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중파 TV 추석 영화프로는 이런 거밖에 없는가, 하는 불평을 잠시 접고, 순수하게 영화로만 보니까 이것도 잡설거리는 남기는구나. 청소년들의 피를 끓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평이, "강우석식 국가주의 프로젝트"라던데, 과연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시골출신, 그것도 별다른 산업시설이나 볼 것도 없는 시골출신에게는 거대한 자본의 위력보다는 국가, 혹은 그것의 지부인 동사무소나 경찰서의 위력이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크건 작건 자본이라고 생긴 건 별로 볼 일도 없던 시골 마을에서 '왕초'들은 항상 '국가'와 관련된 존재들이었다. 그런 나에게 국가를 최고선으로 하는 '억울 비탄극'이 와닿을리 있겠는가. 그래도 우리 동네 청소년들은 이런 영화 보러 표끊고 들어갔겠지.
공공=국가=공무원=검사, 그것도 평검사의 가장 큰 적이 누구인가? 이 영화의 답은 졸부!
이 영화에서 졸부들은 항상 머리를 굴린다. 정직하게 살지 않고 틈새를 노린다. 그리고 선량한 일반 국민들로부터 유리되어 있다. 이들은 이 사회의 그 누구보다 세상이 나아갈 바를 먼저 알고 먼저 대처한다. 물론 결말에는 공무원에게 다 잡힌다. 일망타진되는 것이다.
나는 갑자기 이 졸부들의 얼굴 위에 일제시대때 김성수 같은 친일, 내지는 우파민족주의 실업가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역사책 속에서 추상화되어 등장하던 그 머리굴리는 실업가들의 얼굴이 이 영화의 졸부들의 복잡한, 하지만 결국 추상화되는 머리굴림과 겹쳐진 것이다. 김성수가 이병철, 정주영이 되고, 또 구씨일가와 김우중 같은 사람들이 되었다.
아, 나는 얼마나 책을 책으로만 보아왔던가. 얼마나 복잡했던 것일까, 그들의 처세는. 반도체냐 화학이냐,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공공의 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