이라는 시대의 변화 역시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68년 보고서의 포르노와 80년대의 포르노가 같은 것이었을까요? 포르노의 (탐닉적)소비자인 제 경험으로 얘기한다면, 전혀 다른 것입니다. 68년의 보고서는 그 이전 억압되고 많이 개방되지 않은 시절의 성적 표현물을 대상으로 하고, 80년대의 보고서는 70년대의 반문화열풍 속에서 생산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개방된 성적 표현물을 대상으로 합니다. 물론 사회 분위기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분석 대상 역시 표현이나 소재에서 결코 같은 것이라고 보기 힘든 것인 역시 사실입니다.

 

4. 특히 한국에서 이러한 반 포르노 얘기가 나오는 것은 한국의 독특한 문화적 현상에 기인하는 바도 클 것입니다. 조금만 웹을 뒤져보면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이 성적 표현물은 그야말로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외국이요? 여기저기 온통 널려 있는 듯 보입니다만 막상 맘 먹고 접근할려고 하면 한국만큼 쉬운 곳이 없습니다.) 또한 한국에서 주로 보이는 현상인데, 'XX대학 대학생 XXX양 충격'이니 '연예인 XXX몽땅...' 이니, 특정 직업군에 대한 범죄적 성향의 페티시즘이니, 지위 또는 힘을 이용한 강압적 성행위니... 하는 것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곳 역시 한국입니다. 한국의 포르노소비문화는 (제가 느끼기에는) 순수한 성적 욕망의 해소라기보다는 어떠한 억눌린 사회 욕망에 대한 비뚤어진 분출구로써 기능하는 듯 보입니다. 이러한 문화적 환경에 항상 노출된 여성이기 때문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 테고, 그렇기 때문에 민노씨 역시 "모든 포르노가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이겠지요. 만일 그 얘기가 보다 올바르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하신다면, 민노씨가 옹호하고자 하는 포르노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분명히 밝히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글 마지막에 "대화를 통해 그 구별을 명확히 하길 바란다고 하셨는데, 문제제기를 하시는 쪽에서 먼저 '난 그 범위를 이러저러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논의를 샛길로 빠지지 않게 하는 정확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민노씨의 글을 5번째 읽고 나서야 '혹시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게 이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난독증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전 민노씨께 질문 드리고자 합니다. 민노씨가 생각하는 "범죄가 아닌" 포르노의 범위는 어디까지라고 생각하십니까? 전 개인적으로 지금 포르노라고 불리는 거의 모든 부분은 범죄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전 엄청난 범죄자라는 얘기입니다...-_-;;;) 억눌린 성적 욕망의 해방을 위한 포르노라면, 메인스트림의 범위에 있는 영상매체만으로도(영화 - 여기에는 7~80년대 일본의 로망포르노, 한국의 애로비디오까지를 포함합니다.)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성애의 아우성에서 구성애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포르노 무조건 보지 못하게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포르노가 판타지라는 것을,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취지의 얘기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라는 것이지요. 이 말을 뒤집어놓고 얘기하면 포르노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 포르노는 선택의 문제일 수 있지만,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완벽한 범죄교과서가 될 수 있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누가 그러한 사실 (포르노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면, 모든 사람에게 차단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고 얘기합니다. 포르노가 거짓임을 아는 사람이 포르노를 보지 못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보다는 포르노가 거짓임을 모르는 사람이 포르노를 봤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가 더욱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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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0 01:55 2006/09/10 01:55

포르노프로젝트, 황금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까?

이 글은 민노씨네[PP] 포르노와 페미니즘에 관련된 글입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민노씨와 박형준님의 공동 프로젝트인 포르노 프로젝트에 대한 정신병자군의 생각입니다.

 

 

1. 우선 고백을 하자면, 나라는 인간은 대단히도 포르노를 즐깁니다. 한때 나 스스로가 '나라는 인간은 진짜 상종못할 변태가 아닐까?'라고 생각도 했었고, 지금도 가지고 있는 생각은 '내 속의 이 성적 취향이 결혼 (9월9일 15:40 추가 - 결혼만이 아닌, 성매매든 뭐든 아뭏든 어떠한 수단을 통해서든지!!!)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다른 여성에게 투사되는 것은 그야말로 능지처참을 당해도 할 말 없는 범죄이다. 그러므로 나라는 인간은 결혼을 해서는 안 될 인간이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을 정도로 범죄적인 성적취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2. 포르노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만들고자 하시는 노력 자체에 대해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개인적인 바람입니다만 그것이 새로운 소비자본주의의 이론 공급의 장으로 활용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군요.

 

3. 제도로부터의 완벽한 해방, 자본주의/소비주의의 뿌리를 흔들기 위한 목적으로 서구에서 60년대부터 크게 일어났던 '반문화운동'은 현재 완벽하게 자본주의의 공고화를 위하여 쓰여지고 있습니다. 히피의 취향은 히피상품의 유행을 낳고, 생태주의의 주장은 유기농산물이라는 새로운 자본의 거대시장을 열어재켰으며, 모든 것을 혼자 만들어 생활하겠다는 자급자족의 외침은 거대한 DIY자본시장을 위한 최적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두 분이 하시는 프로젝트 역시 그러한 위험성이 다분히 존재합니다. '범죄의 영역에 다다르지만 않는다면, 포르노를 감상하는 것이 뭐가 문제란 말인가, 포르노 감상의 자유도 주어져야 한다' 라는 명제에서 특히 그러합니다. 물론, 글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포르노는 이론이고 강간은 실천이다'라는 보고서가 조작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 분이 말씀하시는 '포르노가 오히려 성범죄의 감소를 가져왔다'라는 보고서 역시 거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저만의 기우일까요?

 

4. 박형준님의 글 중에 '억압아면 할수록 오히려 더욱 호기심이 생긴다' 이 명제가 '그러므로 청소년의 포르노접근 역시 그 자신의 의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로 흘러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논리는 더욱 확장되어서 '청소년의 자유로운 성행위 역시 허용되어야 한다.' 라든지 '원조교제는 청소년의 자발성에 의한 것이므로 죄가 되지 않는다'라는 위험한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두 분이 그러한 명제까지 도달할 리가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만, 그저 기우일 뿐이라고 저의 우려를 간단하게 묵살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또한 그러한 일정한 '선'을 긋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점, 또는 그러한 기준점을 도출하기 위한 일정한 객관성을 가지고 있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 의해 합의된' 지표가 나올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5. 아직 결론도 나오지 않은 프로젝트에 대해서, 문제제기 부분만 가지고 성급한 단정을 내린 저의 무례함 역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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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9 15:30 2006/09/09 15:30

페미와 마쵸논쟁... 살짝 참견중...

이 글은 tanato 님의 블로그 404found마이클럽 사태를 바라보는 또다른시각과 관련한 정신병자군의 생각입니다.

 

반박이 아니라... 그냥 생각입니다만... 이 글 중간에 이런 표현이 있죠.

 

여기서 다시 화제를 바꿔보자.

누구는 남자들이 저 이중적이라 말한다.일부몰지각한 여자들의 허튼 소리만 잡고 늘어져서는 이중적이라 매도하고, 올바른 소리를 내는 여성의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것 같다.

고 말이다. 바른말이다. 확실히 올바른 소리를 하는 여자들도 많다.
여성들은 말한다. 왜 몰지각한 꼴통페미들 말만 듣고 왜 온 나라 여성들을 싸잡아욕하냐고, 하지만, 여자 들 중에서 목소리가 큰건 몰지각한 여성들이다. 즉 꼴통페미들이 목소리가 제일크다.
올바른 소리를 하는 여자들은 있을지언정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작다. 꼴통페미들에게 목소리가 묻혀버린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남성들은 가만히 있으면, 꼴통페미의 목소리만 들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여자들은 모두 꼴통페미다. 라는 인식이 박히는것이다.

그러니까,
여성들에게 요구한다. 남자들이 이중적이라 하지 말라. 올바른 소리를 듣지 않고, 여자들이 죄다 꼴통페미다 라고 말을 듣게 한건 여성들 책임이다. 올바른 소리를 왜 못하는가? 아니, 왜 그 올바른 소리를 크게 못 지르는가? 왜 꼴통페미들의 목소리에 올바른 소리가 묻히게 만드는가? 그렇기에 여성들이 괜히 욕을 얻어먹는것 아닌가?



여성에게 남자들이 이중적이라고 하지 말라고, 올바른 소리를 하는 여성들 목소리를 묻히게 한 것은 당신들 책임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이, 남성들 역시 꼴통 마쵸이즘의 목소리만 여성들에게 들리게 한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위의 저 말은 "남"을 "여"로, "패미"를 "마쵸"로 바꾸어 놓고 봐도 전혀 무리가 없는 얘기가 됩니다.


저 또한 남자이기에 tanato님의 글에 심정적으로 동감가는 부분이 있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만, 페미와 마쵸의 논쟁에서 양자 모두 잘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다름"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라고생각합니다.


여성이 한달에 한번씩 생리통을 겪고, 아이를 낳는 남자로써는 짐작도 가지 않는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런데 그게 남자 책임인가요? 육아의 의무 역시 여성에게 있다는 식의 문화가 문제일 것이고, 이 문화는 남성들만 생각을 바꾼다고 해서 해결될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육아의 부담문제는 각 가정들 간의 사정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절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일반화할 수 있을까요?


남성이 가정의 생활을 위해 돈을 벌고(요즘에는 안 드런 경우도 많지만) 군대를 통해 사회와 2년간 격리되는 크나큰 헨디캡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 인간 역시 남자이다 보니) 절절하게 동감합니다. 그런데 그게 여자 책임인가요? 남자가 군대가는 것이 문제라면 지금의 불합리한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로의 전환 모색 등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욱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tanato님의 마지막 말, 심히 공감이 갑니다.


 

서로에게 담을 쌓는짓이 잘하는짓거린가?



 9월 9일 16:21 추가 - 누가 먼저 담을 쌓았냐, 따위의 쓸데없는 소모적 논쟁은 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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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9 13:57 2006/09/09 13:57

나라는 인간은 이러한 타입이었...냐?

1화 : 난 어떤 여신타입이냐?

 

지적이고 까다롭고 콧대 높은 자의 전형, 아테나 여신
지혜의 여신 아테나(Athena). 미네르바(Minerva)의 또 다른 이름. 제우스의 몸에서 태어나 어머니 없이 자란 아테나, 지혜는 물론 무예와 용맹성에서도 무서운 발군의 실력을 보인 독립적이고 강인한 여신. 무적 방패 아이기스(Aegis)의 주인이기도 한 아테나는 거인 팔라스를 죽인 후 그의 가죽을 벗겨 자신의 방패에 씌웠으며, 페르세우스에게 청동 방패를 빌려 주어 괴물 메두사를 죽이도록 도왔다. 아름다움과 지능, 무예를 두루 갖춘 아테나는 모든 여신들 중 가장 강한 자존심을 지닌 여신이기도 하다.

동경하는 가치

hubris, 傲慢, 자신감

 

이상형

"캔디"의 테리우스 와 "X 파일"의 스컬리를 뒤섞어 놓은 인물.

 

- 그...그게 뭐하는 인간이냐? 

 

철학

"세상엔 현명한 엘리트와 우둔한 대중이 있으며, 엘리트가 우둔한 대중을 이끌 때 이상향이 구현된다." 플라톤의 철인 정치("philosopher kings" from "Republic")

 

- 이...이럴리가 없어!!!!! 난 그따구 인간 아니야!!!!!

 

역사

자신감(hubris, 傲慢)은 6세기 영국의 성 그레고리 대왕에 의해 7가지 가장 중대한 죄악으로 명시됐다. 신에게, 교리에, 계급에, 대중적 믿음에 도전하는 이들을 수용할 만큼 중세 사회는 개방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자신감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하기 위한 중요한 가치로 인정 받았으며, 오히려 귀족적이고 예술적이며 고급스러운 취향을 위한 성격적 기반으로 인식되고 있다.

 

- 최근 탐독중인 '혁명을 팝니다'를 보면, 이딴 취향의 인간들 때문에 소비주의의 심하가 이루어진다...라고 하던데... 소비주의의 최첨병이 바로 나였단 말인가...-_-;;;

 

심리적 기반

당신이 동경하는 아테나의 자신감은 지적인 아름다움을 기반으로 한다. 남들보다 더 똑똑하고 더 참신해야 만족하는 아름다움, "전에 하던 대로…"라고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아름다움이다. 멍청한 사람은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족해도 용서될 수 없으며, 망하더라도 똑똑한 사람과 망하는 쪽을 택하는 도도함이기도 하다. 아테나의 자신감은 크리스토퍼 말로의 "닥터 파우스투스(Dr. Faustus)," 그리고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의 미스터 다아시 등에 의해 극적으로 묘사된 바 있다.

 

- 뭐... 내가 쓸데없이 지적이게 보이고 싶어한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긴 하다만...-_-;;;

 

라이프 스타일

당신은 언제나 똑똑한 사람을 알아보고, 고급스러운 생활이 뭔지를 안다. 같은 일을 해도 좀더 완벽하고 멋있게 하려는 욕심이 있으며, 같은 물건을 골라도 보다 아름답고 세련된 제품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당신은 백화점에 들어가 가격표를 보지 않고 옷을 고르고, 최신 디지털 기기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며, 자동차를 살 때는 최고 옵션과 디자인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전체 네티즌들 중 당신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주류집단이다. 당신 타입에 속하는 사람들은 비교적 젊은 편이며,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약간 많다.

 

- 결...결국 난 그렇고 그런 주류집단이란 말이더냐...-_-;;;

 

아테나 여신과 비슷한 족속들

프리스트 오브 문(Priest of the Moon)

 

블리자드 사에서 출시한 워크래프트 III 나이트 엘프 종족의 우두머리. 나이트 엘프 군대의 사령관이자, 그들이 섬기는 신 엘룬의 사제로 그리스 신화의 아테나를 그대로 본뜬 캐릭터. 단호하고 용감하며, 높은 자긍심을 가진 존재다. (아테나의) 부엉이, 그리고 프로스트세이버 호랑이와 함께 전투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며 궁극기로는 엄청난 광역 피해를 주는 스타폴(Star Fall)이 있다.

 

- 그래, 워3할 때면 난 언제나 나엘을 하고, 영웅은 거의 프리스트 오브 문 원영웅체제를 선호하긴 해...

프로토스(Protoss)

블리자드 사에서 출시한 스타크래프트의 외계 종족. 고도로 발달한 기술과 초능력을 갖춘 존재로 영겁의 세월 동안 스스로를 은하계에서 가장 발달된 종족이라 자부해 왔다. 인구가 많지 않은 대신 "리버" 같은 로봇형 전사와 "사이오닉 스톰" 같은 초능력을 이용해 효율적인 전투를 벌이는 것이 특징. 시나리오 상의 종족 특성은 매우 보수적이고 배타적이며 자긍심이 높은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 젠장... 스타할 때면 난 언제나 프로토스빠였어...

미스터 다아시(Mr. Darcy)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의 남자 주인공. 겉보기에 시건방지고 무례하고 냉정하기 짝이 없는 남자였으나, 알고 보니 현명하고 사려 깊으며 진실한 인간성을 지닌, 요즘 트렌디 드라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남성상. 여신 아테나와 마찬가지로 높은 지적 능력과 자긍심을 가진 존재로, 취향이 지극히 까다롭고 인간의 내면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 제인오스틴의 소설은 본 적이 없거니와, 영화는 더더욱 안 봤음, (난 '로맨틱'자 들어가는 것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봐...)

2화, 나는 뭔 색이냐?

 

Prussian Blue, 채도가 있는 모든 색 중에 가장 명도가 낮은, 가장 진하고 어두운 파란색. 파란색이라곤 하지만 프러시안 블루는 짙은 초록이 많이 포함된, 불순한 남색이다. (색 구성비 Cyan 63, Magenta 35, Yellow 14, Black 72) 1704년 독일의 색 제조업자인 디즈바흐가 강렬한 붉은색을 만드려다 우연한 사고로 생성된 정반대의 파란색이 바로 이 프러시안 블루였다. 독일 태생의 고유한 파란색이었던 까닭에 "베를린 블루"라고도 불린다. (당시 18세기 독일에 세워진 왕국의 이름이 프러시안이었던 까닭에 다른 유럽 지역에서 모두 프러시안 블루라고 부름.) 파란색 계열 중 가장 우울하고 어둡고 차가운 빛을 띠며, 과거 청사진을 인쇄하기 위한 염료로, 오늘날엔 화가들을 위한 유화 물감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동경하는 가치

Veritas, 虛無主義, 통찰

 

- 아깐 자신감이라더니 지금은 허무주의냐?! 도대체 나란 인간은 뭐하는 인간이라는 얘기냐?!

 

철학

"인간은 악하다. 인간이 착하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남을 위해 베푸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이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나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없다." - 순자(荀子) B.C. 298~238

 

- 뭐...뭐야... 난 정말로 지독한 이기주의자였단 말이냐...-_-;;;

 

이상형

투덜이 스머프 의 독설과 X 파일의 멀더의 냉소를 겸비한 자. 

 

- 아까보다는 좀 이해가 가는 타입이군... 결론적으로 말해서 '불평분자'라는 거지? 

 

심리적 기반

가끔, 이 인생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궁금해 한다. 인생은 비극이고 계속하면 할수록 더 큰 비극만이 찾아올 텐데, 왜 계속해야 하는가. 이런 태도는 낭만주의적이고 자기도취적인 면도 있다. 인생의 고통을 짊어지고 가는 외로운 영웅의 이미지로 비춰질 수 있으니까. 인생은 정말로 비극일지 모른다. 그러나 인생이 비극이기에 사람들은 고귀해진다.

 

- 이딴 심리분석이나 하면서 하나하나 코맨트를 달고 있는 내 인생은 확실히 비극인것 같긴 하다...-_-;;;

 

라이프 스타일

마음 속은 어두울지라도 겉보기에 남들보다 특별히 더 비관적인 삶을 살지는 않는다. 오히려 남들보다 더 편하고 잘 사는 사람들이 이런 태도를 가지는 경향이 있다. 당신의 어둡고 우울하고 쓸쓸한 모습한 ‘치열한’ 지적 노력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당신은 남들보다 더 정확히 현실을 이해하려 하고, 목사님들이나 주부들 대상 아침 라디오 방송의 미사여구에 기만 당하지 않으려 한다.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은 “비록 내가 지금은 이런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 마음은 그렇지 않다” 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진심은 따로 없다. 그저 자신이 현재 보여주고, 살고 있는 삶이 당신의 진심일 뿐이다.

이 유형에는 노숙하고 음울한 남성의 비율이 많다. 인터넷 폐인들의 주류집단이다.

 

- 노...노숙하다는 얘기는 노숙자라는 얘기인가?...-_-;;; 거기다 더해서 인터넷폐인까지???

 

프러시안 블루와 비슷한 족속들

슈렉

슈렉은 그의 영토에 쳐들어온 동화 속 주인공들과 완전히 차별되는 인물이다. 꿈과 낭만, 권선징악, 순수함과 선의 따위는 그의 영혼에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는 다시 혼자만의 어두운 삶을 되찾기 위해 공주를 구하러 갔다가 사랑에 빠지는 ‘비운’을 겪는다. 영화의 결말이야 어찌됐든, 슈렉은 느와르 영화의 주인공이 가져야 할 모든 성격을 갖췄다. 음울하고 외롭고 냉철하며 과감하며, 그리고 아무도 믿지 않는.

 

- 애혀... 나는 슈랙이었군...-_-;;;

태종 이방원

1367∼1422. 조선 3대 국왕. 재위 1401∼1418. 역대 조선 임금 중 가장 냉혹하고 비범한 정치력을 발휘했던 천재 정치인. 태조 이성계의 5째 아들로 조선 개국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으나 왕위 계승은커녕 공신 대접도 받지 못했고, 이후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다. 정권 장악 과정에서 정도전을 비롯한 자신의 정적들뿐 아니라 세자를 포함, 자신의 배다른 형제들과 그의 친척까지 살해한다. 이후 왕위에 오른 뒤에는 왕권 강화를 명목으로 쿠데타에 공을 세웠던 공신들을 차례로 제거한다. 특히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데 결정적 공을 세웠던 처남 등 외척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남김없이 숙청하는 잔인함을 보인다. 이런 식으로 태종은 신하들을 철저히 손에 쥐고 흔들며 자신의 뜻대로 정책을 밀어 붙여 왕권 강화와 새 국가의 기틀을 닦는다

 

-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_-;;;

3화, 나는 어떤 동물이냐?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바다 속을 끝없이 탐험하고 싶은 돌고래 종족. 당신의 마음은 환상의 바다 속에 있다. 안정된 환경에서는 맥이 빠지고 지루하지만 새로운 일이 주어지는 순간, 새로운 나라 낯선 장소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뛰고 에너지가 넘친다. 역마살이 끼었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장소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탐색성향이 강하게 나타나면 바람둥이가 될 수 있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꿈을 키우다가 좌절하거나, 언제나 현실보다는 상상에만 매달릴 위험성도 있다.

 

- 다행이다... 그래도 이 지구에서 두번째로 똑똑한 생물인 돌고래라니... 쏘롱쏘롱쏘롱~~~~~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고 이 농담을 다시 읽어볼것!)

동경하는 가치

Reconnoiter, 摸索, 모험

 

- 엄청난 자신감과 이해할 수 없는 허무주의를 한몸에 지니고 모험을 동경하는... 젠장 정신병자가 맞긴 맞나 보구나...-_-;;;

 

이상형

오대양 육대주, 그 이상을 탐험하며 별 해괴한 일을 다 겪는 신밧드걸리버.

 

- 어이어이... 이 두 인간들 다 엄청난 구라쟁이 아냐?

 

철학

“지도 밖으로 행군할까…?”

 

- 탈영병이라는 얘기유?

 

심리적 기반

낯설고 새로운 경험을 필요로 하는 높은 자극 추구성향을 배경으로 한다.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상상을 펼쳐가는 창의적인 면도 있다. 지금 익숙한 현실이 아닌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심으로 인해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나서는 경우가 많다. 안정된 상태를 지루하게 여기고 정착을 죽음처럼 느낀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낯선 사람, 낯선 환경을 찾아 다니다 보면 사고를 겪을 위험성이 있다.

 

- 자극을 좋아하는 것은 맞긴 한데... 집 밖에 나가는 것은 싫어한다니까...-_-;;;

라이프 스타일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찾아 탐험하는 유목민 유형.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기보다 그저 정체된 상태를 피하려고 한다. 언제나 지금과는 다른 상태를 필요로 하고 그렇게 변화하기를 원한다. 오랫동안 사귀는 친구들은 별로 많지는 않지만, 없지도 않다. 새로운 상품이 나오면 필요가 없어도 호기심 때문에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 집에는 쓸데 없는 물건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계속 새로운 도전을 제공하는 직업이 어울린다.

고연령에 여성 비율이 높다.

 

- 젠장! 돈이 썩어나냐!!! 쓰잘데기 없는 것을 마구 사 제끼게!!!

 

돌고래와 비슷한 족속들
프리 윌리

특별히 비슷해서 골랐다기보다 돌고래와 가장 가까운 영화 주인공이라서 골랐다. 프리 윌리의 윌리는 돌고래가 아니라 범고래. 수족관에 갇혀 조련사의 말을 죽어라 듣지 않는 골치덩어리 고래 윌리는 어느 날 수족관에 벌 받으러 들어온 문제아 제시를 만난다. 둘의 반항적 기질은 서로 통하는 데가 있었는지, 서로 말은 못해도 뜻이 통했고, 결국은 의기투합, 저 넓은 바다로 탈출해 버린다. (물론 제시는 윌리와 함께 바다로 떠나지 못했지만, 윌리가 자유를 찾은 것을 보며 격한 애정을 느낀다.)

 

- 그...그냥 고래라서 골랐다고...-_-;;;

만화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

악마의 열매를 먹은 뒤 온몸이 고무처럼 늘어나는 기괴한 능력을 지닌 소년이다. 그는 해적이 돼 전설의 보물 원피스를 찾기 위해 선원을 모집해 기괴하고 험난한 바다로 모험을 떠난다. 기형적으로 새로움과 모험과 위기, 스릴, 두려움을 즐기는 캐릭터로 어떤 순간에도 겁을 먹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진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장점 때문에 살짝 짜증이 나기도 함.

 

- 난 악마의열매 능력자가 아니란 말이다...-_-;;;

 

 

종합해보면, 나는 허무주의에 기반하는 자신감과 모험을 인생의 가치로 여기고 있으며, 테리우스와 스컬리를 섞어놓은 뭐하는 놈인지 도저히 모르겠지만 아뭏든 불평분자 구라쟁이를 내 이상형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될려고 하고 있으며, 우매한 대중을 경멸하는 자의식 가득찬 지독한 이기주의자인 주제에 행군중엔 반드시 탈영하겠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쓸데없이 똑똑한 척 하면서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를 고통스러워하는 주제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해 보고 싶어서 안달하는 그야말로 정신병자적인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으며, 가격따위는 고려하지도 않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최신 상품들을 마구 사 쟁기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인간이라는 뜻이냐...-_-;;;

 

 

 

해 보고 싶은 사람은 여기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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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8 23:01 2006/09/08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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