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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Decision

  • 분류
    단상
  • 등록일
    2008/03/29 18:13
  • 수정일
    2008/03/29 18:13
  • 글쓴이
    서른즈음에
  • 응답 RSS
 
1.
어려운 형편 땜에 학원 한번 다니지 못해 영어는 정말 자신 없다던 조카딸(다섯째의 딸)이, 사립대학의 경찰학과와 국립대학의 식품학과에 합격했다. 어느 과를 선택해야 되는지…
 
조카는 경찰이 되는 것이 꿈이고 더구나 50% 장학금도 준다니까 경찰학과를 가고 싶어 했다. 장학금을 받으면 입학금과 등록금도 식품학과보다는 싸고…
그렇다면 선택할 고민의 여지없이 경찰학과가 아닐까…
 
그런데 넷째가 참견한다.
근데 그 대학 경찰학과는 3년동안 경찰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1명밖에 없다고…
그보다는 식품학과를 나오면 위생교사로 취직할 수도 있고 취직도 잘되니깐 식품학과가 전망이 더 좋다고…
조카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열심히 공부하면 될게 아니냐고 하고, 조카의 아빠인 다섯째는 등록금이 적은 곳이 더 낫고 버스타고 다닐 수 있으니(자취방 얻어줄 형편이 못되니깐) 경찰학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다시 막내가 참견한다. 지금 당장은 100만원 정도 적게 들지만 2학기때부터는 장학금을 못받을 수 있다고… 그러면 도저히 계속 다닐 수도 없다고…
또 국립대에서는 장학금 제도가 많으니깐 열심히 하면 2학기때부터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지만, 사립대는 캐파가 적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장학금을 주다보면 웬만큼 공부해서는 장학금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더구나 국립대는 근처에서 과외든 써빙이든 알바라도 할 수 있지만 사립대는 너무 변두리라 알바도 힘들다고…
 
이쯤해서 결론이 났다.
위생학과를 가기로…
 
이 판단에 이르기까지, 경찰관이 되고 싶어하고, 장학금 때문에 등록금도 적게드는 그리고 통학도 할 수 있는 경찰학과가 아니라, 더 많은 정보의 수집으로 식품학과를 선택하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만약 그때, 이런 정보가 없었다면 아마 경찰학과를 선택했을 것이다.
 
우리들은 어떤 판단을 내리기 이전에 그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갖는다. 다행히 그 정보가 풍부하다면 모르되 대부분은 부분적인 정보 혹은 왜곡된 정보에 의존할 위험이 크다.
 
FTA를 찬성해야 할지 반대해야 할지에 대해 묻는다면 예스든 노든 모두 그 판단에 이르게 된 판단의 자료인 자기만의 정보에 의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그 판단자의 입장까지 가미된다.
 
이러한 입장과 선입견 그리고 부족하고 왜곡된 정보… 이 모든 것이 판단만이 아니라 정보까지 왜곡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학적인 사회주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바람직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들은 과연 주관적 입장이나 열망, 편견이 아니라, 풍부한 객관적 사실에 입각해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일까?
 
2.
60년대 말에 과격파들이 있었다. 붉은 여단이나 하이제커들처럼…
비행기를 납치하고, 총리를 인질로 잡아 살해하고…
지금은 대부분의 변혁을 꿈꾸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자칭 혁명가라는 사람들도 그들의 행동에 대해 어리석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평가한다. 마치 별 큰 고민도 아닌데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그들을 평가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보자. 필경 그들이 어떤 행동(전술)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거기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회변혁의 전망(전략)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의 행동을 유일한 선택으로 만드는 현실에 대한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심각하고 중대한 판단을 하면서 자기 판단에 대한 확신도 없이 그런 결론에 이르렀을 리가 없는 것이다.
 
바로 그때에 테러범의 친구가 있어서 그들을 말렸다면… 그들을 설득하여 테러계획을 포기하게 할 수가 있었을까?
 
지금 신당을 비난하는 통일근본주의자들이나 혹은 이 길만이 진보의 길이라고 획신하고 신당을 만들고 선거를 하고있는 평등파들이나, 혹은 그렇게는 절대로 변혁이 안된다면서 사회주의 노동자당을 만들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혁명가들이나 간에, 문제는 어떠한 대화와 토론도 상대방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사기꾼들 빼고, 확신범들의 경우에 새로운 정보와 합리적인 판단자료를 아무리 주어도 굳어진 판단은 바뀌질 않는다.
 
이것은 계급적 입장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선입견일 수도 있다. 사회주의 이상을 수긍하면서도 사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엇보다도 그들에게는 사회주의란 불가능한 이상일 뿐이니깐 실현가능한 방도를 사민주의에서 찾는 것이다.
 
그런데 자칭 혁명가들은 사민주의를 운운하면 인간취급은 커녕 졸로 본다. 마치 레닌의 고전적인 전위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활동가 정당이나 대중정당 운운하면 졸로 보듯이…
 
이쯤되면 토론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 대중정당론을 선택하는 혹은 전위정당을 선택하든 혹은 대리주의로 가득찬 의회주의 정당을 선택하든지 간에, 그 선택은 객관(한국자본중의 현실)에 기초한 결론이라기보다는 선험적인 판단과 입장일지 모른다. 그런 까닭으로 붉은 여단을 졸로 보면 안되듯이 자기와 다른 입장이라고 해서 대화 자체를 불가능케 할 정도로 상대를 졸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무도 자기 확신은 있을 망정 자기판단의 기준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모르되, 출발점과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판단력이나 지능부족 혹은 양심부족으로 몰아버리는 태도는 경계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토론의 틀이다.
 
3.
내가 경계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만의 세계에 갖혀서 지가 젤로 잘난 줄 알고 남 얘기를 졸로 보는 태도, 남을 부정하는 태도이다. 이 또한 자신에 대한 자기 이론에 대한 우상숭배가 아닌가? 특히나 변화되는 현실을 분석하고 설명할 능력도 없으면서 낡은 레파토리와 고전을 들먹이면서 현실과 구체에서 추상으로가 아니라, 추상에서 추상으로 나가는 이상한 방법론에서 못 빠져 나오는 무능한 죄파들은 반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자신에게 싫은 사실에 대해서는 눈 감아 버리고 설명할 가치도 없다면서 도망가는 비겁한 태도로 원전이나 씹어대는 고전주의자들은 사실 현실의 변혁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
 
좀더 넓은 마음으로 풍부한 현실에 기초해서 원만한 판단력을 갖지 않는 한 우리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우리에겐 싸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싸웠다, 싸우고 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길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고, 바로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자기 변혁을 해야 한다. 난 싸우고 있다고 변명하면서 자기위안을 삼는 사람들이 젤루 싫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서 싸우야 한다.
 
공부 좀 하자! 입맛에 맞는 공부만이 아니라 반동들 얘기까지 일단 넓게 듣고, 자기 만족에 빠지지 말고 책임있는 공부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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