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두 번의 논평을 번역 못했는데요,
거기서 특기할 만한 내용은 이게 아녔나 해요.

미국이 머지 않은 시점에, 이스라엘에 대한 실질적 후견자 역할을 중단하게 되리라는 주장이요.

이라크 침략으로 인한 경제, 군사적 손실은 물론,
그것과 함께 따라올 심리-문화적 재앙 내지 후폭풍을 수습하느라 말그대로 얼이 빠질 것이므로,
그간 벌려온 오지랖에 대한 대대적인 조정이 있을 수밖에 없으리란 논린데요..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지금 '그래도' 미국 믿고 저 지*이라지만, ㅎ
지금껏 그래왔듯 미국이 앞으로도 이스라엘을 후견할진 심히 의문이라고 하죠.

이런 주장의 구체적 얼개를 좀더 알고 싶지만,
뭐 흘리듯 언급하는 정도라 천상 따로 알아봐야겠던데,
암튼, 앞으로 유념할 대목인 건 분명한 듯합니다.

그럼, 이 정도로 하고, 아래 글 보시길.
갠적으론 아주 흥미롭더라구요 ㄲ


***

Commentary No. 199, Dec. 15, 2006


멕시코의 대동요: 봉기, 아니면 내전?
("Mexican Turbulence: Uprising or Civil War?")



지난 달,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멕시코가 “거대한 봉기 또는 내전 직전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서 그는 사빠띠스따가 주도하는 “맞불 캠페인”의 닻이 오를 거라고도 했다. 그리고 지난 6월 2일 대선에서 민주혁명당(PRD) 후보로 나왔던 A. M. L. 오브라도르는 지금껏 대중의 엄청난 지지와 함께, 자신의 당선이 도둑맞았다며 목청을 높여왔다. 그는 12월 1일 있었던 칼데론 당선자의 취임선서를 인정하지 않았고, 각 부처와 내각 및 지역별 지사 인선을 통해 “합법정부”라는 이름의 독자적 대항 조직(a structure)을 마련했다.

한편, 올해 초 옥사까 지역 교사들의 임금투쟁 파업으로 시작했던 움직임은, 흔히들 말하는 반反자본주의 봉기와 아주 흡사한 양상을 보여왔다. 이같은 흐름으로 스스로 ‘옥사까민중의회’(스페인어로 APPO)라 명명한 조직이 옥사까 지역을 장악한 가운데, 제도혁명당 소속인 현 주지사 율리시즈 루이즈의 해임을 요구의 하한치로 내걸었다. 마침내 (옥사까)주 및 연방경찰이 움직이면서 봉기는 진압됐고, 민중의회 지도자들은 현재 구속된 상태다.

미국이 코앞인 이웃나라에서 어떻게, 정부는 적법하지 못하다며 적극적이고도 강력한 도전에 휩싸이고, 신임 대통령이 6년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를 두고 격론이 벌어지며, 이로써 결국 80년 동안 상대적이나마 안정적이던 정치 지형이 종언을 고하게 됐을까?

멕시코에서 한창 진행중인 극심한 동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 요소를 하나로 묶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5백 년에 걸쳐 지속돼온 멕시코 선주민들에 대한 억압, 둘째, 20세기 동안 자릴 잡았던 멕시코 정치제도들의 기능부전, 셋째, 멕시코의 기본적 삶의 질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초래한 파급효과를 들 수 있다.

멕시코는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듯, 이곳에 이주한 소수의-옮긴이) 백인 정착민들이 세운 나라로, 인구의 대다수가 인디언 선주민들과 이른바 혼혈인으로 구성돼 있다. 이런 인구학적 구성은 중요한 함의를 지니는데, 특히나 계층화구조가 문화적·인종적 분할선을 따르고 여러 삶의 지표상 (나타나는 계층간) 격차가 아주 극심할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격차로 인한 긴장이 만들어낸 가장 최근의 정치적 귀결로, 1994년 치아파스주에서 있었던 사빠띠스따(또는 짜파띠스타 민족해방군)의 출현을 들 수 있다. 사빠띠스따는 지난해 시작한 “맞불 캠페인”을 통해 멕시코 전역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지속적이고 의미심장한 정치세력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맞불 캠페인”은 선거용도 아니고, 멕시코 국가권력 장악을 목표로 내건 것도 아니다.

이 캠페인은, 멕시코와 전 세계를 상대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지역 자치조직들 및 다종다양한 피억압 집단들의 힘을 북돋우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다음으로, 1910년의 멕시코 혁명 와중에 틀이 잡혔던 공식적인 정치 영역이 있다. 혼란스러웠던 초창기 이후, 멕시코는 제도혁명당(PRI)을 방패 삼아 일당통치 체제로 자리를 잡았다. 라자로 까르데나스가 대통령으로 있던 1930년대에, 제도혁명당은 그야말로 가장 혁명적인 면모를 뽐냈다. 석유를 국영화하고, 정부지원 아래 에히도스(ejidos)라 알려진 각종 영농조합(communal land) 프로젝트를 마련, 농업개혁을 추진했다.

1940년대 이래로 까르데나스 노선으로부터의 이탈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제도혁명당은 점점 더 관료화·보수화하는 모습을 보이며 부패의 나락에 빠졌다. 처음에 이들과 각을 세웠던 (정당)세력은 오직 하나, 민족행동당(PAN)이라 불리는, 가톨릭교에 친화적인데다가 기업을 옹호하는 우익정당이었다.

1989년 민주혁명당의 창당은 제도혁명당과의 좌파적 단절을 정치지형 속에서 부각하는 데 기여했다. 민주혁명당 전신이던 좌파그룹에서 1988년 대선 후보로 나온 이는 꽈우떼목 까르데나스로, 까르데나스의 아들이었다. 대다수가 인정하듯 까르데나스는 1988년 선거에서 제도혁명당한테 당선을 도둑맞았지만, 그렇다고 그같은 개념없음에 맞서 싸우진 않았다.

2000년 당시 민족행동당 후보였던 비센떼 폭스는 제도혁명당(소속 대통령)을 결국 권좌에서 몰아내는데, 이는 제도혁명당의 급격한 정치적 몰락을 초래했다. 2006년 대선에서 민주혁명당 후보로 나선 오브라도르는 선거에서 졌다고들 하자, 1998년 까르데나스가 그랬던 것처럼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지금껏, 상대 진영이 제멋대로 승리라고 간주한 결과에 대해 그 밑동을 허무는 식으로 적극 대응해 왔다.

사빠띠즘과 오브라도르주의는 멕시코 인민들이 벌이는 반대 노선의 두 날개를 이룬다. 이 두 계열은 현 정국에 대해 상이한 정치적 전략을 구사하는지라, 서로 장단이 잘 맞는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옥사까 지역에서 만들어졌던 민중의회는 이 두 갈래의 힘이 하나로 뭉칠 수도 있으리란 점을 시사했다. 양측 모두 민중의회를 지지했고, 이런 가운데 민중의회는 양측 모두에게서 완전히 독자적인 자율성을 지니고 있었다. 조만간, 민중의회 같은 조직화 움직임은 더더욱 탄력이 붙을 듯싶다.

멕시코의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 염두에 둬야 할 마지막 요소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있다. 나프타 이후, 멕시코의 상위계층은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하위계층은 예전보타 상황이 더 악화됐다. 이로써 나타난 여러 귀결 중 하나는 물론, 미국으로 이주하고자 국경을 넘는 멕시코인들이 차츰 늘어갔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선 이같은 추세가, 새로운 “토착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이주반대 운동가들과, 이에 흥분한 라틴계 유권자들 간의 분란을 유발하고 있기도 하다.

내년이나 내후년쯤 세계-경제가 한층 더 하강 국면에 접어들 경우, 현 멕시코 합법 정부가 (국민)소득의 급격한 하향화를 피할 길은 아마도 없을 텐데, 그로 인해 불어닥칠 폭풍에 제대로 맞서긴 어려울 듯싶다. 이런 가운데, 멕시코와 미국 발(發) 대동요(의 흐름)은 합류하게 될 공산이 있다.

“끓어라, 끓어라, 고역도, 재앙도/타올라라 불길이여, 들끓어라 가마솥이여” - 『맥베드』에서 마녀들은 이렇게 읊조렸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 사회학




http://fbc.binghamton.edu/199e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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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2 21:45 2008/03/12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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