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의 기억, '서방'의 망각: 이번 폭격은 처음이 아니다

가다피가 누린 권력을 이해하려면

식민지화 경험이 중첩된 나라 리비아의 문화적 기억을 좀더 깊이 들여다봐야

 

 

마크 마조워

<암흑의 대륙>(김준형 옮김, 후마니타스, 2009)의 저자

 


대다수 사람들한테야 이날이 기념일 목록에 올라있진 않겠지만, 올라가야 할 게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딱 1백 년 전에, 세계 최초의 공중폭격 조치가 벌어졌다. 리비아를 겨냥해서 말이다. 1911년 9월, 제국의 반열에 오르고파 안달이 난 나머지, 이탈리아는 침공을 개시했다. 오토만 제국의 침체 상황은 술탄들한테 거의 중요하질 않았다. 여러 해 동안 그곳은 주로 불운한 정치범들이 추방되는 장소로 활용되던 터였다. 그러나 전쟁 통에 리비아는 이탈리아가 벌인 식민주의적 침략의 올가미에 말리게 되는데, 이는 속절없이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사건들의 연쇄를 부르는 일이었다.


이탈리아 공군 비행사 굴리오 가보티가 Taube('비둘기'란 뜻의 독일어)라는 자신의 단엽기를 타고서 트리폴리 외곽의 적들한테 수류탄을 떨궜을 때, 적들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정말이지, 뇌관을 단 다음 불이 타들어가는 폭탄을 손으로 떨군다는 건 아래쪽에 있는 투르크 군한테만큼이나 그걸 떨구는 이탈리아 조종사한테도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당시 참모장교였던 굴리오 두헤 소령이 기껏 굴린 머리라고는, 지난 20세기 내내 그를 공중전의 가장 열렬한 옹호자로 기억하게 해줄 주장들을 정식화한 게 전부였다. 10년 뒤, 두헤는 고전이 된 자신의 책 <제공권the Command of the Air>에서, 시민들을 겨냥해 이뤄진 대량 폭격에 의한 순수 테러가 갈등·분쟁을 줄이고 생명을 구할 거라는 주장을 펼친다. 여기서 치를 떠는 건 그릇된 일인데, 왜냐하면 총력전은 인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서구적 방식의 전쟁이 탄생한 건 북아프리카 사막에서였다.

 

리비아에서 폭격으로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이탈리아인들은 확실히, 아랍 사람들이 자기네를 오토만 제국의 지배에서 해방시켜준 존재로 환대할 거라 가정하고는 전쟁을 일으켜버렸다. 이탈리아인들이 자기네가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을 즈음, 때는 너무 늦었고, 그들은 해안으로 내몰렸다. 대중 봉기에 직면하자, 이탈리아인들은 복수한답시고 마을과 우물, 가축을 무력으로 작심하고 파괴해버렸다. 거의 1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억류·추방당했고, 노역소 안에서 병이나 영양실조로 죽은 이들이 수천 명이었다. 이탈리아산 전투기들은 리비아를 다시 한 번 폭격하면서 ‘겨자 가스’라는 화학무기를 떨꿨는데, 이는 1925년 체결된 제네바 협정 위반이었다.

 

마침내, 파시스트 정권은 리비아 지방이 이탈리아의 통합된 일부가 됐음을 선언했다. 영토적인 선긋기가 이렇게 이뤄짐으로써 리비아 주민들은 자기네 땅에서 이방인이 돼버렸고, 이런 조치는 이탈리아산 농업 식민주의자들과 함께 추진된 신로마제국 건설의 길을 여는 것이었다. 근대서구 제국에서 건너온 정착민들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리비아가 새 전장으로 바뀌었을 때(도) 여전히 흘러들고 있었는데, 그곳 사막을 20년 후에도 석유 탐사에 훼방이 될 광갱들로 헤집어놨다.

 

무솔리니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이 모든 이야기는 망각의 심연으로 사라져버렸다. 자칭 문명화됐다는 이들이 “야만 인종들”과 맞서 싸운 다른 수많은 전쟁들이 그렇게 돼버린 것처럼 말이다. 리비아의 문제 일체가 국제연합으로 이관되기에 앞서, 열강의 틀거리가 새롭게 짜였다. 이탈리아는 영국·미국과 냉전 동맹의 일원이 되는 것으로 스스로 몸을 굽혔다. 전후 시기 이탈리아인들은 동료 이탈리아인들을 핍박한 파시즘의 범죄를 비난했지만, 바다 건너에서 저지른 훨씬 더 악독한 범죄에 대해선 잊어버렸다. 이에 대해 큰 관심이 없기로는 다른 유럽산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리비아에선 수십 년간 지속된 압제가 그렇게 쉽게 잊힐 리 없었다. 이탈리아인들은 옛식민지 시절의 목축 경제를 사양화하고, 목축지 정착민 대부분을 불러들였다. (정착민 다수가 시실리 섬 출신인 데서 명명된) ‘시칠리아니’란 말은 경멸의 뜻이 담긴 단어로 남았다. 식민주의에 맞서 저항했던 기억들은, 싸누시 부족 수장으로 항이탈리아 투쟁의 선봉에 섰던 아이드리스가 영국의 후견 아래 리비아 국왕이 되는 데 보탬이 됐다. 그러나 그런 기억들은, 스물일곱 살이던 가다피 대령이 아이드리스를 새로운 제국주의에 매수된 자로 고발하고 쿠데타로 고꾸라뜨려, 이제껏 집권중인 (리비아)공화국을 수립할 때도 보탬이 됐다.

 

집권 초창기부터 가다피가 반反식민주의자로서 영국과 미국의 주둔군기지 폐쇄 명령을 내리고 리비아에 거류하던 이탈리아인 2만 명을 추방하면서 그들의 재산을 국유화했을 때, 현재와 과거는 하나가 됐다. 정권에 대한 대중적인 지지가 점점 더 약해질수록, 가다피 정권은 리비아에서 벌어졌던 억압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용법을 찾아냈다. 싸누시 부족을 이젠 대중적 민족주의 운동의 열매를 가로챈 봉건세력으로 간주하는 현 정권과 그 나팔수들은 심지어 싸누시 족이 발휘한 지도력의 흔적들을 싸그리 지웠던 만큼이나, 게릴라 전쟁과 이탈리아 제국주의의 잔학성에 관한 기억을 모으고자 추진된 광범위한 구술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연구자들을 농촌 지역에 보냈다.

 

이같은 움직임들은 가다피 정권을 항-이탈리아 성전이라는 영웅적 외피로 포장했을 뿐만 아니라, 정권이 지정학적으로 노리는 여러 목적을 이루는 데도 기여했다. 이탈리아인들에 대한 추방 조치가 이뤄진 지 2년만에, 사회주의자 가다피는 옛 식민주의의 압제자를 리비아가 상대할 유럽의 주요 비즈니스 파트너로 탈바꿈시킨 가운데, 이탈리아산 기업들을 다시 불러들이려 했다. 그리고 2004년 새로운 유럽산 명망가를 찾아나섰을 때 이탈리아는 중요한 동맹자가 됐고, 역사를 담보로 한 거래가 이뤄졌다. 베를루스코니가 이탈리아가 과거에 저지른 범죄들에 대해 공식 사과하는 대신, 가다피는 이탈리아로 불청객처럼 흘러들어온 불법 이민자들을 리비아 내의 수용소에 감금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2009년 양해각서 서명차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베를루스코니 옆에서 포즈를 취한 이 나이 든 대령의 가슴엔 사진 한 장이 빛나듯 꽂혀 있었다. 오마르 무크타르의 사진이었다. 그는 이탈리아인들이 1931년 교수형에 처했던, 리비아 대중 봉기의 지도자였다. 식민주의 지배에 대한 배상 조로 로마한테서 돌려받으려던 돈 대부분을 이탈리아산 기업들의 호주머니로 환류시키는 데 리비아가 보여준 헌신적인 기여는, 양국이 맺은 조약 문서 속에 고이 묻혀버렸다.

 

물론, 식민주의적 잔학상들에 관한 기억이 숭악한 탈식민지 정권들에게 수사적 방어수단을 제공하는 데가 리비아뿐만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은 가다피가 과거를 착취하고 있다는 점보다는 오히려 서방 진영이 건망증을 앓고 있다는 점과 더 관련이 있다. 서방 진영의 전투기들이 리비아 상공에서 또 다시 활동중인 지금, 이러한 과거는 또한 우리의 과거가 됐다. 아닌 게 아니라 늘 그랬다시피 말이다. 리비아 인민 다수는 가다피를 증오하며 그가 가능한 한 빨리 사라지길 바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잊어버린 걸 기억할 것이다. 즉, 저 전투기들이 처음이 아니며 압도적이던 서방 진영의 힘이 북아프리카 해안으로 밀려났던 긴 역사가 있다는 걸, 그리고 서구권의 권력은 통상 좋은 의도를 내뱉으며 다가오곤 했다는 걸 말이다. 오늘날 서방 진영이 예전과 지금의 개입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차이들을 부각하고 싶다면, 이에 앞서 전제돼야 할 게 있다. 우리가 망각해버린 것과 우리 스스로 친숙해져야 한다는 것이고, 세계의 가다피들이 이러한 (근대식민주의 경험을 둘러싼) 역사를 갖고 벌이는 온갖 짓거리에도 불구하고 가다피 식 정권이 장기집권에 매달릴수록 왜 그런 역사가 중요하고 앞으로 더더욱 중요해질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가디언>, 2011년 3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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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1 01:57 2011/04/01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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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u_topia 2011/04/01 0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Taube" 단엽기. 생각하게 만드네요. Taube 하면 필경 독어로서 비둘기란 말인데, 다시 평화의 상징 비둘기를 둘러 쓴 전투기들이 출격하는 것은 아닌지...

    • 들사람 2011/04/01 0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저게 얼추 비둘기란 뜻이군요. 고맙습니다. 어제 급하게 번역하니라 그냥 둔 대목을 잘 짚어주셨네요.^^:

  2. 앙겔부처 2011/04/03 2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두 뒤엣 것도 아랍 사이트 글쓰기 가능하게 해놨으니 써주세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