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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주의 체제의 파산

좀머씨에 대한 답글-사민주의 체제의 파산

글쓴이 김두한 글쓴날 2004-07-11 00:28:36 조회 42




먼저 사회민주주의와 사회민주당이 다르다는 좀머씨의 견해에 대해

사회민주주의는 개량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가짜 사회주의 사상입니다. 그리고
사회민주당은 그런 사상, 즉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강령과 정책으로 삼는
당조직입니다. 사회민주주의와 사회민주당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데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합니다. 좀머씨 사상과 조직이 별개일수 있나요?

그런데도 사민주의와 사민당을 분리하려고 하는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좀머씨도
부인할 수 없듯이 영국노동당이나 독일사민당이 노골적으로 사회복지를
후퇴시키고 있으며,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자본가를 위한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앞에서 현재의 사민당들에 환멸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요컨대 좀머씨는 예전의 사민주의체제(?)는 좋은 것이지만, 사민당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사민당이 버린 예전의
사민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현재의 사민당처럼 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꼭 이렇게 사민주의를 사상과 조직이라는 관점에서만 파악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민주의와 사민당이 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사상과
조직이라고 할 때, 사민주의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런 정책이
사용되었던 현실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노동계급 포섭적인 정책과 그
체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전후 독일의 사회민주주의 정책은 독일
기민당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민주의가
사민당의 주요한 정책이라는 점 그리고 사민당의 변절과 기회주의적 사민주의
사상 그리고 그 체제가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중간계급적 타협주의적 사민주의당이 이런 역할을 맡는 것이 오히려 적당하기조차
합니다. 따라서 사민주의와 사민주의당 사민주의 정책에 대한 자의적인 좀머씨
구분은 문제가 있습니다.

어쨌든 좀머씨는 사민주의를 사민주의당의 사상과 다른 것, 즉 사민주의를
사회체제로만 간주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체제입니다.”라고 말이죠. 사민주의를 이상적인 체제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사민주의는 경제적으로 볼 때 자본주의 입니까? 사회주의입니까?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닙니까? 사민주의가 좋았던 시절이 자본주의의 황금기라고 선전되고 있는
사실만 보아도 그것은 자본주의 입니다. 따라서 좀머씨는 특정한 형태의
자본주의를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전히 잉여노동의 착취가
존재하더라도 먹고 살만하고 여유와 안락이 있으나까 좋다는 것이 좀머씨의
주장입니다. 자본가의 착취를 인정하고 노동자들의 피지배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런 자본주의의 전후 호황기의 사민주의처럼 노동자들의 삶이 개선되고
유지되는 사민주의에 안주하는 것이 실패한 사회주의보다 낫다는 것이 좀머씨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사민주의도 자본주의의 체제인 연유로 필연적인 자본주의의
위기와 함께 그 잘나가던 사민주의가 완전히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
아닙니까? 그리고 그 사민주의 체제(?)가 신자유주의 체제(?)로 대체될 정도로
쫑난 것이 현실 아닙니까? 그렇다면 사민주의체제도 이제 이상적인 체제가 아니라
붕괴된 과거의 체제이며, 붕괴될 수밖에 없었던 체제이며, 노동자들의 저항이
거세지니까, 이를 무마하기 위한 체제 혹은 포섭적인 방책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포섭 기간동안 노동자들의 저항이 무력해지자, 공격하고 들어오는
것이죠. 실패한 과거사회주의에 미련이 없는 좀머씨, 사민주의에도 미련을
버리십시오.

그러나 좀머씨는 여전히 현재의 서구의 신자유주의 국가(과거의
사민주의국가)들이 현실의 사회주의국가들 보다 낫지 않느냐고 주장하면서 여전히
우리에게는 최소한 추구해야할 미래이며, 기존의 신자유주의 국가들에서도 다시금
추구해야할 현실의 유일하게 이상적인? 체제라는 것이 좀머씨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을 모르는 말씀입니다. 사민주의를 추구해서는 사민주의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나마 사민주의적인 계급타협적인, 정확히는 노동자들을
포섭하려는 정책을 사용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저항이 있었기 때문에 불과합니다.
정말 좀머씨가 한국에서 그나마 사민주의가 즉 친노동계급적 정책이 사용되기를
바란다면, 사민주의를 지향해서는 안 됩니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혁명적으로
해결할 것을 선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동계급들의 혁명적 실천투쟁을 조직해야
합니다. 바로 그럴 경우에 만 좀머씨가 바라는 자본가계급의 양보로 인한
일시적인 사민주의가 가능할 것입니다. 즉 반자본주의 투쟁을 할 경우에만.
반자본주의의 체제위협이 있는 동안에만 사민주의가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좀머씨가 사민주의를 위한다면, 반자본주의 투쟁을 하십시오. 즉 사회주의 투쟁을
하셔야 한단말씀입니다. 전후 사민주의는 바로 공산주의와 공산주의 혁명운동의
두려움 속에서 자본이 사민주의라는 이름으로 양보한 것이니까요.

아니면 1차 2차 세계 대전처럼 수백만의 노동계급을 죽음으로 몰아넣어야만,
자본가들은 사민주의라는 포섭정책을 사용할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이런
사민주의가 가능한 것은 파괴에 뒤따르는 혹은 경기침체에 뒤따르는 회복기에
가능할 것인데, 이것은 다시금 자본주의의 경제위기시점에 사민주의의 몰락을
가져올 것입니다. 좀머씨 사민주의는 피지배계급인 노동계급의 고통과 저항
그리고 이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포섭정책의 결과 일뿐이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더욱이 이것은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위기로 붕괴할 수밖에 없는 체제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사민주의라는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선동은 결국 당신이
원하는 사민주의조차도 얻어내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덧붙여 말하면 좀머씨는 그래도 신자유주의로 변질된 사민주의가, 머릿속의
사회주의보다는 혹은 현실사회주의보다는 낫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유럽 그리고 선진자본주의에서 누리는 삶의 수준은 사민주의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혁명적 노동운동과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투쟁 그리고 자본의
파괴적인 영향과 빈부격차에 대한 노동계급의 저항의 산물일 뿐입니다. 한국
노동자들이 유럽의 노동자들이 누리고 있는 복지를 쟁취하려고 한다면, 타협을
부르짖는 사민주의를 버리고 투쟁의 길로 나서야 합니다. 사민주의라는
자본주의에 일절위협이 되지 않는 노선을 선동하는 것은 한국 노동자들을 현재의
삶의 수준에 잡아두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역사속의 실패한 사회주의를 계급적 운동세력이 지향해야 할 목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만큼 명백한 것은 실패한 사민주의 그리고
노동자계급을 자본의 공격에 무방비로 만드는 사민주의가 계급적 운동세력이
지향할 목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실패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영원한 실패가 결코 아닙니다. 자본주의의 극복은 단지 실패했던
20세기 사회주의만으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다시말해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사회주의 실패는 성공하는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길입니다. 21세기의
생산력으로 이제 현실적 사회주의를 이루어낼 수 있고 내야만 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않겠다는 사민주의는 잘못이며 영원한 실패입니다.
사민주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않은 체제라는 점에서 미래가 없습니다. 그리고
더욱이 사민주의체제는 사민주의적 방식으로는 얻어질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이를 얻기 위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타협주의적 노선은 현재의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노동계급을 무방비상태로
자본에 공격당하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따라서 사민주의를 선동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잘못입니다.

좀머씨, 과거 사회주의의 실패에 두려워하지 말고, 엄연한 사민주의의 파탄난
현실을 외면하지 맙시다. 사민주의라는 현재에 탐닉함으로써, 현실의 자본가
지배체제를 유지하려는 장난은 하지맙시다. 현재의 탐닉을 위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원을 파는 파우스트가 되지 맙시다. 반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노동계급의 필연적 이상입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이상은 관념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헤겔의 변증법의 구절대로 가장 이상적인 것은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그것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과학적 사회주의의 더욱
철저한 이론화와 계급적 혁명적 실천투쟁과 그 계급적 조직일 필요할 것입니다.
좀머씨의 현실사회에 대한 계급적 투쟁을 바라며...






1. 좀머씨 : 07-11 - 좋은 글이긴 합니다만...이런 지난 시대의 강팍한 논리로 할 수 있는건'혁명'말고는 없을 것 같군요.제 생각을 정리해서 따로 올리죠.긴 여행에서 막 돌아왔습니다. (x)
2. 서른즈음 : 07-11 - 좀머씨에게 확실히 말해두고 싶은 것은, 오늘날 한국의 좌파중에는 구소련과 같은 스탈린주의적 모델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없다는 것입니다.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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