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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건설에 대한 단상

  • 분류
    건설론
  • 등록일
    2008/01/23 20:50
  • 수정일
    2008/01/23 20:50
  • 글쓴이
    서른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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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건설에 대한 단상
1. 정세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광풍 속에서 노동계급을 비롯한 민중들의 처지는 더 이상 몰릴 수 없는 궁지에 처해 있고, 반동적 억압과 반동적 이데올로기의 공세가 거침없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반자본의 세계를 지향하는 제대로된 진보정당을 만들어내야한다는 당위는 긴말을 필로 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민노당에서는 종북파와의 갈등을 둘러싸고 쇄신파와 신당파-분당파가 등장했다고 한다. 전선이 아닌 정당이 정치적 사상의 실천체라면, 정치적 사상과 지향과 출발점이 다른 존재들이 하나의 당 속에서 동거한다는 자체가 맞지 않은 얘기다. 바로 그 점에서 심상정 비대위는 어떤 해결책을 강구하더라도, 그것이 민족주의자들과의 결별을 배제한 해결책이라는 점에서 모순의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 끝은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반 민족파와 민족파의 순수하지 못한 타협적 동거로 그 동안의 희극을 지겹게 반복할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인식하에 분당 내지는 신당을 주장하는 그룹이 있다. 이들 신당파는 기왕에 민노당 밖에 있는 사회당이라든지 생태 환경운동 등 시민단체와 함께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겠다고 한다.(이들을 신당파라고 하자)
이들과 반자본의 진정한 대안을 추구하는 세력과의 차이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들을 반자본파라 하자)
 
2. 노선에 대하여
신당파는 민족주의자와 결별하고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민노당의 강령 즉 민노당 창당정신으로 돌아가 2008년 총선 등에 적극 참여하여 기왕에 민노당이 쌓아온 여러 성과를 되찾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민족주의자를 배제한 새로운-혹은 순수한- 버전의 민노당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민노당 구성원의 경향을 분석해 보면 종북파 주체파 민족파 NL파 등으로 불리고 있는 통일근본주의 세력이 있고, 이들의 패권주의적 경향이 너무 강하여 오늘날 민노당을 민족파와 반민족파의 대결구도가 된 것인데, 통일근본파의 내부도 다양하겠지만 문제는 반민족파의 경향도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먼저 주관적으로 뭐라고 표현하든 사민주의적 경향이 대다수라는 점이고, 그외에 자신의 뿌리를 사회주의라고 생각하는 소수의 세력이 있다는 점이다. 어쨋건 신당파는 반민족 세력 즉 사민주의 세력까지 포함하는 제도정당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은 분명하다. 민노당이 강령에서 아무리 사회주의의 이상을 추구한다고 하여도 사회주의 정당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신당파의 선도그룹의 순수성이 아무리 크다고 하여도 그리고 아무리 사회주의를 강령에 못밖는다고 하여도, 제도정당을 지향하면서 외연을 넓힐수록 사민주의적 혹은 사회주의와 사민주의를 적당히 봉합한 제3의 적녹당이 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노당의 창당에 참여하지 않았던 세력-새로운 반자본 정당을 추구하는 세력과의 차별점이 있다. 이것은 단지 사상의 차이만이 아니라 정치노선과 조직노선 투쟁노선 등 모든 점에서 엄청난 차이를 안고 있는 것이고, 그 차별성이 대중에게 인식될 때, 반자본세력도 현실적인 정치세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쨋건 반자본당은 모든 종류의 착취와 억압과 소외와 차별을 극복하는 사회주의 정당임을 명백히 밝히고 출발하지 않는 한 존재가치가 무의미할 것이다.
 
사실 멋진 언사로 반자본의 입장을 천명하고 그것을 강령으로 표현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 동의한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너무 노골적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자든지 혹은 자본의 지배를 끝장내자는 언사만 아니라면, 좋은게 좋은거니까 신당파와 반자본파가 하나의 이행기 강령을 못만들 것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구성원의 경향이 사민주의에 지배되는 한, 강령의 문귀와는 관계없이 사민주의적인 대안과 실천을 낳을 것이고, 바로 이 점에서 사상투쟁이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어쨋거나 신당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 구성원의 일부가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면 정당이라는게 동일한 사상의 통일적 실천체임이 분명한 이상 언젠가는 분당이나 신당을 또 낳을지도 모르겠다.
 
어쨋거나 반자본당은 사민주의적인 개량이나 분배문제에나 매달리는 당이 아니라, 자본의 철폐를 선전하고 선동하는 당이어야 함은 분명할 것이다. 우리는 자기 검열로부터 자신을 해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3. 진보적 당 활동에 대하여
두번째로 우리는 민노당의 경험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지난 토론회때, 신당파의 어느 동지는 정당이 정당인 이유, 선거에 참여할 수 밖에 없는 사정, 지역운동 혹은 지역정치와 만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에 대해 얘기한 바 있었다.
바로 이 지점에 자본주의의 틀속에서 존속해야만 하는 정당운동의 특수성이 들어있고, 아쉽게도 반자본파가 이 문제에 대한 경험과 고민이 부족한 것은 부인될 수 없는 문제다. 어쩌면 당을 건설할 실력이라는 게 바로 이 고민에 대한 사회주의자다운 해답의 제시능력에 달려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대중투쟁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간에 선거에 참여하기로 한 이상 선거등록을 한 이상 모든 당원이 동원되어 부족한 자금을 걷고 득표를 위해 올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선거법도 이상하고 선거지역이 생산현장이나 대중들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까, 결국 주간에는 시장이나 가게에 가서 짧은 멘트로 인사하는 것과, 밤이 되면 사람들이 많은 먹자골목에 가서 명함돌리며 인사하는 것과, 버스 정류장에서 퇴근하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 출근길에 전철역에서 피켓들고 소리지르는 것, 나아가 사람이 많은 로데오 거리 같은 곳에 가서 율동과 노래로 시선을 끌고 열명 스무명도 안되는 청중에게 연설하는 것
 
한마디로 진보주의자로서 참담한 짓을 해야만 한다. 여기에 대중은 없고 유권자가 있다. 참여하여 함께 운동과 투쟁을 하는 대중이 아니라 표를 찍어 줄 유권자가 있는 것이다. 직접민주주의가 아닌 대리정치 속에서 주체적 대중이 대상적인 타자 혹은 객체화하는 자본주의에 특징적이고 악랄한 소외가 고착화되어 있다. 심지어 부르주아지와 똑같이 지역공약까지 얘기한다면 나아가 출마를 알려야되는데 적당한 자원봉사자가 없어서 유급선거원까지 동원할 때는 자기가 속한 당의 당명이 무엇이든 간에 부르주아적인 선거운동을 하고있는 것이 된다.
부르주아 사회에서 부르주아처럼 대중을 유권자로 보고 부르주아적인 선거방법으로 선거에 참여할 때, 최소한 진보와는 거리가 먼 실천이 되버리는 것이다. 민노당은 다수의 구성원이 반자본의 입장이 아니니까 당연 이 문제에 대한 고민도 없었을 것이 당연하지만, 현실 부르주아 사회 속에서 반자본당의 선거운동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상당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또 민노당에는 직장분회와 지역분회가 있는데, 직장분회를 제외하고는 주간에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드물다. 특히 신도시의 경우엔 지구당원이 밤에나 지역으로 퇴근하므로 모든 모임과 실천이 밤에 이루어 질 수 밖에 없다. 아니면 주말에 이루어지든지… 나아가 월1회 만원의 당비만 내고 선거때만 지지하는 즉 비활동적인 당원이 90%가 넘고, 그나마도 야간이나 주말에 당 사업과 결합하는 당원은 많아야 10%정도다. 생산현장의 노조와 달리 지역과 지구로 묶은 회비당원의 존재는 무엇인가? 하나의 지구당 혹은 지역위원회가 존재하기 위해선 월100만원 정도의 상근자 급여와 집세와 통신비등을 감안하면 200명의 당원이 필요한 셈이다. 200명의 회비당원과 20명의 횔동적 당원, 그리고 상근자 1명. 열악한 환경에서 진보정당의 신념을 안고 사업과 투쟁을 하고 있는 그들을 폄하하고자 하는 얘기가 아니라, 당생활과 당활동이 소외의 극복과 실천활동이 되어야 한다면, 당원의 규정부터 시작하여 이상적인 당활동의 모범에 대한 고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흔한 얘기로 부르주아적인 지역운동이나 상근자 운동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 당활동이 해방의 실천운동이어야 한다면, 우리 자신의 소외를 극복하고 해방을 확인하는 운동이어야 한다면, 민노당의 타락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민노당의 타락은 단지 통일근본주의자의 패권주의의 전횡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4. 결어
이상으로 말한 바와 같이 새로운 반자본당은, 신당파처럼 통일근본주의와 같은 우파와의 결별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착취와 억압과 소외와 차별을 극복하는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의 기치를 분명히 하는 것뿐만 아니라, 당의 조직과 일상적 당활동 자체가 유권자가 아닌 대중과 함께 운동하고 투쟁하는, 그 자체가 자본주의적인 소외를 극복하는 사회주의적인 원칙 위에서 고민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단지 이 원칙을 부정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이 원칙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반자본의 진정한 진보정당을 꾸려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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