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No. 27, November 1, 1999
대학체제의 미래
("The Future of the University System")
대학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보통 그 제도적 기원이 중세 유럽이라고들 한다. 아주 제대로 잘못된 믿음이다. 실제로 중세 때 대학은 대략 1500년 무렵 번성을 그치고, 이로부터 3세기 쯤 뒤에 자취를 감췄다. 오늘날의 대학은 19세기 서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만들어졌고, 하나의 제도로서 여타 지역으로 확산됐다. 이후 한 세기에 걸쳐 완만하니 이뤄지던 그 (확산)과정은, 1945년 이후 급속도로 진행됐다.
근대 대학에 두드러진 특징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학부(단과대학)은 대학업무를 주된 수입원으로 삼는 정규직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학생들 또한 대부분 대학생 신분으로 특정 학위 취득을 목표로 적을 둔다. 종합대학은 몇몇 학부(단과대학)으로 나뉘며, 학부(단과대학)은 여러 학과들로 또 나뉘어 있다.
학부에는 특정한 복수의 학과가 설치돼 있는데, 각 학과에선 학생들이 “분과학문들(disciplines)”, 즉 전문성과 지적 일관성을 갖춘 제한된 주제를 체화하게 돼있다. 종합대학은 지식의 재생산이 이뤄지는 주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지식이 생산되는 주요거점이기도 하다.
이상의 진술내용은 어디까지나 이념형으로, 여기엔 역사적 맥락이 추가될 필요가 있다. 1750년 경만 해도 오늘날 “인문학과 자연과학”이라 불리는 지식범주들은 모두 철학이라는 단일 학부에서 가르쳤다. 여기에서 각 교수들은 “강좌(chairs)”를 담당했는데, 개별강좌 주제가 후학들에 의해 꼭 계승돼야 하는 건 아니었다.
바로 이 무렵, 우리가 오늘날 과학과 철학의 “결별”, 또는 “두 문화”라고도 하는 지식세계의 심원한 균열이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중요한 건, 이 과정이 얼마나 독특한 것이었는지 이해하는 일이다. 그같은 과정은 서방 세계도 그렇지만, 세계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일찍이 없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이제 전혀 다른 두 앎의 양식이 있다는 주장이 제출됐던 셈이다.
한켠엔 이른바 과학적 양식이라 해서, 실재에 대한 경험적 검토를 바탕으로 채택된 증거의 규모만큼 검토결과의 광범한 일반화를 추구하는 앎의 방식이 자릴 잡았다. 그리고 반면 다른 한켠엔, 이른바 인문학적 양식이라 불리는, 해석학적 감정이입에 기반한 지적 활동에 중점을 두며 (자연과학적) 일반화를 적대시하는 앎의 방식이 뿌릴 내렸다.
그 결과, 2세기에 걸친 오랜 인식론적인 반목이 지속됐다. 상대방 진영에 대해 비웃음을 날리거나, 심한 경우 아무런 쓸모도, 현실적합성도 없다며 지적 존재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더욱이 예전까지 진리의 추구, 그리고 선과 미의 추구가 쪼개질 수 없는 학자의 소임이었던 것과 달리, 인문학-자연과학이라는 인식론적 구도 아래 이들 세 가지 요소는 각기 분할됐다. 진리추구에 대해 과학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면서, 인문학은 선과 미에 대한 독점적 발언권을 부여받았다.
사회과학은 사회적 실재에 대한 연구를 본령으로 등장했던 영역으로서, 이들 두 진영과 경합을 벌였다. 사회과학 분야에선 지식에 대한 법칙정립적(nomothetic) 접근과 개별기술적(idiographic) 접근을 놓고 벌어진, 이른바 '방법논쟁(Methodenstreit)'으로 사분오열이 일어났다.
각 영역들(자연과학, 인문학, 사회과학)은 대학체제 하에서 자신만의 성채를 짓기 시작했다. 자신의 인식론적 지향에 부합하는 학부가 창설되는 가운데, 그 내부에선 분과학문들을 대변할 다양한 학과 설치가 이뤄졌다. 학부와 학생들은 이런 분과적 경계 안에 사실상 갇혀버렸고, 이와 함께 도입된 제도적 장치들―교과과정, 분과학문별로 부여된 학위들, 개별분과가 소속된 학부에서 분과명칭을 내걸고 거기서만 간행하도록 돼있는 학술지들, 국내/국제 분과별 학술회의 및 학회, 그리고 도서관 분류에 이르기까지―은 필연적으로 이들 경계를 강화했다.
이런 (지식생산)구조는 1945년 무렵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이 즈음 자연과학은 지적 권위를 놓고 인문학 분야들과 벌인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고, 학문적 명예로나 자금유치 능력으로나 여타 분야에 비해 가장 우월한 지식형태로 간주됐다. 자연과학은, 경제성장 촉진과 보다 나은 삶의 질 제고에 기여할 테크놀로지를 생산하는 데 사회적으로 유용하고, 정말이지 없어서는 안될 분야라 주장됐다. 하지만 그같은 구조가 정착되자마자, 그것은 이내 과부하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다양한 개별분과들의 독립성은 지적으로 부정확하고, 문제해결에 있어선 장애를 초래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해롭기까지 하다는 도전에 직면했다. 게다가 1945~1970년 동안 대학체제가 세계적으로 믿을 수 없을 만큼 팽창한 덕분에 학자들은 여타 학자들과 변별될 틈새를 찾아내느라 엄청난 압박에 시달리게 됐다. 이같은 틈새를 찾고자 이웃한 분과에 대한 “끼어들기(poaching)”가 대규모로 빈발하기 시작했고, 1945년 경 분과들 간에 명확하게 그어졌던 경계들은 곧 중첩되고 뒤얽히면서, 진흙탕 마냥 뒤범벅이 돼버렸다.
이러는 와중에 “두 문화”라는 개념은, 그같은 인식론적 분할로 생긴 진영의 양 극단으로부터 침식당하기 시작했다. 자연과학 진영에서는 복잡성의 과학(a science of complexity)에 지지를 표하는 일군의 학자들이 나타났는데, 이들은 뉴턴 역학과 그에 따른 제반 명제들―선형성, 시간적 가역성, 결정론, 균형과 같은―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했다. 이들은 이와 정반대되는 전제들에 기초한 과학을 주창하면서, “시간의 화살”과 “확실성의 종말”에 관해 이야기했다.
인문학 분야에서는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를 지지하는 다수의 학자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 집단은 그동안 보편적 정전들(universal canons)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이들의 세련화와 전승에 방점을 찍어온 전통적 인문학의 태도를 문제삼았다. 모든 문화적 생산과 수용에는 사회적 맥락이 자리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그 (생산과 수용의) 맥락 또한 시-공간(적 국면)에 따라 다양하다는 것이 이들 주장이었다.
이같은 일련의 지적 운동들 덕분으로 지식세계의 자장에는 커다란 변환이 일면서, 원심력 일색이던 기존 자장에 구심력이 작용하게 됐다. 지식세계를 양분했던 두 문화의 극복은 이들이 이룩한 성과에 힘입어 비로소 가시화됐다.
동시에, 현 대학체제는 어디나 할 것 없이 장기적인 재정 압박에 노출돼 있다. 전지구적으로 (대학과 같은) 고등교육에 소요되는 비용은 부를 사회적으로 재배치하는 주된 요소였는데, 1970년 이래 각 국가들, 그리고 대학에 재원을 기부하던 이들은 증가 일로에 있는 고등교육 비용을 절감할 방법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의 해법으로 어디든 곧잘 제시되는 게 바로 대학체제의 “고교화”라 불리는 방안이다. 학생 수 대비 교수 수의 상대적 감원, (강의내용의)단순화, (교과과정/학사행정의)표준화, 그리고 연구비중의 약화와 함께 이뤄지는 교과과정에 대한 통제 강화로 특징지을 수 있을 이같은 추세(trend)는, 단언컨대 21세기 중반까지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상황은 출중한 학자들을 대학체제라는 울타리 바깥―고등연구기관, 과학학술원, 사설연구조직, 그리고 대기업 부설 연구기관 등으로 내몰기 시작했다. 대학에 재직중이던 유수의 학자들 상당수가 대학을 등지는 가운데, 2025년까지 이같은 경향은 한층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이것이 지식 생산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해왔던 대학의 위상에 종언을 고할 전조이리라는 점이다.
이를 반드시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꼭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식세계의 인식론적 재구조화가 진행중일 바로 그 시점에 대학은 더 이상 중심 역할을 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이다.
이 때 물어봄직한 것은, 학자들이 연구의 돈줄이던 국가 내지 사기업적 이해와 결부된, 단기적 이익 창출에 대한 엄청난 압박을 벗고 새로운 제도적 기초를 일종의 피난처로 마련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모르긴 몰라도, 21세기엔 1750~1850년 시기에 필적할 만한 지식세계의 재구조화가 방대한 규모로 이뤄질 것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 사회학
영문칼럼보기: http://fbc.binghamton.edu/27en.htm
월러스틴 하면 일단,
<근대세계체제> 시리즈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인데요.
통상 사회학자로 분류는 됩니다만, 워낙 그런 울타리 따위 아랑곳 않는 발언과 연구로
일가를 이룬 사람이라 이 사람을 사회학자로 소개하는 건 그닥 적절치 않을 듯도 싶네요.
(월러스틴 옹이 해온 작업의 얼개, 그러니까 현 자본주의 세계의 기원, 기본특징, 전개과정 및 향후 추이에 대한 월 옹 및 이 사람이 구축한 연구그룹의 견해와 입장이 압축적으로 담긴 책으로는
<미국 패권의 몰락>과 <유토피스틱스>(모두 창비서 나옴)란 책 하고 당대에서 나온 <세계체제분석>이 있으니 시간 나시거들랑 함 읽어보시구요. 인상깊었던 논문으론 언젠가 <창비>에 실렸던
"인종주의, 근대의 쌍생아"란 글이 있는데 이것도 함 읽어보심 좋겠다 싶네요.)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이른바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붕괴를 정확하게 예측한 사회이론가로 주목받은 바 있습니다.
주류 정치학자들의 논의구도 안에서는 그저 통밥 수준에서 이야기되던 동구권의 미래를
이 사람은 수미일관한 분석틀로 전망해냈던 거거덩요.
이 사람이 주목받았던 또다른 이유는,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그러구나서 노상 들었던 것마냥
자본주의진영의 승리는커녕,
현 자본주의 세계의 대혼돈과 황혼의 임박을 알리는 전조이자 징후로 분석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 사람 얘기는 구좌파서 말하던 이른바 '파국론' 하고 논리적 얼개가 상당히 달랐거든요.
구좌파적 파국론이 안고 있던 자본주의'체제'의 발전에 대한
몰역사적이고, 신학적(!)이던 인식을 비판적으로 넘어서려 했달까요.
이 역시 앞서 사회주의권 붕괴 전망처럼
오랜 분석적 시간대를 상정하고 일관되게 이뤄진 작업의 결론이었다는 점에서
주류 진영 이론가들을 참 난감하게 만들었더랬죠.
주류 진영에서야 팍스 카피탈리즈무스에 근거한 논의를 신나게 전도하(려)던 차였으니까요.
'주류'들 하곤 다른 시각에서 동구권 미래 전망을 했다는데서 짐작할 수 있듯,
이사람은 학문적으로 비주류였으면서도 학계에 널리 회자된 흔치 않은 사람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좌파(정확히는 네오-맑시스트) 계열에 속하는 이론가라 할 수 있죠.
'좌파' 하면 으레히 철지난 가락이나 신념만 읊는 이들인 줄 알기 십상인 요즘,
이 칼럼들은 그런 '상식'을 걷어내는 데 유용한 해독제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불 떠나
이 칼럼들이 적어도 좌파적 시각이 현실을 이해하는 데 갖는 유용성을
새삼^^ 확인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