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의를 끝장내고자 한 말이 아닙니다.

이 글은 민노씨네[PP]포르노와 페미니즘(2)에 관련된 글입니다.

 

민노씨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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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구성애의 아우성에서 구성애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포르노 무조건 보지 못하게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포르노가 판타지라는 것을,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취지의 얘기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라는 것이지요. 이 말을 뒤집어놓고 얘기하면 포르노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 포르노는 선택의 문제일 수 있지만,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완벽한 범죄교과서가 될 수 있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누가 그러한 사실 (포르노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면, 모든 사람에게 차단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고 얘기합니다. 포르노가 거짓임을 아는 사람이 포르노를 보지 못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보다는 포르노가 거짓임을 모르는 사람이 포르노를 봤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가 더욱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신병자).

 

내가 가장 위험하게 생각하는 바가 이런 관점이다. 이는 '검열'하는 자의 사고방식과 그 구조에서 동일하다. 이는 국가의 공식적인 권력을 무제한으로 확대하는 논리구조이다. 있지 않고, 아직 검증되지 않은 위험을 '있을 지 모른다'라는 이유만으로 모두 폐기처분하고, 그 접근 자체를 막는다는 건 전제적인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그러니

a. 이것은 위험할지도 모른다.
b. 이것을 아는 자에게는 위험하지 않고, 이것을 모르는 자에게는 위험하다.
c. (그러니까 있을지 모를 그 위험을) 모두 없애자.

범죄임에 분명한 포르노는 위험'했'다, 그 존재 자체로 범죄였고, 반사회적 표징이다. 그 때는 국가공권력이 발동해서 '응징'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합법의 가면을 쓰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 사회에 돌아간다. 그렇지만, 비범죄화되어도 좋을 '문화적 상징물로서의 포르노'가 나는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고, 그것은 위험하지 않을 뿐더러, '유익하기까지' 하다고 나는 주장하고 있다(68년의 보고서 및 여성주의 일각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포르나).

 

그 비범죄화되어도 좋을 포르노의 표준을 마련하기 위해 좀더 많은 사회의 성원들이 합리적으로 대화하고, 토론하자는 것이 이 글의 취지다.

 

그런데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없애자'라고 한다면, 그건 대화자체를 포기하고, 선악의 이분법으로 모든 것들을 끝장내겠다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A. 칼은 위험할지도 모른다.
B. 이것을 범죄에 쓰면 위험하고, 요리에 사용하면 위험하지 않다.
C. (이것이 범죄에 흉기로 쓰일수 있을 가능성을 차단하려면) 칼을 모두 없애자.

그 칼을 유태인으로, 아랍인으로 바꾸자.
그게 나찌고, 부시다.

 

당신/우리에게 묻자.

이것이 위험하다/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행사되는 권력은 누가 부여했는가?
그 권력의 작용은 합리적, 해방적인가, 아니면 억압적인가?

당신/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우선 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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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분에 있어서 저는 민노씨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a. 이것은 위험할지도 모른다.
b. 이것을 아는 자에게는 위험하지 않고, 이것을 모르는 자에게는 위험하다.
c. (그러니까 있을지 모를 그 위험을) 모두 없애자.

이 명제가 위험한명제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민노씨의 위의 명제가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논거로

 

A. 칼은 위험할지도 모른다.
B. 이것을 범죄에 쓰면 위험하고, 요리에 사용하면 위험하지 않다.
C. (이것이 범죄에 흉기로 쓰일수 있을 가능성을 차단하려면) 칼을 모두 없애자.

그 칼을 유태인으로, 아랍인으로 바꾸자.
그게 나찌고, 부시다.

 

 

라는 예시를 들어 주셨습니다.

 

저는 완전히 같은 방법으로 반례를 들어 보이고자 합니다.

 

1. 핵폭탄

 

a. 핵폭탄은 위험할지도 모른다.

b. 핵폭탄은 전쟁억지의 효과를 위해서 사용한다면 공익에 기여하지만, 전쟁의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대단히 위험하다.

c. (이것이 전쟁의 목적으로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려면) 핵폭탄을 모두 없애자

 

2. (일반인의)총기소지

 

a. (일반인의)총기소지는 위험할지도 모른다.

b. 총기소지는 개인이 자위의 수단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용하나, 과잉방어의 수단으로 사용되었을 경우 타인의 생명을 순간적으로 뺏을 수 있으므로 위험하다.

c. (이것이 과잉방어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총기소지를 금지하자.

 

3. 신호등 준수

 

a. 신호등 준수는 위험할지도 모른다.

b. 신호등 준수는 보행권 확보라는 면에서는 필요하지만, 자동차의 정지, 발진횟수를 늘려 환경오염물질을 많이 나오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전 인류의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위험하다.

c. (이것이 환경오염으로 인한 인류 및 생물의 생존권을 위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신호등을 지키지 않게 하자.

 

4. 미군의 지속적인 주둔

 

a. 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은 위험하다.

b. 미군의 주둔으로 인해 주둔지 부근의 경제활성화 및 국방비의 감소 등 긍정적 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으나, 미군 주둔으로 인해 우리 민족이 받은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

c. (미군 주둔으로 인해 받아왔던 피해를 더 이상 이어나가지 않기 위해서) 미군 주둔을 금지하자.

 

 

 

이러한 (어떻게 보면 궤변으로 보일 수도 있는) 명제들을 통해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a. 이것은 위험할지도 모른다.
b. 이것을 아는 자에게는 위험하지 않고, 이것을 모르는 자에게는 위험하다.
c. (그러니까 있을지 모를 그 위험을) 모두 없애자.

 

이 명제 (또는 이러한 사고방식) 자체가 위험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이 생각은 위험한 것일수도,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경우에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논리전개방식을 따랐는지 아닌지'가 아닌 '이것'의 범위를 어떻게 할 것인지' 입니다. 즉, 위에 예를 드신 나찌나 부시의 오류는 '이것'의 범위를 잘못 지정했기 때문에 생긴 오류이지 위의 명제를 따랐기 때문에 생긴 오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민노씨의 '문화적 상징으로써의 포르노와 그것에 대한 자유로운 감상의 권리' 역시 '어디까지를 문화적 상징의 포르노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와 직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가 나름 정의하고 있는 '이것'의 범위를 이용하여 '모든 포르노는 범죄다. 그렇기 때문에 막아야 한다.'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고요.

 

저는 "대화자체를 포기하고, 선악의 이분법으로 모든 것들을 끝장내겠다는 태도"를 가지고 이 얘기를 한 것이 아닙니다. (제 글이 많은 논리가 생략되어 있고, 구분하기 힘들게 쓰여졌다는 부분은 저도 인정합니다.)

 

비겁한 변명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되신다면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분명히 제 글쓰기가 미숙한 것은 사실이고, 그 때문에 저와 더 이상 의견을 교환하고 싶지 않다고 하신다면 다시한번 제 표현의 미숙함을 사과드리고 더 이상의 의견교환은 하지 않겠습니다. 공개된 자리에서 의견 말씀하시기 곤란하시면 e-mail을 이용해 주세요. psychoic@naver.com 입니다.

 

 

마지막으로 세가지 물음에 대한 답변입니다.

 

이것이 위험하다/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자는 누구인가?

 

- 민노씨의 글 중에 이 대목이 있죠. "그 비범죄화되어도 좋을 포르노의 표준을 마련하기 위해 좀더 많은 사회의 성원들이 합리적으로 대화하고, 토론하자는 것이 이 글의 취지다." 이 글 속에 정답이 나와 있군요. 그것을 판단하는 자는 바로 "합리적으로 대화하고 토론하는 사회의 성원"입니다.

 

그리고 그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행사되는 권력은 누가 부여했는가?

- 바로 윗 답변 속에 또한 제가 생각하는 정답이 있군요.  "합리적으로 대화하고 토론하는 사회의 성원"입니다.


그 권력의 작용은 합리적, 해방적인가, 아니면 억압적인가?

- 얼마나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 그 결론이 도출되느냐에 달려 있겠죠? 교통법규의 경우는 분명히 제약임에도 불구하고 그 권력의 작용은 충분히 합리적이고 해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겠죠. 굳이 답변을 하라면 "그때그때 다릅니다." 그리고 그 권력이 억압적으로 행사되지 않도록 "합리적으로 대화하고 토론하는 사회의 성원"이 그러한 위임된 권력을 제어할 수 있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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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1 10:57 2006/09/2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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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화는 환영이죠, 언제나.
    잡문에 불과한 글에 꾸준한 관심을 주시니.. 오히려 제가 고마워해야죠.

    다만 제가 예시한 그 거친 수사적인(그다지 논리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_-;) 삼단논법은 앞의 단서가 특정하고 있듯, 강조를 위한 '비유'의 차원으로 여겨주시길 바랍니다.

    병자군의 말씀에 첨언하자면, 그 '범위'의 문제이면서, '정도'의 문제겠지요. 형식논리의 함정이란 그 '정도'에 대해서 함구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참 단순하면서, 복잡하기도 하죠?

    :)

  2. 그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면 때문에 또 어찌 보면 살만한 세상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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