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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기형도..

오 기형도..

그의 기일을 이제야 생각해내다니.

 

언제부터인가, 

내 생일 즈음이 되면

어머니는 허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그녀의 몸은 무의식중에 출산통을 기억해내는 것이리

 

언제부터인가,

3월이 되면 나는 인생의 목표, 삶의 준거점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부쩍 늘게 되었다

3월 캠퍼스에서의 강렬한 기억, 

온통 혼란스러움으로 뒤덮여져있던 그 때의 기억이 이렇게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리

 

시간은 흐르고

사건은 희미해져도

더욱 또렷해지는 이 감각.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끔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 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 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 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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