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경, <딴지일보>에 업데됐던 기사.

 

<신동아>, <연합뉴스>,<한겨레21>에 난 인터뷰와 기사, 기고문을 갖고서 일종의 정신분석적 접근을 시도해본 건데..(파란색으로 된 구절들은 다 이 매체에서 인용한 대목들이다)

 

기사가 올라간 뒤, 당시 편집장이셨던 한동원 선배의 우려대로

비약과 억측이 뒤엉킨 소설이란 혹평을 받긴 했어도..;;

 

대한민국의 전문가-지배엘리트들한테 자리잡은 집합적 무의식("망딸리떼"라고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분석이 어떻게든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 워낙 들었던 터라.

 

 

* * *

 

 

[추적] 김현종과 한미 FTA

- 잃어버린 아부지를 찾아서

 

 

그대의 환상, 그대는 맘만 대단하다
그 맘은 위험하다 자신은 오직
꼭 잘될 거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대가 살고 있는 모습은 무엇인가

-서태지와 아이들, <환상 속의 그대> 中

 

주지하다시피, 요즘 한미 FTA 추진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엊그제 어느 여론조사기관에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얼추 찬성이 55, 반대가 45 정도다. 이를 두고 그저 찬성여론이 우세하다고만 할 수 없는 건, 얼마 전만 해도 '일단 지지'가 대세였던 터라 그렇다. 반대여론의 증가세가 그만큼 만만치 않은 게다.

 

근데 재밌는 건, 여론의 변화 자체보다도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는 이른바 '전문가' 및 관료 엘리트들의 태도다. 기본적으로 이들에게 한미 FTA 추진에 대한 싸늘한 여론은, 사실의 왜곡, 과장에 근거한 잘못된 인식일 뿐이니 말이다.

 

당장 한미FTA의 '원만한' 추진을 목적으로 지난 11일 발족된 '한미FTA 체결지원위원회'를 보시라. 간판부터가 벌써 '체결지원' 위원회다.

 

여기엔 설사 압도적 여론이 반대해도 반드시 체결하고야 말겠노란 결사항전의 신념만이 버젓하다. 남은 거라곤 그저 대중의 '무지와 몰이해'를 어떻게 일소하느냐일 뿐. 자신들한테 꽂힌 불멸의 신념이 교조의 또다른 이름일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 따위, 있을 리 없다. 왜냐.

 

자타가 공인하는 엘리트들이니까.

 

하긴, 이들이 누구신가. 심지어 중국측에서 파격적이라 할 만큼 유리한 협정조건을 제시했건만, 바로 그 파격을 마다해 가며 여러 모로 불리한 미국과의 FTA 체결을 서둘러 추진했다는 이들이다.

 

한미 FTA의 경제적 실익이 어떠할 것인가를 따지기에 앞서, 그걸 기어코 추진하겠다는 이들의 '평균적'인 심리상태가 어떠한지 따져봐야 하는 건 이래서다.

 

이들은 도대체 어떤 사고와 행동패턴을 몸에 익히고 있길래, 한미 FTA 추진을 절체절명의 시대적 당위라 철썩같이 믿고 있는 것일까.

 

김현종.

 

이 김현종이란 인물은, 직급상의 위치로 보나 그런 자리에 오르게 된 그의 이력으로 보나, 이런 접근이 필요한 인물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한미 FTA를 총괄지휘하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다. 국내외 법률회사를 거쳐 홍대 교수, WTO 법률 자문관으로 활동하다 통상교섭본부에 들어온 게 2003년. 지금의 통상교섭본부장 자리에 오른 건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2004년 7월이다.

 

이 자리는 거의 장관과 맞먹는 직급으로, FTA 추진 전반에 관한 칼자루는 그가 다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리 말해, 현재 FTA와 관련한 전체적 그림은 그의 머릿 속에서 나오고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우선 순위에서 한참 밀려나 있던 미국과의 FTA가 전격적으로 추진된 데는, 김 본부장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상교섭본부장이라는 감투도 감투지만, 이런 변화를 앞장서 주도한 김 본부장의 개인적 이력에 주목해야 하는 건 이래서다.

 

 김현종의 이력

 

우선, 그는 '조기유학파'다. 고등학교와 학부, 그리고 대학원을 전부 미국에서 마쳤다. 40대 중반이라는 연배에서 보기 드문 경우지만, 고급외교관인 아버지를 둔 덕에 가능했던 일이라 하겠다. 그 뿐인가. 동부 사립고교에다 아이비 리그에 속하는 컬럼비아 대학을 다니며 박사 학위까지 받았으니, 나무랄 데 없는 엘리트 코스웍을 거친 셈이다.

 

물론, 김 본부장이 어려서부터 유학을 했다는 사실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그러니까, 미국 물 좀 먹었다고 죄다 미국진리교 교도가 되는 건 아니란 얘기다. 예컨대 영국 물 좀 먹었던 영국령 인도 출신 마하트마 간디가 그랬고, 프랑스 물 먹고온 프랑스령 알제리 출신의 의학도 프란츠 파농이 그랬듯이 말이다.

 

근데 문제는, 이런 경우가 가뭄에 콩 나듯, 별로 흔치 않다는 거다. 이른바 유학파가 만들어지는 공정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사실 파농이나 간디 같은 경우는 예기치 않게 나타난 '돌연변이'에 가깝다는 건데.

 

따라서 김 본부장의 이력에 주목하는 건, 특출난 개인에 대한 호사가스런 관심의 발로가 아니다. 그건 외려, 다른 누구보다도 그가, 미국 유학파들에게서 일반적으로 엿뵈는 대미관을 찐하게 드러내주리라 보기 때문이라 해야할 게다.

 

더구나 그가 정서적·지적으로 한창 섬세했을 무렵 '변방' 출신으로 해외, 특히 미국서 오랜 기간 머물렀다는 점은, 그의 대미관을 가늠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아닌 게 아니라, 이런 단서가 될 만한 일화들이 있다. 하나는, 일본에 잠시 머물며 소학교를 다닐 당시 "일본 아이들이 '조센징' 어쩌고 하면서 놀려댄" 바람에 한동안 등교를 거부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또 하나는, 대학 1학년 때 국제법률가가 될 맘을 먹고 있던 중, 한국이 유엔에 가입이 안돼 그건 힘들 거란 얘기를 관계자들한테 듣고 "크게 실망하면서 한동안 심각하게 '나라 걱정'을 했다"는 사실이다.

 

변변한 존재감 하나 없이 업신여김이나 당하기 일쑤였던 대한민국의 위상이, 김 본부장한테 거듭 상처를 남겼으리라 짐작할 만한 대목이다. 하늘 같은 줄만 알던 아버지가 실제로는 위엄은커녕, 우수운 놀림감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하게 됐다고나 할까. 내색하진 않아도 말이다.

 

그렇대서 그가 끝모를 좌절과 자기모멸 따위에 빠지지 않았다는 건, 그의 이력이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오히려 그는, 이를테면 아버지에 대한 참담한 실망감을 더 이상화된 아버지, 그리고 보다 이상화된 다른 동일시 대상을 추구함으로써 벗어나려 했다는 건데.

 

"생각도 영어로 하고 꿈도 영어로 꾸"며, 심지어 세간에선 육두문자라고도 불리는 전문용어를 영어로 구사하는 데도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그가, "내게는 국익과 국가관이 에센스"라며 조기유학을 원하는 부모들한테 "아이들이 한국인이라는 민족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건, 앞서의 추론이 막연한 억측은 아님을 잘 보여준다.

 

이렇듯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서의 대한민국 사랑과, 이미 존재하는 미래라 해도 좋을 어떤 대상인 미국에 대한 열렬한 동일시는 그의 몸 속에서 아무런 모순 없이 공존하게 된다.

 

 김현종과 미국

 

그렇다면.

 

그의 마음 속에 대한민국이라는 아버지가 마땅히 되어야 할 이상적인 모습, 즉 '궁극의 아버지상'으로서 자리잡고 있을 미국이란, 그에게 어떤 존재일까.

 

이에 대해선, 그나마 <연합뉴스>나 <한겨레21> 같은 매체로 알려진 그의 발언과 주장들을 퍼즐맞추듯 재구성해가며 가늠해보는 수밖엔 없다.

 

김 본부장이 공론의 장에서 얘기하는 걸 워낙 기피해온 터이기도 하지만, 직접 얘길 듣는다 한들 이런 속내를 터놓고 얘기할 턱도 없는지라 그렇다.

 

일단 그에게 미국이란, 한미 FTA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미국 시장을 다시금 공략하고, 전략적 제휴를 통해 세계 수준의 기술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해법"이라 단언하는 바, 대한민국의 "보이지 않는 초고속 인프라"다.

 

오늘날 아무리 대한민국의 최대 교역 파트너로 중국이 부상하고 그에 따른 지정학적 구조변동의 징후가 보인다 해도, "우리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천상 미국일 수밖에 없는 건 그래서다.

 

결국 미국이란, 한심한 아버지라 업수이 여겨지기나 하던 대한민국의 빈 자리를 메워준 이상적 아버지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셈인데, 이런 그에게 미국과의 FTA로 한국이 미국적인 시스템을 빼닮아가는 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외려 그것은, 그토록 부정하고 싶지만 결코 그럴 순 없었던 초라한 아버지 대한민국과 비로소 화해할 가장 현명한 선택이니까 말이다.

 

이런 김 본부장한테, 한미 FTA는 매국의 구렁텅이가 결코 아니다. 그렇긴커녕, 그것은 '합리적 애국'에 진정으로 탁월한 스프링보드인 게다.

 

한미 FTA를 추진해야 하는 현 상황을 구한 말의 국제정세에 빗대며 그가 사용한 "굴욕", "비참", "치욕"과 같은 단어들은, 미국에 대한 그의 숭배에 가까운 동일시가 능멸당했던 아버지 대한민국에 대한 기억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김 본부장의 의식 깊숙이, 미국은 그같은 심리적 속앓이를 유발하는 동시에, 그런 속앓이로부터 그를 마침내 구원해줄 자애로운 아버지로 상상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한미 FTA를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우리 사회 전반에 '글로벌 스탠다드'를 도입해 산업과 제도의 선진화를 가져올 수 있는 호기"라 단언하는 건, 능멸의 대상이던 아버지가 자랑스런 아버지로 비로소 거듭날 절호의 챤스여서인 게다. 적어도, 김 본부장 같은 이들한테는 말이다.

 

물론, 19세기 말엽의 정세와 현 상황을 나란히 비교하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 건지는 이와 전혀 별개로 다룰 얘깃꺼리겠지만 말이다.

 

 김현종과 한국

 

 

이렇듯 김 본부장에게 미국이란, 아버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데 없어선 안될 '아버지의 아버지'에 가깝다. 물론 그건, 현실의 미국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이상화된 아버지상으로서의 미국이다만서도.

 

어느 동료변호사는 그가 "소신이 너무 강한 나머지 '내 생각에 반대하면 문제가 있다'는 식의 독선적 면모를 종종 드러낸다" 했지만, 이런 면모를 그저 김현종이란 개인의 기질 문제로 돌릴 수 없는 건 이래서다.

 

김 본부장에게 그의 사고와 행보에 토를 다는 건, 합리적인 문제제기이기 이전에 자신이 스스로 미국과 맺는 관계를 문제삼으려는, 한마디로 불경스런 패륜행위에 가까운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리 보면 가령 한미 FTA를 전면 재검토하란 세간의 목소리는, 김 본부장한텐 '아버지의 아버지'를 부정하라는 요구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것은 김 본부장 개인에겐 매우 불쾌한 일일텐데, 미국에 부여된 성스런 가부장의 권위를 허무는 건 곧 애국이 에센스라는 자기 자신마저 부정해야 하는 것일 터라 그렇다.

 

이런 그에게, "'계급장'을 떼놓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면서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원만한 리더쉽이 아쉽다"거나 "국내법과 국내산업, 통상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적임자로 보기 어렵다"는 주변의 지적이 먹히길 바라긴 몹시 힘겨워 보인다. 왜냐. 설사 그런 지적이 나왔대도 한미 FTA는 전면 재검토도 선택가능한, 열린 토론꺼리 따위가 아니므로.

 

아니, 그런 것이어선 안 된다. 스스로 늘상 반복하듯 그건,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마치 자신의 아버지가 어째서 자기 아버지인지 굳이 해명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스스로 그토록 사랑한다는 대한민국의 국민들 목소리 따윈 아랑곳 않는 엘리트주의적 행보를 보이면서, 그간의 시사토론 프로그램 참석 및 인터뷰 요청에도 거절로 일관했던 건, 필시 이래서였을 터.

 

이런 고로, 한미 FTA와 관련해 그가 할 일이라고는 오로지 하나. 즉, 미국이 어째서 대한민국이 본받아야 할 성스런 아버지상일 수밖에 없는지 거듭 밝히는 것 뿐이다.

 

이렇다 보니 국민들의 목소리를 좀더 겸허히 경청하겠다는 소린, 그냥 마지 못해 뇌까려야 하는 립서비스에 가깝다. 경청은 커녕, 기본적으로 교정이 시급한 상종 못할 헛소리로 여겨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이같은 시각은 단적으로, 그가 위원으로 있는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회의 발족 이유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국민들한테 "FTA의 정확한 실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다 보니 "교조적인 단순논리에 사로잡혀" 이뤄지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너무 많"아서란다.

 

이는 곧, 설사 국민들 목소리를 듣더라도 환자를 다루는 의사 입장에서 듣겠노라고 확실한 선을 긋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또다른 김현종들이라 해도 될 '급'과 '격'을 갖춘 이들 엘리트 전문가들한테, 한미 FTA는 애당초 횡적인 협의가 이뤄질 만한 사안이 아닌 게다. 이네들의 유일한 목표는 오직 하나, 미국이라는 성스러운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대중적 동의를 기어이 획득해내는 것이다.

 

김 본부장처럼 이른바 '국제감각'을 갖췄다는 이들일수록 한미 FTA 추진에 대한 '민주적 참여'란 있을 수도 없고, 무엇보다 용납될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노 대통령과 대통령직속 한미FTA 체결지원위원장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

 

 


 

 

지금까지 본 기자, 한미FTA 추진을 이끄는 가장 큰 동력은

 

          ① 이를테면 지정학적 구조변동이나 세계경제의 흐름에 대한 면밀한 득실계산 따위가 결코 아니라

 

② 능멸당한 아버지 대한민국의 빈 자릴 메워줄, 미국이라는 성스러운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절대적 동일시로부터 나온다는 점,

 

그리고 국제관계를 가부장적 가족관계와 비스무리한 틀 안에서 바라보려는 이같은 심리가,

 

③ 이른바 '미국통'이라 불리는 전문가 엘리트들에겐, 마치 집단무의식 마냥 지극히 일반적인 상태일 소지가 크다는 점을

 

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김현종의 개인적인 면면과, 주요발언들을 실마리로 살펴볼 수 있었다.

 

영토의 식민화보다 더 무서운 게 정신의 식민화라더니만, 법률 혹은 영토상의 주권을 보장받았다고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이네들은 본의 아니게도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답답한 사실은, 이들의 행보에서 미국이 이제는 '지는 해'의 반열에 들어서기 시작한 가부장이라는 걸 눈치챌 센스, 코빼기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거다. 그래도 명색이 날고 긴다는 '엘리트'들이신데, 이 분들의 눈엔 미국이 지금 얼마나 깊고 깊은 진흙탕에 빠진 참인지 통 안 보이시나 보다.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세트로 앓는, 이른바 '쌍둥이 적자' 덕에 생긴 합병증이 낫긴 할런지도 불투명한데다, 결정적으로 이렇게 곯아버린 살림살이 캄뿌라치해주던 화폐 중의 화폐, 미국 달러의 약발마저 시들시들해진 지 오래거덩.

 

근데 이걸로도 모자라, 대책 없는 전쟁질까지 벌여가며 명을 재촉하고 있으니. 오죽하면 미국 안에서, 그것도 꽤 보수적인 분석가들한테조차 이젠 괜한 갑빠 그만 잡고 곱게 늙을 준비를 할 때라는 충고가 공공연히 나올까.

 

물론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그간 캡짱 노릇하던 끗발 덕에 대놓고 왕따를 당하지야 않겠지만, 사람으로 치면 황혼기도 한참 전에 접어든 셈이다.

 

 

    


'미국의 황혼'을 말하는 미국 안의 두 갈래, 찰머스 존슨(왼쪽)과 월러스틴.

 

 

미국과의 FTA 체결에 있는 판돈 다 걸어야 하는 듯 나오는 게 무척이나 바보 같아 보이는 건 바로 이래서다. 만성질환에 발기부전, 치매 증세까지 보이는 초로의 아버지이거늘, 왕년의 화끈한 방중술이 앞으로도 건재하리라 으레히 믿는 꼴이라니. 아무리 섬겨 마지 않을 아버지 같은 존재라도 그렇지, 어찌 그리도 눈치 없이 구시는가들.

 

더욱이 한미FTA에 올인하자는 노무현 대통령 이하 고위 실무관료들한테 둘러쳐진 '전문가' 또는 '엘리트'란 껍데기는 이런 난센스를 강화나 할 뿐이지, 균형잡힌 정세 파악엔 외려 방해만 되고 있으니원.

 

뭐, 난 곧 죽어도 그렇게 믿고서 가야겠다면, 그걸 막을 도리야 없을 게다.

 

하지만 이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건, 이렇게 둔감한 엘리트들께서 하나 같이 이 곳의 삶을 좌지우지할 예민한 자리에 앉아들 계신지라 그렇다.

 

대형사고는 지들이 쳐놓고, 뒤치닥거리는 본 기자 같은 조또 엄는 넘들이 죄다 덤테기써야 하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는 건데.

 

그렇건마는.

 

외려 똥 뀐 넘이 성질낸다고, 이런 같잖은 우려를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며 조직적 '체결지원'까지 나선 저들의 자뻑스런 행보만 부산하니,

 

이를 정말 어찌 하면 좋단 말이냐, 씨바...

 

 

덧붙여 : 본 기사의 기본 아이디어는 故 전인권 씨(가수 아님)가 남긴 <박정희 평전>에 크게 빚졌음을 밝힌다. 삼가 요절한 고인의 명복을 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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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2 21:49 2008/03/02 21:49

 

 

2006년 11월 중순쯤인가,

 

'식민지근대화론'을 둘러싸고 이영훈(서울대 교수, 경제사)과 허수열(충남대 교수, 경제사), 정태헌(고려대 교수, 한국사) 씨가 벌인 지상'논쟁'이 <고대신문>에 실렸다.

 

나중에야 그걸 알고서 읽어봤는데, 읽고선 세 사람을 싸잡아 씹어줘야겠다 싶어지는 거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 이영훈 교수가 뉴라이트판 '대안 역사교과서' 공청회서

예의 주장을 발표하려다 4.19혁명동지회 아저씨들한테 멱살잡이 당하기도 했고..

 

뭐 그 일을 염두에 두고 쓴 거기도 한데.. 말하자면,

 

과연 이영훈은 '물리적 멱살잡이'감일 뿐인가?

 

랄까?ㅋ

 

 

***

 

 

1.

 

 

 다소 거친 비유 하나부터. 어찌저찌하다, 최첨단 하이테크 기술과 신소재가 결합했다는 로켓 ‘캐피탈’이 발사됐다고 하자. 창공을 가르며 솟아오른 로켓의 위용, 그야말로 미증유의 장관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처음이든 나중이든, 이걸 만들어 탑승했다는 이들의 면면은 표정관리가 대략난감일 만큼 자긍심과 뿌듯함으로 충만하다. 그런데 동시에 그 밑에서 뿜어져나오는 매연과 굉음 같은 노폐물의 압박 또한 어마어마한 것이, 실로 가공할 만한 거다. 이를 마주해야 하는 저 푸른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에게, 저 멀리 반짝이는 ‘캐피탈’의 광휘란 아무리 눈부시다 한들 ‘매혹적인 신기루’에 가깝다 해야 할 판이다.

  

그렇다면 이 경우, ‘캐피탈’은 문명사적 진보와 번영을 알리는 축포일까, 전례 없던 전지구적 재앙의 씨앗일까? 하늘과 땅 상황이 얼핏 판이하다 못해 양립 불가능해 보인다 해서, 이 둘을 전혀 별개인 양 다뤄야 할까? 불가능할 거야 없겠지만, 온당한 접근이라는 평가까지 바라는 건 분명 과욕일 게다.

 

그런데도 기어코 가능하다? 그렇게 나온다면 그건, 대지에 저주를 내리는 ‘캐피탈’을 폐기하긴커녕 거기에 탑승하고, 심지어 그것을 소유하길 내심 선망해서가 아닐까? 그것도 아주 강렬하게.

 

이영훈과 허수열, 정태헌 교수(이하 직함 생략) 사이에 오고간 주장들을 접하며 떠오른 생각이다. 확실히, 이거 하나에 대해선 누구든 이의가 없지 싶다. 뭐냐면,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근대일본령 조선’체제의 형성 및 발전이 함의하는 바를 ‘총체적 구도’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거.

 

옆에서 보기엔, 서로들 자기가 보고 싶은 측면들만 선택적으로 취합, 마치 전체적 실상인 양 침소봉대하고 있을 뿐이지만 말이다.

  

 

2.

  

 

먼저, 이영훈의 경우. 그는, 역사적 자본주의가 지리적 확장을 거듭하며 전지구적 체계로 자리잡아온 “실태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계량지표를 활용해 근대 세계로의 포섭을 전후한 한반도 지역의 장기사적 추이를 분석하려 한 건 아주 멋졌다. 하지만 칭찬은 딱 여기까지.

 

그에겐, 창공에 드높은 ‘캐피탈’의 스펙터클만이 “실태”의 전부로 보이는 모양이다. 정작 그 스펙타클이 줄곧 조장한 ‘문명화’ 압박에 노출된 나머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대지와 인민대중의 살림살이 따윈 안중에 없다. 언급한들, 역사적 자본주의 체계의 발전 와중에 곧잘 있던 ‘불행한 에피소드’쯤으로 치부하고선 그걸로 그냥 끝이다. ‘총체적 파악’을 중시한다더니만, 중시는커녕 무시하는 데 여념이 없다. ‘총체적 파악’이란 말은 이런 반反지성적 자가당착을 감추려는 알리바이의 수사였던 셈이다.

 

‘캐피탈’이 빚어내는 발전과 궁핍화의 이중주가 지금껏 지속적으로 변주를 거듭하는 현재진행형이라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그에게 중요한 건 자본주의 세계경제로의 지리적 포섭이 이런저런 경제지표상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가져왔다는 ‘사실’이니까.

 

그같은 포섭이 ‘근대 일본령 조선’이라는 식민지 축적체제를 통해 이뤄졌다는 사실은, 따라서 지엽적이거나 적어도 ‘경제외적’인 사안이다. 포섭이 자본축적의 제도화에 필수적인 근대 식민주의 규율권력의 헤게모니적 억압과 광범한 궁핍화 압박을 늘상 동반하더라는 ‘총체적 구도’는 거의 모두 사라져버린 셈이다.

 

그런데도 일정한 성장세를 보여준다는 경제지표들로 “한반도의 식민지기 경제사를 거의 모두 이야기할 수 있다”니. 통계기법이 아무리 정교하다 쳐도, 이건 좋게 말해 무모한 몽상, 까놓고 말하면 정량수치를 물신화한 데 불과한 ‘지적 사기’다.

 

이밖에도 이영훈의 자본주의-근대(화) 인식이 얼마나 허위적인지 짚자면 항정이 없지만, 일단 “통계적 평균치와 인간 경험은 얼마든지 상반된 방향으로 나갈 수 있”으며 심지어 “양적 요소의 일인당 증가가 민중의 생활방식, 전통적 관계의 엄청난 질적 교란 및 억압의 강화와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다 했던 E.P.톰슨의 통찰로 일단락짓도록 하자.

 

 

3.

 

 

이렇듯, 세계화가 한껏 탄력을 받은 요즘 역사적 자본주의의 ‘시대정신’ 고취에 올인한 자유대한 이데올로그 이영훈을 겨냥, 허수열은 나름 준열한 심판의 비수를 날렸다. 이름하야, ‘조선인 없는 조선의 경제성장’이란 테제다.

 

이미『개발 없는 개발』에서 실증적으로 밝혔듯, 일본령 조선에서 이뤄졌다는 근대적인 발전 추이란 조선인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배제와 분할선의 제도화에 기초한 것으로, 한마디로 ‘저질’이었던데다 성장세마저 알량했다는 거다.

 

분명 준열하긴 한데, 어쩐지 개운치가 않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이영훈이 펼쳤던 주장의 ‘숨통’을 끊는 건 고사하고, 제대로나 맞힐지 의문이다. 왜냐. 앞서 든 비유를 다시 끌어들자면 이렇다. ‘캐피탈’의 스펙터클이 역사적 “실태”의 전부라는 이영훈과는 정 반대로, 저주받은 대지의 살풍경이야말로 일본령 조선의 실태라고 맞받아칠 뿐이라서다.

 

발전과 궁핍화, 이 둘은 역사적 자본주의 문명에 특유한 축적원리를 이루는 두 날개다. 그런데 허수열은 일본령 조선 ‘밖’에선 궁핍화 없는 발전이 마치 있었던 양, 일본령 조선에서 이뤄진 근대화가 ‘진정한’ 발전일 수 없다는 논지를 펼친다.

 

궁핍화는 근대적 자본축적 기제가 늘상 생산해내는 내재적 귀착점이건만, 이영훈과 사이좋게 허수열도 그걸 발전과 전혀 별개로 파악하긴 마찬가지다. 이래서야 비수를 아무리 가열차게 날린들 ‘숨통’을 아예 끊어버리기란 사실상 요원하다. 허수열도 같은 식으로 피를 보긴 마찬가지일 테니, 논쟁은 선혈만 낭자할 뿐, 지루하고 소모적인 교착상태를 맴돌 게 뻔하다.

 

무엇보다 이 테제엔, 일본령 조선의 발전에 실제로 ‘공헌’하며 분명 재미를 본 조선인 자본가들이 분석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다. 일본령 조선을, 자본축적에 불가결한 근대적 ‘치안’과 ‘질서’를 제도화하는 데 합리적인 통치형태로 수용하고 이같은 조건에 발맞춰 근대 자본가로서의 실천감각을 키웠던 조선인 ‘권세가’들 말이다.

 

그 바람에 이들의 이해가 적극 개입된 일본령 조선이 어떻게 조선인 대다수의 식민주의적 배제와 궁핍화 압박을 제도화하며, 농업자본주의적 축적을 보호·후견하는 근대적 통치기구로 뿌리내리게 됐는진 파악하기 아주 곤란해져버렸다.

 

물론, 근대 식민지체제에 고유한 축적패턴은 ‘민족-국가’ 형태로 이뤄질 때와는 당연히 다르다. 아닌 게 아니라 다 같은 축적이라도, 그게 민족-국가 형태로 ‘내부 식민주의’를 통해 이뤄졌는지, 일본령 조선처럼 ‘식민주의 지배연합’이라는 통치형태로 이뤄졌는지 섬세히 구별하는 건 중요하다. 그 차이가 축적에 ‘합리적인’ 노동(통제)조직과 이를 정당화하는 ‘문명화’ 담론들의 유형, 이 과정이 유발하는 정치적 긴장의 형식에서 만만찮은 차이를 만들어내는지라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근대적’ 노예-소작제에서 임노동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스펙트럼을 보이는 노동유형들이 모두, 단일한 ‘신체’를 이루며 내적으로 관계맺는 역사적 자본주의의 복합적 총체임을 놓쳐선 곤란하다. 요컨대 일본령 조선의 탄생을 이른바 ‘내재적 발전’이 다다른 정치적 귀결이자, 그 자체 역사적 자본주의의 팽창/포섭 와중에 형성된 여러 근대적 통치유형 중 하나로 자리매김해줘야 한다는 거다.

 

이때 중요한 건, 이를테면 유효수요의 만성적 부족이나 번듯한 ‘민족’자본가로 행세하긴 여러모로 난감한 통치조건이 그렇듯, 식민주의 지배연합이 초래할 여러 ‘핸디캡’에도 일본령 조선이란 옵션을 마다하지 않았던 조선인 자본가들의 ‘망딸리떼’와 내부적 알력관계(또는 ‘정치적 포트폴리오’의 유형), 나아가 이에 기인하는 만성적 위기의 얼개를 면밀히 밝히는 일이다.

 

이러자면 한반도에서 이뤄진 농업자본주의적 재편도, 내재적 발전이 ‘좌절’됐다거나 ‘전근대적 유제’가 온존됐단 식으로 파악해선 곤란하다. 그건 어디까지나 일본령 조선을 매개로 해 이뤄진 근대 동아시아 기축분업 체계(또는 ‘일본경제권’)의 형성이라는 맥락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접근은 결국 역사적 자본주의, 또는 근대 세계체제라는 독특한 문명의 ‘존재양식’을 밝히는 작업이기도 하다.

 

 

4.

 

 

정태헌의 경우, ‘국가 없는 자본축적’이 일종의 형용모순이라는 걸 새삼 환기한 건 좋았다. 문제는, 자본축적과 국가가 맺는 내재적 관계, 그리고 이것이 초래하는 사회적 효과를 하나로 꿸 국가이론의 결여다.

 

질문을 던져보자. “국가를 상실한 식민지 자본주의”라 했던 일본령 조선에서 ‘토착’ 자본의 축적은 그럼 아예 불가능했을까? 불가능하긴커녕, 농업 부문에서 꾸준히 축적된 토착자본은 1930년대 들어서 비농업 부문으로 신규투자차 이전하기도 했다면?

 

더욱이 “자본축적과 발전전망을 만들어내는 공간인 국가의 회복”에 기초한 ‘민족경제’는 그럼 “시장을 넘어선 국가의 폭력”에서 자유로울까? 그렇지 않다면, 민족경제를 구성하는 ‘민족’들이 그런 폭력을 굳이 감내해야 하는 이유는 뭐라야 할까? 어디까지나 그건, 민주적·민족적 자주경제의 ‘완성’에 불가피한 ‘성장통’일 테니까?

 

주지하다시피, 근대국가는 원래 자본축적에 필수적인 법률적·제도적·이데올로기적 후견장치로 등장한 역사적 제도다. 지금이라고 달라진 건, 물론 없다. 자본축적의 제도적 후견형태가 하나 같이 ‘민족-국가’로 일원화된 건 넉넉히 잡아도 50년이 채 안 된다.

 

민족-국가는 다만 그런 역할을 하고자 생성된 복수의 국가형태들과 맞물려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유형일 뿐이다. 근대국가란 여러 민족-국가들과 함께 ‘민족적이지 않은’ 국가형태들이 맞물린 일종의 네트워크 체계로 실재했던 셈이다. 일본령 조선이 역사적 자본주의의 착근 맥락에 따라 대별되는 근대국가의 한 유형으로서, 그곳 자본가들의 실천감각이 담금질되던 시공간이었음은 물론이다.

 

재밌는 건, 이영훈이 자본을 떠받드는 부르주아 승리서사에 한껏 들린 만큼이나, 정태헌도 근대 역사학 특유의 '이야기 방식'에 단단히 붙들려 있다는 점이다. ‘거민에서 민주적·민족적 국민으로’라는 테제는 그 단적인 증거다.

 

물론 차이가 없을 수야 없다. 이영훈이 구한 말부터 지속적으로 전개돼온 일련의 반체계적 운동들과 실천을 외면해버린다면, 정태헌은 그같은 운동의 잠재성들을 ‘진정한’ 국민 주체의 완성이라는 목적론적 서사에 가두고 만다는, 그런 차이 말이다.

 

번듯한 국민경제와 민족통합의 완성이 근대 역사학이 줄곧 상정해온 ‘궁극의 로망’인 건 알겠다. 하지만 1945년 이전에 이미 반체계적 실천을 전개해온 사회적 주체들은 그럼 “거민”만도 못한 거냐는 의문도 의문이거니와, 각성된 이런저런 사회적 주체들이 아무리 “민주적”이니 “민족적”이란 수사를 붙인들 결국 ‘국민’ 주체로 수렴되리라는 이야기 틀 자체가 도무지 납득이 안 된다.

 

그럼 지금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민주적·민족적 국민 서사의 ‘전사前史’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데, 과연, 정말 그럴까?

 

 

5.

 

 

해서, 결론. 이영훈 표 ‘식민지 근대화’ 담론에 대한 비판이, 일본령 조선기에 근대화가 이뤄졌다는 ‘엄연한 사실’ 자체를 아니라며 물고 늘어지는 식이어선 이젠 곤란하다.

 

그것은 특정한 역사적 체계 또는 문명의 구성원리일 뿐인 근대성/모더니티를 ‘물신화’하는 데 대한 비판이어야 하는지라 그렇다.

 

하지만 허수열과 정태헌이 취하는 비판의 각이란, 이를테면 식민주의와 인종주의, 성차별주의를 제도화하고 이를 조건으로 전지구적 헤게모니를 행사하기에 이른 근대성의 해악을 규명하는 작업과는 별 관계가 없는 듯하다. 외려 우리 ‘민족’이 이런 해악을 조장하는 역사적 문명의 ‘발전’과 ‘번영’에 진작에, 그것도 좀더 번듯하니 공헌하지 못한 데 대한 진한 안타까움이 엿보인다면, 비약일까?

 

그러니까 중요한 건 이거다. 특정한 역사적 분기 및 이행의 잠재성을 한결같이 ‘자본주의 이행’의 틀에다만 우겨넣으려 했던 근대 아카데미의 인식론적 관성으로부터 차분하면서도, 철저히 해방되는 거다. 달리 말해 그건, 현재와 같은 역사적 변천과정의 주요 얼개를 규명하되, 그 와중에 봉인돼버린 또다른 이행의 잠재성을 드러내고 상상하는 작업이 되겠다.

 

그건 물론, ‘민족사’적 서술로 인해 유폐되거나 누락돼버린 반체제적 실천의 기억과 영감靈感들을 새로이 환기해내고, 나아가 이들을 오늘날 널리 진행중인 반체제적 실천 전망과 이어보는 작업과도 맞닿는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근대 역사학/사회과학 인식론의 무의식이라 할 식민주의 역사 인식의 망령에서 제대로 탈피하는 첫걸음 아닐까?

 

이쯤 되면 ‘역사에 가정은 없다’는 유명한 말, 당장 폐기처분해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 말이 부려온 허세 탓에, 모든 지구상의 살림살이 국면국면마다 늘 배이기 마련인 이런저런 이행의 잠재성들은 아예 건들지조차 못했으니 말이다. 

 

 

[뱀발]

 

위에 쓴 글에 대해 박노자 교수한테 코멘트를 부탁드렸더니,
과연^^ 친철한 코멘트로 화답해주셨다.

혼자 꿍치고 있기엔 널리 공유할 내용이다 싶어 올려본다.


***

[답신01]

반갑습니다! 네, 지난 번에 - 대학로 시대였던 것 같은데 - 연구실에서 만나뵜던 걸 잘 기억합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중요한 주제에 대한 글을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실, 저는 여태까지 이영훈 선생님을 경제사학자로서 굉장히 높이 생각했는데, 극단적인 "자본주의 지상주의"로, 그것도 아주 속류적 형태로 나가시니까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지요.

보내주신 글을 당연히 잘 읽어보고 싶은데, 제 직장 컴퓨터에 아래아 한글의 설치가 불가능해서 문제입니다. 혹시 워드로 바꾸셔서 다시 보내주실 수 없으세요? 아니면 그냥 편지 텍스트로 보내주시든지요. 하여간 저의 기술적 문제로 이렇게 괴롭혀드려 미안합니다!

****

[답신02]

하하, 기억을 해주신다니 다행이군요.^^

아닌 게 아니라, 이영훈 교수가 1996년인가요? '한반도 근대 이행의 특질'이란 제목(인가?)의 글로 식민지 근대사에 대한 장기사적 접근의 필요성을 시사했을 때만 해도 저 역시 기대가 컸지요.

근데, 그게 다 요즘처럼 근대+발전지상주의에 빠지려 그런 거였나 생각하면 어이 없기도 하고, 씁쓸하고, 어떻게 보면 참 안타깝기도 하고..ㅎㅎ

그래도 그나마 위안인 건, 낙성대경제연구소서 틀을 잡아논 장기통계가 낙성대의 '당파성'과는 얼마든지 다르게 활용될 수 있다는 점 아닐까.. 해요. ㄲ 저도 그렇지만, 박노자 샘 같은 분들이 그 통계를 그들이 의도하지 않던 방향으로 잘 써먹어주셔야죠.^^

아무튼지 간에, 말씀하신대로 워드화일로 바꿔서 첨부했으니 읽어봐주시구요.

그럼 이만..

건강하시구요.^^


****

[답신03]

저로서 충분히 동감할 수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사실 약간의 무리인지 모르지만, 정태헌 식의 주장이 사실 1997/98년 이전 남한의 (어쩌면 북한까지도 포함해서) "발전국가" 모델에 역사적인 존재 근거를 두는 반면, 이영훈 식의 주장은 IMF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적 모델의 역사적 계보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허수열은, 양쪽 사이의 중간적인 존재로 "조선 민족의 보호자로서 우리 국가라는 존재의 귀중함"을 알리고요. 기본적으로 셋이 다 기존체제의 옹호자들인데, 그 기존체제에서 요구하는 바는 약간씩 틀린 것이지요.

"로켓" 비유도 참 좋은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비유는 비행기입니다. 1950-53년간 평양 등을 완벽한 폐허로 만든 것도 비행기로부터의 융단폭격이었지만, 지금은 KAL이 비행기를 아주 많이 보유한 세계항공사 중 하나가 됐잖아요? 참, 근대의 영역에서 "재앙"부터 "자랑"까지의 거리는 너무 짧아요...

그러면 내년 봄에 연구실에서 뵙지요.

****

[답신04]

아,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코멘트 해주신 데 대해 저 역시 덧붙이자면요..^^;

샘께서 말씀하신 정태헌 모델, 이영훈 모델, 허수열 모델이라 하신 건 시계열적인 구분을 통해 다뤄야 할 것이라기보단 근대 사회체제 담론 '패러다임'의 상이한 세 측면이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비유하자면^^ 하나의 신체를 구성하는 상이한 부위가 아니냔 거죠. 분과화돼 있지만, 실은 한 덩어리를 이루는 담론의 신체랄까요. 정태헌, 허수열, 이영훈의 담론은 각 부위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고..

따라서 그런 신체가 특정한 역사적 조건 내지 국면에 들어서면 거기에 걸맞은 부위가 "유달리 많이" 쓰이게 된다고 할 수 있겠죠? 유달리란 표현이 그렇듯, 다른 부위가 안 쓰인다는 건 물론 아니겠지만요. 이른바 논쟁의 형식을 빌어 설전이 오고갈 수 있는 건 이래서겠죠.

그러니까 어떤 담론이 뜨고 지느냘 단일한 담론 패러다임의 상이한 측면들이 뜨고 지는 것으로 이해해 보면 어떨까.. 이렇게 보면 샘께서 "약간의 무리"가 따를지 모른다 하셨던 우려는 극복되거나 적어도 '완화'될 수 있잖을까 해요.

이런 말씀 드리는 건 사실, 앞서 말씀드린 근대 사회체제 담론 패러다임이라는 걸 그러니까 흔히들 말해온 '19세기 패러다임'의 다른 명칭이라 해도 되잖을까 싶어섭니다. 물론, 또다른 중요한 부위인 식민정책학이나 우생학 같은 지식권력이 다른 부위와 어떻게 연관되는질 빼놔선 안되겠지만요.^^

어쨌든 이영훈 씨가 어처구니 없이 '오바'하게 된 게, IMF 이후 양극화 구도가 더욱 첨예히 구조화하면서도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는 욱일승천하는 것마냥 "보이던" 시기와 겹치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 여기에다 정태헌, 허수열 씬 좋게 봐준대도 '시효만료'된 담론적 무기를 갖고 공격을 하고 있는 셈이고요.

정태헌 씬 예전에 보니까 이른바 "탈근대적 문제설정"에 대해 굉장히 씨니컬한 반응을 보이더라구요. 지적 게으름 탓일 수도 있겠지만, 분과적 훈육=디씨플린의 해악적 효과가 이제서야 빛을 발하는 거라 하는 게 맞지 않을까도 싶고..ㅎㅎ 제가 알기로도 이 분 나름 열심히 공부하시는 분인데..

허수열 씬 잘은 모르긴 몰라도, 탈근대 운운도 다 '진정한 근대적 발전'을 경험하고서야 할 수 있단 식으로 반박하실 듯한데..ㅎㅎ

근데 제가 글을 쓰면서도 사실 막막하달까요, 좀 자신이 없었던 게 상이하거나 전혀 다른 이행의 잠재성을 "어떻게" 포착하면 좋을까 하는 점였거든요?

포착해야 한다는 말이야 지당하지만, 정작 문젠 그걸 어떻게 하느냔 점인데, 그런 길이 어떻게 열릴지 그림이 잘 안 그려져서요.ㅎㅎ

수유+너머에 다 좋은데, 어떻게 포착하느냔 댓글이 달렸길래 아마 과거 '자본주의 이행' 징후 찾느라 쌔빠졌던 것과 "외견상" 비슷한 작업이 일단은 반복돼야 하지 않겠냐, 그러다 보면 내재적 발전이란 틀에선 잡기 힘들었던 심대한 차이가 생길 것 같다...는 식으로 달았습니다만.. 샘께선 실마리를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한다 보시는지 궁금해지더라구요..ㄲㄲ

물론 당장 말씀 달란 건 아니고요, 혹 연구실에서 특별 강좌 같은 거 하시게 되면 뭐 이런 테마를 중심으로 함 얘길 풀어주심 어떨까 싶네요 불현듯 드는 생각이..?ㅎ

에, 샘께서 주신 코멘트에 대한 제 생각은 얼추 이렇슴다. 좌우당간 읽고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했구요, 덕분에 그걸 불쏘시게 삼아 생각의 화로를 달굴 수 있었다는...ㅎㅎ

그럼 연말 뿌듯하게 마무리 하시고, 새해에도 건승, 건필하시길 바라며..


***

[답신05]

답신 감사드립니다.

물론, "민족" 형태로든 "세계문명"이라는 형태로든 근대 자본주의적 개발을 긍정하고 목적론적으로 역사 전체를 "자본주의 지향"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세 사람은 말 그대로 "한 몸"의 여러 부위에 불과하지요.

솔직히 말해 데이타 수집/분석 능력으로는 걔중 이영훈 선생이 그래도 아주 나아보일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하도 "대담한" 발언을 많이 하시니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반체제적 "탈주"의 잠재적 가능성은, 1920년대 이후의 공산-아나키 계열 운동에서 약간 느꼈습니다. 물론 그들을 미화할 일이야 없지만 - 공산 쪽이 사실 "공산당"이라는 이름으로 근대적인 관료 국가의 copy를 만드는 부분이 있었고, 아나 쪽이 완벽하게 민족주의를 넘어서진 못했다는 점 등등으로 인해 -, 특히 현지 활동가들의 구체적인 실천(이를테면 "적색노조"가 선보였던 문화생활, "적색농조"에서 이뤄진 공동체적 실험들)을 보면 근대적 패러다임을 벗어날 어떤 단서가 좀 보이긴 한 것 같아요.

나중에 연구실에서 강의할 때라도 "공산계열 운동 재평가" 같은 식으로 이 부분에 대해 좀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새해에 내내 결실을 많이 맺으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박노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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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2 13:13 2008/03/02 1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