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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살아있는 느낌

그가 어제저녁 7시경에 전화를 했다.

그는 명동성당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집에 있다고 대답했다. 그가 '웅 알았어'하고 전화를 끊을텐데 그때의 스산함이 한동안 가슴에 남을테지라고 생각하는 찰나...그는 전화를 끊지않았다. 지금이라도 회의에 나오라는 말도 하지않았다.

그는 '오늘 회의때 무슨 안건들을 얘기해야하지?'라고 물었다.

앗....순간 '**이 안건지를 준비해온다고 하던데'라고 말할까 기냥 내가 말할까 망설이다가

차별금지법대응이랑, 유엔사회권규약관련 보고서랑, 푸제온이랑, 후원회랑...어쩌구저쩌구 논의해야돼.

그는 나중에 전화할께라고 덧붙이며 끊었다.

 

그가 오늘 3시쯤 전화가 왔다.

그가 전화한 것은 어제 회의결과나 과정을 알려주려고 전화한 것은 아니다.

그는 '살아있는 느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지난주말부터 명동성당, 차별금지법 대응 기자회견 등에 참여하면서 나름! 강행군을 했다.

그는 몸이 피곤한게 아니라 상쾌하다며 '살아있는 느낌'에 대해 얘기했다.

그에게 '살아있는' , '살기위한' 느낌은 몸무림으로 때론 간절함으로 드러난다.

 

그와 그의 '살아있음' 혹은 '살고 싶음'에 대해 얘기를 하게 된건 1년여밖에 되지않는다.

그는 2006년 8월 국제에이즈회의를 참가하기위해 캐나다를 다녀온 직후 다리 힘을 쓸수없다했고.

종로에 의료기상에 가서 지팡이를 사기도 했는데 결국엔 입원을 했고, 의사한테 준비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가 우는 걸 처음 봤다. 의사가 다른 약을 한번 써보자는 제안을 했고, 그 약은 보험이 안되어 약값이 어마어마했다. 그는 우리가 젤 먼저 돈 걱정을 할거란 생각을 했고, 자기 통장에 있는 돈을 쓰자고 했지. 맞다. 그 와중에 그가 어떤 마음일지를 아는 것보다 약값을 먼저 계산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너의 통장에 있는 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그 담에 드는 약값은 어떻게 할건데? 다른 방법을 찾아야해'라고 몰아치듯이 말했다. 그 일이 계속 맘에 남았었다. 미안해. 지금 생각해도 미안해.

그렇게 하루하루,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에서 그에게 그가 싫어할걸 뻔히 알면서도 사랑의 리퀘스트 얘기를 꺼내기도 했고(그가 스스로 거부하기를 바란 마음은 또 뭘까? 못된 년), 신약을 구해보자는 얘기도 했다. 며칠후 그가 담배를 피면서 그랬다. 더 우울해졌다고. 이젠 그만 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고. 그의 몸과 마음이 이렇게 헤질동안 우리는 뭘 했고, 이것이 그냥 그의 몫이라고 놔둬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가지 의견이 있었다. 생을 잘 정리한다는 것? 활동의 연장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것? 등등

 

그 겨울 그는 내내 병실에 있었다.

그에게 어느날(강곤기자가 인터뷰를 한 며칠후였던것 같다) 찾아갔을때

그가 그의 삶에 대해 얘기를 해주었다. 나는 용기를 낸답시고 그에게 '우리 이제 솔직하게 지내자'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솔직했었는데....

 

그는 그 후 후원회를 통해서 약값을 댔고, 희망이란 것을 새로이 찾아갔다.

희망이란 안겨주는 게 아니라 찾는것이다. 그를 보면 그렇다. http://blog.jinbo.net/Aspeople/

그는 작년 후원의 밤을 하면서 '내몸이 내몸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는 겸손하고 미안해했지만 함께 한다는것이 뭔지를 알고, 자신이 뭘 하고 싶어하는지 알았다. 그로부터 1년 남짓 지났다.

그 시간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너에게는 연속이었다는 걸 알아. 그 연속선에서 너는 명동성당에서 여러 인권활동가들과 얼굴을 맛대고 눈빛으로 인사를 하고, 함께 있다는 것이 기뻤던 거지?

이제 슬슬 새로운 적응을 해야한다며, 마음이 가다듬어지는 시간을 보내고 와서 몸이 한결 가볍다는 너의 말을 듣고 나는 눈물이 나. 그 이유는 너를 존중하기때문이고, 또 하나는 너에게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얼마전 너를 만나서 '네가 하고 싶다고 했던거 상황, 눈치보지말고 했음좋겠다'고 말했던거.

진심이긴 한데, 예의는 아니었다고 생각해.

http://blog.jinbo.net/rmdal/?pid=14

나는 또 동굴에 들어앉아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해보니 결국 그거더라고.

2000년에도, 2004년에도 그랬는데...

어느순간 방어모드로 들어가서는 더 안가는거.

그래도 이번만큼은 회피하고 싶지않아.

 

 너의 목소리가 평온한척 하는 내마음을 들쑤시는구나.

너의 살아있는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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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 문턱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어제부터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베란다에 있는 세탁기가 수도꼭지가 얼어서 안돌아갈 지경으로 얼었다(물끓여서 부어도 별~)

맨바닥에 등을 대고 얼마나 추웠을까 상상이상일 것이다.

나도 종종 학교다닐때 복도에서 신문지덮고 잔적이 있는데 그때는 4,5월이었는데도 한기가 올라와서

해뜨는걸 얼마나 기다렸던지...

 

인권활동가들이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국가기구를 지키기위해서가 아니라

인권운동과 인권을 지키기위해서 농성한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가진것이라곤 독립성뿐이란다. 그런것 같다. 그럼에도 국가인권위는 종종 현재법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권고를 할때도 있고,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농성을 한다, 토론회를 한다며 자주 들락거릴 수 있는것 같지만 막상 농성이라도 들어갈라치면 부담이 영 없는 곳도 아니다.

아직도 문턱이 높다. 게다가 그 문턱을 간신히 넘어도 국가인권위원회가 머라고 지껄이든 각종 국가기구들은 옆집 개가 짓는가 보다한다. 그러다보니 진정을 넣어도 큰 기대는 안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이상한(?) 권고나 결정을 내리면 아~절벽이다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문턱은 넘 높거나 아예 문도 없는 곳이 많아서 혹은 그 문턱이라도 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앞으로는 더 많아질지도 모르겠다.

나는 2001년경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처음 들어가 보았다.

백혈병환자들이 무사히(?)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농성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메시지를 받고서...

백혈병환자들이 국가인권위원회를 농성장소로 선택했던 이유는

면역력이 낮기때문에 환자들이기 때문에 노숙농성은 죽음과도 같은것이어서

그리고 국가인권위이기 때문에...복지부와 초국적제약자본이 내팽개친 환자의 생명을 국가인권기구조차 내치면 갈곳이 없으니까..그런 배짱으로

그리고 국가인권위이기 때문에...국가기구인 복지부의 잘못을 항변하기위해

그때 국가인권위는 '이러시면 안됩니다'라고 했고, 환자들이 배째라고 하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넘어갔다. 나중에는 동태를 보러온건지 환자들의 건강이 걱정되어서 그런건지 구분이 안되는 태도로 농성장을 둘러보고 갔다.

 

그리고

HIV감염인을 비롯한 법정전염병 환자들의 병력정보를 '안전한 혈액공급'을 명목으로 민간기구인 적십자사에게 넘겨주는것에 대해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하게 되었다. 복지부는 국민이 HIV에 감염되면 어쩌냐고 당연한 처사에 대해 왜 찝적거리냐는 식으로 나왔다. '안전한 혈액공급'이 안되는 것과 HIV감염인의 병력정보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는 것을 국가인권위원회마저도 부정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불안했던 기억이 난다. 에이즈예방법 역시도 마찬가지로.

 

그 후에도 종종 국가인권위에서 누가누가 농성을 한다더라는 얘기나 참세상 속보에는 눈길이 가더라.

꼭꼭 닫힌문이 너무 두꺼워서 혹은 세상이 너무 가혹해서

하지만 소리라도 지르지않으면 사는것만 못한 이들이 있을테고

농성이나 1인시위, 기자회견도 하기 힘든 이들이 있을테고

국가기구의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이들이 있을테고

그곳을 거점으로 모여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너무 절실한 사람이 있을테고

............

 

 

국가인권위에서는 명박이의 발표를 듣고 어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권활동가들이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한나라당사앞에서 분해하는 이유는

아직도 인권위 문턱을 넘나들 이유를 가진 이들이 넘 많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대통령 직속기구화에 대한 쉬운 문답풀이]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통령 직속기구가 된다고요???


Q:아니~!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통령 직속기구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요?


A: 아! 단순히 말해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소속이 지금의 ‘독립적인’ 위치에서 ‘행정부의 권력’아래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인권침해가 국가기관에 의해 발생해왔던 현실을 생각해보면 다른 인권기관을 감시․견제함으로써 국민의 인권보장 업무의 책임이 있던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은 포기해야겠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변화한다고 해도 운영의 독립성은 보장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새빨간 거짓말 입니다. 대통령 직속 기구로서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야말로 ‘독립적인’ 활동이 가능할까요?


Q: 그러면 왜 국가인권위원회는 독립적인 국가기구여야 하나요?


A : 일반 국민이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인권침해를 당했을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국가인권위원회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직속기구 되어 제 기능을 할 수 있을까요?
대통령 직속기구로 변화된다면 의제설정은 물론 인사와 예산, 운영 등 모든 영역에 대통령의 입김이 미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대통령의 방침과 의중을 담은 정책 결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는 ▲사형제 및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 ▲사생활 비밀 침해 방지를 위한 교육행정정보시스템 개선 ▲양심적 병역 거부권 인정 및 대체 복무제도 도입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이라크 파병 반대 ▲비정규직 법안 수정 권고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미흡하나마 정부의 눈치를 보기보단 ‘인권’의 편에서 발언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독립적인 위! 상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Q: 국제사회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나요?


A: 국제사회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미 18일자로 루이스 아버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이 이경숙 인수위원장 앞으로 강력한 항의와 경고 서한을 보냈습니다. 국제사회를 무릅쓰고서라도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직속으로 두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지난 1998년부터 2001년까지 3년간의 논의 끝에 국가인권위원회는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라 독립기관으로 설립되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3조는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파리원칙, UN GA Resolution 48/134)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어요. 국가인권위원회가 입법, 사법, 행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원칙은 국제적 기준 즉 이명박 당선자가 얘기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입니다.
파리원칙은 국가인권기구가 국가권력의 남용을 견제할 수 있으려면 “입법·사법?! ㅗ旋? 등 모든 국가기관으로부터 독립해 설치되는 것이 필수적”이며 “지위·권한·업무 및 재정적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적인 지위는 정부의 특정부문, 또는 공공 및 민간 기구로부터 간섭과 방해를 받지 않고 기능을 수행하기에 충분한 것이어야 합니다. 파리원칙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법적 자치 및 운영상의 자치를 통한 독립성 △재정적 자치를 통한 독립성 △임명 및 해임 절차를 통한 독립성 △구성을 통한 독립성을 들고 있습니다.


Q: 그렇다면 도대체 국가인권위를 대통령직속기구로 바꾸려는 인수위원회와 한나라당의 속마음은 무엇일까요?


A: 국가권력을 향해 쓴 소리를 하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면서 앞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입에 자갈을 물리고, 손과 발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럴려면 국가인권위원회를 독립적인 위치보다 대통령 품 안에 두는 것이 편리하다는 계산입니다. 한나라당 부대변인의 브리핑 자료를 보면, 국가인권위원회가 보편적인 인권 개념을 실천하는 역할보다 좌파정권에 발맞춰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해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결책으로 그동안 눈에 가시였던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두어 권력의 숨으로 길들이고, 차기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권기구로 위상과 역할을 제한하는 것이지요.


Q: 대통령직속기구가 된다면 지금까지의 국가인권위의 활동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 건가요?


A: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통령 소속이 된다면 국가인권위원회의 인사, 예산, 법령, 기타 내부 운영에 대한 모든 부분까지 행정부의 간섭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인권침해를 감시해야할 국가인권위가 감시대상자 중 하나인 행정부에 종속된다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점은 상식입니다. 국가인권위법에 따라 진행하고 있는 입법부 및 사법부, 헌법재판소에게 의견을 내거나 권고하는 역할도 위축될 것입니다.


Q: 아 네. 그렇다면 국가인권위원회의 대통령직속기구화 반대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A: 우선 한나라당은 정부 조직 개편안을 1월 28일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려고 합니다. 전국인권사회시민단체들은 인수위와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정부 조직 개편안을 막기 위해 인수위 앞 기자회견, 농성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UCC와 만화, 블로그 등을 통해 쉽게 재미있는 방식으로 시민들과 만나려고 합니다. 소중한 인권을 지키기 위해 함께 참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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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라이셀' 약가협상에 대한 백혈병환우회의 입장

 
한국백혈병환우회 2008.01.08 화요일


 

안녕하세요? 

백혈병환우회 사무국장 안기종입니다.

글리벡 내성 치료제인 BMS사의 ‘스프라이셀’에 대한 약가협상이

건강보험공단 약가협상팀과 BMS사 간에 진행중입니다.


스프라이셀 약가협상은 아래 [성명서]에서 볼 수 있듯이

여러 가지 공익과 관련된 내용이 있지만


백혈병환우회의 역할이라면

평생동안 매달 환자가 지불해야하는 약값 33만원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리벡을 지금과 같이 무상으로 복용할 수 있었던 것도

지난 2001년 말부터 2003년 초까지 1년 반동안 백혈병 환우들이

다국적제약회사와 정부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약가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포지티브시스템 하에서 약가협상의 모델이 될 글리벡 내성 치료제 “스프라이셀” 약가협상에 대한 한국백혈병환우회의 입장


우리는 ‘백혈병’하면 미국 공군사관생도였던 ‘성덕바우만’을 떠올린다. 그는 만성골수성백혈병진단을 받았고 유일한 치료방법이 ‘골수이식’이었지만 미국에서 일치하는 골수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고국인 한국에서 일치하는 골수를 찾아서 1997년 골수이식을 받았고 현재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만일 성덕바우만이 2001년 이후에 만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골수이식을 받기 위해 그 고생을 할 필요 없이 ‘글리벡’만 먹으면 된다. 글리벡을 복용하고 있는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5년 생존율이 90%에 이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9년에 혁신적 신약의 약가를 선진7개국(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스위스)의 평균공장출하가로 결정할 것을 한국정부에 요구하여 관철시켰다. 이러한 “A7 조정 평균가 약가제도”가 적용되어 고가의 의약품 가격이 결정된 대표적인 사례가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이다


글리벡은 1캡슐당 23,045원이다. 환자가 하루에 4~8캡술을 먹기 때문에 한달 약값이 300만원~600만원이다. 웬만한 부자도 1년에 3600만원~7200만원이나 하는 약값을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5년전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은 정부와 다국적제약회사 노바티스을 상대로 환자 본인부담금 인하 및 약가 인하를 요구하며 1년 반동안 긴 싸움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현재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은 글리벡을 본인부담금 없이 복용하고 있다.


그러나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에게 꿈의 신약이라고 불리는 ‘글리벡’도 10% 정도의 환자에서는 내성이 발생하고 이들은 골수이식을 받지 않는 한 3~6개월 안에 사망한다. 다행히 글리벡 내성환자에게 탁월한 효과가 있는 미국 BMS사의 차세대 항암제 ‘스프라이셀’이 지난 10월19일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최종 급여결정을 받았다.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의 약가협상팀과 다국적제약회사 BMS사 간의 ‘스프라이셀’ 약가협상이 진행중에 있다.


BMS사는 ‘스프라이셀’이 글리벡 내성 치료제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과거 글리벡 내성 발생시 글리벡 600~800mg을 처방했다는 이유로 이와 비슷한 수준의 약가를 요구할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한달 약값으로 410만원~550만원이 될 것이고 1년으로 환산하면 5,000만원~6,600만원이 된다.


‘스프라이셀’은 우리나라에서 포지티브시스템 도입 후 첫 번째 고가항암제이다. 기존의 약가산정방식과 달리 ‘스프라이셀’은 공단의 약가협상팀과 개발사인 BMS사가 직접 협상을 통해 약가를 결정한다. 이번 공단과 BMS사의 ‘스프라이셀’ 약가협상 과정 및 결과는 앞으로 쏟아져 나올 신약들의 약가결정에 중요한 시청각 교재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프라이셀’ 보험급여 결정에 대해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먼저 통상적으로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급여 및 비급여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2회 이상의 회의를 거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스프라이셀’은 경제성 평가도 생략된 채 일사천리로 급여결정이 이루어졌다. 포지티브시스템 시행 이후 최초의 고가항암제라는 시사적 의미 이외에도 매년 500억원 이상의 매출액을 올리고 있는 다국적제약회사 노바티스의 “글리벡”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의약품이라는 것과 부작용인 흉막삼출(폐에 물이 차는 현상)의 발생비율이 최근 더욱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적어도 3회 이상의 심도있는 논의가 있은 후 급여 또는 비급여 결정을 하였어야 했다.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재심의 지시를 하여 다시 심의하였다고 하나 여전히 아쉬운 것이 많다. 그러나 앞으로의 약가협상에 있어서 보건복지부나 공단 약가협상팀은 다음의 상황을 반드시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첫 번째로 “스프라이셀”은 글리벡 내성 치료제라는 것이다. 글리벡 내성 치료제로는 “스프라이셀” 이외에도 스위스 다국적제약회사 노바티스의 “타시그나”  미국 다국적제약회사 와이어스의 “SKI-606”  미국 다국적제약회사 MSD사의 “Mk-0457” 등의 임상시험이 진행 중에 있다. 중요한 것은 글리벡 내성 환자들은 “스프라이셀” 이 없더라도  효과에 있어서는 비슷하면서도 “스프라이셀”의 흉막삼출 부작용을 극복한 타시그나. SKI-606,  Mk-0457 등의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는 “스프라이셀”이 진료상 필수약제이기 때문에 급여결정을 하였겠지만 현재 “스프라이셀”이 없더라도 환자들의 치료에는 크게 문제가 없다.


두 번째로 스프라이셀‘의 흉막삼출 부작용이 너무 축소되어 보고되었다는 것이다. “스프라이셀”을 제외하고 글리벡 내성 치료제인 타시그나. SKI-606은 흉막삼출 부작용이 거의 없다. 흉막삼출이 생기면 치료될 때까지 ”스프라이셀’ 복용을 중단해야한다. 이때에는 백혈병이 계속 진행하게 되고 폐에 찬 물을 외부로 빼야 하기 때문에 그 치료과정 중에 환자는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하게 된다. 스프라이셀 부작용 중에서 “흉막삼출”은 특히, 동양인 중에서 여성과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더욱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임상시험이 진행되면서 발생 비율이 더욱 높아져서 최신 논문에 의하면 만성기의 경우 13%이고 급성기의 경우 38%에 육박한다. 더구나 혈소판 수치가 5만 이하로 떨어져서 스프라이셀 복용을 중단해야 하는 비율도 22%에 이른다.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급여결정을 하기 전에 ”스프라이셀’의 흉막삼출 부작용에 대해 현장의 임상전문가에게 충분한 자문을 구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


세 번째로 한달 약값으로 410만원~550만원으로 책정되면 보험급여가 되더라도 환자는 매달 33만원 이상을 죽을때까지 지불해야 한다. 우리나라 서민의 경우 매달 33만원 이상을 약값으로 평생 지불하는 것은 가계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스프라이셀’이라는 항암제를 복용하는 환자가 정상인과 동일한 수준의 경제 활동을 하기는 힘들다. 결국 가족이 평생 동안 환자의 약값을 지불해야 하는데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네 번째로 ‘스프라이셀’ 약값이 한달에 410만원~550만원으로 결정되면 현재 식약청의 승인을 받은 노바티스의 글리벡 내성치료제 ‘타시그나’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약가를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결국 ‘스프라이셀’의 약가결정은 이후 글리벡 내성 치료제 뿐만 아니라 다른 고가 항암제 약가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다섯 번째 엄청난 임상정보와 로비력을 가진 다국적 제약회사에 비해 공단 “약가협상팀”의 의학적 전문성과 협상 능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공단이 보험가입자를 대표하는 유일한 기관이지만 보험가입자의 이익을 대변하기 보다는 건강보험료 징수 및 관리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으로 국민들은 느끼고 있다. 공단은 ‘스프라이셀’ 약가협상을 통해 국민들에게 공단이 보험가입자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라는 강한 인식을 심어주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포지티브시스템 하에서 약가협상의 모델이 될 “스프라이셀’에 제약회사 뿐만 아니라 환자단체에서도 주목하고 있음을 한시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이번 약가협상이 잘 진행되어 5년전 ”글리벡“과 같이 백혈병 환자들이 다시 약가 인하를 위해 긴 싸움을 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2008년 1월 8일

한국백혈병환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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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7일

그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 듣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

그대는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그는 기회가 많지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두가지 마음(건강, 활동)이 견주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 조급증은 없었다.

그동안 할 수 있는 만큼 잘해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말 그랬나? 나도 그랬나?)

 

그는 세상이 그에게 가한 폭력과 차별을 얘기하고 싶었었고

지금도 그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했다.

(어떤식으로 얘기해야 할까?)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을 만나는 것이 제일 힘들다고 했다.

이들을 일대일로 만나서 설득하고 희망을 말하는 것을 계속 해야할테지만

그가 만날 수 없는 곳에 있는 이들에게도 말을 걸기위해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의견을 회의때 좀 더 강하게 제기하라고 말했다. 그건 사업아이템수준이 아니기때문. 그리고 이 역할을 그에게만 맡겨두어서는 안되기때문)

 

그는 대안이나 방향을 제시해야한다는 것이 부담이라고 했다.

(무엇이 '절박'한지를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대답했다)

그는 당사자로서, 대표로서 부담이 많은 것이 사실일거다.

하지만 그에게 결정을 내맡기거나 답을 내려달라고 했다면 그는 지금까지 여기에 있지못했을거라고 했다.

그것이 우리의 장점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에게 좀 더 솔직하기를, 좀 더 꿈꾸기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전설'이 되지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갔던, 힘든 일을 했던 사람이 있었다더라....그의 목소리와 마음이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과 나에게 공명을 이루기를.... 감동스토리로 남지않기를....

 

또하나는 실은 나를 위한 당부였다. 분명 그런일이 벌어질텐데, 예를 들어 그가 올해 멕시코를 가고 싶다고 말한다면 내가 따지고 들더라도-비행기값이 얼마며, 이번에는 무슨 이유로, 세번째인데 무슨 흐름을 만들려는 거며-가능여부를 떠나서 눈치보지말고 그대의 의견을 얘기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내말이 끝나자마자 단방에 '반기문이 올거니까'라고 했다.

이제 토론을 해야한다.

 

 

겁쟁이. 술마신김에 또 주절거리고 있는겐가

그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여전히도 겁이 나서 갈팡질팡하는 마음과 꿈을 꾸고 싶다는 마음이 범벅이 되서 그렇다.

그가 자기때문에 힘들어서 내가 그런줄 알았다고 말했을때....

아아아 난 너므 솔직하지 못하고, 있는척을 해대며 요모양요꼴일까 생각했다.

이제는 너와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어.

너도 눈치챘겠지만 너의 건강이 많이 회복이 되었을때 날듯이 뛸듯이 기뻐하는 너의 모습을 보고 오히려 뒤로 주춤했던거 사실이야. 날듯이 뛸듯이 너는 나에게, 우리에게 무엇무엇을 하자고 할텐데 내가 자신이 없어서 그랬어. 오늘 내가 너를 만나러 간건 네가 내손을 잡아주길 바랬기때문이야. 너와 그에게서 벗어나고자했던것은 자만과 실천없는 잡생각으로 가득차서 그랬던것같아.

 

 

각자 살아가는 이유들이 있다는 것을 존중하는 것. 올해 나의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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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어제 다이어리를 샀다.

문구점 몇군데를 봤는데 장식이 많고 가격이 쓸데없이 비싸고 넘 두꺼운 다이어리들..

계속 다이어리를 쓰고 있지만 충분히 다 써본적이 없을정도로 빈장들이 남았었다.

2007년에는 혜주가 선물해준 메이드인브라질 다이어리를 썼는데 딱 좋았다.

그런걸로 찾아보았는데 없어서 이번에는 완전 얄싹하고 한손에 잡히는 천원짜리 다이어리를 샀다.

2007년 다이어리를 조만간 가방에서 빼낼것을 염두에 두고

겸사겸사 마음이 복잡했던 한해를 기억해두어야 겠다.

 

*가브리엘

백내장수술(1/6): 한쪽 눈으로 볼 수 있는것에 감사. 다초점렌즈가 비싸다고 투덜. 적응

CMV: 1년 (12/28 끝)

새로운 약 시작(10/1)

한미FTA저지집회와 그의 소망(3/10): 너무 추웠던 날, 이사한다고 같이 있지는 못했지만 캠코더로 본 그의 진심과 절박함...

후원의 밤(3/16): 무엇이 중요하고 언제 용기를 내야하는지..그의 솔직한 삶과의 대면...너무 감사했던 날. 그의 얼굴이 그려진 수첩을 가지게 되었다

 

*공공의약센터 회의(1/21)

혜주, 경호, 소영이와 옛날 자료집을 꺼내놓고 다시금 문제의식을 떠올렸지만

그 후 우리가 다시 만날 이유를 못잡고 있어...

욜이 나의 얄팍함을 지적했을때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었는데 지금 그 얄팍함마저

너무 멀게 느껴져

 

*나누리MT(3/31)

과욕을 부리다 제풀에 지친 한해가 되고 말았어.

날이 밝도록 끝을 못내고 하얏트호텔로 갔었지. 가브리엘이 놈현 개새끼라고 소리질렀다. 누가 그의 분함과 눈물을 알까...소리지르지않으면

몰랐는데 그날 황사가 엄청 심했다고...

 

*나의 사랑, 나의 친구, 나의 동지

길을 가다, 술을 마시다 계속 불렀다.

건세네 총회때 가브리엘이 환자권리상을 받았고, 그를 영상에서 만났다.

누군가가 그를 영화속에 담고자했는데 화가 났었다. 바보같은...유시민의 화환보다 더 화나는 나

박신을 만나 다시 만나지 말자고 했다(4/3). 인천 어딘가에서 거의 매일 혼자 밤새 몸을 가누지못할때까지 술을 마셔댔다는 그의 얘기를 전해들었다.

1년이 되었을때 경호와 가브리엘과 그에게 다녀왔다(5/22)

한참후에 그의 누나를 만났다.  (6/26 부평)

 

*한미FTA타결

말만하고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놓고...그래도 억울해서...그리고는 입에도 담기싫어져서..

 

*상해(4/13~18)

급하게 즉흥적으로 다녀왔다. 동생덕에 날마다 맛사지 받았다.

골목, 동대문시장같은데, 길가에서 파는 그들의 끼니,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에서 한족여성에게 들은 중국부동산열풍....

 

*섬진강(4/22)

출발을 약속한 시간에 그녀의 전화를 받고 깼을때 흐미~

나있지않은 길을 그냥 헤집고 걷다 강을 건넜다.

 

*애보트 규탄(4/26)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여러이유에서. 욕심이 많은 만큼 부지런하지도 인내하지도 겸손하지도 못했다

 

 *샘, G-보이스(6/9)

샘의 이야기..샘 사랑해

그들의 진지함과 존재감으로 가슴이 뜨거워져서...마시고 간 맥주캔덕에 얼굴이 시뻘개지고 눈물이...

 

*사랑방, 사회공공성(8/6)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

 

 *IPleft MT(8/11 포천)

밤하늘, 데굴데굴, 전망

 

*카노스 워크샵(8/25 유명산근처)

그녀의 노래, 쭈뼛쭈뼛 물놀이, 캠프파이어, 술먹고 주절거렸던 말들

낯설지않은 그 자리

 

*공여사(11/21)

 

*에이즈민간단체 평가 프로젝트

 

*에이즈예방법 대응 공동행동

 

*HIV감염인인권문화제(11/29)

밴드, 사진전, 역할극

원망하거나 탓하지말고 그 자리에 있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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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을 만나기로 했다.

구실은 감사주인데, 실은 그녀의 얘기를 듣고 싶어서

영업하듯이 말해버렸다. 너무 멋없게...

"그동안 편애해주고 신경써줘서 넘 고맙고 해서 밥이라도..."

그녀가 넘 바빠서 못 만나다가 오늘 문자를 날렸더니 딱 되네

 

나는 그녀를 잘 모른다

별로 말이 없고

말이 별로 필요없었다

그냥 지금처럼 지내도 그녀를 보면 반갑고 뭔가 든든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냥 그녀는 왜 이 일을 하게 되었고

그녀의 일상과 재미는 무엇?

그녀가 생각하는 영상이란?

영상과 변화, 세상의 관계?

 

지난번 **의 결혼식에서 만난 **로는

처음에는 카메라가 권력을 준것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카메라를 들고는 무대도 올라갈 수 있고,  내성적인 자기가 하지못하는 것을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렌즈를 통해 보는 세상 그 자체가 매력이라고 했다. 잘 이해가 안되지만..

그는 세계민중운동사를 영상으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말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다니면서 살다 죽을 기쁨에 젖는 듯 했다. 전세를 빼서라도 가고 싶다는 그의 열정이 다른이들의 열정과 만나

꼭 이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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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n.jinbo.net

 

 

만화로 정보인권을 우찌 표현했는지 궁금해서 하나씩 봤다.

비밀프로젝트라...언제 또 이런걸 만들었는지...생각해보니 만화그리는 분과 다섯병이 머리를 맞대고 얘기를 하던 모습을 본적이 있구나

 

정보인권이란, 표현의자유, 프라이버시권, 저작권, 특허, 정치적권리, 노동권, 평등권으로 구성.

구성이 특이하네, 저작권과 특허는 문제가 있다고 얘기할테고 나머지는 옹호되어야하나 침해당하고 있다고 얘기하겠지 근데 병렬적으로 구성한 이유는 뭘까? 저작권은 저작'권'이라고 하고 특허는 특허'권'이라고 하지않은데는 이유가 있겠지...이러면서 만화를 하나씩 클릭.

 

타이레농으로 시작한 걸 보니 음 특허VS생명에 대한 얘기구나...사람들이 이해하기쉽게 그려놨나...이러면서 만화를 따라 내려갔다.

말풍선의 실체는 덕이

영이 철이 그리고 덕이?

그 이름 참 푸근하네 이러다가

갑자기

갑자기

아! 하는 순간 눈물이...

 

지난번 그가 꿈속에 다녀갔다.

꿈에서는 그에게 하루가 남아있었다. 그는 담담한 모습으로 이별인사를 했다. 꿈에서라도 그를 보니 마음이 좋았다.

그는 갑자기 가버렸지만 그는 오래전부터 예고했었고 안타까움과 슬픔을 머금은 큰 눈으로

여러차례 소망을 얘기했었지만 나만 못알아듣고 갑자기 보낸것이 너무 미안해서..너무 보고싶어서...

미래를 기약하며 현재를 살지못했던 반성, 허무함, 외로움은 뒤늦게서야 요동치는 격정이 되어

이제 이기적이고 자기만족적인 이 짓거리도 고만해야지...뒤늦게서야 울고 불고 한들.

  

덕이...

기억속에서 그리워하는 것보다 이렇게 당신을 만나는 것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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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다

나는 어느새 술꾼이 되어있었고, 술꾼으로 통하고 있다.

요즘은 혼자서는 안마신다.

그래도 이틀에 한번꼴로 마신다.

 

낮이고 밤이고 밥처럼 물처럼 맥주를 마셔서

주위에서 뭐라고 하면 슬그머니 주정뱅이, 알콜중독자가 될까봐 걱정이 들면서도

'독일에서는 맥주를 물처럼 마셔'라고 항변을 하곤 했는데

요새는 술이 고플일이 없다.

부딪혀야 고민이 번지고 실천과 반성이 드러나게 마련인데

내 작은 그릇에 담기에는 늘 넘쳐서

쏟아내버리고 빈그릇으로 있는 지금

같이 울고 웃고 부딪혔던 사람들이 보고싶다.

 

그랬었나보다

늘 함께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과 나눌 고민을 하는 동안 혼자 있을때도

언제든지 전화해서 물어보고 의견을 듣고, 언제든지 만나러 갈 수 있다는 생각에

혼자 마셨던 술은 혼자 마신게 아니었던 거다.

 

술을 마시다보면 얼굴이 약간 팽창하는 느낌이 들때

그 때가 딱 좋다.

혼자 술을 마시면 이 느낌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함께 마시면 이 느낌은 이야기가 끝나갈때까지 간다.

(나는 웬만해선 필름이 끊기지 않는다)

그래서 함께 술마시는것이 더 좋다.

혼자 술마실때는 고민이 많거나 기분이 안좋거나 기분이 넘 좋거나이다.

혼자 술을 마셨던 것은 그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기까지 내가 밟았던 과정이었던 것이지

술 자체가 너무 좋아서 그랬던것이 아님을 이제야 알겠다.

그들이 벌써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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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남녀

초가을에 보고 몇달만이다

출근하는 길에 요한에게 전화해서

오늘 시간있어?

왜?

집에 밥먹으러 와. 수다떨고 놀자고

그와 약속을 잡은후 홍지에게 시간되면 오라고 문자를 날렸다

 

몇시간후 그가 전화를 했길래 사정이 있어서 못온다는 건가 예상을 했는데

뭐 필요한 거 없어?

없어. 그냥 와

그렇다. 집이라는 것이 너와 나의 공간을 구분하게 만든다는 점.

 

요한이 때맞춰왔다. 역시나 손에는 케잌을 들고.

이런거 사오지말라고 타박을 하려다가

녹차케잌. 역시 달짝지근한 케잌은 겨울에 먹어야 맛있다고 그와 달짝지근하게 마주앉아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요한은 얼마전부터 케잌이 먹고싶었는데 혼자 먹기엔 양이 많아 참고 있었다고 했다.

 

10대에 그가 가장 소망했던것은

곱게 늙는 것과 그 나이에 어울리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것이라고 했다.

호오~

박탈감, 슬픔, 외로움 등을 만드는 상황, 관계의 문제에 대처하고 적응하기위한 자기훈련의 과정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것이란 얘기도 했다. 때로는 그런 훈련이 모든 사물과 상황에 무덤덤 내지는 느낌을 억제하는 때도 있다는 것이다.

 

올봄에 처음으로 과일주를 만들었다. 사과주

사과주는 IPleft회원들과 마셨는데 꽤 괜찮았다. 꿀을 넣고 담궈서 그런지 머리도 안아푸고.

담근 술을 나눠먹는 맛이 괜찮아서 초가을에 모과주와 포도주를 만들었다.

요한이 술을 즐겨마시지는 않지만 하나씩 꺼내서 맛보기를 했다. 

오후 4시부터 백포도주를 홀짝거리다 다 마시고 뻘똥주, 모과주, 포도주를 하나씩 꺼냈다.

뻘똥주와 포도주는 별로. 모과주는 별로 기대안했었는데 음~ 넘넘 마음에 들었다. 향도 그렇고 소주의 쓴맛은 전혀 없었다. 색깔도 약간 노릇하니 좋았다. 다른 술들은 갈색계열로 변했는데. 앗 포도주는 갈색은 아니고 분홍빛. 인공색소로 만든 쭈쭈바같은 색이어서 별로. 맛도 별로 깊지않았다. 1년이 지나길 기다리고 있는 매실주를 기대해봐야지.

 

5시반쯤 홍지가 출발한다는 연락이 와서 족발을 시켰다.

홍지는 주위를 발랄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셋은 깔깔거리면서 상위에 놓인 음식들을 먹기시작했다. 동시에 나의 술마시는 속도도 빨라졌다. 족발을 시켰더니 따라온 소주1병도 거의 내가 마셔버렸다. 그것이 화근.  

잠시 바닥에 누웠는데 홍지와 요한이 상을 치우는 것을 느꼈는데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해물떡볶이를 먹어야되는데~

남은 녹차케잌을 나눠줘야지~

이러면서 스르르

눈을 떠보니 12시 반. 5시간을 자버린 것이다. 하루수면양에 가까운 시간을 한방에 자버리고 아 미안함

이럴 어쩌나

설겆이까지 다 하고 갔네

 

홍지, 요한 담에도 같이 놀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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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것

지난주에 연락을 받았다.

후원, 헌혈 감사의 밤을 한다고 꼭 오라고...

벌써 만 6년이란다

이제는 그 때가 2001년인지 2002년인지도 가물가물한데

 

간다는 말대신 다이어리에 적어두겠다고 말했다

가도되는 자리인지 분명하지가 않았다

당시에 상덕은 그렇게 끝내면 안된다며 울었다. gist환우들의 눈물앞에 부끄럽다고 했었다.

1년반동안 벌어진 일들을 그는 그렇게 정리했다.

우리의 투쟁은 gist환우들이 글리벡을 먹을 권리를 놓아버린채 끝이 났지만 그 후 정부는 gist환우들에게도 보험적용을 해주었다.

(보험적용이 아니라 약값인하를 통해 해결할 일, 누구의 생명도 배제되어서는 안되는 것, 어떻게 어디까지..)

함께 싸웠던 사람들은 함께 평가를 하지 못했고, 백서를 만들려던 일도 흐지부지되었다.

고생하셨습니다란 말도 제대로 못했다.

 

시간이 꽤 지나는 동안 나는 평가대신 그의 눈물만은 기억하기로 했다.

평가를 하는 것이 엄청난 부담이었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리벡투쟁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63빌딩에 앉아 감사를 받을 실천과 고민들을 하고 있었는지...부끄럽고 미안하고

63빌딩이라는 장소, 여러기업체와 복지부의 후원 등도 마음에 걸렸다.

마침 전날 회의끝나고 소주를 꽤 마시고 오랜만에 노래방까지 가서 막춤과 고래고래 소리지르기를 했더니

딱 감기에 걸렸다. 그래서 몸이 안좋다는 핑계를 대고 못가게 되었다고 메세지를 날리자 마자 전화가 왔다.

택시를 타고 오라시며 꼭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감사의 밤을 하는 마음을 알게 될거라고 했다.

축하공연, 감사패 증정...뻔한 순서로 진행이 되었다.

예정에 없던 순서로 환우회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에게 깜짝 선물 전달

한번도 상근비를 준적이 없다며 멋적게 봉투를 전하고 받는 이들의 마음

이것이었나보다

환우회의 활동내용, 방식 등 박수를 힘껏 쳐주기에는 마뜩하지않지만

그들의 마음은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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