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호

2006/10/08 01:33

서당 답사(9.26-28)때 강원도 지역을 돌아보고 왔다. 기발이승(氣發理乘)의 철학자 율곡의 울림이 떨고 있는 곳.

 

그러나 생각보다 다양한 역사의 흔적들이 잠들어 있었다. 무엇보다 내게 인상적인 것은 경포호수였다. 바다로 흘러드는 물의 압력이 너무 미약해서 바다가 그걸 막아버린 결과 생겨난 호수, 곧 석호라고 하는 종류의 호수라고 한다. 그래서 바로 옆에 바다가 있는데, 그 바로 옆에 엄청나게 큰 호수가 있는 것이다. 물가에 갈대도 우거진 바로 그 호수. 이런 호수를 옆에 두고 철학을 한 율곡 선생의 머리 속이 궁금해졌다. 진주 남강만큼이나 시민들 곁에 있는 호수였다.

 

밤에 몰래 숙소에서 나와서 호수가에 앉아 있었다. 저 호수 가운데 뜬 달이 물결에 찰랑거리고 있었는데, 나는 바로 그 큰 호수의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맥주 한모금을 마시고 물결을 쳐다보니 모든 근심이 사라졌다. 잔 물결이 자꾸 내게로 왔다. 내가 그처럼 혼자 멍하니 앉아 있어 본 적이 있었던가?

 

대학 다닐때는 고민이 있으면 혼자 고향에 내려가서 바닷가 방파제에 앉아 물을 바라보곤 했다. 파랑의 울렁거림때문에 마치 내가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그때도 그랬었지. 김남조의 시를 들먹일 것도 없이 내게 물은 재생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아, 고등학교 다닐땐 남강가에 앉아 물을 보는 것이 유일한 오락거리였다. 자율학습이 없는 토요일 저녁에서 일요일 오전까지.

 

오행 중에서 내 몸의 성분이 불이 많아서 물가에 가면 그렇게 안정이 되는가 보다. 수영도 못하고 물을 두려워 하지만 물가에만 가면 차분하게 정리가 되는 것이다. 올 겨울에 애인이랑 꼭 한번 같이 가야겠다. 남방 속으로 싸늘한 바람과 함께 갈대잎들어 들어오는 듯...


 

겨울바다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물 이랑 위에 불 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의 물이
수심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0/08 01:33 2006/10/08 01:33
http://blog.jinbo.net/rkpaek2/trackback/161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