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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핑 앤더슨의 주장과 복지국가론의 검토

에스핑 앤더슨의 주장과 복지국가론의 검토

 

들어가며

1. 복지국가 발전의 제도적 배경

2. 복지국가 위기론의 등장

3. 에스핑 앤더슨의 주장

4. 앤더슨의 주장에 대한 비판들의 검토

-페미니즘으로부터의 비판

-세 가지 레짐 이상이 존재한다는 비판

-복지국가 환경변화에 근거한 비판

5. 복지국가를 바라보는 여러 관점들

6. 위기 수렴론과 분기론의 위치

7. 논의의 한계들: 스웨덴 사례의 검토와 앤더슨의 한계

8 결어; 관점 정립을 위한 시도

 

들어가며

이 글에서는 먼저 복지국가가 발전하게 된 배경과 당면한 위기 등을 살펴보고, 복지국가를 바라보는 여러 관점과 앤더슨의 주장을 소개하고, 그 한계점이나 문제점을 검토한 후, 충분하지는 않지만 복지국가를 바라보는 관점을 모색해보려고 한다.

 

1. 복지국가 발전의 제도적 배경

“전후에 본격화된 복지국가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축적체제로서 포드주의와 제도적 적합성을 가지고 출현하였다. 축적체제로서의 포드주의는 숙련수준이 높지 않은 노동력을 대규모로 고용하는 것을 가능케 함으로써 완전고용 노동시장이 성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베버리지 사회보장체제가 보편적인 사회보장을 약속할 수 있었던 것도 완전고용 노동시장이 형성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완전고용하의 일자리는 노동자들에게 일차적인 소득으로서 임금을 보장해주고, 이 임금의 일부는 다시 조세와 사회보장 기여금의 형태로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위한 물적 재원이 되었다. 물론 이때의 완전고용은 표준적인 전일제 남성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며, 임금 또한 가부장으로서 남성노동자가 가족의 재생산을 위한 비용의 명목으로서 가족을 대표하여 수급하는 가족임금이다.

 

복지국가의 또 하나의 제도적 기초이자 경제의 조직화 원리는 케인즈주의에 기초한 거시경제관리이다. 케인즈주의에 의한 인위적인 경기부양과 유효수요의 진작을 위한 임금보장은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상시화하여 임금압박을 심화하는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또한 전후 복지국가는 노동자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계급타협의 산물이기도 하다. 국가의 중재적 위상을 매개로 신조합주의라는 삼자 협력주의 또는 화해적 정치구조를 성립시켰다. 신조합주의는 경제성장을 추동하는 핵심적인 갈등관리체계로서 국가에게는 지배의 정당성을, 자본에게는 경영전권과 이윤을, 노동에게는 높은 임금과 복지를 제공해주는 포지티브 섬의 제도적 틀로 정착하게 되었다.

 

끝으로 전후의 복지국가는 동반자적 혼인관계에 이해 성립되었다는 이데올로기적 외피 아래 가부장적이고 성적 분절화가 뚜렷한 핵가족을 그 미시적 토대로서 태동하였다. 핵가족에서 가장은 가족의 물질적 정신적 재생산을 위한 가족임금의 유일한 수급자이자 가족 전체의 사회보장 수급권을 대표적으로 확보하는 존재이다. 핵가족은 표준적인 전일제 노동자로서 포드주의 생산체제에 진입하여 가족임금을 수령하는 가부장으로서의 남성과 가사 및 육아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가정주부로서의 여성이라는 차별적인 성분업을 핵심적 특징으로 한다.”(박시종, 393-396)

 

2. 복지국가 위기론의 등장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에 들어 자본주의 축적체제의 동요와 두 차례에 걸친 석유위기에 의해 가속화된 경기침체는 실업과 물가가 반대방향으로 움직인다는 필립스 곡선의 타당성을 역사상 처음으로 무너뜨렸고, 실업과 물가가 동시에 폭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전개되었다.

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자들은 국가의 경제개입에 따른 복지국가가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주범이라고 몰아치기 시작했다. 국가는 자유로운 시장의 메카니즘을 교란해서는 안되며, 복지 또는 노동유인을 저해하지 않는 최소한의 범위에 국한해야한다는 최소주의 국가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배경에는 경제성장의 둔화와 그에 따른 복지국가의 재정압박이었다. 인구학적 고령화에 따라 복지수급자들의 규모가 급증하고, 세계화에 수반하여 경쟁압력이 강화되었으며, 산업은 전통적인 제조업을 밀어내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서비스경제가 지배적인 범주로 등장하였다.”(박시종, 396-397)

 

결국 복지국가가 처한 위기는 70년대 이후 혹은 포스트 포디즘적 변화 이후 자본의 축적위기와 맞물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노동의 분절화, (괜찮은) 일자리의 축소, 인구의 노령화, 재정압박 그리고 각국 자본의 경쟁 등과 맞물려, 결국 자본은 축적위기, 국가는 재정위기, 노동은 일자리의 위기로 복지정책(체제)의 계속성을 위협하였다. 여기에 자본과 국가는 신자유주의 즉 노동과 복지에 대한 공격으로 대응하였다. 그러나 각국의 계급의 역량과 정치적 구조, 역사적 배경은 위기에 대한 대응과 극복방향에서 차이를 보였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에스핑 앤더슨은 서구의 복지국가를 유형화하고 위기 수렴론을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3. 에스핑 앤더슨의 주장

세계화론자들은 복지국가가 완전고용 시장의 붕괴와 그에 따른 노동의 유연화, 사회적 덤핑, 밑바닥을 향한 질주 등을 지적하면서 위기의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앤더슨은 사회보장 지출이 전체 예산 혹은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 즉 양적지표만을 가지고 비교하는 단선적이고 선형적인 연구를 비판한다. 그러면서 복지국가의 형성과정에 있어서 어떤 세력, 어떤 이데올로기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지, 노동자계급만이 아니라, 좌우정당의 구조와 계급연합의 구조가 어떤 패턴으로 진행되었는가에 따라 복지국가의 발달궤적은 질적으로 서로 구분되는 다양한 복지체제로 군집하며, 내외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그 체제의 발전경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로의존적이며, 제도의 고착효과가 있다는 신제도주의적 관점을 취한다.

이외에도 앤더슨은 권력자원이론이 노동자계급의 동원만을 강조하는 데에 비해 계급연합의 구조가 복지국가의 초기형성과 그 이후의 발전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앤더슨은 영미중심의 자유주의 복지체제와, 절대주의와 카톨릭주의, 국가주의의 전통이 강한 대륙유럽의 보수주의 복지국가 체제, 사민주의에 바탕을 둔 스칸디나비아형이라는 세 가지 복지체제로 구분한다.

 

또한 그는 복지국가의 새로운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 탈상품화와 사회계층화 개념을 동원한다. 탈상품화는 어떤 사회가 구성원으로 하여금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도 기본적인 복지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하고, 사회계층화는 복지국가가 평등화를 추구하는 경우에도 복지국가의 역사적 형성과 정치체제, 계급연합의 구조 등에 따라 그 결과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포착하고자 하는 개념이다. 결국 앤더슨은 신제도주의적 시각과 계급연합론의 시각에 서있다.

 

“앤더슨의 복지국가 레짐 논의에 따르면, 자유주의 복지국가는 자산조사형 사회부조와 낮은 수준의 보편적 소득 이전, 낮은 수준의 사회보험을 특징으로 하고, 급여가 저소득층에 집중된다. 조합주의 복지국가는 기여중심의 복지제도를 중심으로 하며, 전총적인 가족제도의 유지와 보존을 강화한다. 사회보험은 주부를 비롯한 노동시장 외부자들을 적용범위에서 배제하며, 대신에 가족급여를 통해 모성을 장려하며 주간보호 등의 여타 가족 서비스들은 거의 발달하지 않아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낮다. 또한 권리들이 계급과 지위에 부착되는 특징을 보인다. 즉 시장에서의 지위와 복지제도를 통한 보장 수준이 대체로 비례한다. 사회민주주의 체제 유형은 보편적 복지 서비스의 제공을 강조하며, 개인의 탈상품화와 탈가족화 즉 시장과 가족으로부터의 자율성을 최대화시킨다. 여성도 중요한 복지서비스의 제공대상이 되며, 복지와 일의 조화를 강조한다.

이에 따라 사민주의 복지국가, 보수주의 복지국가, 자유주의 복지국가가 레짐 별로 노동시장, 복지정책, 가족의 기능과 연계가 달라지며, 계층의 결집과 분화에 차이가 난다. 우선 복지정책에서 시장이 지배적인 자유주의 복지국가에서는 시장이 분배갈등의 원인이기 때문에 시장에서의 자원배분 결과인 계층간 균열이 지배적으로 된다. 이 경우 국가복지는 공공부조의 형태로 소수에 대한 복지로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빈곤층과 비빈곤층이 대립하는 양상을 보인다.

보수주의 복지국가 레짐에서는 노동시장을 둘러싸고 내부자와 외부자간의 갈등 즉 좋은 노동시장 지위와 사회보험 혜택을 누리는 남성 정규직 노동자와 실업자 사이의 갈등이 있게 된다.

사민주의 복지국가에서는 높은 수준의 복지와 고율의 세금을 통해 상당히 높은 수준의 계층간 평등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계층간 갈등보다는 성과 부문간 갈등이 제기될 수 있다.”(백정미 등, 322-323)

 

앤더슨이 주장하는 복지국가의 이러한 유형화는 유의미하고, 또한 유형을 구분짓는 도구로서 탈상품화와 사회계층화 개념도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4. 앤더슨의 주장에 대한 비판들의 검토

“-페미니즘으로부터의 비판

복지국가가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과 서비스에 의해 재생산되며, 오코너는 앤더슨의 탈상품화 개념이 모든 집단이 똑같이 상품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무시하고 있으며, 노동시장 진출기회가 차단되어 있는 여성에게는 오히려 상품화가 시급히 달성해야 할 과제라고 주장한다.

울로프는 탈상품화 개념이 남성노동자를 전제로 하여 성립한 개념이라는 한계가 있음에 주목하고, 유급노동에의 접근과 자율적으로 가정을 형성하고 꾸릴 수 있는 능력이라는 두 가지 지표를 추가하자고 주장한다.

루이스는 여성의 가족책임을 얼마나 완화시키는가를 기준으로 새로운 복지국가 유형론을 전개하자고 주장한다.

앤더슨은 이러한 비판을 감안하여 탈가족화 개념을 추가하지만, 가족주의가 강한나라와 보수주의가 강한 나라 사이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세 가지 레짐 이상이 존재한다는 비판

캐슬스와 미첼은 앤더슨이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처럼 노동운동이 강력하면서도 복지국가에 제동이 걸린 나라와 미국이나 캐나다와 같이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했던 나라들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는 자유주의와 다른 맥락에서 자산조사를 도입함으로써 중간계급을 급여대상에서 배제하고 평등주의를 강화하고자 했고, 복지국가의 팽창에 의한 사회임금의 증대보다도 고용안정과 임금상승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임금소득자 복지국가라는 성격을 강화하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은 계층화 지표로 보면 보수주의 모델에 가깝고, 탈상품화 지표로 보면 자유주의 모델에 가까우며, 여성과 가족의 책임을 기분으로 보면 자유주의 모델에 가깝고, 고용 성과면에서 보면 사민주의 체제에 가깝다고 한다.

 

-복지국가 환경변화에 근거한 비판

미쉬라는 세계화로 인해 완전고용 시장이 붕괴되고 사회보장체계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강조하면서, 앤더슨의 복지국가 체제 유형론은 복지 자본주의의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자본주의 축적의 위기와 그에 따른 복지국가의 축소 추세를 과소평가하는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포스트 포디즘적인 변화 이후, 스웨덴과 같은 사민주의 체제를 포함하여 탈상품화가 역전되고 재상품화가 진전되며, 그런 점에서 복지국가의 일본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한다.”(박시종, 408-415)

 

이처럼 앤더슨의 주장에 대하여, 유형화를 위한 유의미한 틀로서 여성 혹은 탈가족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자는 주장이나, 세 가지 레짐으로 구분하기 곤란한 다른 유형도 있다는 주장 혹은 위기수렴화 경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비판들은 모두 수긍할 만하다.

그런데 이러한 유형론 혹은 복지국가의 척도에 관한 논의 그리고 유형의 차이를 가져 온 원인이나 배경에 대한 탐구나 앤더슨의 주장은 유의미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논의들은 현상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을 줄 뿐 전략적 관점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가령 스칸디나비아 유형이 바람직하다고 해서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의 탐구만으로는, 한국사회에서 그와 동일한 계급적 여건을 만들자는 것도 아니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점은 사회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관점과도 관련이 되어 있는 문제이고, 반자본 세력에게는 별 도움도 안 된다고 할 것이다.

 

5. 복지국가를 바라보는 여러 관점들

서구 혹은 북구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복지국가가 성립하게 된 배경을 둘러싸고, 보다 근원적인 관점의 차이가 있다. 이하에서는 복지국가를 바라보는 여러 관점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50년대 영국에서는 중상류층의 집단적인 사회양심이 복지국가을 발전시킨 주요요인라고 설명했으나, 이러한 사회양심이론은 실제로는 많은 중산층들이 복지의 확대에 무조적적인 지지를 보이기는커녕 반대에 앞장서고 있다는 현실과 충돌한다.

 

보나파르티즘 내지 음모이론은 기존지배질서의 안정과 사회통제에 그 목적이 있다고 파악한다. 따라서 지배계층이 사회적 위기가 진정되고 지배질서가 공고화되었다고 판단할 경우 사회복지가 후퇴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지배질서가 안정된 후에도 복지수준이 계속 발전하는 경우를 설명하지 못한다.

 

마샬은 영국의 경험을 분석하여 18세기에는 자유권, 19세기에는 정치권, 20세기에는 사회권이 발달함으로써, 사회적 시민권이 누적적으로 완성되어간 것으로 파악한다, 이 이론은 불평등한 계급구조와 평등주의적인 시민권 이념이 양립할 수 잇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다른 나라의 경우에 일반화하기 어렵고, 사회적 시민권의 세가지 요소가 동시적으로 발전한 국가들의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사회복지정책의 확대과정이 국제적 모방과정이라는 확산이론 또는 전파이론이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은 복지국가들 사이에서도 발달수준이나 그 성격에 있어서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윌렌스키는 산업화된 사회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해결의 욕구에 대응하여 산업화와 경제발전에 의해 대규모로 증가한 자원에 의해 사회문제가 해결되고 사회복지가 발전한다는 기능주의적 관점이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일정한 경제발전 수준에 도달한 나라에서도 복지발전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또 도구주의적 관점에서는 국가의 역할을 독점자본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도구 내지 수단으로 보고, 국가가 복지를 확대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구조주의적 관점에서는 국가가 지배계급으로부터의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면서 총자본의 이익에 봉사한다고 주장하는데, 국가가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침해하면서까지 복지를 확대하는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

 

한편 권력자원 이론은 복지를 쟁취하기 위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결실이라고 주장하는데, 경제발전 수준이 비슷한 미국과 스웨덴이 복지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박시종, 397-401)

 

마샬의 이론, 전파이론 윌렌스키의 이론은 산업화나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고 민주주의가 확립되면 자연스레 복지가 발전된다는 이론으로, 현상적으로 꼭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앤더슨의 주장처럼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권이 성장하였어도, 각국이 나라마다 차이를 보이는 점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주 무시할만한 주장은 아니지만 전혀 충분한 주장도 못되고, 모두 자유주의자의 관점 혹은 찬미의 관점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복지 혹은 분배라는 것이 계급투쟁의 결과라는 점을 전혀 포착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크게 논할 가치가 없다.

그런데 음모론, 도구론, 구조주의의 상대적 자율성론, 권력자원이론은 좌파적인 관점이라는 점에서 좀 더 평가가 필요하다.

먼저 음모론은 자본 또는 지배계급의 선제적 대응으로서 그에 부합하는 역사적 사례들이 있다. 보나파르티즘이나 비스마르크 체제와 같은 경우 체제의 안정을 위해 자본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 지배권력이 노동계급이나 하층민을 회유하거나 체제의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해 추진된 사례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복지 정책을 음모로 보는 것은 별 설득력이 없고, 당해 사회에서의 여러 계급간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지배계급의 필요에 따라 때로는 선제적으로 추진된다는 점으로, 그러한 정책이 추진되는 궁극적인 힘은 결국 계급갈등이나 투쟁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지배계급의 음모나 시혜로만 보는 관점은 이를 협소하거나 혹은 일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도구론은 국가가 계급지배의 도구라는 관점 혹은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가계급의 이해관리자라는 관점인데, 모든 국가는 지배계급의 국가라는 본질은 여러 우여곡절 끝에 관철되는 경향적 힘이라고 보았을 때, 본질로의 환원은 항상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현대 자본주의 국가는 사회계약론의 발상처럼 자유로운 개인의 모두의 국가 혹은 국민의 국가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혹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보편성의 국가라는 형식 속에서 자본가라는 특수한 계급의 이해가 궁극적으로 관철된다는 점에서 보편과 특수, 본질과 현상, 내용과 형식의 변증법적인 대립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도구론은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론으로서는 유효하지만, 개개의 현상의 원인 또는 환원하는 기계적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도구론의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국가가 지배계급으로부터의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면서 총자본의 이익에 봉사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 역시 좀 더 세련된 도구론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총자본의 이익이 궁극적으로 관철된다고 볼 때, 상부구조로서의 국가의 자율성을 확장하면 국가 혹은 의회는 제 계급의 균형을 반영하는 비계급적인 장이 된다. 사민주의란 바로 이점 즉 국가가 제계급의 각축의 장으로서 의회의 다수를 차지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반영하는 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것은 본질론 혹은 도구론과는 다른 관점이다.

결국 도구론은 토대와 상부구조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서 궁극적으로 관철되는 본질을 곧바로 본질로 환원하는 위험이 있다면, 상대적 자율성론은 보다 현실에 부합하지만, 국가중성론 혹은 자본주의 국가의 이용가능성론에 연결될 위험이 있고, 이점은 파괴의 대상으로서의 자본주의 국가라는 맑스적 관점과 충돌할 수도 있다.

아무튼 현대 자본주의 국가는 그 보편적 형식 속에서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관철한다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고, 여전히 그 운동 양식이나 본질의 관철 양식을 잘 설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주제이다.

 

6. 위기 수렴론과 분기론의 위치

현대자본주의 국가에서 지배계급인 자본가계급의 이해가 궁극적으로 관철된다는 본질론은 현실 속에서 자본주의가 경제성장을 이루고, 시민권이 확장되고 복지가 발전해 왔다는 역사적 현실 앞에서 끊임없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축적 위기에 몰린 자본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포스트 포디즘이 가져온 여러 변화 즉 (괜찮은) 일자리의 감소, 경쟁 등등으로 기왕의 복지국가가 내외의 위기에 직면하여 복지국가도 결국은 위기로 수렴할 것인가 혹은 사민주의적 복지국가의 주체적 대응에 따라 복지국가의 큰 틀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의 대립이 있다. 즉 위기수렴론과 분기론의 대립이다.

 

복지국가들이 정도나 시간의 차이는 있을망정 위기로 수렴할 것이라는 위기수렴론에 대하여, 앤더슨은 이를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각 복지국가들이 초기에 형성될 때부터 그 역사적 경험이나 계급구조에 따라 서로 질적으로 구분되는 궤적을 그리며 발전해간다”는 주장을 편다.

박시종은 복지국가 위기론을 주장하는 네오 맑스주의와 신자유주의자들은 복지국가 그 자체가 내부모순 때문에 혹은 국가의 과도한 복지개입에 의해 필연적으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시차를 두고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 복지국가의 재정위기에 강조점을 두든지, 복지국가의 비효율성에 초점을 맞추든 위기로 수렴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수렴론에 맞서 사민주의자들은 복지국가가 형성된 초기의 역사적 경험이나 초기 개혁주도세력의 정치적 성격 그리고 그 이후의 발전을 이끈 계급연합의 구조 등에 초점을 맞추어 복지국가가 그 형성 초기부터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왔으며, 따라서 복지국가의 변화를 추동하는 안팎의 힘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도 경로의존적인 방식으로 서로 다르게 대응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즉 복지국가 위기의 위기론에 맞서 위기 대응의 분기론을 주장한다.

위기론은 세계화와 경쟁압력의 고조에 따른 자본주의의 축적위기가 곧 복지국가의 위기로 발현될 수밖에 없으며, 자본주의의 이기는 보편적인 법칙적 현상이므로 복지국가가 위기 역시 정도를 달리 하면서 보편적으로 관철되어 갈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에 맞서 분기론은 설사 자본주의 축적위기가 보편적인 법칙적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제도의 특수성에 의해 매개될 수밖에 없으므로 위기의 발현형태는 국가특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논거를 제출한다. 결국 수렴은 보편에 분기론은 특수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보편은 특수를 매개로 하여, 특수 속에 보편이 있다면, 분기론을 주장한다고 하여 위기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주장한다.(박시종, 415-418)

 

7. 논의의 한계들: 스웨덴 사례의 검토와 앤더슨의 한계

사민주의적 입장 혹은 동일한 위기에 대응하는 주체적 조건에 따라 차별성이 있다는 분기론의 관점을 논의하기에 앞서, 잠시 스웨덴의 역사적 경험을 살펴보기로 한다.

앤더슨은 스웨덴의 사민주의가 정착한 요인으로 역사적 특수성을 들고 있다.

“산업화 초기단계에서 보통 농민계급이 유권자 집단 중 가장 큰 규모였는데, 농촌경제가 대부분 대규모의 저임금 농업노동자집단에 의존하는 데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자본 집약적인 가족농 경영자들에 의해 지배되는 경우 정치연합의 잠재력이 훨씬 더 컷고,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농민들이 농산물 가격지지를 위한 보조금을 받는 대가로 완전고용 복지국가에 동의함으로써 특히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경우 광범한 적록동맹의 조건이 형성되었다. 이들 나라는 농업의 경영기반이 극히 불안정하여 국가의 지원에 의존하였다. 2차대전 이후 복지국가들의 공고화는 근본적으로 신중간계급의 정치연합에 의존하게 된다. 사회민주주의 입장에서 그 도전은 연대를 위한 노력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노동계급과 화이트 칼라의 요구들을 종합해 내는 것을 의미하였다.... 소득 평준화를 급격하게 달성하려는 프로그램은 중간계급 고객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아졌다. 스칸디나비아 모델은 거의 전적으로 사회민주주의가 신중간계급을 새로운 종류의 복지국가 진영 안으로 포섭할 수 있는 능력에 의존하였다. 새로운 복지국가는 중간계급의 취향과 기대에 부합하는 급여를 제공하되, 권리의 보편주의를 견지하는 그런 국가였다. 사실 이 모델에서는 사회 서비스와 공적 고용을 확대함으로써 사회민주주의에 도구적으로 헌신하는 중간계급을 만들어내는 데에 직접 참여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단순한 복지국가의 발전을 설명하는 단순한 계급동원 이론에 견주어 하나의 대안을 제사하였다.... 배후에서 체제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역사적 힘들은 서로 상호작용하는 힘들이다. 그러한 역사적 용인에는 첫째, 노동계급의 정치적 형성의 역사가 포함되고, 둘째로는 농업경제로부터 중간계급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결성된 정치연합이 관련된다. 셋째 과거의 개혁은 계급의 선호와 정치적 행동의 제도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조합주의 체제에서 위계적인 지위 분화적 사회보험은 독특한 복지국가 유형에 대한 중간계급의 충성심을 공고화하였다. 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중간계급이 제도적으로 시장과 결혼하였다. 그리고 스칸디나비아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지난 수십년 동안 전통적인 노동계급 고객은 물론 새로운 화이트칼라 계층에게도 혜택을 주는 중간계급 복지국가를 확립하는 커다란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앤더슨, 69-73)

 

이러한 앤더슨의 설명은 스웨덴에서 복지국가가 성립할 수 있었던 배경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런데 빠진 것이 있다. 사민주의 정권을 유지하는 힘 혹은 복지국가를 떠받치는 힘은 분명 복지동맹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과의 동맹에 의해 가능했던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복지란 결국 분배의 문제이고 그것은 계급간의 힘의 대결의 문제인데, 앤더슨의 설명에는 이에 대응하는 자본의 처지와 자본의 힘이 서술되고 있지 않다.

 

“스웨덴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대공항의 충격을 덜 받았고, 2차대전을 전후하여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1933년 대공항 이후 당시 생산직 노동자들 중 가장 높은 임금을 받던 건설부문 노동자들이 열달 동안이나 벌인 강력한 투쟁의 여파로 1935년에 ‘공적 연금 혜택의 범위를 급격히 확대하는’ 연금개혁이 시작되었고, 살쮀바덴 협약이 체결된 1938년은 스웨덴이 노르웨이 영국 등과 함께 노동쟁의 빈도가 가장 높은 나라였으며, 1945년에 잇었던 스웨덴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파업은 2차대전을 핑계로 시행되었던 임금통제정책을 무너뜨렸고, 1946년에 ‘공적연금을 질적으로 한단계 상승시킨’ 기초연금이 도입되었다.

40년대말 이후 스웨덴 사민당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최고의 정책과제로 부각하고, LO(스웨덴 노총)에 임금인상을 억제하라고 요구했다. 50년대 초에 LO의 제안은 렌-마이드너 모델로 정식화되었는데, 그것은 연대임금과 긴축재정정책과 노동력의 원활한 이동을 지원하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더한 것이었다. 긴축재정 정책은 시행되지 않았지만, 복지재정의 부족을 이유로 간접세가 도입되고 세율도 꾸준히 인상되었다. 연대임금정책은 실질임금의 하락, 노동강도 강화, 노조의 무력화를 낳았고... 이것은 60년대 말 스웨덴 광원 노동자들이 계급협조적 지도부에 반발하여 강력한 비공인 파업을 벌였고, 그 결과로 69년에 공적연금의 최저선 보장을 강화하는 특별보충급여가 도입되었다. 이런 반란에 직면하여 사민당은 노동법 개정을 추진했는데 그것은 개별기업의 의사결정에 노동자들의 참여를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76년에 제정된 공동결정법은 고용주가 노동조건과 고용조건에 중대한 변화를 낳을 결정을 하기 전에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의무화했다.”(장호종, 179-181)

 

스웨덴의 복지국가의 형성과정을 이렇게 보면, 노동계급의 투쟁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사회민주당은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열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즉 노동자계급의 당 혹은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이 총자본의 위기를 관리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분배나 복지는 제로섬 게임이다. 해당 정세 속에서 어느 만큼을 뺏고 양보를 얻어내느냐의 점에 있어서 자본가계급은 노동에 대하여 노골적인 적대가 아니라 최소한의 양보(혹은 선제적 양보도 포함하여)를 사민당 권력을 통해 관철하고 있다. 즉 복지국가가 형성 또는 발전된 것은 단지 노동자계급이 중간계급과의 성공적인 동맹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조건이라기보다는, 자본이 양보할 수 있는 여유와, 노동계급의 역량과 투쟁이 주도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앤더슨이 복지국가를 유형화하고, 그것을 위한 유효한 틀을 제시한 점은 인정할 만하지만, 그 유형화된 틀이 그 자체의 생명력과 동력을 가지고 새로운 위기에도 복지적 성격을 관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기론은, 자본의 위기와 그에 따라 격화되는 계급대립이라는 본질적 성격을 몰각하게 할 위험이 있다고 할 것이다.

 

8. 결어; 관점 정립을 위한 시도

자본의 축적위기와 세계화는 각국 자본의 경쟁을 격화시키면서 복지국가에게 커다란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에 대한 자본의 대응은 위기털출의 비용을 노동에게 전가하는 것이고 이는 복지의 축소와 노동의 유연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나타난다. 또한 축적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상대적 과잉자본에게 투기처와 투자처를 제공하기 위하여 공공재의 사유화와 개방으로도 나타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이다. 결국 신자유주의 세계화란 현단계 축적위기에 몰린 자본이 국가와 함께 노동과 민중에 대한 철면피한 공격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외적 조건은 복지국가에게도 똑같이 가해지는 위협이고 복지국가의 자본 역시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동일한 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사민당의 제3의 길로의 전향은 이러한 자본의 욕구에 부응한 것이다. 결국 사민당은 노동자계급의 이해 대변자이면서도 자본의 동반자 혹은 자본의 이해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국가가 과연 중립적인 도구인가 혹은 계급지배의 도구인가 혹은 여러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자본의 이해가 관철될 수밖에 없는 장치인가의 점에 있어서, 기왕의 맑스적 관점은 장기에 걸친 본질적 측면을 설명하는 훌륭한 틀이기는 하지만, 우연 속에 관철되는 필연론만으로 현실을 풍부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계급투쟁에 있어서 복지국가의 달성이 목표가 아니라 변혁임에도, 혁명적인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도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고 계급역량을 키워나가야 하는 변혁세력으로서는 자본주의적 분배의 장에서 계급정치를 올바르게 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분배와 복지란 결국 투쟁의 결과이고, 제로섬 게임이라는 점에서 계급화해적인 혹은 계급타협적인 관점을 철저히 배격할 필요가 있다. 복지투쟁이란 자본과 싸워 양보를 강요하고 빼앗는 것이다. 여기에서 관점을 잘못 세우면 집단이기주의로 전락할 위험이 있고, 체제에 순응하고 안주할 조합주의적 투쟁에 머무를 수 있다.

결국 현단계 신자유주의하에서의 투쟁이란 신자유주의가 자본과 국가의 노동과 복지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에, 이러한 공격을 막아내고, 공세적으로 자본의 양보를 강요하는 공세적인 투쟁(일자리에 관한 것이든 복지에 관한 것이든)을 통해서 변혁성을 고양시켜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복지투쟁은 이처럼 계급투쟁이란 관점에 섰을 때에만 운동의 매개로서 기능할 것이다.

 

참고문헌

박시종, 2007. “옮긴이 해설”, <<복지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 390-418

백정미·주은선·김은지, 2008. “복지인식 구조의 국가간 비교”, <<사회복지연구>> 제37호 (2008 여름) 319-344

에스핑 앤더슨, 2007. <<복지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 박시종 옮김, 성균관대학 출판부

장호종, 2009. “복지위기 시기 복지국가 전략의 의미와 한계”, <<마르크스21>> 4호 (2009년 겨울), 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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