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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논쟁2] 4인터 동지들의 반론에 대한 짧은 답변

[강령논쟁] 4인터 동지들의 반론에 대한 짧은 답변

(이 글은, 아래 <최근 사노위 강령토론에 부쳐-이행기강령을 중심으로>라는 글에 대한 반론에 대한 답글이다.

4인터의 반론은http://swc.jinbo.net/board/bbs/board.php?bo_table=sub0703&wr_id=3569&page=2)에 실려 있다.)

 

1: 트로츠키나 제4인터 이론가들이 시도 때도 없이 파국론과 혁명기에 걸맞는 전면적 공세를 주장한 적이 없다면서 그 사례를 인용해 달라는 요청에 대하여->

“핵 전쟁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핵전쟁은 공산주의를 가로막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자본주의가 존속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폭력적·간헐적 형태로 보여준다.... 자본주의의 수명은 10년도 안 남았다. 노동자국가들이 식민지혁명을 전력을 다해 지원한다면 자본주의 수명은 5년도 안 될 것이며, 핵전쟁은 아주 단기간에 끝날 것이다.... 핵전쟁이 벌어지면 우리는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투쟁할 것이고 권력을 장악할 것이다. 핵전쟁은 시작은 없지만 끝은 있다. 핵전쟁은 전세계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혁명이기 때문이다.”(1962년 제4인터특별대회 선언문)

“자본주의가 안정되고 발전하는 새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확신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전쟁이 유럽에서 우리가 예상한 범위와 속도만큼 혁명적 격변을 즉시 불러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전쟁이 전세계에서 자본주의의 균형을 파괴하고 그래서 장기간의 혁명적 시기를 활짝 열어 놓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것은 사상 초유의 전세계적 위기이며 전세계적인 혁명의 분출이다.”(1946년 4월 제4인터 선언문)

“인류는 25년 전보다 더 가난해진 반면 파괴수단은 엄청나게 더 가열해졌다. 따라서 전쟁초기부터 노동대중은 국수주의 열기에 강력하게 반발할 것이다. 파시즘과 더불어 제2인터와 제3인터 소속정당들이 이런 반발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될 것이다. 그들의 붕괴는 공공연한 혁명운동이 전개되기 위한 필수조건일 것이고 그런 혁명운동은 제4인터를 중심으로 구체화될 것이다. 제4인터의 단련된 간부들이 노동 대중을 이끌고 대공세에 나설 것이다.”(1938.10.10. 트로츠키)

“10년입니다. 10년만 있으면 됩니다. ... 앞으로 10년 동안 제4인터의 강령은 수많은 대중의 지침이 될 것이며 수많은 혁명대중은 전 세계를 휩쓸 방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1938.10.18. 트로츠키 제4인터 창건이란 연설문 중)(이상은 제4인터를 구제할 수 없는 주관주의라고 비판하는 토니 클리프의 ‘트로츠키 사후의 트로츠키주의’라는 책자에서 재인용함)

 

우리 또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레닌이 제국주의 시대를 생산력 쇠퇴의 시대라고 주장에 따랐기 때문에 영기위기론자로 보일 것이다. ->

(답변) 레닌은 독점의 지배가 공황, 경쟁, 생산의 무정부성 등 자본주의의 모순을 강화, 격화시킨다든지,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라든지, 기생성과 부패성을 얘기한 적은 있어도, 생산력 쇠퇴의 시기라고 주장한 적은 없다. 설령 레닌이 그렇게 말했다면 레닌이 잘못한 것이다.

 

2-5: 이행강령을 관통하는 맑스-레닌주의 정수가 제4인터안에 스며있다고 자부한다. 코민테른 4차대회의 문건도 이행강령 또는 이행강령의 정신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답변) 이 점에 대하여는 이행강령에 나타난 정세관(쇠퇴기 자본주의론), 혁명관(혁명을 무장력의 대립으로 사고하는 점 등), 강령관(최소강령은 당면한 투쟁에서 대중의 절박하고 비타협적인 요구로 대중을 전면적인 계급투쟁으로 이끌어내어 최대강령으로 도약하기 위한 고리의 성격으로 제기되었음에도 무슨 가교를 운운하며 최소와 최대 요구를 늘어놓는다든지, 혁명적 격변기에 나타나는 전술이나 조직형태를 무슨 예행연습 운운하며 늘어놓는 것 등)은 맑스주의적 방법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참으로 혼란스럽고 천박하다는 점에 대하여는 지난 글에서 자세히 밝힌 바 있으므로 생략

 

6. 트로츠키는 일국혁명의 성과를 방어하는 것을 반대한 적이 없고, 일국사회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배신적 거래를 반대한 것이다는 주장에 대하여->

(답변) 동지의 말대로 트로츠키가 일국혁명의 방어를 반대한 적이 없다든지 스탈린이 PT국제주의에 충실하지 못한 것은 맞는 말이지만, 나의 주장은 트로츠키가 세계동시혁명과 일국사회주의를 기계적으로 대립시키면서, 세계혁명이 성공하지 못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사회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는 없다면서, 세계혁명의 구체적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세계혁명을 선동한 것이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트로츠키의 이런 행동이야 말로 참주선동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동지처럼 남의 주장을 바꾸어 공격하는 것을 허수아비 공격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7. 2인안 제출자는 혁명적 패배를 주장하는 죄를 지은 적이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답변) 인용된 문장의 주어는 2인안 제출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제4인터의 정통트로츠키주의자 등에 대하여 쓴 것은 명확하다. 그러므로 너무 흥분은 마시도록...

참고로 “인민민주주의 나라들(유고 슬라비아 포함)은 극단적 형태의 보나파르트 체제 경찰독재 등이 수립된 자본주의 사회다. 따라서 [이 나라들에서] 자본주의의 파괴는 오직 대중의 혁명적 행동으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혁명은 관료적 국가기구를 폭력으로 파괴할 것을 요구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이 국가들을 방어해서는 안되고 엄격한 혁명적 패배주의 노선을 고수해야 한다.”(1948.4. 제4인터 2차 세계대회 결의)

 

8. 스탈린주의와 같은 기회주의적 조류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현시기 혁명가의 주된 임무이고, 반성해야 할 것은 기회주의와의 투쟁에 있어서 불철저함이지 민주집중제에 대한 반성이 아니다 운운하는 것에 대하여->

나는 트로츠키주의자들도 부당한 공격을 받았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스탈린주의나 역사적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도 왜곡되었다고 생각한다. 긴 논의는 생략하겠지만, 반론자가 스페인 내전기에 스탈린주의, 무정부주의, 각종 기회주의 사상이 아닌 볼세비키-레닌주의가 스페인 근로대중을 지도하였다면 운운하므로 인민전선전술과 연관하며 짧게 언급한다면,

파시스트 히틀러의 공격으로부터 혁명의 성과를 방어한 것은 말로만 방어를 운운한 트로츠키가 아니라 스탈린을 중심으로 한 소련공산당과 인민이 아니었던가? 스페인 내전에서 파시스트와 싸운 주력부대는 트로츠키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라 6만명 이상의 의용대(그 중의 절반이 공산당원)로 제5연대를 이끈 공산당(-트로츠키의 주장대로라면 스탈린주의자들)이 아니었던가? 4만명에 달하는 국제여단을 조직한 것 역시 공산당(스탈린주의당)이 아니었던가? 탱크를 비롯한 온갖 무기와 군대를 파견한 유일한 나라는 스탈린이 독재하는 소련이 아니었던가? 당시에 이처럼 공산주의자들이 피터지게 싸우고 있을 때, 스페인공산당을 탈당한 트로츠키주의자들(POUM)이 무정부주의자들과 손잡고 자신들이 맡은 전선에서 (전쟁이 끝나면 다른 당파와 대적하기 위해 자신들의 전력을 보존하려는 이기적 목적으로) 몸조심한 사실에 대하여는, 스탈린을 그토록 싫어한 조지 오웰이 자신의 소설(카탈로니아 찬가)에서 호감을 가지고 인용한 POUM 사령관 죠르쥬 코프가 “전쟁이 아니라 어쩌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우스꽝스러운 오페라였다”는 회고에서도 그 일막을 엿볼 수 있지만 이점에 대해서는 굳이 믿으라고 하지 않겠다.

 

인민전선전술이 중국이나 미국 등 어떤 나라에서는 계급투쟁에 해로운 결과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한번더 생각해보자. 당시에 소련이 전체 제국주의 국가(미 영 등 연합국과 파시스트 추축국)를 적으로 삼았다면, 혹은 파시스트의 공격을 연합국이 방관했다면 소련을 방어할 수 있었을까? 트로츠키처럼 세계혁명을 운운하면서 전체 제국주의를 적으로 삼지 않고, 제국주의자들 상호간의 모순을 이용해 그들을 분열시켜 혁명을 방어한 것이 제국주의자와 붙어먹은 기회주의이고 혁명에 대한 배신이라고만 비난되어야 할 일일까?

히틀러가 득세했을 때 공산당의 집회나 모임은 백주에 살인적 테러가 공공연하게 계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입장처럼 소수인 공산당이 개량주의자인 다수의 사민주의당을 비난하고 배척하면서 혁명적 대의에 충실해야 했을까 아니면 잠시 대립을 멈추고 노동대중의 다수가 속해있는 사민주의 개량주의자들과 손잡고 히틀러와 싸워야 했을까? 파시스트가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황에서 사민주의 개량주의당은 물론 진보적 민주주의자들과 연합해서 인민전선을 성사시켜 파시스트의 집권을 막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분명 당시의 코민테른에 속한 당들의 실천이 이러저러한 과오도 있었겟지만, 트로츠키의 주장대로 과연 그들이 제국주의자나 자본가들에게 혁명의 대의를 팔아먹은 배반자이고 기회주의자들이었을까?

 

9. 결어: 예수 믿으면 천당갈까?

누구에게나 신앙의 자유는 있겠지만 우리는 길거리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믿으면 천당간다”든지, 자기 교회만이 바른 믿음으로 이끌 수 있다는 수리를 들으면 불쾌하거나 황당함을 느끼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자신이 옳다는 믿음을 넘어 자신만이 옳다는 독선이고 권위주의적(권위의 독점 혹은 권위에 대한 집착)이기 때문이다. 노동해방만이 아니라 인간해방을 외치는 맑스주의에서는 인간을 소외시키는 모든 종류의 물신과 권위를 반대한다. 이런 점에서 위대한 수령과 지도자 운운하는 일인숭배나 신격화는 맑스주의와는 정반대의 실천임자명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2인안 동지들이 맑스-레닌-트로츠키의 혁명적 전통을 운운한다든지, 제4인터의 자랑스런 전통의 기반에 서야한다고 얘기할 때, 지독한 독선과 권위주의를 본다. 1943년 코민테른이 해체될 때까지 지구상의 맑스레닌주의자의 절대다수는 제4인터가 아니라 코민테른에 소속하여 활동하였다. 일제하에서 투옥당하고 살해당한 수많은 조선의 공산주의자들 역시 코민테른에 속해 있었다. 그럼에도 제4인터는 절대 다수의 공산주의자들을 무슨 혁명을 배반한 기회주의 세력으로 매도하면서 자신들만이 맑스레닌의 정통이고 적자라고 주장하였다. 맑스레닌주의를 신조로 내세우고 당과 인민이 단결하여 제국주의와 지주 세력을 몰아내고 사회주의 건설을 하고 있는 호지명과 그 당이 왜 기형적 노동자국가로 폄하되면서 근로인민의 타도대상으로 선동되어야 할까?

지금 사노위는 물론 이 나라 혹은 이 지구상에는 맑스레닌주의를 신조로 삼고 활동하는 수많은 동지들이 있다. 그럼에도 제4인터만이 유일하게 자랑스런 혁명전통이라고 운운할 때 남들은 그릇된 투쟁을 하는 혹은 기회주의적이고 반동적 투쟁을 하는 사람들이 된다. 이보다 더한 독선이 또 있을까? 동지들의 이런 자세와 예수믿으면 천당간다든지 우리 교회만 유일한 진짜 교회라는 광신자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까놓고 한번 말해보자! 10월혁명 후 내전때 전선을 이탈하면 즉결사살하라는 규율은 트로츠키가 만들지 않았던가? 6.25때 남한의 국방군은 전선을 이탈하면 헌병에게 살해되었지만 중국의 홍군이든 베트남의 해방군이든 대중의 자주적 해방군대에는 이런 규율이 없다. 1920년 노동의 군사화를 주장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노동조합에 임명하였다가 그들의 지나친 관료주의와 권위주의를 못참아 현장의 노동자들이 이들을 쫒아냇음에도, 이들을 오히려 비호하며 관료주의 운운하다가 레닌을 비롯한 수많은 동지들에게 비난받은 노동조합 논쟁의 당사자는 트로츠키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무슨 모스크바의 검사 운운하는데, 1938년 부하린 등의 반혁명(스탈린 제거를 위한 쿠데타 음모 사건) 재판은 미, 영 등 수많은 서방 세계 외교관들에게 공개된 재판이었고, 그들마저 참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재판이었다고 인정한 재판이었다. 유명한 트로츠키주의자이고 역사학자인 아이작 도이처는 당시 소련의 수십개 도시의 군부지도자들과 당지도자들이 쿠데타를 준비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타락한 노동자 국가의 원흉인 독재자를 제거하려 는 것은 트로츠키의 원래 신념이 아니었던가? 신념대로 행동하고서 왜 누명을 쓴 것처럼 얘기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트로츠키는 정적이자 독재자인 스탈린 일당을 제거하고 싶어했고, 히틀러의 케쉬타포 역시 소련 지도부를 와해시키거나 혼란을 조성하려는 동일한 목적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조국과 혁명을 배반하려는 생각이 아니라 서로 이용하려는 생각에서 정보와 돈이 오고 간 증거에 대해서는 믿으라고 하지 않겠다. 문제는 이런 사건을 계기로 스탈린이 자신의 반대파들을 혹은 쿠데타 연루자들을 트로츠키주의자라고 부르면서 광범하게 색출하는 과정에서 트로츠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숙청을 당하고 서로를 의심하고 밀고하면서 공포사회가 되어간 것이 바로 대숙청의 전말이 아니었던가?

 

남한 사회에서 맑스와 레닌의 고전을 가장 열심히 공부하고 실천하는 동지들은 동지들이 기회주의 세력이라고 매도하는 노사과연과 노정협이 아니던가? 그들은 맑스레닌을 공부할 때 동지들은 트로츠키를 공부하는 것이 다르고... 남한에서 대중적으로 사회주의를 가장 열심히 선전하는 동지들은 동지들이 반동이라고 일컫는 국가자본주의자들인 다함께가 아니던가? 노무현 탄핵 때 수많은 좌파들이 자본가계급의 수장인 노무현을 구하려고 탄핵무효를 외쳤을 때 민중탄핵을 주장한 것은 제국주의와 자본가들에게 붙어먹었다는 스탈린주의자인 채만수 선생이 아니었던가? 전 세계에서 제국주의 전쟁반대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것은 국가자본주의 반동들인 SWP와 다함께가 아닌가? 국가자본주의론이 정치적인 태도로는 잘못되었더라도, 사적 소유가 없고 계획경제라고 하더라도 세계시장과의 관계에서 가치법칙을 벗어날 수 없었다는 국가자본주의론의 주장은 역사적 사회주의의 몰락을 해명하는 소중한 통찰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거듭 말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세계혁명을 운운한다든지, 천박하고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내용을 무슨 이행강령 운운한 트로츠키나 제4인터는 결코 자랑스런 혁명전통이 아니다. 설령 제4인터가 아무런 오류도 없는 훌륭한 실천을 한 조직이라고 하더라도, 자신들만이 유일하게 올바르다는 독선은 제4인터에 속하지 않은 수많은 맑스레닌주의자들에게는 불쾌하고 혐오스럽게 비친다는 것과, 위대한 지도자 트로츠키 동지나 유일한 혁명 전통 운운할 때에 북에서 위대한 수령과 위대한 당과 전통을 얘기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는 반맑스적 태도라는 것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나는 동지들이 독선을 버리기 바란다.

[짧은 답변에 보충]

10. 북의 핵무장, 부르주아 평화주의, 사회평화주의 논란에 대하여

후루시쵸프가 평화공존을 주장했을 때, 모택동은 물론 스탈린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를 막론하고 평화공존론을 제국주의자와 타협을 추구하고 굴복하는 혁명의 대의를 배반한 기회주의로 비난하였다. 이것이 과연 정당한 비판이었던가? 제국주의자는 원래 체제간의 대결과 긴장을 추구하고 안으로는 반공 매카시즘을 선동한다. 군비경쟁은 제국주의하의 인민의 고혈을 빨 뿐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의 인민에게도 고통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체제를 막론하고 수많은 인민이 희생된다. 체제의 대결과 봉쇄는 제국주의자의 정책이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은 군사력으로 제국주의를 패퇴시키고 인민을 해방시킬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군사적 대결을 완화하고 어느 체제가 진정으로 인민을 행복하게 하는 체제인지를 경쟁하자고 호소하면서, 서방 인민들에게 제국주의자들의 전쟁 책동을 폭로하여 지배계급과의 투쟁으로 나서게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체제의 대결과 긴장이 격화될수록 매카시즘이 판을 치고 좌파가 설 자리가 좁아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승만과 같은 극단적인 반공의 시절에 좌파는 전멸하지 않았던가? 결국 이러한 비난은 체제간의 모순과 계급간의 모순을 바르게 구분하지 못한 채 제국주의자와 똑같은 주장을 하면서도 그것이 무슨 노동자계급의 관점인양 혁명적 관점인 양 착각하는 것이다.

소련은 핵무기가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니라 체제 내의 모순을 풀 수 없어서 망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의 군사력은 체제간의 전쟁이나 인민의 무장으로 해제되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체제 내의 계급투쟁으로 해결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인안에서 “전쟁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 원인을 제공하는 제국주의자들을 평화적으로 교화시킬 수 있다는 부르주아 평화주의의 포로가 된 좌익들이 노동계급을 오도하고 있다.... 평화는 노동자의 무장을 통해 자본가의 무장을 해제시키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엄청 혁명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주의주의자들의 망상 속의 유희일 뿐이다.

북핵에 대하여도 주권국가의 자위권 혹은 방어적 무장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 무장이 핵이었을 때, 그 핵은 사용될 수 있고 그 경우 수십만의 남북한 인민들이 희생될 수 있다는 것 역시 상식이다. 이 경우 체제의 대결과 긴장을 강요하는 제국주의자의 논리가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의 비핵화(결국 북과 남과 미제을 비롯한 모든 핵의 반대)와 긴장완화를 주장하면서 제국주의자의 무장해제 운동(반전반핵 운동 등)을 벌이는 것이 근로인민의 이해에 부합하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자본의 공격(억압과 착취)은 생산의 현장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의 영역에서도 일어나고, 자본의 발전이 심화될수록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소외가 심화된다. 미친소 수입이나 등록금 투쟁이 생산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자본의 공격인가? 여성과 생태문제 역시 생산의 영역의 문제가 아니고, 이러한 여러 재생산 영역의 투쟁에서 온갖 자유주의자와 소부르주아들이 대중을 기만하고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문제가 노동해방이 없이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노동해방만으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계급적 관점(노동자계급의 중심성)에서 이들의 반동성과 기회주의를 폭로하고 대중을 쟁취하여 올바른 투쟁으로 이끄는 것은 사회주의자의 당연한 책무이다. 이런 것을 무슨 무지개 연합이니 기회주의이니 비혁명적이니 하는 것 역시 지나친 독선이나 편견이라고 할 것이다.

 

(사족)

프랑스에서는 영아보조를 하자 출산률이 증가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이나 증거만으로 출산률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영아보조를 해야 한다느니, 영아보조는 출산률을 올린다고 결론을 내리기 쉽다. 그러나 미국은 영아보조가 없음에도 출산률이 증가하였고, 스위스에서는 영아보조가 실시되었음에도 출산율이 감소하였다. 그렇다면 영아보조는 출산률에 도움을 주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우리의 인식은 이처럼 나선형으로 발전하면서 총체성에 도달하는 것이다. 세상에 일리없는 주장은 없다. 서로 대립하는 주장은 자기를 뒷받침하는 무수한 근거를 댈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은 새로운 증거와 비판에 견디어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강령토론을 보면 자신들의 주장에 심각한 비판과 반론이 제기되었음에도 여기에는 침묵한 채 오직 상대방 강령안의 비혁명성만 강조하는 참으로 비혁명적이고 비유물론적인 태도가 많았다.

현실을 직시하자!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유물론의 출발이 아니던가? 편견에 갇혀서 단면적으로 보고싶은 것만 보지 말자. 현실은 풍부하다. 수많은 모순이 얽혀있을 때 본질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 본질과 현상을 냉혹히 구분하여 총체적 인식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과학적 유물론자의 자랑이 아니던가?

모든 실천에는 때로는 우편향의 때로는 좌편향의 과오가 있기 마련이다. 당의 집단적 실천과 지도력이란 무오류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과오를 제때에 올바르게 극복하는 힘이다. 역사적 사회주의는 망했고 스탈린도 트로츠키도 죽었다. 지금 아무리 스탈린주의자라고 하여도 일인숭배와 독재와 관료주의를 찬양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절대 다수의 맑스레닌주의자들이 실천하였던 사적소유를 폐지한 계획경제가 왜 망했는지, 눈앞의 자본의 공격은 어떻게 달라졌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에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걸핏하면 서로 기회주의니 반동이니 하지 말고 혹은 자기만 유일하게 혁명적이란 자세는 버리자!

(내가 비판하는 것은 토니클리프의 주장처럼 반세기도 전에 파탄난 교조적 트로츠키주의이지 요즘 유럽에서 활동하는 제4인터에 대한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2인안 동지들은 제4인터의 어느 그룹과 소통하고 있는지 몰라도, 요즘 제4인터의 유인물이나 제4인터의 주력이었던 LCR의 NPA로의 변신을 보면 매우 유연하고 pt국제주의에도 충실하다. 오히려 5인안이 그대로 베낀 ICC의 강령이 국가자본주의론을 제외하면 제4인터의 교조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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