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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on 2004/10/25 23:26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얼마 전 문득 바라본 TV 뉴스에는 성매매 여성들의 대규모 집회가 방영되고 있었다. 무심코 지나가버린 ‘성매매 방지법’의 시행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불현듯 깨달았다. 그날 아침 지하철을 타기위해 택시를 타고 지나간 소위 ‘청량리 588’의 모습이 20년간(우리집이 지척에 위치한 까닭에 어려서부터 버스나 택시를 타고 오가며 익숙하게 보아온 곳이다.) 내가 보아온 모습과 달리 ‘썰렁’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 주변의 ‘현상’과 사회적 ‘현상’의 연관성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나의 무관심이 부끄러웠다.


이들의 집회를 바라보며 그들의 ‘일’을 ‘노동’으로 규정할 수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우리나라 여성 중 최소 33만명이 전문적으로 종사하고 있고, 전체 규모가 24조원으로 국민총생산 대비 4.1% 수준에 해당하는 규모의 ‘일’이 과연 ‘노동’으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의 노동이 ‘가치’를 생산하는 것인가? 그러나 그들은 그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생활을 해 나간다. 그러한 또 하나의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런 생각들을 하염없이 하고 있던 중 문득 그들의 ‘건강’은 어떠한지 궁금해져 저널 검색 창에 성노동자(sex worker)라는 단어를 쳐 넣었다. 놀라웠다. 그 기나긴 학문의 역사상 이 검색어로 찾아낼 수 있는 논문은 120여편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매독, 임질 같은 성전파성질환과 관련된 것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가 유행 하고 난 이후에는 성노동자와 관련된 질환으로 에이즈가 압도적인 수위를 차지하며 연구 되고 있었다. 가만히 내용을 살펴보니 그 내용이 어처구니가 없다. 많은 논문이 에이즈의 주범으로 성매매 여성을 지목하고 있었으며 에이즈의 예방을 위해 이들을 관리하고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어디에도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의 인권은 없었다. 그저 병을 퍼뜨리는 ‘나쁜’ 여자들을 ‘관리’하고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이즈를 막기 위한 방법은 콘돔과 비삽입 섹스가 거의 유일하다. 그러나 삽입하지 않는 섹스는 남자에게 섹스가 아니고 출산과 양육이 여성의 기본 미덕으로 여겨지고 있다. 화살이 이런 기본 미덕을 무시(?)하며 에이즈를 전파시킬 수 있는(?) 성행위를 하는 성을 매매하는 여성들에게로 집중된 것이다. 에이즈에 걸린 남성은 ‘억세게 재수가 없었던 것’이고, 여성은 ‘행실이 나쁜 그렇고 그런 여자’가 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 아닌가? 전염의 원인이 된다는 성 매매 여성들의 에이즈와 성병은 누구한테 옮은 것이란 말인가? 이런 성매매와 에이즈의 관계를 보면서 최근 정부의 행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근 정부는 ‘성매매 방지법’과 함께 ‘에이즈 예방법’을 시행하였다. 에이즈 환자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짓밟아 버리는 법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은 차치하고서 성매매와 관련하여 눈에 들어온 것은 ‘강제 검사’와 ‘취업 제한’ 조항이다.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6개월마다 한번씩 혈액검사를 해서 성병과 에이즈로부터 ‘건강’함을 증명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불건강’한 것으로 판정되는 여성은 동일업종에 취업할 수 없다. ‘성매매’를 국가에서 인정하지 않겠다면서 왜 이 여성들을 ‘관리’하겠다는 것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물론 나는 ‘성매매’를 금지해야 하는 것인지, 그것을 ‘노동’으로 인정하고 여타의 복지혜택과 사회적 안정망을 요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하지 못 하겠다. 그러나 명백한 현실은 존재한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여성의 날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 여성 실업자 수는 7780만명이었고, 여성 실업률은 남성(6.1%)보다 높은 평균 6.4%에 달했다. ILO보고서는 “청년실업도 세계적 문제이지만, 15~24세 여성은 일자리를 얻는 게 더욱 힘들다”고 지적했다. 또한 하루 1달러(약 1200원) 미만의 임금을 받는 빈곤층 노동인구가 전 세계에 5억5000만명인데 이 중 60%(3억3000만명)가 여성이다. 약 4억명의 여성이 열악한 임금과 실업으로 고통받고 있다. 또 5~15세 여자 어린이 200만명이 매년 성매매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 이렇게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장벽이 높고 남성과의 차별이 전반적인 사회구조와 빈곤의 확산이 성매매 여성을 양산하고 국가는 이를 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들이 ‘성매매’라는 일을 할 수밖에, 그것도 자신의 ‘건강’함을 6개월마다 증명하면서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가 있는 것 아닐까? 에이즈에 걸리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런 위험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녀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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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5 23:26 2004/10/25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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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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